주방에서 바라본 다이닝룸 겸 응접실. 다이닝룸을 별도로 분리해 주방 공간이 훨씬 더 넓고 여유롭게 변신했다. 모던한 분위기의 다이닝룸에는 커튼과 러그, 가죽 시트를 입힌 세븐 체어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주방에는 3m의 대형 아일랜드를 설치해 요리나 설거지를 하거나 간단히 식사할 때 최적의 동선으로 움직일 수 있다. 상부장을 없애 미니멀한 분위기로 완성했다.
패브릭 같은 질감이 나는 벽지로 마감해 모던한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었다.
과거에 비하면 한층 다채로워졌지만, 여전히 ‘아파트’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전형적 풍경이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이 보이고, 거실 반대편에 주방이 놓이는 구조. 지은 지 10년도 넘은 아파트라면 거의 공식에 가까울 것이다. 올해로 지은 지 14년된 아파트에 살던 김정훈 씨는 최근 다른 단지로 이사하며 아파트를 새롭게 개조했다.현관의 완만한 아치 문을 지나면 좌우로 응접실과 거실이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지는 집.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이도환경디자인의 김한석 대표는 건축을 전공한 이점을 십분 발휘해 아파트 같지 않은 아파트로 개조했다.
생각의 전환이 ‘다름’을 만든다
공간의 제약이 심한 아파트에서는 인테리어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관점을 달리해 공간을 다르게 해석해보는 것도 방법. “부부와 중학생 딸아이까지 세 식구만 사는 집이어서 방이 여러 개일 필요가 없었어요. 작지만 거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주방과 이어지는 커다란 거실은 다이닝룸 겸 응접실로 바꾸자고 제안했지요.”
8인용 테이블과 의자만 놓고 여유롭게 꾸민 다이닝룸 겸 응접실은 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간. 집에 손님이 오면 대부분 소파가 있는 거실 대신 이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조별 과제가 많은 중학생 딸이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도 잦다. 응접실에서 마주 보이는 주방 출입구는 완만한 곡선의 아치형으로 제작했는데, 미니멀한 공간에 과하지 않게 클래식한 무드를 불어넣는다. 보는 방향에 따라 빛을 제각기 다르게 반사하는 마감재 안티코 스터코antico stucco를 사용한 점도 분위기를 배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매력적인 블루 컬러의 유리 오브제가 반겨준다. 이 벽을 중심으로 좌우에 응접실 겸 다이닝룸, 거실이 대칭 구조를 이룬다.
작은 방을 없애고 거실을 확장하면서 벽에 키 큰 장을 짜 넣었다. 여기에 책과 각종 생활용품을 정돈해두었으며, 마지막 칸은 화장대처럼 디자인해 문을 열면 아담한 파우더룸이 된다.
현관에 들어서면 아치 벽을 지나서 실내로 들어오는 구조. 다용도실을 허물어 완성한 통로로 빛이 유영해 집 안이 온종일 밝고 화사하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치 너머로 길이 3m의 대형 아일랜드가 놓여 있고, 주방은 상부장 없이 심플하게 꾸몄다. 키가 아담한 안주인을 배려해 하부장 중심으로 수납공간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하부장에 주로 식기류를 수납하고, 안쪽 벽에 짜 넣은 빌트인 타입의 키 큰 장에 냉장고와 세탁기, 각종 식기류와 조리 도구, 소형 주방 가전 등을 수납해 정리 정돈은 물론이요, 동선을 최소화해 가사의 효율성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평소 요리를 즐겨 하고 집에서 각종 모임을 하는 안주인에게는 주방이야말로 일상의 중심 공간인 셈. 대형 아일랜드에서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조리하고, 식사도 하며, 설거지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한편, 반대편 공간(현관에서 오른쪽 복도로 들어가면 나오는)에는 게스트룸과 거실이 나란히 이어진다. 본래 거실은 지금의 절반 크기였지만, 나란히 있던 작은 방을 없애고 거실을 확장했다. 이곳은 심플한 소파와 대형 플로어 조명등을 배치해 책을 읽거나 늘어져 쉬고 싶을 때 주로 애용하는 공간이다. 꼭 필요하고 아름다운 가구 외에는 시선을 어지럽히는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이는 철저히 설계한 수납공간 덕이다. 소파와 마주 보는 벽의 키 큰 장은 수납의 핵심 역할을 한다.
“작은 방을 서가로 꾸밀 계획이었는데 거실을 확장하면서 책을 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벽처럼 보이도록 키 큰 장을 제작하고, 색상도 벽지와 똑같이 맞추었죠. 보기보다 굉장히 깊어서 온갖 살림살이를 다 수납했습니다. 책은 물론 계절지난 옷들, 각종 생활용품이 모두 이 안에 있지요. 거울과 화장대도 갖춰 문을 열면 파우더룸이 됩니다.”
안목과 취향도 아는 만큼 변한다
집의 하이라이트는 중앙에 놓인 정육면체 구조의 큐브. 본래 욕실과 다용도실이 있던 공간이었는데, 철거 당시 다용도실의 비내력벽을 허물어버린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비내력벽을 없애니 뚫린 공간 너머로 지금의 응접실 공간이 보였는데 꽤 괜찮았어요. 이대로 통로로 두어도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집주인 부부도 흔쾌히 동의했지요. 집 구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마스터 베드룸을 해체해 각각 침실과 메인 욕실, 드레스룸, 딸아이 방을 만들고 나니, 욕실과 통로가 하나의 덩이로 분리돼 큐브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통로는 거실과 응접실을 자유로이 오가는 길목이자 동서향 창으로 들어온 빛을 반대편까지 깊숙이 끌어들이기도 한다. 허물지 못한 내력벽에는 카르텔과 라우펜이 협업한 오렌지빛 거울과 수전을 설치했는데, 패브릭 질감을 내는 짙은 청색 벽지와 보색 대비를 3 이루며 인테리어 포인트가 되었다.
자녀방은 베란다를 확장한 뒤 작은 아치 벽을 세워 더욱 아늑하게 꾸몄다.
다이닝룸에서 통로 너머로 바라본 거실. 통로는 다용도실을 철거할 당시 비내력벽을 허물면서 발견한 특별한 공간이다. 내력벽 부분에는 거울과 수전을 달아 외출 전후 단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주방 내부에는 수납장을 짜 넣고 냉장고와 세탁기, 소형 가전까지 완벽하게 수납했다.
“처음 의뢰할 때부터 무리하게 요구한 점은 없었어요. 심플하고 모던한 집, 살기 편안한 실용적인 집이면 좋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김한석 대표가 모델 같은 집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어떤 스타일이든 근사하게 소화해내는 모델처럼 인테리어가 끝난 뒤에도 약간 밋밋해 보이는 집을 디자인할 테니 다양한 취향을 담아보라고요.”
가족실과 방을 하나로 합쳐 만든 거실. 이곳에는 소파와 조명등만 배치하고, 구본창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책을 읽거나 온전히 쉬고 싶을 때 찾는 공간이다.
처음 인테리어할 당시 앤티크 가구로 통일했지만, 살면서 가구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인테리어의 균형이 깨진 데다 10년 이상 사용하니 지겨워져서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변화를 주고자 모던한 인테리어를 의뢰한 부부는 김 대표의 조언을 받아 마감재를 고르고, 발품을 팔아 마음에 꼭 드는 새로운 가구를 찾아냈다. 유기적 형태의 마스터 체어, 가죽 시트를 씌운 세븐 체어와 로쉐보보아의 테이블…. 하나하나 마음에 드는 가구를 발견할 때마다 디자이너와 상의하며 결정하다 보니 물건을 고르는 안목과 취향도 변해가더라는 게 부부의 말. 짙은 원목 마루와 체리색 몰딩, 앤티크가구가 사라진 자리에는 시크한 타일 바닥과 안티코 스터코 벽, 디자인 가구가 채워졌고 원목 테이블과 나무 조명등, 가죽 시트 의자와 도톰한 패브릭을 매치해 온기를 불어넣었다. 주거 환경이 바뀌면 일상의 풍경도 자연스레 바뀐다. 아침이면 주방과 응접실에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오후 4~5시 무렵이면 거실로 들어온 나른한 햇살이 통로를 따라 공간 구석구석을 채우는 집. 확연히 달라진 일상 속에서 세 식구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즐기는 중이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이도환경디자인을 설립한 김한석 대표는 아모레퍼시픽 광주·대전 사옥과 NC 소프트 삼성 오피스 등 사옥부터 각종 상업 공간, 묵호 주택, 양평 주택 등 다수의 단독주택 설계까지 공간 디자인의 범위를 폭넓게 두고 있다. 공간을 바라보는 건축적 시선과 인문학적 사고로, 온전히 사람이 중심이 되는 완성도 높은 공간을 소개한다.
- 아치 벽과 리빙 큐브 남다른 아파트에 숨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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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 옆집이 모두 똑같은 천편일률적 구조의 아파트에서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같은 공간도 다르게 보는 힘, 그리고 선택과 집중으로 만들어낸 디테일이야말로 전형적 아파트를 새롭게 바꿔놓는다. 아치 벽과 큐브로 독특한 구조를 완성한 203㎡ 아파트 개조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