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의 문화 예술 공간 보안여관이 신관 아트 스페이스 보안1942를 오픈했다. 여관의 정체성을 ‘문화 숙박업’이라 정의하고 갤러리, 찻집, 책방, 게스트 하우스 등 ‘자고, 보고, 읽고, 먹고, 걷는’ 생태계를 구현.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가운데)와 전시 기획자, 운영 책임자 전정훈, SK행복에프앤씨재단 김선경 본부장과 일상다반사의 티 마스터, 보안책방 비바 프로젝트의 낮 책임자 강영희 씨와 밤 책임자 김슬옹 씨 등 공동 운명체가 함께한다.
소문은 땅속 깊은 유물에서 시작되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데 거대한 유물이 나왔다더라, 알고 보니 조선시대 집터라더라, 동굴 같은 책방에서 술도 판다더라, 날이 어두워지면 지하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북적북적한다더라, 가끔 마주치는 외국인 가족은 여느 관광객 같지는 않더라, 막상 겉에서 보면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에 놀라고, 들어서면 생각보다 깊어 또 한 번 놀란다더라…. 이쯤되면 누구라도 궁금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체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라이프스타일 범주에서 보면 자못 진지하고, 예술 문화계의 보수 시각에서는 자발 적 아웃사이더를 지향하는 생활 밀착형 예술 공간. 전통과 컨템퍼러리, 메이저와 마이너,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의 범주에서 기꺼이 경계를 넘나드는 아트 스페이스 ‘보안 1942’ 이야기다.
보안여관 신관 ‘보안1942’의 핫 스페이스로 떠오른 지하 보안책방. 오후 2시부터 오픈, 낮에는 전시 기획자 강영희 씨가 책방을 운영하고, 저녁에는 부암동 심야오뎅으로 유명한 김슬옹 대표가 합류해 술과 간단한 음식을 판다. 작은 중정에서 식물 데커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을 크게 짓지 않은 대신 깊이 팠다. 지하 4층 깊이로 파다 보니 중간에 집터가 나왔는데, 땅의 지형을 3D 스캔해 원래 형태대로 지하 가장 낮은 바닥에 앉혔다. 푸른빛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안1942의 모든 공간에서는 문화와 예술에 관한 자유로운 담론이 펼쳐진다.
전통과 컨템퍼러리의 경계
먼저 보안1942를 설명하자면 보안여관부터 짚어야 한다. 보안여관은 1942년 지었고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운영했다. 최성우 대표는 2007년 보안여관을 포함해 구옥 세 채를 매입했는데, 구입하고도 보안여관이 어떤 곳인지 몰랐단다. 어느 날 천장에서 비가 새 지붕을 고치면서 예사롭지 않은 건물임을 직감했고, 서정주ㆍ김동리 선생이 머물며 최초의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 을 만든 장소라는 기록을 찾았다. 문화 기획자인 그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서사였다. 뽀얀 먼지를 걷어내고, 뒷마당에 방치돼 있던 옛 간판을 보수했다. ‘보안여관’ 간판을 건 갤러리는 2009년 문을 연 후 현재까지 17만 명이 다녀간 통의동 핫 스폿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안여관 옆 낡은 집 두 채를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 아트 스페이스 보안1942는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다. 건축 설계를 맡은 민현식 선생은 1백 장이 넘는 설계 도면을 그렸다. 건물 전체를 커다란 유리로 감싸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작게, 뒤로, 소박하게! 마치 옛날부터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처럼 익숙한 적벽돌을 쓰고 보안여관보다 3m 정도 물러나 있어 예상한 것보다 존재감이 적다. 큰 건물을 짓고자 하는 욕심은 어느 건축주라도 마찬가지일 텐데 의외였다. “동네가 오밀조밀한데 대형 건물이 앞을 딱 막아버리면 안 되잖아요. 공동 운명체인 보안여관에 대한 배려가 컸죠. 새 건물이 너무 도드라지지 않도록 가능하면 작고 무표정한 건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도시의 랜드마크는 그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는 괴리가 있다.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가치보다 그 안에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지속하는 데 의미가 있는 법. 건축물의 외형보다는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를 담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결과는 만족스럽다.
보안1942의 백미는 지하 2층 ‘보안책방’이다. 층고가 4.2m로 한쪽 벽 전체에 책이 가득 꽂혀 있어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빛이 묘한 기운을 전하는데, 두툼한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바위들이 바로 소문의 근원지인 조선시대 집터다. 지하를 파다 나온 돌을 3D로 스캔해 가장 깊고 낮은 곳에 재배치한 것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듯 생경한 경험을 선사한다.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는 책방이지만 꽃도 팔고, 밤에는 술과 음식도 판다. 이름하여 비바 프로젝트! 전시 기획자 강영희 씨와 부암동 ‘심야오뎅’ 김슬옹 씨가 합류했다. “보통 지역성을 고민할 때 꼭 주민과 어떤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마을 만들기’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지역만이 지니고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거예요. 요즘은 전통 시장에 가도 물건이 똑같아요. 당연히 재미가 없죠. 옛날 선비들은 술 마시면서 책을 보곤 했어요. 여름이면 물가에 모여 시조 한 수 읊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최고의 풍류였죠.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도 이곳 서촌에서 벗들과 노닐며 작품 활동을 했으니, 서촌의 지역성과 나름 연결 고리를 찾는다면 바로 이런 옛 선비의 풍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최 대표는 밤에 의외로 책이 많이 팔린다며, 술기운에 책을 산다는 여담을 덧붙였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 기존 심야오뎅 팬이 많아 구조적 시너지 효과가 난다.
동시대 문화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늘 ‘답 없는 답’을 고민한다는 최성우 대표. 최 대표와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목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목차’에 참여하면 된다. 어떤 이야기도 자유롭게 오가며, 그 기록들로 <봄, 여름 단편>이라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모노콜렉션의 방석, 소반 등 한국적 미감을 느낄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 두는 평상처럼 단을 짜 좌식과 입식이 모두 가능하도록 했다. 천장의 유선형 하이그로시 조명등은 백지혜 작가 작품.
안방과 게스트 하우스 곳곳에는 현대미술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 최성우 대표가 호텔 아트 페어를 패러디한 여관페어 퍼포먼스 중 하나로, 공간에 머물며 자연스레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노혜정 작가의 파란 바다 사진이 인상적이다.
창 너머 펼쳐지는 경복궁 담벼락 풍경이 일품.
여관과 갤러리의 경계
3, 4층 게스트 하우스는 ‘여관이니까 진짜 여관을 해볼까?’라는 본질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해외 문화 예술 관계자들이 한국 문화 예술의 속살을 경험하며 묵는 레지던스로, 예술가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이 된다. 실제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름간 묵은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매일 아침 8시에 한 시간씩 서촌을 산책했는데, 그 기억이 인상적이었는지 “서울의 속살을 경험한 특별한 시간”이라는 리뷰를 보내왔다.
게스트 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경복궁 돌담, 영추문, 북악산, 인왕산 등 일곱 개의 방에서 모두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고심해서 창을 내고, 최소한의 가구와 소품을 들여 담백하게 꾸몄다. 외국인도 불편하지 않도록 입식으로 구성하되 모노콜렉션의 방석, 백지혜 작가의 조명등, 참죽 나무로 제작한 장준호 작가의 책상 등 공예적 태도를 지닌 한국 디자이너 작품을 선택하니 자연스레 한국적 미감이 구현됐다. 페트병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조혜진 작가의 야자수 오브제, 노혜정 작가의 바다 사진, 재건축 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콜라주한 양자주 작가의 회화 등 공간 곳곳에 장식한 작품은 마음에 들면 구입할 수도 있다.
“디자인이나 라이프스타일 분야와 달리 변방의 예술가는 당연히 ‘안 팔릴 것’을 예상하고 작업합니다. 출발점이 달라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려면 팔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전업 작가라면 더더욱요.” 최 대표가 기획한 ‘여관페어’는 작가들의 상업적 근육을 키우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호텔 아트 페어가 주거 공간과 유사한 환경에 작품을 매치하는 것이라면 여관 페어는 작가들이 게스트 하우스에 하루 이틀 묵으며 워크숍을 한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토론하고, 토론 결과를 나름의 방식으로 공간에 전시한다.
가령 ‘식물’이 주제라면 서촌 일대를 다니면서 식물을 채집하고, 하룻밤 워크숍을 한 뒤 다음 날 설치로 보여주는 식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는 ‘목차木茶(Mok-Cha)’가 열린다. 최 대표는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지하 갤러리에 앉아 있다. 초대를 받거나 신청하지 않아도 누구나 방문하면 최 대표와 작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30년간 살림만 하다 작업이 하고 싶어 엄청난 양의 스케치를 들고 온 전업주부, 타지에 살다 한국에 돌아와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구직자 등 모습도 사연도 제각각이다. 포트폴리오 대신 빵을 직접 구워 가져오는 작가도 있다.
1층 일상다반사는 한국 전통차와 계절차, 다과,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행복에프앤씨재단과 보안여관이 공동 운영한다. 보안여관의 낡은 벽을 마주하도록 테이블을 안쪽으로 배치해 공간의 DNA를 지키면서 색다른 동선을 완성했다.
경복궁이 바라보이는 입구를 등지고 ㄷ자로 배치한 아일랜드. 가구의 담박한 소재, 차 전문가의 조용한 몸짓, 정갈한 도자까지 고요한 차 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언젠가 루이스 부르주아가 매주 일요일 아침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학생들을 자유롭게 맞는 ‘선데이 살롱’을 진행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무척 감동받았죠. 세계적 작가가 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을까요? 문화 예술 분야는 구조적으로 승자의 세계, 영웅의 세계지요. 동시대 현대미술의 최전선이 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보안여관 또한 어떤 면으로는 우리만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 않았을까 반성하게 되더군요. 동시대 문화 예술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또 질문하던 시간이었어요. 어쩌면 목차의 가장 큰 수혜자는 보안여관일 거예요.”
사람들이 얼마나 다녀갔나 헤아려보니 1백60명쯤 되더란다. 슬슬 부채감이 쌓여갔다. 2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봄, 여름 단편>은 최 대표에게 마음을 터놓은 아티스트에 대한 오마주로 기획했다. 평소 2층 전시실은 책 한 권만 파는 한 권 서점으로, 책을 전시한다는 콘셉트가 흥미롭다. 브리지를 통해 보안여관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비영리 기관은 무조건 미션에 투자하라고 하지만, 너무나 이상적 룰이죠. 그저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사주는 것만이 문화 정책이 아닙니다. 예술가가 자력 강생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보안1942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 건물은 이곳에서 나는 수익으로 기획하고, 스태프 월급도 주고, 작가 페이도 넉넉하게 주는 것이 일차 목표예요. 보안1942를 ‘문화 숙박업’이라 정의하는 이유입니다.”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의 경계 1층은 일상다반사라는 젊은 찻집이 있다. 일상다반사를 기획한 행복에프앤씨재단 김선경 본부장은 보안1942의 지향점을 명민하게 이해했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하는 고유한 차 문화를 소개하되, 젊은 층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메뉴와 공간 콘셉트를 제안할 것!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간의 단정한 분위기다. 일반 매뉴얼이라면 경복궁 담벼락이 바라보이도록 테이블을 배치했겠지만, 일상다반사는 보안여관을 바라보도록 입구를 등지고 테이블을 배치했다. 개방감을 제한하니 오히려 차 마시는 행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평이다. 그래서일까, 일상다반사에서는 공간 안에 갇혀 스타일만 누리거나 SNS용 사진만 찍고 후다닥 나가는 풍경은 보기 힘들다. 차 마시는 행위 자체를, 잠깐 멈춤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김선경 본부장은 “20대부터 70대까지 함께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우리의 고유한 철학이 담긴 차 문화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세대와 취향을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아 기쁘다”며 소회를 밝혔다.
‘보안保安’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수십 년간 나그네가 하룻밤 편히 묵고 간 여관은 이제 ‘문화 숙박업’으로서 일상으로 영역을 넓혀, 더 많은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감싸고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회복’한다.
늘 창밖을 바라보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도 많이 찍히는 보안1942의 마스코트 연두. ‘보안견연두’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8월 31일까지 목차 기획전으로 <봄, 여름 단편> 전시가 펼쳐진다.
1942년부터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기능한 보안여관의 역사와 흔적.
보안1942의 궁극적 미션은 바로 ‘보안保安의 회복’이다. 최성우 대표는 보안여관의 역사를 담은 책 <보안백서> 출간을 계획 중이다. “2007년 인수했을 때 보안여관이 어떤 의미인지 저도 몰랐지요. 서정주 시인이 머물렀다는 것 외에는 아무 공식 기록도 찾을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보안백서>예요. 어렵게 이 집의 첫 주인을 찾았지요.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일본인 경찰이었는데, 20년 정도 살다 주인이 바뀌면서 보안여관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최 대표는 여관 주인들과 이곳에서 숙박했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문화공보처 직원일 때 통금이 되면 보안여관에서 묵었고, 니드21의 유정한 소장도 첫 사무소가 통의동 근처라 보안여관에서 종종 도면 작업을 했단다. 우연이라도 보안여관에서 묵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랜 단골처럼 얼마나 반갑던지! 최 대표는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던 해외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도 세웠다.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쌓는 일, 이 또한 10년 정도 지나면 보안여관의 새로운 자산이 되지 않겠는가.
‘보안保安’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수십 년간 나그네가 하룻밤 편히 묵고 간 여관은 이제 ‘문화 숙박업’으로서 일상으로 영역을 넓혀, 더 많은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감싸고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회복’한다. 책방에서 술 팔고, 여관에서 예술 하고, 책을 전시하며 어느 좌표에도 정주하지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최성우 대표. 그가 주창하는 생활 밀착형 예술 공간의 정의는 이렇다. 먼저 ‘함께’ 즐겨야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게 아니라 하루든, 이틀이든, 한달이든 ‘지속성’을 두고 교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장소적 특성, 지역 특유의 각을 살려야 한다. 최 대표는 건강한 플랫폼을 만들면 재미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대중도 알아보는 문화적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자고, 보고, 읽고, 먹고, 마시고, 걷고! 건강한 생태계를 갖춘 문화 생산 아지트 보안1942가 더 많은 인연으로 내실을 다져 강소 문화 독립 공화국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모든 것이 빨리 사라지는 이 시대에 시간의 서사를 존중하며 문화 예술 활동을 펼치는 최성우 대표에게 식물성 스킨케어 브랜드 달팡에서 ‘스티뮬스킨 플러스 리쉐이핑 디바인 세럼’ ‘스티뮬스킨 플러스 멀티 코렉티브 디바인 세럼마스크’와 ‘8플라워 넥타 에센셜 오일 엘릭시르’를 선물로 드립니다.
-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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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골목길 낡은 적산 가옥에 여관 간판이 걸렸다. 여관 안에서는 소통과 예술이 고픈 수많은 주변인의 문화적 성취와 담론이 펼쳐졌다.그리고 얼마 전 그 옆에 또 한 채의 여관이 들어섰다. 갤러리가 된 여관, 술 파는 책방, 젊은 찻집, 한 권 서점… ‘머뭄’과 ‘떠남’이 공존하는 여관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문화 예술과 접목해 생활 밀착형 예술 활동을 펼치는 ‘보안1942’. 오랜 친구처럼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쌓고 있는 그곳에서 어느 좌표에도 정주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최성우 대표를 만났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