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목공예가 박홍구의 작업실. 16년 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터전을 옮기며 축사를 고쳐 작업장과 가구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 속 공간은 올봄에 완성한 가구 전시실로 최근작 ‘나머지’ 오브제를 비롯해 ‘감성의자’ ‘추상탄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왼쪽 가구와 목기 등 실용 제품부터 공예 설치까지, 작품을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작업장과 전시 공간을 분리했다. 추상탄화 기법으로 검게 그을린 소반은 한국적이면서도 모던한 공간에 잘 어우러진다.
초창기에 작업한 캐비닛.
힘든 시기에 작가 자신에게 위로가 되어준 ‘감성의자’와 검은 문양을 입은 소반과 스툴. 따로 스케치나 도면을 그리지 않고 오직 감각으로 완성하는 박홍구의 가구는 어딘지 동심이 느껴지는 정감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서울 중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다시 한적한 국도를 따라 한참을 더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가구장이 박홍구의 작업실. 박홍구 작가는 16년 전 서울살이를 접고 가족과 함께 이곳 이천으로 터전을 옮겼다. 지은 지 50년 된 흙집과 소를 기르던 축사와 창고는 부부의 손을 거쳐 소담한 살림집과 작업장, 가구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부부가 함께 논을 메우고 연못을 만들고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심어 가꾼 마당은 이제야 제법 볼만해졌단다. 가구 전시장은 올봄에야 완성했으니 꼬박 16년이 걸린 셈이다.
‘시간’이 완성한 집
“집이 변하는 과정은 아이가 크는 것과 똑같아요. 이곳으로 오기 전 작은 공방을 운영하며 주문 제작 가구를 만들었는데, 점점 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이 역시 도시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주문받은 6개월 치 작업을 모두 취소했죠. 피아노를 가르치던 아내 역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려와야 했으니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각오는 했지만 시골 생활은 생각한 것보다 더 험난했다. 무너질 듯 낡은 흙집에 마룻바닥을 깔고, 부엌과 화장실을 손보고, 필요한 가구를 만드는 일 모두 박 작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미루나무를 잘라 폭을 맞춰 깐 바닥재를 비롯해 창문, 문틀, 가구, 그릇, 포크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들었다. 공방 일을 하는 틈틈이 벽을 허물고, 창을 만들어 달며 완성한 집은 마치 빼뚤빼뚤 바느질한 조각보처럼 정겹다. ㄱ자 집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가 특징이다. 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부터 부엌, 화장실, 구들방이 자리하고 거실 오른편으로 안방과 작은 사랑방이 연결되는 구조다. 구들방 안쪽으로는 아이가 어릴 때 책 읽고 놀던 다락방이 숨어 있다. 황토물을 들이고, 텃밭을 가꾸면서 담백하게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생활. 건강한 집에서 자라며 흔한 잔병치레도 하지 않은 아이는 무엇보다 감성적이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소년이 되었다. “모든 과정에는 단계가 있잖아요. 마치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집도 한 달, 두 달, 1년이 아닌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하고 하나씩 천천히 손봤어요. 조급하게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은 조금씩 좋아지지 나빠지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더디게 자라는 나무가 단단한 것처럼요.”
우드 터닝 기법으로 제작하는 목기는 굽 없이 아주 얇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작업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천상 목수. 축사를 개조한 작업 공간은 예민한 감각의 작업을 하는 만큼 늘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를 유지한다.
안방과 연결되는 사랑방.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고,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의 엔터테이닝룸으로 흙집과 한옥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작업실 창 너머로 흙집의 정겨운 외관이 바라보인다. 창가에 실물 크기의 모형을 걸어두고 작업에 참고한다.
‘나무’가 전하는 위로
소 여물통까지 그대로 남아 있던 축사를 목공 작업장으로 고치고, 마당에 나무를 심고, 전시장에 학교 마루를 깔고, 대문을 만드는 일 모두 누군가의 도움 없이 부부가 직접 해냈다. 외관만 봐도 관록이 느껴지는 작업장은 일자로 탁 트인 시원한 구조로, 정면에는 수납장을 빼곡히 짜 넣어 필요한 자재를 정리 정돈하기 좋다. 꼼꼼하고 성실한 목수의 성격을 보여주듯 목공 작업을 하는 공간임에도 무척 깨끗하고 깔끔하다. 30년이나 한 일이지만, 그는 작업장에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에어컨도 없는 공간에서 두어 시간 대패질을 하면 마치 도 닦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는 가구를 만들 때 스케치를 하거나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의자, 테이블은 물론 그릇을 만들 때도 정해진 치수대로 작업하는 일이 없다. 그저 감각대로 나무를 깎아 즉흥적으로 형태를 만들어간다.
“집과 작업실을 곁에 둔다는 건, 늘 시동을 끄지 않겠다는 의지예요.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감각을 유지하되, 자연 속에 살면서 생각을 단순화하고 천천히 다듬으려 노력하죠.”사실 목공은 예민한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다. 감각은 가구의 디자인과도, 작업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무심코 하는 대패질과 끌질은 시각과 촉각은 물론 사용감과 맞닿아 있다. 나무를 잘랐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에 따라 그 나무를 다루는 방법 또한 달라진다. 그는 작업실 한편에 수많은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걸어두고 항상 작품의 중요 부분 형태나 표현 방법을 살핀다. 대표작 ‘감성의자’는 감각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감성의자’를 만든 때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혼자 작업하며 외로웠고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을까 불안했다. 사람과 의자가 대화를 나눈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어딘가에 기대어 위로받고 싶은 자신의 감정을 투영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가구라니! 보통 가구를 만드는 이에게 목표를 물으면 목적이 타인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선택받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홍구 작가는 반대다. 자신의 만족이 중요하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욕구가 비슷하다고 했을 때, 결국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다른 사람이 어떤 걸 원하는지도 배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뭉툭한 의자가 주는 편안함과 손으로 만져지는 거친 물성,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재미난 형태는 위로가 필요한 현대인의 각박한 마음을 보듬어주기 충분하다. “작가에게 작품은 곧 자기 자신이에요. ‘감성의자’는 매번 다른 전시를 할 때마다 바뀐 작업을 암시해주는 상징적 오브제로 자리하죠. ‘추상탄화’ 전시 때 토치로 그을린 의자를 전시장 구석에 살포시 세워두는 식으로요.”
삶의 ‘나머지’
추상탄화 작업을 할 때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소박해서 좋다고 여기던 모습이 문득 초라해 보일 때, 작가는 분신 같은 나무를 아름답게 포장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추상탄화는 나무를 인두로 지지는 전통 낙동법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목재의 성질과 상반되는 불을 사용해 검게 그을린 문양을 만들면 많은 색을 쓰지 않아도 화려하고 한국적 깊이감을 표현할 수 있어요. 낙동법의 표현 방법이 다소 제한적이라면, 추상탄화는 붓질하듯 자유롭게 회화적 터치를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고요.” 작가는 수종에 따라 태우는 강도를 더 세게 할지 약하게 할지, 결을 살려야 할지 감각적으로 판단한다. 나무를 태우면 타지 않은 부분의 황금색 에너지가 더욱 도드라질 때도 있으니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내는 신비한 콘트라스트다. 추상탄화에서 태우는 것으로 고유한 예술 감성을 표현했다면, 지난 6월 개인전에서 선보인 오브제 ‘나머지’는 모든 욕심을 소각한 비움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전시에서 “목수에게 삼각뿔 오브제를 만든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목수가 나무를 재단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자투리를 최소한으로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입체에서 삼각형을 만들려면 4분의 3 이상을 도려내야 한다. 어쩌면 삼각형 자체가 자투리라 여겨질 정도로 잘린 부분과 남은 부분이 비등하다. 끝이 뾰족해 무언가를 올려둘수도 없다.
‘느리고 조용하게 편안하게’라는 박홍구 작가의 작업 철학을 오롯이 담은 작업 공간. 잘 마른 나무를 골라 정성껏 짓는 가구는 오래된 집처럼 보는 순간 정감이 느껴진다.
“‘감성의자’ ‘추상탄화’ ‘나머지’는 늘 현재 진행형인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공예는 연속성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충실히 하는 일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초공사지요. 판단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몫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머지’는 단순히 잉여가 아닌,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경제적 가치는 물론 기능도 비운 ‘나머지’. 작가는 아름드리나무를 깎고 또 깎으며 비움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가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전시회에서 삼각뿔을 이리저리 쓰다듬다 등을 기대고 한참을 앉아 계신 분이 있었어요. 공간에 그냥 툭툭 두었을 뿐인데 고요한 풍경을 경험했다는 관람객도 있었고요. 손과 몸,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본 거죠. ‘나머지’는 사용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니 그만큼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 작업이에요. 저에게는 또 다른 시작의 꼭짓점이 된 것 같아 의미가 있고요.” 나무를 사용하는 작업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그이지만, 재료는 우리 목재만 고집한다. 우리 나무에서는 수입목에서 느끼지 못하는 묘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탄화 작업에서 색감과 질감이 절제되어 정적인 무드를 자아내는 것 역시 우리 토종 자작나무다. 또 하나 타협할 수 없는 것은 자연 건조 방식이다. 인공 건조는 수분을 강제로 빼버려 탈색된 느낌이지만, 비바람 맞으며 자연 건조한 나무는 본연의 생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공방 일을 하는 틈틈이 바닥을 깔고, 창문을 달고, 흙물을 발라 고친 ㄱ자 흙집. 마감은 물론 부엌 가구, 장식장, 테이블, 그릇, 숟가락까지 박홍구・하경희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나무가 좋고 나쁨은 만드는 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나무가 무르면 무른 대로 측면이나 통풍이 잘되는 부분에 사용하고, 딱딱한 부분은 견고한 구조목으로 사용하면 되니까요. 옹이, 수반점 등 얼룩이나 균열이 생긴 나무도 형태를 그대로 살려 작업하면 흠이 아니라 디자인이 됩니다. 인위적으로 손질하거나 덧댄 게 아닌,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운 결이 살아 있는 가구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주고요.”인터뷰 도중 유독 눈길을 끈 가구가 있었다. 가구 전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캐비닛’이었는데, 문짝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무에 균열이 생겼을 때 억지로 잇는 대신 진행 방향으로 구멍을 뚫으면 더 이상 갈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손가락을 넣어 문을 열 수도 있고, 옛날 창호문처럼 구멍 너머로 들여다보는 묘미도 있다. 나무도 재단하고 깎아내야 할 자연스러운 방향이 있듯 삶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고 믿는 목수 박홍구. 세상의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그만의 속도로 느린 삶을 이끄는 모습이 단단하면서 더디게 자라는 나무와 같았다. 삶의 나머지 여정이 쓸모없는 자투리가 될지, 또 다른 시작점이 될지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박홍구 작가의 이천 작업실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6년간 손수 가꾼 작업 공간에서 감성이 깃든 슬로 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시 8월 25일(금) 오후 2시
인원 6명
장소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상봉리 작업실
참가비 1만 원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 목공예가 박홍구 더디게 자라는 나무가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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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는 들인 시간과 공만큼 만들어진다. 뼈대를 만들고 대패로 면을 다듬고 끌질을 하기까지 어느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접시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무수한 대패질을 하듯 삶에도 한순간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살려 만든 소박한 가구처럼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구장이 박홍구의 슬로 라이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