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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4_ 세곡동 114㎡ 아파트 한국 빈티지의 활용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이 있다. 엄마의 자개장, 시골집에서 본 투박한 세간들. 가장 가까운 과거까지 부대껴온 생활의 지혜이자 한국적 정서가 담긴 요소를 제약 조건이 많은 아파트에 들였다. 한국 빈티지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준 세곡동 윤서연 씨 아파트.

리폼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옛 자개장.
익숙한 편안함, 빈티지
이제는 가장 보편적 주거 환경이 되어버린 아파트. 획일적으로 지었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삶의 결이 있다. 지난해 세곡동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전면 레노베이션을 진행한 윤서연 씨는 전에 살던 집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아파트를 꾸몄다. 살면서 취향이 바뀌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전에는 실용적인 이케아 가구를 활용해 북유럽 무드의 아파트를 꾸몄는데, 이번에는 그와 정반대로 한국적 감성을 담은 공간을 연출했다.

주방의 슬라이딩 도어는 고택의 대문짝을 활용한 것. 출입구보다 높이가 낮아서 철제 타공판을 덧대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 삶에 농밀하게 스며 있던 한국의 빈티지야말로 무엇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요소일 터. 받아들이기에 따라 고루할 수도, 완전히 새로운 미감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경험과 노하우가 더욱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검색하던 중 김혜정 디자이너(kstyling.net)를 발견했다. 그의 망원동 프로젝트를 통해 고재와 빈티지한 물건으로 공간을 따스하게 물들이는 법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앞에 놓인 첫 번째 과제는 윤서연 씨가 어머니께 물려받은 열두 자의 자개장. 모습은 40년 전과 같지만 프레임은 샛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베를 짤 때 허리를 받쳐주던 도구를 벽걸이 선반으로 활용했다. 
“연남동에 있는 자개장 수리 전문점에서 리폼했어요. 수십 년간 자개장을 리폼해온 사장님도 노란색을 칠해본 적은 처음이라고 하셨죠. 열두 번을 칠한 뒤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어요.” 자개장 리폼에 들인 비용은 3백만 원. 같은 돈이면 새 자개장을 살 수도 있지만 옛것의 깊이는 살 수 없는 법.

최소한 30~40년은 흘러야 낼 수 있는 멋,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한국의 빈티지. 두 사람이 공감하는 코드이자 이 집을 관통하는 테마가 바로 이것이다.

대들보를 리폼해 만든 샹들리에. 고재가 주는 아름다움으로 집 안 곳곳을 채웠다.
“한국 빈티지를 들일 때는 선반, 조명등, 사이드 테이블 등 부피가 작은 요소 위주로 시도해야 실패할 확률이 적어요. 반드시 여백이 필요하죠. 한 공간 안에서 어느 부분을 빼곡히 채웠다면 반대쪽은 비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옛 세간살이로 장식하다
“한국적 감성, 특히 옛 시골집에서 느낄 법한 편안함을 좋아해요. 하지만 이를 현대의 집에 들일 때는 절제가 필요하지요. 아파트라면 더더욱 그렇고 요. 외관에서 풍기는 분위기, 옛 동네의 정취는 배제하고 오직 인테리어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본바탕을 만들어놓고, 부드럽게 터치한다는 느낌으로 시도해보세요.” 김혜정 디자이너의 말대로 아파트에는 옛 물건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본래의 쓰임새, 놓여있던 장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우러져 있는데 하나하나 알아채는 재미가 쏠쏠하다.

좌탁과 같은 높이의 거실 소파는 가인리빙에서 맞춤 제작했다. 나무의 곡선이 우아함을 더해준다. 
다이닝 룸의 펜던트 조명등은 오래 묵은 대들보를 이용해 DIY로 제작한 것이고, 주방의 슬라이딩 도어는 어느 고택의 대문짝으로 만든 것이다. 화려했음 직한 주물 장식이 있던 자리에는 유리와 황동으로 만든 손잡이를 달았고, 출입구보다 대문짝의 높이가 짧아서 철제 타공판을 덧대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를 따라가보니 전통 창호를 개조해 만든 블루투스 스피커가 걸려 있다. 목공예가 한결에게 의뢰해 제작한 제품이다. 살포와 구유, 이남박, 메주 틀 등 농가의 살림살이도 훌륭한 장식 요소. 바닥에 내려놓으면 과일이나 화기를 담을 수 있고, 벽에 걸면 행잉용 선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작은 구유는 고양이를 위한 사료용 그릇으로 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나무를 다루는 솜씨만큼은 일품이었음을 보여주는 살림 도구는 주로 황학동이나 답십리의 빈티지 시장 또는 고미술 상점에서 구입했고, 온라인을 통해서 구입한 물건도 꽤 된다.

현관 벽에 건 한결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나무 오브제는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자칫 아파트에는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재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마감도 질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 천장은 석고보드를 떼고 노출 천장으로 만들고, 벽은 벽지를 벗겨낸 뒤 곧장 페인트칠을 해 까끌까끌한 질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가구는 더더욱 세심하게 골랐다. 고재가 주는 편안함과 어우러지도록 모두 원목 소재로 맞춤 제작한 것. 대청마루로 만든 커피 테이블에 맞춰 소파는 낮게 제작했는데, 바닥에 앉아서 기대기에도 좋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결국 공간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새로운 생활에 금세 길들여진 윤서연 씨는 한국적 감성의 아트워크와 공예품을 곁들이며 그의 색깔로 집을 채워나갔다.

욕실의 독특한 거울은 중국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창호를 개조해 만들었다. 조명등과 틸란드시아로 소소한 즐거움을 더했다. 
이수천 작가의 도자기, 작가의 아내가 깨끼 바느질로 만든 조각보. 특히 조각보는 커튼 봉에 매달아 거실 창가에 늘어뜨렸는데 좌우로 이동하며 햇빛을 부드럽게 가리기에 유용하다. 편안하고 익숙하다는 말은 우리 안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익숙한 요소를 새롭게 들이는 김혜정 디자이너의 작업은 한국적 미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고, 익숙함을 새롭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노출 벽의 질감과 고재의 멋이 조화를 이룬 침실. 헤드보드와 선반에는 좋아하는 물건을 장식했다. 5 작은 구유는 고양이들의 사료용 그릇으로 사용한다. 

Interview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혜정

“데코 아이템으로서 한국적 요소를 대하면 한결 쉬워진다”




실내에 한국 빈티지를 들일 때 고수하는 원칙이 있다면?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요소보다는 선반, 조명등, 사이드 테이블 등 부피가 작은 요소에 한국식 빈티지를 활용해야 실패할 확률이 적다. 또 여백도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요건. 한쪽이 빼곡히 채워졌다면 반대쪽은 비워둘 필요가 있다.

빈티지한 가구, 소품과 제작 가구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다.
둘 다 원목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례와 선을 적절히 활용했다는 점에서도 한국적 코드와 잘 통했을 것이다. 가인리빙에서 구입했는데, 건축학을 전공한 오너가 디자인하고 제작하기 때문에 비례와 선이 주는 단아함이 있다. 선반이 있는 침대, 낮은 소파, AV장 등이 그가 만든 가구다.

현관이 인상적이다. 마치 갤러리에 들어서는 느낌이랄까?
바닥에 이수철 작가의 도자기 타일을 깔고 에폭시를 부어 완성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편안한 쉼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시도한 부분이다. 벽에는 한결 작가의 나무 숟가락 오브제와 구유를 놓았는데, 구유는 수생식물을 기르는 수반으로 활용하거나 향기가 나는 과일 등을 담아놓기에 좋다.

욕실에 고재를 활용한 거울이 있는데, 분위기는 한국적 느낌과 달라 보인다.
비슷해 보이지만 한국의 창호보다는 크기가 작다. 고재 시장에서 듣기론 중국의 빈티지라고 하더라.(웃음) 창살에 거울을 붙여서 사용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이 흔쾌히 승낙했다. 한쪽에는 훅과 조명등도 걸고, 창살 틈새에 틸란드시아를 꽃아 놓으니 소소한 즐거움을 더해준다.


글 이새미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