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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창고의 변신 먹고 놀고 배우고 누리자
구두 공장이 줄지어 있는 성수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삼각 지붕의 빨간 벽돌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50년 전에는 정미소였고 최근까지 창고로 사용한 이 낡은 건물의 정체는 복합 문화 공간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이다. 너와나무로 만든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미식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 펼쳐진다.

1 낡은 벽과 철근 구조는 그대로 살렸고,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이 매력적인 내부. 2 오래된 붉은 벽돌 벽과 너와나무로 만든 문이 성수동 골목과 잘 어우러진다 
성수동은 매력적인 동네다. 거리마다 들어선 오래된 공장, 그곳에서 들려오는 날 선 기계음, 시간이 멈춘 듯 운치 있는 풍경. 이 모든 것을 찬찬히 느끼며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왠지 모를 듯한 정겨움마저 느껴진다. 대형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한 홍대 앞이라든가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여느 골목길과 달리 상업화의 여파에서 아직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동네.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떠오르며 빈티지한 감성이 남아 있는 이 동네에서 50년 전부터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던 낡은 창고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곳,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이다.


예술을 음미하는 미식 공간
“작년 11월, 이 근처를 지나가다 대림 창고를 처음 만났습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붉은 벽돌 건물을 보자마자 마치 근대 문화유산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이 건물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예술을 중심으로 소통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했지요.”

공간 디자이너이자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의 홍동희 대표는 정미소였고, 말 그대로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로 쓰던 이 공간을 갤러리이자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완성했다.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은 옥상을 제외하고 두 동으로 나뉜 1층과 2층을 포함해 약 1백평에 이르는 공간이다. 그는 건물의 외형과 골조는 손대지 않았다. 벽돌 벽과 천장을 받치고 있는 철근 구조, 빈티지한 바닥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면 천장이 높고, 사방에서 빛이 쏟아지는 탁 트인 모습에 매료되고 만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천장이 낮은 아파트에 살고 천장이 낮은 자동차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요.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지지만 현실은 늘 작고 낮은 사각 틀에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오는 이라면 누구나 시야가 넓게 확장되는 공간에서 편히 쉬며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는 공간을 테이블과 의자로 빼곡히 채우는 대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꾸미고 작가의 작품을 오브제처럼 놓았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놓인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술과 일상이 만나는 곳,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은 그런 곳이다.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밥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도 누구나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다. 


1 홍동희 대표가 만든 나무 조명등과 테이블, 이상권 작가의 작품, 키 높은 나무가 어우러져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2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선명한 색채로 표현한 이상권 작가의 작품 ‘와라,제발!’. 3 입구에 양정욱 작가의 작품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을 설치해 들어오자마자 예술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4 싱그러운 초록 식물로 정원을 꾸몄고, 곳곳에 빈티지 토분과 지승민 작가와 협업해 만든 화병을 전시할 예정.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고르곤졸라 피자와 샐러드, 커피 등을 먹고 마실 수 있다. 

먹고 놀고 배우고 누리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만 작품을 관람하란 법은 없어요. 예술과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이곳에는 약 1백여 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장르 구분 없이 우리와 뜻이 맞는 예술가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지금도 신진 작가를 모집하는 포스터를 붙여놓았는데,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처럼 이곳에는 신진 작가의 작품이 벽과 천장에 걸려 있기도 하고, 바닥에 놓여 있거나, 정원 속에 숨어 있기도 한다. 사실 대림 창고의 문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것도 양정욱 작가의 거대한 설치 작업이다. 나무로 만든 그의 작품은 시간 차를 두고 움직이는데, 들어오는 사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작품을 감상하고 지나간다. 갑작스레 마주한 예술 작품이지만, 불편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되레 신기해하고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고. 홍동희 대표가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을 통해 의도하는 바도 이것이다. 단지 커피와 음식을 즐기는 공간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 ‘먹고 놀고’에 ‘배우고 누리자’라는 의미를 덧붙여 일상 속에서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작품을 향유하길 바란다.

작품을 감상하며 맛있는 음식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덕분에 오전은 물론 오후에도 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찬다. 카페의 경우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생산한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블렌딩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선보이는 커피는 산미가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살짝 단맛이 돈다. 핸드 드립으로 내리는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커피도 인기가 많다. 캐주얼한 레스토랑의 경우 초록 식물처럼 싱그러운 느낌을 주는 메뉴가 가득하다. 갤러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형태에 변형을 준 피자도 독특하다. 고르곤졸라 피자는 직접 만든 도를 롤 형태로 재탄생시켰고, 슈림프 피자는 별 모양으로 만들었다.

대림 창고 갤러리 컬럼은 우리 삶 속으로 예술이 들어오는 접점을 계속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지금 우리가 늘 신는 구두를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한 릴레이 구두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 그곳에서 주목 해야할 작가 2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무엇일까? 나는 결국 사람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목격하는 광경을 포착 또는 증폭시켜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낸 것이 ‘와라, 제발!’이 다.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 그리고 상황을 연결 짓 는 고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 사람과 나의 삶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멋있는 장면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내가 사는 동네,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등을 선명한 색감으로 그린다. 그 삶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_화가 이상권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은 나이와 성별이 다른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담았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몸짓으로 설명한 것처럼 가장 본능적이고 익숙한 몸의 언어,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나무 구조물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그 모습이 다시 풍경이 되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그러한 움직임들이 만나 공동의 무언가로 되어가는 모습을 다루고 싶었다. 이러한 일상의 풍경들이 성수동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_설치 미술가 양정욱 



#성수동 #대림 창고 #릴레이 구두 전시 #대림창고 갤러리 컬럼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