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진 듯 이언ㆍ 재인 남매는 성미 씨가 애정을 갖고 꾸민 이 집을 굉장히 좋아한다. 오른쪽 현관 입구부터 따스한 기운이 맞아주는 집. 벽지와 가구는 모두 차분한 것을 골라 헤링본 패턴 마룻바닥이 더욱 돋보인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성향과 취향, 라이프스타일까지 모든 것을 한 번에 말해준다. 단순히 스타일을 두고 이야기하는 일차원적 개념이 아니라, 집에 들어섰을 때 풍기는 전반적 이미지나 가구의 배치, 데커레이션 등을 통해 그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 시선을 잡아끄는 자극적 색감이나 화려한 패턴은 없지만 낯선 이도 금세 익숙하게 느낄 만큼 편안한 공기가 흐르는 집. 바람에 사각 거리는 패브릭 커튼과 화병에 꽂힌 싱그러운 꽃이 찰나의 여유를 선사하는 이 곳은 서울 신천동에 있는 이성미 씨네 아파트다.
1 대리석 타일과 페인트를 시공하고, 세련된 조명등을 달아 호텔 욕실처럼 꾸민 부부 욕실. 2 침실 옆 서랍장 위에 간단히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를 설치한 것이 독특하다. 3 키 큰 장을 짜 넣어 모든 주방 가전을 수납했다. 중앙에 설치한 대형 아일랜드 가구는 맞춤 제작한 것으로, 대리석 상판은 안성 단천 석재 공장에서 구입했다. 4 멀티 기능의 침실. 테라스는 정자처럼 휴식 공간으로 꾸미고, 침대 맞은 편엔 책상도 배치했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으로 채우다
“자신의 공간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저는 유달리 공간에 애착이 강한 편이에요. 어디로 여행을 떠나더라도 숙소를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사람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 영향을 받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집에는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족 모두를 위한 공간이니까요.”
이 집의 안주인이자 해외 패션 셀렉트 숍을 운영하는 이성미 씨는 집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따뜻한 색감의 나무 바닥재, 계절을 이겨낸 흔적이 투박하게 남아 있는 고재, 인위적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문양이 살아 숨 쉬는 대리석까지. 그가 직접 고른 자재만 보더라도 탁월한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자 청담동에서 8년여간 셀렉트 숍을 운영하면 서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해온 그이지만, 집에서만큼은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쉴 수 있기를 바랐다. 수많은 레노베이션 사례를 보면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진행을 주도하는 반면, 이 집은 성미 씨가 자신의 안목과 취향으로 마감재와 가구 등을 고르면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마르멜로 디자인 컴퍼니의 이경희 대표가 집의 일관된 톤앤매너를 유지하고 가구 배치를 통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거실에 작품처럼 걸린 고재(슬라이딩 도어의 소재)는 윤현상재에서 구입했고, 주방 아일랜드 가구의 천연 대리석 상판은 안성 단천의 석재 공장까지 직접 가 서 하나하나 비교해보고 마음에 드는 색감과 문양으로 골랐다. 대리석 틈새에 음식물이 끼일 수 있어서 일반 가정에서는 매끈한 인조 대리석을 주로 사용하지만, 그는 따스한 느낌이 드는 천연 대리석을 고집했다. 약간의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으며, 그 위에 코팅을 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욕실 벽면의 타일, 페인트처럼 고급스러운 질감의 수입 벽지 등은 직접 샘플을 집으로 가져와서 이리저리 대보고, 조명등 아래서도 비교해보는 등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결과물이다. 밑바탕을 제대로 갖춰놓으니 어떤 가구나 소품을 매치해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집 안의 가구는 기존에 갖고 있던 것과 새로 구입한 것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잘 어울리는데, 이는 한 가지 공통된 포인트를 적용했기 때문이다.‘자연스러운 질감’이 유일한 장식 요소라는 것. 브랜드 네임이나 가격에 연연하지 않은채 유행보다는 원하는 가구를 구입한 결과 온전히 자신의 스타일로 집을 꾸밀 수 있었다. 원목 가구는 주로 세덱이나 파넬, 이케아에서 구입하고 데코 소품과 오브제 등은 고속터미널 화훼 상가에서 발품을 팔아 찾아내거나 해외 사이트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닷컴’ ‘웨스트엘름’에서 합리적 가격으로 직구한 것이 많다. 값비싼 것이 아니어도 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1 사랑스러운 핑크 컬러를 포인트로 꾸민 재인이 방. 남매가 함께 공부하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원형 테이블을 놓았다. 2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전경. 창가에는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6인용 테이블을 배치했다. 3, 4 성미 씨의 안목이 드러나는 공간. 나뭇결이 살아 있는 고재 원목을 구입해 슬라이딩 도어와 거울 프레임을 제작했다.
멀티 공간을 꾸미는 가구 배치의 힘
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언ㆍ재인 남매가 각자의 공간에서도 공부나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언이 방에는 직접 짜 맞춘 긴 책상을, 재인이 방에는 4인용 원형 테이블을 놓았다. 부부 침실은 서재, 드레스룸, 욕실, 휴식 공간까지 무려 다섯 가지 기능을 갖춘 멀티 공간으로 완성했다. 집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할 때가 많은 집주인을 위해 이 대표가 가장 공들인 공간이다. 침실에 딸린 테라스가 내력벽으로 지정돼 있어 확장이 불가능한 점을 역이용해 테라스 양쪽에 가벽을 세워 수납공간을 만들고, 중앙에 단을 높여 정자처럼 아늑한 휴식공간을 꾸몄다. 그 앞으로 침대와 책상을 서로 마주 보는 구조로 배치하고, 파우더룸을 개조해 남편과 아내를 위한 개인 수납장을 짜 넣었다.
마치 호텔에 온 것처럼 우아한 분위기의 욕실은 반습식으로 사용할 계획이어서 샤워 부스를 설치하고 벽 하부에는 대리석 타일을, 상단에는 페인트로 마감했다. 스타일리시함의 정점을 찍어준 인더스트리얼풍 조명등은 이성미 씨가 삼진조명에서 구입 한 것. 서랍장 위에 세면대를 설치하고 바로 아래 서랍 칸에 배관을 설치해 오가며 손을 씻거나 단장할 수 있는 파우더룸을 완성했다.
주방은 요리 실력이 수준급인 남편 윤성근 씨와 함께 사용하는 공간임을 고려해 선을 강조한 모던한 분위기로 꾸몄다. 특히 요리와 식사, 설거지를 한자리에서 할 수 있도록 중앙에 커다란 일자형 아일랜드를 설치하고, 벽면에는 수납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세쌍둥이 같은 냉장고와 냉동고, 김치냉장고를 나란히 수납하기 위한 키 큰 장을 짜 넣어 11자 구조로 만들었는데, 동선이 효율적이어서 가사의 부담을 덜어준다. 거실은 폭신한 패브릭 소파와 쿠에로 디자인의 마리포사Mariposa 체어를 놓고, 창가에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6인용 테이블까지 놓아 ㄷ자 구조로 꾸몄다. 누군가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누군가는 소파에 기대어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거실. 따스한 햇살과 초록 식물, 아름다운 나무 가구가 온기를 더해주는 집은 성미 씨의 바람대로 가족을 위한 일상 속 힐링 공간이 되어준다.
디자인과 시공 마르멜로 디자인 컴퍼니(02-588-9216, www.marmelo.kr)
- 자연의 따스함으로 채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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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회색빛 벽지와 세월의 흔적이 담긴 원목, 천연 대리석을 마감재로 활용해 자연의 멋을 들인 신천동 106㎡ 아파트.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세련된 취향이 집은 물론 사람까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준다.#가구배치 #자연주의 #멀티공간글 이새미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