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널찍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각도에 따라 작품의 정서 또한 달라진다. 공간 중심에 자리한 테이블은 부부 설치미술가 로와정이 완성한 ‘미스 퐁주’. 2 미국 윌리엄스타운 태생의 조각가 브루스 가니에의 ‘두상’ 시리즈.
서촌 토마스파크 갤러리
나만 알고 싶은 프라이빗 갤러리
에세이 <뉴요커> <취향>의 저자이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온 박상미는 언제나 남다른 취향으로 미술과 문학을 향한 농밀한 문장을 쏟아낸다. 토마스파크는 온전히 그의 취향으로 완성한 프라이빗 갤러리. 그간 예약 방문 시스템으로 운영해오다 2014년10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전시 를 대중에게 처음 선보였다. 미국 작가 그레그 콜슨Greg Colson, 브루스 가니에Bruce Gagnier 그리고 브라질 태생의 세르지우 시스테르Sergio Sister 3인전으로 모두 국내에는 처음 소개했다. 이후 사이먼 몰리Simon Morley, 심아빈, 덩컨 해나Duncan Hannah 등 국내외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해 전시, 판매한다.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 흰색 건물은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한 것으로, 건축가의 의도에 따라 콘크리트의 거친 벽면을 그대로 살렸다. 더불어 박상미의 예술적 동지들의 참여도 공간에 특수성을 부여한다. 전시 벽면은 홍승혜・김병국 작가가 직접 꾸몄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온의 ‘Hors-chapitre’를 전시장 입구에 상설 전시하고, 공간 귀퉁이에서는 김병국 조각가의 숨은 작품도 발견할 수 있다. 부부 설치미술가 로와정이 동료 작가의 작업 테이블을 콜라주해 ‘미스 퐁주’(박상미가 직접 지었다)라는 테이블을 만들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한 마음이 앉은 자리, 그곳에 앉으면 작품을 느릿느릿 바라보게 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2층 문의 02-723-2973(예약 방문제)
1 폐교의 폐목으로 바닥을 꾸미고, 벽면 단열재를 뜯어 본래 건물의 질감을 살렸다. 2 계동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인 마당 갤러리 건물. 아날로그 방식의 인화를 고수하는 물나무 사진관과 다방 가운데 위치해 중정 역할을 한다. 3 영화 <러브레터>에 등장해 유명해진 폴라로이드사의 즉석카메라 SX-70.
계동 물나무 사진관의 마당 갤러리
한국 근대 문화의 공기
근대 사진술로 촬영・인화하는 물나무 사진관과 이상의 제비다방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다방 사이에 있는 마당 갤러리는 한옥으로 치면 중정에 해당하는 곳. 이곳이 남다른 이유는 건물이 근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양은 냄비 공장으로 사용하다가 독서실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후 빈집으로 방치된 건물을 사진가 김현식 대표가 장기 임대했다. 평소 한국 근대 문화에 남다른 관심이 있던 그에게 근대 역사와 ‘계동’이라는 마을이 주는 서정을 간직한 이 건물은 무척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김 대표는 폐교의 방치된 나무로 갤러리 바닥을 꾸미고, 내부 단열재를 뜯어 본래 건물의 질감을 살렸다. 1층과 2층 사이를 연결하는 승강기를 설치하려다 구조 문제로 공사를 중단한 갤러리 천장은 통유리로 마감했다. 손때 묻은 아날로그 사진이 디지털 사진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계동이라는 동네와 함께 역사를 만드는 공간이다. 계동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전시, 즉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 특징이다. 기획 전시나 임대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던 마당 갤러리는 현재 물나무 사진관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체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2관 ‘사진상회’를 공동 운영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4-3 문의 02-798-2231
1 한양 도성 숲 속에 비밀의 정원처럼 자리한 성북도원. 주변에는 와룡공원, 서울성곽 공원이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2 성북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일곱 팀과 지역 주민이 함께 완성한 기획전 <예술동물원> 전시 부분. 3 성북동 지역 주민이 직접 만든 동물 인형도 한편에 전시했다.
성북동 성북도원
깊은 숲 속에 숨은 비밀 갤러리
한양 도성 북악산을 미끄럼틀 타듯 돌아다니다가 겨우 찾은 이곳은 마치 도시와 단절된 다듬어지지 않은 숲 속에 있었다. 이곳은 본래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머물지 않는 폐가였다. 성북구청에서 매입해 성북문화재단이 관리하는 공간으로, 2014년 10월 ‘성북도원’ 전시를 시작으로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화두는 지속 가능한 활용 방법이었다. 접근성의 한계와 관리 어려움 등의 이유로 고민에 빠진 것. 성북문화재단과 성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와 문화 기획자들이 의견을 모았고 현재 시각예술, 도시 건축, 커뮤니티 아트 네트워크나 미술 세미나 등을 위한 공간으로 기간 개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북도원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성북도원 워킹 그룹’을 구성해 공간 활용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12월 4일부터 6일까지는 나마스떼코리아에서 주최하는 ‘2015 프리 네팔 영화제’가 열린다. 국제실험영화제 조직위원장인 박동현 명지대 교수의 주최로, 2016년 열릴 정식 영화제에 앞선 행사다. 프리 네팔 영화제의 전야제는 4일 오후 6시에 열리며, 네팔의 지반바뜨라이 감독이 2015년 현지 봉사 활동을 주제로 만든 25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앞으로 여러 기획전을 비롯해 야간 영화 상영이나 소규모 파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할 계획이다.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31길 126-9 문의 070-8644-8382(방문 예약 필수)
1 대동호텔은 2014년 7월 호텔 1층과 지하를 리모델링해 30평 남짓한 비아 아트 센터를 오픈했다. 2 2014년 겨울에는 대동호텔을 비롯해 역사가 30~40년 된 숙박업소 여섯 곳에서 제주아트페어가 열렸다.
제주 대동호텔의 비아 아트
43년 된 여관에서 만나는 제주 미술
1971년 객실 아홉 개로 시작한 ‘대동여관’은 주인이 변하지 않고 40년 이상 한자리를 지키는 호텔로 제주에서 유일하다. 박은희 비아 아트 대표의 아버지이자 대동호텔의 주인장인 박용철 씨는 1970년대 초 예술가들이 샹송과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 한잔 즐기던 ‘청탑다방’을 연 주인공. 예술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박대표가 호텔 1층과 지하를 리모델링해 비아 아트를 개관했다. 본래 대동호텔이 자리한 관덕로15길은 예부터 ‘샛물골’로 불렸는데, 이는 동문시장에서 칠성통 옛 제일극장으로 이어진 길. 병원, 가게, 미장원, 목욕탕, 토산품점 등 사람들로 복작대는 거리에서 가장 성행한 사업이 숙박업이었다. 대동여관(대동호텔)을 비롯해 반도여관, 태화여관, 옥림여관, 동성장, 유성여관, 남창여인숙, 경도여관, 한일여관, 세림장이 제주 여행자를 위한 따뜻한 잠자리가 되어주었다. 미술 전시를 중심으로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을 지향하는 비아 아트에서는 프랑스 단편영화를 상영해 지역 주민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바다라는 환경적 특성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지유 작가의 전시 <대양大洋>을 11월 30일까지 만날 수 있다. 척박한 제주의 예술 환경에서 남다른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자, 소통의 장인 비아 아트는 편집매장 비아오브제를 함께 운영하며 매달 한 번씩 벼룩시장도 연다. 주소 제주도 제주시 관덕로15길 6 문의 064-702-7022
1 현대 도예가 이윤희 작가의 작품. 2, 3 상설 전시장과 갤러리로 공간이 나뉘어 있는 내부 공간. 4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 외관. 낡은 주택을 개조해 갤러리로 꾸몄다. 편안하게 들러 구경할 수 있는 분위기다.
한남동 엘스토어
신진 작가를 발견하는 골목길
“한남동에 이렇게 낡은 건물이 있다니 놀라웠어요. 오래된 주택이지만, 층고가 높은 구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었지만, 이면 골목으로서 소통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이정은 대표가 4년 전 보물찾기하듯 발견한 길에는 어느새 개성 있는 편집매장과 카페, 갤러리가 하나 둘씩 들어서 일부러 ‘찾아오는’ 길로 탈바꿈하고 있다. 살림집이던 낡은 주택을 개조해 엘스토어라는 갤러리를 오픈했고 주로 물성의 깊이를 연구하며 작업하는 조형 작가들의 전시를 소개한다. 누구나 편하게 들러 소장할 수 있도록 갤러리라는 타이틀 대신 ‘스토어’라고 간판을 달았다. 특히 이 대표는 알려지지 않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매체와 컬렉터에게 알리는 메신저로 유명한데, 이윤희 도예가가 대표적이다. 미술 대학원 졸업생이던 이윤희 도예가의 작품을 다양한 매체와 컬렉터에게 소개하고, 컬렉터에게 적극 소개해 그의 작업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아요. 잠재력 있는 조형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논의하면서 서로의 세계가 확장하는 경험을 합니다. 작가에게 작품 소재를 제안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실력 있는 숨은 작가를 추천받으며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거대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20~30년 후의 작업을 응원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갤러리와 연결된 상설 전시 공간에서 양유완, 윤상혁 등 현대 도예가와 국내에서 활동하는 인도 작가 프리야 순다라발리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신진 작가와 대중을 연결하는 데 이토록 적극적인 엘스토어는 지난 9월 파리 메종&오브제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남다른 시선의 큐레이팅이 인상적인 엘스토어의 다음 행보 역시 궁금하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5길 27 문의 02-790-8408
1 갤러리 내부에 실제 당구대가 놓인 것이 재미있다. 전시에 따라 당구대는 회의 책상이나 전시 공간이 된다. 2 디자이너 그룹 제로랩의 <제로랩: 사선에 대하여(Diagonal Axis)> 전시장 내부. 장태훈, 김동훈, 김도현 3인이 운영하는 그래픽,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로 전시에서는 비미학적 구조로 여기던 ‘사선’을 재해석하고 가능성을 부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
당구장에서 만나는 청년 예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청년 작가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그들의 실험적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과거 당구장이었다. 주변 지역이 변화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당구장이 젊은 작가의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누구나 쉽게 들르는 동네 당구장처럼 마음껏 머무르며 놀다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푸른색 바탕의 당구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전시 테이블로 사용하기도 하고, 세미나 테이블이나 관객과 대화하는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독특한 점은 전시 작가의 선정 방식이다. 공모와 선정위원단의 추천 과정을 거쳐 디자인, 시각 미술, 건축, 음악, 문학,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가를 선정한다. 최근 2016년 선정 작가를 발표했는데, 패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남현범,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 그래픽 디자이너 코우너스, 사진의 AMQ, 보트 제작의 YCRAFTBOATS 등 총 다섯 팀이다. 구슬모아 당구장을 비롯해 신진 작가를 지원하는 대안 공간으로서 전시장이 하나 둘 생기면서 한남동의 문화도 바뀌고 있다. 용산에 관한 산문집을 낸 이광호 작가는 “대기업의 자본에 휩쓸리지 않는 문화적 공유 지점을 생성해가는 중이다. 새로운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상상력과 변덕은 한남동 골목의 공기를 매일 바꾼다”고 한남동을 기록했다. 시대정신을 반영한 젊은 청년 작가들의 흥미로운 가능성을 들여다본다는 점에 이 공간의 정체성이 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 73-4 문의 02-3785-0667
- 이야기가 있는 아주 사적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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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남다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축적된 시간에 따른 역사가 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흐른다. 남다른 사람이 사적 사연으로 만든 갤러리 여덟 곳을 소개한다. 마을 골목길에 있는 보석 같은 공간들이다.#갤러리 #전시공간 #편집매장 #문화공간글 신진주 |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