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지난 30여 년간 각종 광고제에서 수상한 상패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홍콩 애버딘Aberdeen의 슈퍼페이스 사무실.
오른쪽 예술 작품 컬렉터이기도 한 손정ㆍ래리 슈 부부. 거실에는 위영일 작가의 ‘짬뽕맨’ 시리즈와 김용호 사진작가의 ‘모던걸’이 걸려 있다.
각종 창작물이 탄생하는 곳
태풍의 영향으로 제법 강한 바람이 불던 10월 홍콩의 아침, 먼저 찾은 곳은 부부의 작업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이 CF 촬영을 하는 스튜 디오이자 ‘슈퍼 페이스’를 창조한 아틀리에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1980년대 지은 건물의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세련된 공간이 펼쳐졌다. 높은 천장과 회벽, 오래되어 자연스레 빛바랜 기둥 등은 요즘 한국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재생 건축’에서 볼 법한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개조하거나 연출한 것이 아닌 진짜 옛것과 현재의 조화라는 점에서 공간은 압도적이었다. 마치 1980년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듯한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건 포토 월. 성룡, 양조위, 장쯔이, 판빙빙, 유역비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대 슈퍼 급 스타들과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 진열대로, 그간 손정ㆍ래리 슈 부부가 얼마나 특급 모델과 작업을 해왔는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CF 감독이란 단 몇 시간 안에 모든 승부를 걸어야 하는 직업이죠. 허락된 시간 동안 어떤 결과물을 내놓느냐에 따라 모델비, 매체 운영비 등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하니까요. 그렇기에 그 긴장감은 엄청납니다. 촬영을 앞두고 감기라도 걸리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으니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건 기본이죠. 촬영 전후로 해산물도 먹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손정 씨는 홍콩에서 손꼽히는 성공한 여자 CF 감독으로 통한다. “촬영할 때 많게는 50여 명의 스태프 중 남자가 대부분 이죠. 그들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남자보다 더 남자처럼 일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현장에서 매섭고 엄격한 편이에요.”
시선을 돌리니 칸 광고제를 비롯해 각종 어워드에서 수상한 상패가 한쪽 벽면을 가득 장식 하고 있었다. 수많은 상패와 내역을 굳이 하나하나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돋보이는 창의성과 녹슬지 않는 감각을 유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혹독한 광고업계에서 생존해온지 어느덧 30여 년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들의 실력은 검증된 셈이니까. 이제는 신인 모델을 만나면 억대 급 모델로 성장할지, 1천만 원대 저급 모델로 머물다 사라질지 단박에 가늠이 될 정도라는, 이들이 말하는 미의 기준은 무엇일까? “눈, 코, 입 생김새가 예쁘지 않더라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정이 가는 사람이 있어요. 실제로 너무 예쁜데도 별로 큰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오히려 미모가 조금은 부족한 배우가 더 톱스타 반열에 오르죠. 그 핵심은 끼예요. 순간을 즐기는, 즉 깨어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요!” 그리고 그러한 에너지를 여성에게 불어넣어주기 위해 만든 화장품이 바로 슈퍼페이스란다. “촬영장에 들어올 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얼굴이었는데, 카메라 앞에 딱 서면 오라가 넘치는 경우를 많이 봐왔어요. 자신도 모르는 힘을 발산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에겐 그러한 자신만의 ‘슈퍼 페이스’가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은 “당신의 슈퍼 페이스를 찾아 드립니다”라고 공약한다. 누구나 쉽고 빠른 메이크업을 통해 자신감이 충만한, 그래서 잠재된 끼를 발산해 매력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만들어주고 싶단다. 돌이켜보면, 화장을 하기 전인 민낯일 때는 그 누구도 만나기 싫다가도 메이크업이 좀 잘됐다 싶으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터. 대중의 마음을 훔치는 CF 감독이어서일 까, 손정ㆍ래리 슈 부부는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1 낮에는 기획 회의부터 촬영까지 각종 작업을 하는 사무실이자, 밤에는 즉흥연주를 하며 와인을 즐기는 파티 공간으로 변하는 홍콩 스튜디오.
2 바다가 마주 보이는 거실에도 흥을 돋우는 드럼이 놓여 있다.
3 집 안을 장식한 위트 있는 예술 작품만 봐도 이 부부의 유쾌한 취향이 느껴진다.
4 촬영장에서 모델과 함께 찍은 사진들. 스타의 과거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5 남성 라인 신제품으로 왼쪽부터 밸런스 액트 세럼, 밸런스 액트 모이스처라이저, 킵 잇 클린 클렌저, 파운데이션 스틱.
6 일상의 현실적 빛과 조명 아래에서 예쁘게 보이는 색상이 슈퍼페이스 메이크업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왼쪽부터 립스틱과 치크 블러셔, 컨투어링 스틱, 컨실러 스틱으로 용기에 ‘Have a Colorful Day’ ‘You Are Super’ 등 재미난 문구가 눈에 띈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법
시내에서 차로 20여 분 이동하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고급 빌라들이 줄지어 있다. 마치 한국의 UN 빌리 지 같은 곳, 스탠리Stanley 지역이다. 모퉁이를 돌기 전 하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래리 슈 감독이 한국에서 온 촬영팀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좁은 통로의 양 벽면을 장식한 다채로운 색감의 그림 액자들을 보며 계단을 오르니 확트인 거실과 바다를 마주한 테라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차례차례 눈에 띄는건 선물 포장할 때 쓰는 에나멜 리본의 거대한 모형, 테이블 위에 떡하니 얹힌 남성 구두,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각종 영웅을 섞어놓은 ‘짬뽕맨’ 그림 등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는 작품들이었다. 낯선 곳에 있는데도 마음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고 편안함을 대치시키는 마법 같은 오브제. 알고 보면 저마다 제프 쿤스, 톰 딕슨, 위영일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예술품이다. “전 미니멀하게 꾸민 집에 가면 금세 지루하고 답답해지더라고요. 어떤 곳에 가든 공간에서 감각적으로 자극과 에너지를 받잖아요. 저는 집이든 사무실이든 긴장감을 풀어주고 그래서 자유롭게 웃고 떠들고 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길 바라요.” 심각하고 진지한 것보다는 즐거운 것을 좋아하는 한량의 피가 흐르는 예술가 부부다.
래리 감독에게 집 안 곳곳의 다양한 예술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선반에 놓인 연 하나를 집어 든다. 결혼 전 주고받은 수많은 연애편지 중 하나로, 손정 감독이 직접 만들어준 거란다. “손정은 바다와 같은 여자예요. 평화롭다가도 갑자기 파도가 일고, 다시 잠잠해지고… 변화를 예측할 수 없거든요. 하하!” 이를테면 수족관에 가서 물고기를 보다가 갑자기 “바닷속에 직접 들어가서 물고기를 보면 재미있겠다!”라고 하더니, 정말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즐기는 식이다. 호기심이 많아서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는 손정 감독이 즉흥적이고 도발적인 제안을 할 때마다 래리 감독은 늘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즐겨준다. 이렇게 감각과 욕망에 충실하며 생동감 넘치게 살아온 이들의 지난 세월은 얼마나 특별한 추억들로 가득할까!
몇 년 전부터 손정 감독이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힌 건 슈퍼페이스의 론칭이었다. 하지만 전혀 접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하려면 제대로 몰두해야 할 텐데 과연 시기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처음으로 래리 감독이 흔쾌히 움직이질 않았단다.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손정 감독의 승!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는 손정 감독의 성격을 잘 알기에 래리 감독은 결국 이번에도 같은 배에 오르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지금은 최고의 조력가로 서 함께 슈퍼페이스를 즐겁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기존 제품을 브랜딩 해주는 게 업이었기에, 만드는 것만 잘하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노고의 정도가 열쯤 되겠다 상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백쯤 되는 것 같아요. 내용물, 케이스 디자인, 재질, 스티커 등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만큼 생각보다 장애물도 많고 어렵지만 힘들진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니까요!”
1, 2 손정 감독이 서울에 올 때마다 머무는 손스 마켓 메이커스 사옥 꼭대기 층의 사무실과 옥탑방.
3 래리 슈 감독이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빈티지 마켓에서 사 모은 소품으로, 수납장은 실제 필름 보관함으로도 사용한다.
4 요즘 온통 슈퍼페이스 생각뿐인 손정 감독의 머릿속처럼 컴퓨터 모니터에는 슈퍼페이스 홈페이지가 열려 있다.
5 손정 감독과 그녀의 언니인 손스 마켓 메이커스 손란 대표가 종종 지인들과 파티를 여는 이들의 아지트.
어른의 놀이터
서울과, 홍콩, 중국을 오가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없는 하루를 소화해내는 손정 감독은 그래도 서울에 더 자주 올 수 있어서 기쁘단다. 물론 그러한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머무는 공간의 역할이 크다. 그녀가 서울에 올 때마다 지내는 친정 같은 곳은 언니인 손스 마켓 메이커스 손란 대표의 사무실 건물 꼭대기 층. 손정 감독에게는 이곳이 서울의 집이자 영감을 얻는 아틀리에인 셈이다. 이곳에도 톡톡 튀는 예술품과 유머러스한 소품이 한가득인 건 마찬가지인데,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책상이나 테이블 위 어디에나 고민의 흔적처럼 슈퍼페이스 제품이 쌓여 있다는 것. 마치 그의 24시간은 슈퍼페이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슈퍼페이스는 디자인부터 지금껏 화장품에서 보지 못한 위트가 느껴진다. 시그너처 컬러는 노란색인데 사연이 깊다. “노란색은 우리 부부에게 의미 있는 색상이에요. 우선 촬영장에서 노란색 마스킹 테이프로 위험 요소를 표시하는 일이 잦기에 익숙한 색이지요. 또 코닥의 상징적 컬러이기도 합니다. 코닥이 문을 닫은 날 남편과 저는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요즘 세대 중에는 ‘코닥’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던데, 필름에 대한 경의를 담고 싶었어요. 하지만 슈퍼페이스답게 채도를 조금 높여서 경쾌함을 부여했지요.” 필름 통을 연상시키는
틴 케이스와 안에 들어 있는 종이 선글라스, 립스틱 뚜껑을 열면 보이는 ‘Have a Super Day!’ ‘You Are Super’ 등 미소 짓게 하는 문구 같은 재미난 요소들은 제품을 쓰는 순간 슈퍼 에너지를 샘솟게 한다. 단순히 외모를 치장해주는 화장품을 넘어 내면의 기분까지 업시키는 어른을 위한 장난감처럼!
지금까지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포토그래퍼가 만든 화장품은 많았지만 CF 감독이 만든 제품은 없었다. 그렇다면 CF 감독이 만든 화장품은 뭐가 다를까? “디테일에 강하죠. 많은 돈이 움직이고,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촬영 동안 어디가 이상한지 어디가 안 예쁜지를 재빨리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직업병처럼 순간의 집중력과 완성도에 대한 안목이 훈련되어 있어요.” 이렇듯 사물을 바라볼 때도 ‘이것보다 더 좋은 건 없을까?’ 자문하는 습관이 있기에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비뚤어진 아이라인이나 번진 입술 등을 손쉽게 지울 수 있는 오일 스틱 NG 코렉터가 대표적인 예. “또 CF 감독은 빛에 민감해요. 광고 비주얼을 보고 산 립스틱을 막상 바르면 자신에게 안 어울린다고 느낀 적이 있을 거예요. 대부분 스튜디오 조명발과 현실의 빛이 다르기 때문이죠. 색이라는 게 빛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가 늘 강렬한 조명 아래 있지 않잖아요. 대부분 태양빛이거나 하얀 빛이 많죠. 그러한 일상의 빛에 가장 최적화한 색상을 창조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인지 슈퍼페이스의 색상은 푸시아 핑크나 버건디처럼 톡톡 튀는 강렬한 색상도 더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다. “30대가 되면 피부는 물론 입술까지 건조해져요. 입술 주름도 도드라지고요. 그러한 현실 상황을 고려해 한결 촉촉하고 스킨케어 기능까지 겸비한 메이크업 제품을 만들었어요.” 유행에 대해 소신 있는 의견도 내놓는다. “물광 메이크업이 한창 인기였는데, 실제로 ‘물광 표현’은 현실에서 좀 부담스럽지 않나요? 또 30대가 넘어가면 펄 제품을 피해야 해요. 아무리 예쁜 모델이라도 나이가 들어 미세한 주름이 있으면 더욱 도드라져 보이니까요.”
한마디로 광고 속 모델의 과장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현실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력을 좇겠다는 게 슈퍼페이스의 철학이다. “아침 이슬 같은 여자는 구시대적이죠. 슈퍼페이스가 추구하는 여성은 자신 있고 당당한 여자예요. 아무리 실수를 해도 밉지 않고 오히려 사랑스럽죠. S라인의 몸매가 아니어도 섹시하게 춤을 출 수 있는 것처럼요.” 절대 ‘주눅’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여자가 바로 슈퍼페이스다운 여자란 말씀! “섹시한 속옷을 입으면 스스로 섹시하게 행동하고, 펑퍼짐한 옷을 입으면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지요. 일상의 작은 변화가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는 경험을 종종 해요. 그런 것처럼 슈퍼페이스가 여성에게 슈퍼 파워를 제공해 스스로 더 매력적인 여자가 되었으면 해요.” 이렇게 미지의 슈퍼 파워에 대해 이야기하는 손정ㆍ래리 슈 부부. 30여 년 경력의 인생 대선 배임에도 전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젊고 생생한 기운이 감도는 이들이야말로 남다른 슈퍼 에너지가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6 깔끔하고 단순한 공간에 있으면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는 손정 감독답게 청담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도 위트 있는 오브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7 푸시아 핑크부터 레드, 버건디까지 다채롭고, 누구보다 아시아 여성이 잘 소화할 수 있는 색감으로 완성한 슈퍼페이스 립스틱.
8 슈퍼페이스의 독창적인 대표 제품, 3d 듀얼 립 펜슬과 번진 립, 비뚤어진 아이라인 등을 쉽게 지울 수 있어 편리하게 메이크업을 수정할 수 있는 NG 코렉터.
- CF 감독 손정∙래리 슈 부부의 유쾌한 삶이 전하는 슈퍼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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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광고계, 특히 홍콩에서는 꽤나 유명한 부부다. 30여 년간 굵직굵직한 광고 촬영을 도맡아온 CF 감독 손정과 래리 슈. 그들이 남다른 감각과 연륜으로 화장품 브랜드 ‘슈퍼페이스’를 창조했다. 12월 공식 론칭을 앞두고 <행복>에만 공개한 그들의 홍콩과 서울 아지트에서 브랜드의 철학을 엿보았다.#슈퍼페이스 #래리슈 #손정 #손스마켓메이커스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