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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민병헌 화창한 날 오후 2시
‘별거 아닌 풍경’으로 시작해 ‘잡초’ ‘깊은 안개’ ‘숲’에 이르기까지 평생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선보인 사진작가 민병헌. 명암을 빼고 또 뺀, 밋밋한 흑백 풍경을 담기 위해 ‘흐린 날’을 고집하던 그가 요즘 화창한 날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현대와 근대의 시간이 뒤엉켜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뿜어내는 군산에서 새 작업을 펼치는 그를 만났다.

군산에서 맑은 날 찍은 새로운 시리즈.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풀잎의 선이 에이바이텐(8×10) 유광 인화지에서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인다.
나는 아직도 전시회에 가면, 갤러리에 내 사진이 걸려 있는 게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엉터리구나. 이런 말도 다른 사람에겐 잘난 척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부족한 면이 자꾸 보이니까, 작업을 그만둘 수 없다._ 인터뷰 중 전시회를 마치고 한 달쯤 지났을까, 1월 2일 갑자기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남쪽으로 떠나던 날, 계획에 없던 경유지가 추가됐다. 30대 때 한 번 가본 군산. 시내에 들어서니 기분이 묘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이 떠올랐다. 나흘 밤낮으로 군산 골목을 구석구석 담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불현듯 이곳에서 살고 싶어졌다.

1백년 전 가옥의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 옛 모습이 보고 싶어 막힌 천장을 털어내고 돌가루가 부스러지는 벽면에 황토를 발라 마감했다. 
지난해 양평에서 군산으로 작업실을 옮긴 민병헌 작가.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섬’ ‘잡초’ ‘깊은 안개’ 그리고 ‘숲’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연의 소재를 다뤄왔다. 평범한 소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이다. 젤라틴 실버 프린트의 흑백 스트레이트 사진만 일관되게 작업한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해가 쨍쨍한 날 오후 2시쯤, 125분의 1초에 조리개 8을 놓고 찍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명암이 분명한 흑백사진에 기준을 두고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잡초’를 시작으로 희미한 것에 빠져들었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자욱한 날에만 사진을 찍으며 이 회색의 끝이 어딘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군산에 와서 해가 나는 날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거의 20년 만이죠. 요즘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그저 밋밋한 흑백 풍경을 찍는 사진가 민병헌. 
화가는 그림으로, 음악가는 소리로, 그리고 사진가는 사진으로 자기 얘기를 하려는 사람이다. 사진가 민병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의 사진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터. 작업에 투영된 그의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보았다.

별거 아닌 풍경 속의 잡초
민병헌을 세계적 사진가로 이끈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열등감이었다. 수재 소리 듣는 집안에서 늘 꼴찌만 했다는 그의 10대는 열등감과 소외감으로 가득 찼으니 지금의 성공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우연히 갖게 된 카메라를 메고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도 밥벌이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의 연속. 첫 연작 ‘별거 아닌 풍경’은 철저히 렌즈에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한 것이리라.

서양식 목조 건물과 벽돌 건물이 나란히 자리해 운치를 더하는 집. 민병헌 작가는 군산 원도심의 스러저가는 적산 가옥을 구입해 지난가을부터 손수 하나씩 고쳐 작업실로 완성했다.
그에게 사진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깜깜하고 밀폐된 암실에서 혼자 작업할 때는 열등감이나 소외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다 고등학교 은사이자 사진작가인 홍순태 선생을 만나면서 흑백 프린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별거 아닌 풍경’은 1980년대 말죽거리를 찍은 사진이에요. 도시도 시골도 아닌 그 어중간한 곳이 제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는 유학파가 메이킹 포토를 내놓으며 사진이 붐을 일으키던 시기였는데, 사진을 전공하지 않고 스트레이트 사진만 찍는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죠.”

다이닝 공간에서 바라본 거실. 다이닝룸과 거실, 주방, 복도까지 문을 열고 닫으며 공간과 공간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순환 구조다.
길을 걷다 발견한 돌멩이 하나, 풀잎 하나, 나뭇가지 하나….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풍경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내비친 그는 이후 ‘잡초’ ‘깊은 안개’ 시리즈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잡초’ 시리즈는 새벽 이른 시간 우연히 마주친 비닐하우스 틈새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풀을 재료나 기법의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다. 제 힘 닿는 대로 자라는 풀잎이 그려내는 선 하나하나에서 그는 문득 자신의 촉각을 일깨우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하찮은 풍경도 계속 보면 마음으로 들어온다”는 작가만의 고유한 시각이 생긴 것이다.

본채를 손보기 위해 맞은편 별채를 먼저 고쳐 몇 달간 살림집으로 사용했다. 별채는 스튜디오처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하는 미닫이문이나 벽체를 최대한 없앤 것이 특징. 집과 나이가 비슷한 빈티지 가구를 두어 정갈하게 꾸몄다. 
깊은 안개
“흑백사진이 훨씬 우아하고 값어치 있다고 생각해서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어찌하다가 배운 사진이 흑백사진이고, 여전히 재미 있어서 할 뿐이지요.” 그는 그림 같은 흑백사진을 찍는다. 민병헌 그레이라 불리는 콘트라스트 없는 흑백사진은 한 편의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답지만 별다른 기교가 필요하지 않은, 사진의 기본에 충실한 작업이다. 새벽안개가 자욱하거나 비가 오는 날 찍고, 인화할 때 톤을 최대한 낮춰 뽑는 것. 가장 밝은 것부터 가장어두운 것까지 흑백의 정도를 열 단계로 나눠, 열 단계가 모두 담겨야 좋은 흑백사진이라는 이론을 정립한 미국의 풍경 사진가 앤설 애덤스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한 작업인 셈이다. 하지만 사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리얼리티 아닌가. 안개가 뿌옇게 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 상황에서 본다면 그의 사진처럼 형태만 겨우 보이는 뿌연 톤이 가장 리얼한 것일 수 있다. 더 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색과 형태를 인화지에 담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가 도전이었다는 그는 똑같은 장면도 특별하게 만드는 민병헌식 감성을 완성한다.

욕실은 기본형 사각 타일을 시공하고 톤 다운된 핑크색으로 도장했다. 
“사진뿐 아니라 예술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남들이 안 한 걸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만큼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 있나요? 사진이 발명된 이후로 안 찍은 건 없단 말이죠. 남들이 못 본 걸 찾으러 다니는 게 가장 어리석은 일이에요. 남이 찍은 바다를 찍고, 나무를 찍고, 풀을 찍어도 내 감성이 있잖아요. 지구 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얼굴이 다르듯 감성 또한 모두 달라요. 나를 위한 사진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건 내 감성 찾기예요.” 새로운 대상을 찾아다닐 시간과 노력 대신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분명 저 안개 너머에 있지만 아직은 뿌옇게 보이지 않는 ‘나’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옛날식 입식 주방에 최소한의 주방 가구만 더했다. 창문을 살리기 위해 그보다 낮게 상부장을 배치한 배려가 돋보인다. 
군산
여행 갔다가 잠깐 들른 군산에 마음을 뺏겨 즉흥적으로 작업실을 옮긴 작가는 요즘 “공간이 사유를 지배한다”는 말을 톡톡히 실감한다. “양평 서종 작업실에서 17년 정도 있었어요. 그 세월은 제 사진 작업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죠. ‘스노랜드’ ‘깊은 안개’ 등 극단적 회색 톤의 시리즈를 내놓았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군산은 완전 반대예요. 시각적으로 강렬해요. 새 시리즈는 100% 해가 나는 날만 찍어요. 해가 쨍쨍한 날은 렌즈를 통해 어떤 사물을 보는 것 자체가 싫었는데, 이렇게 소름 끼치게 좋을 수가 있나 저도 놀라는 중이에요.”

각진 목창으로 온종일 환한 햇살이 들어오는 응접 공간. 여전히 작동하는 빈티지 오디오와 북유럽 빈티지 가구가 어우러져 있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
군산은 콘트라스트가 강한 도시다. 현대건축물과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이 공존하고 거기에 1960~1970년대 난개발 문화까지 더해 여러 시대가 화석처럼 공존한다. 군산에서도 근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원도심의 골목을 지나다 색이 벗겨지고 녹이 슨 철 대문에 마음을 뺏겨 즉흥적으로 폐허가 된 적산 가옥을 구입하고, 작업실을 옮긴 작가는 지난봄 이사해 별채와 본채를 손수 고쳤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이 서양식으로 지은 집은 광복 이후 군산에서 꽤 큰 사업을 하던 집안이 사용했고, 그 후 20년 정도 방치되었다.1970년대 집의 일부가 붕괴되면서 벽돌 건물을 세워 목조 건물을 지지하고 있으며, 내부 공간은 비교적 옛날 구조와 마감재 등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마루, 문짝, 창문 모두 1백 년 전 그대로. 다만 20년간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전기, 수도, 보일러 등 기초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았다.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면서 고쳐야 했기에 오히려 더디고 어려웠던 작업이었다. “썩어가는 집을 부수고 다시 짓지”라며 유명 건축가를 소개해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목수를 어렵사리 구해도 손으로 하나하나 고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마다하기 일쑤였다.

시거나 떫거나 달지 않고, 자신의 맛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깊은 풍미를 내는 빈티지 와인처럼 묵직한 통합의 맛이 나는 군산 작업실. 원래 이 집에 있었을 것 같은 벽면 찬장은 그가 양평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제품으로 관록이 느껴진다. 
하지만 민병헌 작가가 누구인가. 30년간 오직 흑백사진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집념은 집을 한 땀 한 땀 손보는 데도 여실히 반영됐다. 70대 동네 목수와 토닥토닥하며 6개월간 쓸고 닦아 완성한 집은 누렇게 변색된 빈티지 프린트처럼 운치 있고 특별하다. 대부분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가장 일상적 공간인 거실, 손님이 오면 차 한잔 나누기 좋은 작은 응접실, 간소하게 꾸민 주방과 옛 구조에 욕조를 들여 재구성한 욕실 등 집은 순환하는 구조다.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 다양한 비례의 목창, 수작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문살 등은 지금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이 집만의 디자인 요소. 이 집에 원래 있었던 듯 잘 어울리는 빈티지 가구는 모두 작가가 평소 하나씩 모아 양평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발표하지 않은 작업 중에 ‘죽은 화초’ 시리즈가 있어요. 동네에서 하나 둘 버린 화분을 모아두었다가 골재 채취하는 현장에 가져가서 찍은 것이죠. 당시에 인화까지 해둔 작업을 파주 전시 때 꺼내봤어요. 20년이 지나 자연스럽게 변색된 톤이 참 좋더라고요. 이 집도 제겐 그래요. 흔들리지 않고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것처럼 세월을 꿋꿋이 이겨낸 것도 장하고요.”

현관에서 왼쪽으로 응접 공간,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와 주방, 욕실, 작업실, 다이닝룸이 연결되는 순환 구조가 재밌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진학교 브룩스 인스티튜트의 2014년 입학생은 필름을 보지 못한 세대라고 한다. 기자 역시 소풍 갈 때마다 챙긴 필름 카메라보다 아이폰 카메라가 간편하고, 사진을 사진이 아닌 데이터로 부르는 게 익숙해졌다. 디지털은 공허하고, 아날로그가 그립다는 구태의연한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사진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에 밤잠을 설치거나, 레코드 가게에 들러 LP를 사지 않는 순간부터 내 삶이 좀 시시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민병헌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얘기를 했다. “사진은 찍은 다음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촬영은 물론 인화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상을 보고 읽고 찍고 현상하고 인화하는 것만 30년 이상 해왔지만 아직도 난 이 단순한 과정이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디지털을 시작하겠나? 뭐든 기본이 되는 걸 먼저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번뜩이거나 테크닉이 좋아도 우직하게 쌓은 세월의 내공은 따라가지 못하는 법. 흔들리지 않고 기본을 지키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민병헌 작가. 디지털 문법이 더 익숙한 지금 창간 28주년을 맞은 종이 매체 <행복이가득한집>이 기억해야 할 가치가 아닌가 싶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