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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카스, 일상을 디자인하다
최근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가장 관심 높은 도시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두 도시에서 3백6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피스카스 기업의 대표적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피스카스, 이딸라, 로얄코펜하겐 등을 통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속살을 만났다.

작은 호수와 냇가, 오래된 석조ㆍ목조 건물들, 키 큰 아름드리나무들이 어우러져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늑하다. 피스카스 빌리지는 사유지로서는 핀란드에서 가장 큰 숲이다.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가위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 피스카스Fiskars 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다. 실제로 핀란드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피스카스는 2013년 3위에 이어 2014년 2위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1위는 밀크 초콜릿 브랜드인 파제르 블루Fazer Blue가 차지). 1649년 핀란드의 피스카스 브루크Fiskars Bruk란 작은 마을에서 설립한 이후 홈, 가든, 아웃도어 카테고리 제품을 선보이며 성장해왔다. 특히 소비자가 일상에서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제품군에 기업의 전략과 역량을 집중해 이딸라, 아라비아, 로얄코펜하겐, 핵크만, 거버Gerber 같은 신뢰도 높은 국제적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1818년 지었지만 화재로 소실돼 1855년 재건한 구리 대장간 건물. 현재는 전시장과 숍, 레스토랑으로 활용한다. 
3백66년 전 브랜드 설립 당시 핀란드는 철 산업을 위한 이상적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었고, 주변 국가들의 잦은 전쟁으로 제철소가 많이 들어섰는데 피스도카스 그중 하나였다. 마을을 중심으로 본격적 제철 사업을 전개한 피스카스는 1830년대에 작업장의 기계화를 구현하며 첫 번째 나이프 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나이프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생산 범위를 포크와 가위로 확장했다. 나날이 발전하던 피스카스가 가장 주목받은 것은 1967년. 세계 최초로 기존 쇠 손잡이 가위의 불편함을 개선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가위를 선보이면서다. 지금 우리가 가정과 회사에서 사용하는 바로 그 익숙한 디자인이지만, 당시로선 아이디어를 넘어선 혁신이었다.

산책하며 쉬엄쉬엄 공방과 숍을 구경하다 보면 수공예품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1977년 세계적 경제 강국인 미국에 피스카스 가위 공장을 설립하고, 1985년에는 현대적 가드닝 기구를 생산하기 시작하는 등 독보적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제품 개발과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노력함으로써 관련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한 해외무역을 통해 시장을 성장시킨 피스카스는 21세기에 접어들어 전 세계 소비자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제품과 기업 인수를 통한 확장에 주력했는데 그 스토리가 흥미롭다. 2007년 리빙 분야에서 기반을 마련하고자 이딸라를, 가드닝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 르보르뉴Leborgne를 인수하더니 2013년에는 덴마크의 핸드 페인팅 도자기 기업 로얄코펜하겐을 인수 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바로 지난달에는 영국의 명품 테이블웨어 브랜드 웨지우드와 로얄 덜튼, 로얄 앨버트 등을 유한 WWRD을 인수한다는 서프라이즈 뉴스까지 발표했다. 이제 홈 리빙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피스카스를 빼놓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세기, 피스카스 지역은 나무와 물이 많아 철을 생산하기 위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었다. 이후 할 일을 잃은 제철소 마을은 아름답게 복원해 핀란드를 대표하는 공예 마을로 변모했다. 
숲 속의 공예 마을, 피스카스 빌리지
이번 북유럽 출장에서 가장 기대감을 가진 곳은 피스카스 빌리지였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숲 속에 자리 잡은 동화 같은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가기에 앞서 피스카스 팩토리를 방문했다. 때마침 공장 앞 테스트 가든에는 피스카스 R&D센터 디자이너를 위한 가드닝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프로 가드너의 지도 아래 정원을 직접 가꿔보고 가드닝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정원용품 연구와 개발에 실질적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73종의 가위를 생산하는 피스카스 공장에서 테스트랩은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제품별로 품질관리 기준(Standard Product Requirement)을 정리한 교본에 따라 열 가지 테스트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오렌지 컬러 테스트, 손잡이 강도, 전지가위의 스프링은 25만 번, 커팅은 6백만 번 테스트를 거치며, 정원용 삽은 60kg의 힘을 5만 번 가하는 테스트를 한다. 손잡이부터 나무 막대와 스테인리스 삽까지 탄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피스카스 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단 가위. 이 오렌지색 가위는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피스카스의 R&D 담당자 페테리 마살린Petteri Masalin은 “피스카스 제품은 하루아침에 알려진 게 아니다.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장한 비즈니스다. 제대로 팔려면 제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테스트해봐야 안다. 가위를 예로 들자면, 여기서 파는 모든 가위가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지고 생산되는지 알아야 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이렇게 만들어진 가위를 통해 어떤 느낌을 받으며, 왜 구매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이딸라가 일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이딸라는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하지만 우리는 내부에서 디자인한다. 그냥 디자인 스케치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엔지니어링적인 부분, 메커니컬 용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내부 디자이너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여름 전시 기간 중에는 피스카스 입주 작가의 공방에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한다. 
공장을 둘러본 후 본격적으로 피스카스 빌리지로 향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아늑한 호수와 샛강을 끼고 있는 이곳은 17세기 후반 구리와 철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제철소 중 하나였다. 피스카스의 탄생지이자 기업 성장의 근원지인 셈.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세계 경제는 침체 상태였고 유가는 폭등해 공장의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검은빛 화산암 찌꺼기로 만든 벽돌과 붉은 벽돌을 이용해1902년에 지은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곡물 창고. 지금은 전시장으로 사용한다.
피스카스는 이곳이 전통과 역사가 녹아든 만큼 ‘살아 있는 제철소 마을(A Living Ironworks Village)’이라는 슬로건으로 되살리기로 결정했다. 몇몇 공장을 가동하며 거주자를 지원받았고, 곧 마을에는 기술자뿐 아니라 수작업을 기본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후 마을에서는 입주 작가들의 크고 작은 전시회가 열렸고, 19세기 지은 목조ㆍ석조 건물들은 원형 그대로 남아 예술인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피스카스와 오랜 역사를 함께하며 1967년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를 탄생시킨 구리 대장간 건물은 수준 높은 미술과 디자인 전시를 하는 공간. 현재 이곳은 6백 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는데 이 중 1백50명이 작가이다. 가구 디자이너, 금속공예가, 짚풀 공예가, 세라믹 작가 등은 겨우내 이곳 공방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업을 하고, 5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전시를 열어 관람객을 맞는다.

피스카스 빌리지는 연간 2만 5천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핀란드의 명소로, 호텔과 레스토랑, 공예 숍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빌리지 내 나무 공방에서 만든 가구로 아늑하고 심플하게 꾸민 호텔. 
작가들의 공방 이외에도 고풍스러운 외관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깔끔하게 레노베이션한 두 개의 호텔이 있어 숙박도 가능하며 레스토랑, 카페, 바, 초콜릿 숍 등 식음료업장 그리고 액세서리, 향초, 가드닝용품, 옷, 가방, 가구 등 핸드메이드 공예품을 판매하는 편집매장 등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부대시설이 마련돼 있다. 그 밖에 슬로 푸드 마켓, 앤티크 벼룩시장, 뮤직 콘서트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가득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피스카스 빌리지는 연간 2만 5천 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정도로 핀란드 최고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쉼이 필요하다면, 북유럽다운 일상을 잠시라도 경험하고 싶다면 아름다운 피스카스 빌리지(www.fiskarsvillage.fi)에서 참평화를 느껴보길 권한다.

공예 숍에서 발견한 손맛 나는 덧버선. 
타임리스 디자인, 이딸라
헬싱키 공항의 라운지부터 시내 호텔, 식당, 카페 등등 가는 곳마다 마주하는 식기의 대부분은 빨간 원 안에 소문자 I가 선명하게 찍힌 브랜드 로고를 단 이딸라 제품이다. 1881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30분가량 떨어진 이탈라 지역에서 유리 제조 브랜드로 시작했고, 유리 제품은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딸라가 유명해진 데에는 각 라인을 탄생시킨 디자이너의 역할이 컸다. 현대 건축의 상징인 알바 알토Alvar Aalto, 핀란드 대표적 디자이너 카이 프랑크Kaj Franck, 유리공예의 대가 오이바 토이카Oiva Toikka 등이 이딸라와 함께했다. 1936년 유리 제품 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알바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Aino Aalto 등 뛰어난 디자이너를 발굴했는데, 이들을 추축으로 이딸라만의 현대적이고 실용적 디자인 양식을 구축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핀란드 호수 둘레의 곡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화병 ‘알바 알토’ 시리즈가 대표작.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유리컵은 꾸준히 사랑받는 제품으로, 이딸라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잘 보여준다. 어제 디자인한 듯 현대적 느낌인데 82년 전에 디자인한 제품! 아주 심플하고 조용한 디자인으로, 사용할 때 그 진가를 더욱 경험할 수 있다.

“가장 마지막 디자이너는 고객”이라는 이딸라의 생각처럼 이 다양한 식기는 언제, 누가, 어떻게 사용해도 잘 어우러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핀란드 사람들은 시골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해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라비아 세라믹의 수석 디자이너이던 카이 프랑크는 전쟁 이전에 핀란드인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던 24인조 풀 디너 세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핀란드인은 이제 작은 집에서 살고 큰 세트를 살 만한 돈도 없었다. 갖고 있던 화려한 식기들과 잘 어우러질 정사각형ㆍ직사각형ㆍ원형 같은 아주 심플하고 단순한 컬러의 식기가 떠올랐고, 1952년 이렇게 탄생한 것이 테마Teema 컬렉션이다. 이 그릇은 지금 다른 테이블웨어와 믹스 매치해도 손색없는 가치 있는 디자인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72년부터 시작한 버드 바이 토이카Bird by Toikka. 유리공예의 대가 오이바 토이카의 상상력, 유리라는 재료에 대한 지식과 이딸라 글라스블로어glassblower 장인이 만나 탄생한 시리즈다. 지난 40년간 5백여 종의 새가 완성되었다.

헬싱키 외곽에 있는 이딸라 팩토리. 모든 유리 제품은 이곳에서 생산한다. 블로어들의 움직임이 잘 짠 군무를 보는 듯 일사분란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유리뿐 아니라 도자기ㆍ패브릭ㆍ나무 등 다양한 소재의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제품군 역시 식기 외에 수납용품, 조명,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확대되었다. 헬싱키 이딸라 매장에서 만난 홍보 담당자 시루 노리Siru Nori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행을 타지 않는 타임리스timeless 디자인, 이것이 바로 이딸라다. 국적이 무엇이든, 라이프스타일이 어떻든,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든 오래가는 디자인, 상상력을 자극할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딸라는 고객에게 답을 제안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객 스스로 자기 삶에 가장 어울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최종 디자이너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유리 작가 오이바 토이카의 상상력으로 1972년부터 생산하는 버드 바이 토이카. 
일상에 럭셔리를 담다, 로얄코펜하겐
2013년 피스카스 그룹에 합류한 덴마크의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은 1775년 줄리안 마리 황태후의 후원으로 설립했다. 거센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도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예술적 작품으로 2백40년간 덴마크 왕실을 비롯한 전 세계 명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특히 뛰어난 공예술로 인정받는 라인은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와 하얀 디너 접시 한 개에 1천1백97번의 붓질을 해야 완성하는 블루 플레인Blue Plain으로 장인의 자부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제품이다.

로낭&에르완 부홀렉 형제가 디자인한 유리 화병 루투.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팩토리에서는 전통과 클래식의 가치를 붓에 담아 펼쳐 보이는 장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팩토리를 태국으로 이전한 이후 열네 명의 플로라 다니카 페인터와 여섯 명의 블루 페인터가 작업 중이다(운 좋게도 나는 친절한 블루 페인팅 장인 메테의 개인 교습 아래 머그에 메가 문양을 그려 넣는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플로라 다니카의 경우 덴마크 <식물도감>에 수록된 5백여 종의 꽃과 양치류 세밀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그대로 접시 위에 그린다. 사진을 보는 듯 그릇 위에 살아 있는 섬세한 세밀화는 11단계의 수작업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교한 형태, 생생한 색채, 화려한 금도금으로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공예술의 정수 그 자체!

1, 2 코펜하겐 중심가 스트뢰겟 거리에 자리한 로얄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 다양한 제품 라인을 믹스 매치해 아름다운 테이블 세팅으로 제안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로얄코펜하겐의 식기를 식탁 위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쓸 수 있는지 보려면 코펜하겐 중심의 스트뢰겟 거리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면 된다. 그곳에서 만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닐스 바스트루프Niels Bastrup는 “로얄코펜하겐은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헤리티지가 깊이 뿌리박힌 회사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와 문화권의 니즈를 존중할 줄 안다. 우리 컬렉션은 대부분 글로벌하지만 2013년 한식 그릇을 출시한 것처럼 어떤 부분은 로컬화한다”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나의 임무는 로얄코펜하겐이 ‘혁명(revolution)보다는 진화(evolution)’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럭셔리하지만 편안하고 다가가기 쉽도록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로얄코펜하겐이 2백40년의 역사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팩토리에서 내가 직접 그린 청아한 블루 컬러의 메가 머그잔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렇게 나의 일상에 럭셔리가 들어왔다.

1 로얄코펜하겐 제품의 예술성은 장인들의 핸드 페인팅에 있다.
2 정교한 세밀화를 접시에 옮겨 그린 공예술의 정수, 플로라 다니카 라인.
3 도자기에 세밀화를 그려 완성한 부활절 오너먼트 장식품. 

취재 협조 한국로얄코펜하겐

글 구선숙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