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캔과 병으로 만든 의자
업사이클링 가구의 대표 주자는 에메코Emeco(www.emeco.com)의 ‘111 네이비 체어’가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을 위해 제작한 에메코의 알루미늄 의자를 기본 모델로 한 이 제품은 코카콜라의 재생 페트병 65%, 유리 섬유 35%에 색소를 넣어 1백11개의 플라스틱병으로 만들었다. 사실 음료수 페트병은 어떤 방법으로든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지속력’에 초점을 맞추어 의자로 업사이클링한 것. 그리고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업사이클링 의자 두 가지를 추가로 발표했다. 디자이너 필립 스탁과 협업한 ‘브룸 스툴’, 디자이너 넨도와 협업한 ‘SU 바 스툴’이 그것. 브룸 스툴은 버려진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었으며, SU 바스툴은 현지의 오래된 건축물에서 가져온 참나무, 재활용 유리병, 산업 폐기물 세 가지 모델로 구성했다. ‘눈에 보이는 요소와 보이지 않는 요소 모두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서라면 존재해야 한다’는 에메코의 철학처럼 업사이클링 요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에메코 가구의 아름다운 외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버려진 가구 가죽으로 새로운 가구를 만들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페페 헤이코프(www.pepeheykoop.nl)가 2011년부터 진행하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인 ‘스킨 컬렉션’. 키워드는 가구에서 다시 가구로 돌아오는 ‘순환’에 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가구나 누군가 사용하던 가구, 분해하는 과정에서 남은 가죽을 모아 자연의 섭리를 닮은 듯 ‘다시’ 가구로 만든 것. 스크래치가 있거나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죽 조각은 염색해 자연스러운 패턴을 만들었다.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하고, 버려진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의미에서 스킨 컬렉션이라 이름 지었다.
고재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이어 만든 가구
인도네시아 각지의 티크 고재로 가구를 제작·디자인하는 네덜란드 친환경 원목 가구 브랜드 디보디d-Bodhi(www.d-bodhi.com). 오래된 가옥, 침목, 목재 선박 등 시간에 따라 색감과 질감이 변한 고재 조각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붙여 식탁과 의자 등을 만들며, 최근에는 고철을 수집해 스틸과 원목을 결합한 컬렉션도 선보인다. 모든 가구는 패턴이 달라 소장 가치가 높고, 마감 칠을 하지 않아 사용할수록 멋이 난다. 특히 티크 고재는 물에 강해 원목 가구인데도 주방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다.
와인 캐스크를 가구로 업사이클링하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와이너리이자 가구 브랜드인 산 파트리냐노San Patrignano(www.sanpatrignano.org)의 업사이클링 소재는 캐스크(와인을 담아두는 나무통). 와인과 함께 특유의 향과 색이 배는 캐스크를 이용해 스툴, 벤치, 선반, 소파 테이블 등을 만든다. 산 파트리냐노의 마케팅 담당자 루차 루기는 문제 청소년에게 캐스크를 업사이클링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해 캐스크처럼 그들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며 “업사이클링이란 새로운 삶”이라고 표현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하며,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소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비자는 업사이클링이라는 콘셉트를 이해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아름답고 실용적인 가구를 구입하기 원하기 때문에 아무리 콘셉트가 좋아도 디자인과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더했다.
철제 오일통을 손으로 펴 만든 가구
산업 규모나 대량생산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디어나 순수한 표현은 외면하기 쉬운 오늘날의 가구 생산 시스템과 달리,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비브라치오니 아트 디자인(www.vibrazioniartdesign.com)은 철저한 크래프트맨십을 통해 가구를 만든다. 철제 오일통을 원하는 크기대로 잘라 일일이 손으로 편 뒤 의자, 테이블 등을 선보기 때문에 모든 가구는 늘 하나뿐인 ‘신제품’ 이 되는 셈이다. 최근 철제 오일통으로 오토바이를 만들기도 했는데, 모터사이클 전문 업체인 두카티와 협업해 런던 바이크 쇼케이스에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모든 재료는 특색이 있고, 이것이야말로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나타낸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 그래서 공정이 오래 걸리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구를 만드는 데 가치를 둔다.
도시의 폐품으로 만든 의자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버려진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많은 것이 연결 고리를 잃고 쓸모없다고 판단한다. 왜일까? 스페인 디자이너 그룹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www.studioswine.com)은 도시의 쓰레기에 집중했다. 상파울루 거리에서 모은 다양한 폐품으로 의자를 만들었는데, 모든 제작 과정에 모두 업사이클링 제품을 활용했다는 것. 손수레를 끌고 폐품을 거둬들이는 상파울루의 고물 수거 집단 카타도르Catador에서 착안한 프로젝트 ‘캔 시티Can City’는 공사장에서 얻은 모래와 야자수잎, 벽돌로 주형을 만들고 여기에 폐알루미늄 캔을 녹인 주물을 부어 즉석에서 알루미늄 의자를 만들었다. 거리에서 거둔 소재를 활용해 거리에서 생산하고 거리에서 판매한다는 콘셉트인 이 프로젝트는 2013 세계 공익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업.
낡은 가구의 과거를 회상시키는 아트워크
폐자전거, 버려진 벤치, 오래된 현관문 등을 업사이클링해 새로운 가구로 디자인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마노테카Manoteca(www.manoteca.com). 오래된 현관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작업대 겸 테이블이나 책 선반 겸 조명등으로 다시 태어난 폐자전거가 이곳의 제품이다. 대표 엘리사 카바니는 업사이클링의 의미가 과거를 회상하고 재생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상업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아트워크라는 생각으로 업사이클링에 접근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가구 디자인으로 끄집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개인의 경험이나 특정 능력이 더해져 버려진 물건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 오는 9월 새로운 작업을 발표할 예정이며, 게임과 여자의 변덕을 디자인 과정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취재 협조 챕터원(070-8881-8006), hL1991(02-515-5361), w101(02-535-1014)
- 목적과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업사이클링을 주도한다
-
작년 말 인기몰이를 한 석촌호수의 대형 고무 오리 러버덕이 노란 흔들의자로 돌아왔고, 올여름에는 여수에서 해양 쓰레기 업사이클링 축제가 열린다. 2017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업사이클링 타운이 장안평에 조성되는 등 국내 업사이클링 이슈가 잇따라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해외에 비해 관심도 이해도 부족한 것이 사실. 신선한 소재와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업사이클링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해외 브랜드를 통해 업사이클링 트렌드와 의미를 짚어보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