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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 작가 최은영 추억을 저장하는 바느질
25년째 퀼트의 묘미에 빠져 계절마다 손수 만든 퀼트 작품으로 집을 꾸미는 최은영 씨의 주종목은 머신 퀼트. 손의 세밀한 움직임에 따라 바늘 한 땀 한 땀을 조절하며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핸드 퀼트와는 달리 매우 정교하고 규모가 큰 작업을 완성할 수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그때그때의 감정과 추억을 퀼트 작업에 담아내는 최은영 씨에게 퀼트란 추억을 담는 일기장이다.

거실 소파 좌석을 감싼 커버와 쿠션, 테이블 러너와 러그 모두 최은영 씨가 직접 만든 것. 집 안에 적용할 수 있는 ‘인테리어가 되는’ 소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저에게는 퀼트가 딱 맞아요. 미술에 천부적 재능은 없지만 손으로 만드는 것 좋아하고 예쁜 것 좋아하니 저만의 감성과 감각을 뽐내 마음껏 작품을 만들 수 있거든요.” 아트 퀼트 작업으로 국내외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퀼트 작가가 되기까지 25년간 최은영 씨는 퀼트를 온전히 자신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인테리어가 되는 퀼트’에 대해 고민했고, 단순히 소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집 안 곳곳에 적용할 수 있는 소파 커버, 벽 꾸밈, 러그, 티슈 케이스, 컵 받침 등을 직접 만들어 집 안을 꾸몄다. 봄과 여름에는 터키 블루, 가을에는 브라운 등 계절 따라 기분 따라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도록 하나하나 다양한 색깔과 패턴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 관심의 깊이를 알 만하다.

재봉틀 옆에 두고 자투리 천과 실뭉치 등을 손쉽게 버릴 수 있도록 만든 주머니. 
세밀한 머신 퀼트의 매력에 빠지다
“결혼 후 취미 삼아 ‘윤퀼트’에서 퀼트를 배우기 시작해 처음 10년 동안은 핸드 퀼트를 즐겼어요. 솔직히 취미치고는 열심히 한 편이에요. 그러다 학생들을 가르쳤고, 또 선생님들과 함께 1년에 한 번씩 작품전을 하면서 퀼트로 제 꿈을 찾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기 위해 문화센터에서 15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트 퀼트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최은영 씨의 주종목은 재봉틀을 이용한 머신 퀼트다.

그가 만든 퀼트 가방은 종류도 스타일도 다양한데 실제 자신의 옷과 매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퀼트는 시간을 들여야만 결과물이 나오는 작업이에요. 가장 간단하고 쉬운 것을 만들 때에도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만 완성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내심과 내공 없이는 견뎌내기 힘든 취미이기도 하지요.” 한번 시작하면 한 달, 두 달, 심지어 1년이 넘기도 하는 작업을 위해 그는 집의 작은 방 하나를 퀼트 방으로 꾸몄다. 볕이 잘 드는 방에는 수십 장의 원단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장을 짜 색깔별로 정리했는데, 마치 도서관 책장에 가지런히 정렬한 책을 연상케 한다. 재봉틀과 도구, 퀼트 관련 책과 스크랩물, 스케치 등은 아틀리에처럼 한데 모아 공간을 마련했다.

여행지에서 구입해 수집 중인 골무와 가위, 실패. 
“머신 퀼트는 말하자면 재봉틀로, 스티치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바늘 한 땀 한 땀을 조절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요. 숨 한 번 잘못 쉬면 바늘땀이 잘못 나갈 정도로요. 아미 퀼트, 웨딩링, 화이트 퀼트 등 여러 가지 퀼트 방법 중에 가장 흔히 떠올리는 것이 바로 패치워크지만, 저는 주로 화이트 퀼트 작업을 합니다. 하얀 스티치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에요.” 먼저 밑그림을 그린 후 안쪽에 솜을 넣고 원하는 그림을 수놓으며 누빈다. 대개 밑그림은 보상화문 같은 우리 전통 문양에서 모티프를 얻거나 돌담, 종유석, 꽃 등의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다.

원단은 한눈에 보기 쉽게 직접 짠 장에 색깔별로 정리한다. 
과거의 감정과 추억을 새기는 퀼트
최은영 씨 집 거실 분위기를 살리는 퀼트 쿠션과 러그는 모두 직접 만든 것. 터키 블루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붉은 계열 컬러와 매치하면 푸른빛의 쌀쌀한 느낌은 덜고 독특한 분위기를 내 봄에 자주 애용한다. 보통 퀼트를 시작하는 단계에는 색 배합이나 패턴 등이 정해진 패키지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대개 일본 아즈미노 원단을 많이 사용하는데, 퀼트 소품 중 흔히 볼 수 있는 톤 다운된 컬러 원단이 바로 아즈미노 원단이다. 하지만 그를 매료시킨 퀼트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색 배합이다.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면서 작은 조각들을 맞춰나갈 때, 내가 고른 색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게 행복이고, 그 즐거움 때문에 오랜 시간 퀼트를 이어가고 있지요.” 기본 테크닉만 익히고 나면 이후에는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자신만의 감각을 색 배합으로, 응용 패턴으로 여지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단을 잘라 붙여 만드는 콜라주 기법을 적용한 것. 티슈 케이스와 티 코지, 테이블 매트, 티 코스터, 주방 장갑 등을 만들었다. 
한편 그에게 퀼트는 마음속 일기장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잊히기 쉬운 순간의 감정과 추억을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새겨내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입원해 있던 병실 창문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평소 산책하면서 무심코 지나치던 병원 창문은 같은 창문인데도 사뭇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때 아들의 쾌유를 기원하면서 ‘희비의 창’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 작품이 일본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는데, 아들이 자기 상이라면서 굉장히 좋아했어요. 사고로 우울하던 기분도 떨쳐버리는 계기가 되었고요.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에는 수능 대박의 기원을 담아 1년 넘게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어요. 화이트 스티치 기법으로 한국적 문양을 재해석한 작품이지요. 몇 해 전에는 친정엄마가 편찮으셨어요. 그 당시 작업한 작품 제목이 ‘희망의 별’인데 엄마의 쾌유를 기원하면서 제 에너지를 쏟아냈죠. 사람의 눈과 손에서 기가 제일 많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 당시 제가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를 바느질에 담고, 또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명상하고, 저 자신도 힐링합니다.”

취미 생활은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하는 최은영 씨. 내 취미를 통해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늘 새로운 아이템에, 패턴에, 기법에 도전하는 열정이야말로 취미를 오랜 시간 이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에 기원을 담아 완성한 작품. 화이트 스티치 기법을 적용한 것으로, 한국적 문양을 퀼트로 재해석했다. 

글 손지연 기자 | 사진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