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두 개를 터서 만든 놀이방은 머스터드와 진회색으로 칠하고 집 모양 가벽을 세웠다. 왼쪽 벤치는 아이 침대로 사용하던 것을 리폼한 것.
부부는 같은 아파트의 아래층에서 3년을 살았다. 강북으로 출근하는 아내와 강남으로 출근하는 남편 사이의 거리적 타협점이라는 마음으로 연고도 없는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181.81㎡(55평)인 이 집은 조금 작은 평수이던 지난 집과는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평수가 크다 보니 체리목과 골드 디테일 등을 가미한 중후한 콘셉트의 디자인이어서 부부의 취향과는 거 리가 멀었다. “새집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정돈’된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납할 때에도 수납 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똑똑하게 가려 넓고 쾌적한 느낌을 주는 집요”라는 것이 아내 김상은 씨의 설명.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실장과는 두 달 가까이 디자인을 논의한 후 공사를 시작했다.
폴딩 도어와 전신 거울로 넓게 꾸민 전실.
쌍둥이 남매를 위한 원더랜드
먼저 맞닿아 있던 방 두 개를 터서 아이들을 위한 널찍한 놀이방을 꾸몄다. 아이가 스스로 주변 사물을 탐닉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는 것이 교육 철학이라는 아내 김상은 씨는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공간을 연출했다. 이길연 실장은 몇 년 뒤 아이들에게 공부방을 꾸며주어야 할 때를 대비해 철거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
“제 딸이랑 비슷한 또래다 보니 내 아이도 좋아할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보통 30개월 정도 되면 아이들이 미로 같은 공간을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이 집에는 아이가 둘이니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집 모양으로 가벽을 세웠지요.” 가벽으로 완성한 플레이 하우스인 셈. 방의 한쪽 면은 칠판으로 슬라이딩 도어를 제작해 피아노와 장난감을 가릴 수 있도록 했다. 놀이방인데도 넓고 쾌적하게 보이는 이유다.
베란다를 확장한 공간에 소파를 두었더니 간이 서재처럼 활용하기 좋다. 소파에 앉은 부부와 쌍둥이 남매.
재미있는 것은 놀이방 벽 한 면에 그려 넣은 일러스트. 일러스트 작가 윤은정(09graphy.tumblr.com) 의 작품으로, 쌍둥이를 위한 부부의 선물이다. 작가는 직접 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밑그림을 그렸고, 머리 스타일이나 표정까지 세세하게 포착해 남매를 꼭 닮은 캐릭터 일러스트를 완성했다. “아이 방은 색감에도 신경을 썼어요.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벽마다 색이 조금씩 달라요. 특히 집 모양 가벽을 세운 벽면은 회색과 노란색으로 위아래를 분할하기도 했고요.”
놀이방 한쪽 면에 미닫이 문을 설치했다. 뒤쪽엔 피아노와 장난감이 숨어 있다.
한 번 밑 작업을 해두면 세월이 지나 긁히고 더러워졌을 때 손보기가 쉬워 페인트 마감을 선호하는 이길연 실장은 쌍둥이 남매임을 고려해 포인트 색을 선정했다. 딸 공간은 핑크, 아들 공간은 블루로 획일화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되 아이들 공간인 만큼 밝고 경쾌한 머스터드 컬러를 선택한 것. 부부의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아이들은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집 모양 안쪽을 미로처럼 만들어 작은 구멍을 엉금엉금 기었다가 고개를 숙였다가 하면서 아지트처럼 머물며 논다.
왼쪽에 놓은 소파는 남매가 어릴 적 사용하던 침대를 리폼한 것이다. 체리색이던 침대의 문짝을 떼어낸 후 회색으로 칠했더니 근사한 가구가 되었다. 수납에도 특별히 신경 썼다. 놀이방과 맞닿아 있던 공간 사이에 가벽을 세워 한쪽은 아이 옷을 정리해두는 간이 옷장으로 사용하고, 반대쪽은 청소기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보관하는 창고처럼 만들었다.
남매가 어리다 보니 거실은 쾌적하게 사용하고 싶어 일부러 소파 대신 독특한 디자인의 UP 의자로 포인트를 주었다.
디자인과 휴식의 상관관계
시야가 탁 트인 통유리창에 헤링본 무늬로 시공한 마룻바닥, 일자로 쭉 뻗은 피트 헤인 에이크의 컬러 벤치, 색감이 돋보이는 허명욱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거실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뭐니 뭐니해도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B&B 이탈리아의 UP 의자. 최동석ㆍ김상은 부부는 거실에 둘 만한 포인트 의자로 이 제품을 고르기까지 6개월의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주방은 셰프의 주방을 연상케 하는 박스형으로 설계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상부장과 대리석 바로 마감한 주방 전면.
아내 김상은 씨는 “집을 시공하면서 의자라는 아이템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일단 어느 공간이든 의자만 있으면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 있고, 또 몸에 꼭 맞는 디자인을 찾기라도 하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제가 요즘 좋은 의자 덕분에 책을 읽어요. 앉아 있는 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지요”라며 UP 의자를 적극 추천한 것은 남편 최동석 씨인데, 실제로 사용하다 보니 특별한 소파 한 점을 찾던 자신이 더욱 만족감을 느끼는 디자인이라 했다. 베란다를 확장해 거실과 이어지는 날개 부분에는 로쉐 보보아의 모듈형 소파와 책장, 스피커를 함께 배치했더니 휴식과 여가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라운지가 되었다.
침실은 온전히 부부만의 공간으로 꾸미고자 아이와 관련한 물건은 최대한 배제하고 바닥은 진회색 타일로 마감하는 등 모던하게 연출했다.
부부는 집 안 곳곳에 앉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살림을 수납할 수 있도록 식탁과 마주 보는 벽면에 구성한 벽장을 헐고 소파를 놓았으며, 위쪽으로는 빗각 거울을 설치했다. 식사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앉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 공간은 이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인데, 남편의 아이디어로 만들었다. 베란다를 확장해 넓고 쾌적한 침실은 안락한 호텔 객실을 모티프로 꾸몄다. 헤드보드 위쪽으로 빛이 은은하게 비추도록 침대를 제작하고 베란다 자리에는 3인용 소파를 두었는데, 침대와 소파 사이에 오픈형 책장을 파티션처럼 두어 한층 안락한 분위기를 냈다. 침대 옆 욕실로 이어지는 파우더룸에는 커피 머신을 두어 주방까지 가지 않아도 출근 준비를 하며 모닝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생활 동선을 염두에 둔 이길연 디자이너의 세심한 배려다.
남매를 캐릭터화해 윤은정 작가가 놀이방에 그려 넣은 일러스트는 부부의 특별 선물이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대리석으로 카페처럼 꾸민 주방과 다이닝룸에 어울릴 만한 식탁을 고심했어요. 이길연 실장님이 시공한 다른 집도 둘러보고, 주말마다 남편과 가구 매장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폭이 좁고 길쭉하면서 독특한 상판 재질이 매력적인 지금의 식탁을 골랐지요. 식탁과 조명등은 모두 영국 가구 브랜드 클래시콘 제품인데, 본사에 직접 주문해 구입한 터라 3개월이나 기다려 받을 수 있었어요.” 아내 김상은 씨는 이번 레노베이션을 계기로 디자인 가구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나만의 특별한 디자인이라는 장점 때문에 구입했는데, 편안하고 실용성도 있어 만족감이 높다는 것. “친구들이 한창 집을 구입하고 레노베이션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우리 집을 고치며 발품 팔아 디자인 가구도 보러 다니고, 인터넷 서핑도 하면서 많이 공부했더니 지금은 친구들에게 조언해주기도 해요. 좋은 가구를 집 안에 들였더니 휴식의 질이 달라졌다고요.”
헤드보드 위쪽으로 빛이 은은하게 퍼지도록 제작한 침대와 책장, 소파를 나란히 두어 안락함을 한층 강조한 침실.
이 집에서 눈에 띄는 디자인 가구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의 UP 체어
규칙을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 과도한 색채 등 개성 강한 작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의 UP 의자. 남성의 시각에 얽매여 피해자가 된 여성을 은유적으로 디자인에 녹여냈다. 독특한 질감과 색감뿐 아니라, 구 형태의 오토만 디자인 덕분에 예술 작품처럼 여겨지는 제품. B&B 이탈리아 판매.
클래시콘의 식탁과 조명등
영국 가구 브랜드 클래시콘의 셀렌Selene 조명등은 유리를 불어 만든 것으로 디자이너 잔드라 린트너의 작품이다. 유리와 금속 소재가 조화를 이룬다. 한편 테이블은 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리치치의 팔라스Pallas. 금속 소재에 파우더 코팅한 것으로 마치 종이접기를 하듯 딱 떨어지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인엔 판매.
허명욱 작가의 사진
거실 한쪽 벽에 기대어둔 사진과 침실 머리맡에 둔 사진은 모두 허명욱 작가의 작품. 사진과 페인팅을 더해 색감이 강렬하고 붓 터치가 진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낡고 오래된 것,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데, 침실에 둔 작품은 빈티지한 장난감 자동차에 멋스럽게 녹을 입힌 것.
디자인과 시공 길연(02-6217-0513, www.길연.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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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석·김상은 부부는 결혼한 지 5년 만에 쌍둥이 남매 보나와 민준이를 얻었다. 어렵게 얻은 만큼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부의 마음은 각별하다.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 최동석 씨가 직접 아이를 받았다고 하니 그 마음을 짐작해볼 뿐이다. 1년 전, 첫 번째 집을 장만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할 때 부부는 아이들이 어린 행복한 이 순간을 마음껏 누리자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집의 디자인과 시공 과정에 고스란히 담겼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