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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특별전 <파리, 일상의 유혹> 18세기 파리 귀족은 어떤 집에 살았을까?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의 소장품이 한국을 찾았다. 약 3백 년 전 프랑스 귀족의 저택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 름 다 웠던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재현한다. 일상이 예술이던 시대, 18세기 프랑스 파리로 초대한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세수하고 화장하는 행위를 하던 침실. 
18세기 프랑스 파리. 1차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발전한 도시는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고 돈을 구걸하는 빈민이 거리에 그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프랑스 문화와 예술은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다. 부를 축적한 신흥 부르주아가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매개로 예술품에 눈을 돌려 예술가와 장인을 아낌없이 후원했으며, 계몽주의가 꿈틀거리면서 자연과학・물리학・화학 등 과학과 지식이 진보해 사람들의 삶도 달라졌다. 집필 활동과 예술품 수집, 카페에 앉아 차를 즐기는 행위와 문학적 소양을 나누는 살롱 문화가 유행한 것도 바로 18세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예술의 명성은 사실상 3백 년 전에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는 평범한 일상이 쌓여 만들어진다. 과거에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용변을 어떻게 보았는지 등은 소소한 가구와 소품, 의상에서 가늠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3월 29일까지 열리는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특별전 <파리, 일상의 유혹>전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일상을 통해 역사상 가장 완벽하다는 문화와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장식예술박물관의 소장품 5만 점 중 3백20여 점이 소개되는데, 당시 사용한 비데, 회전의자, 애교점 보관함 등 현재 프랑스에서도 찾기 어려운 희귀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1 여성의 방인 부두아르boudoir. 
2 자를 대고 반듯하게 자른 듯한 인조 정원은 18세기 전형적 모습이다. 

전시는 현재 장식예술박물관에서 사용하는 피리어드period 룸 방식을 따랐다. 피리어드 룸 전시는 공간을 마치 그 시대에 존재하는 방처럼 꾸며 전시하는 방식으로, 이를 위해 프랑스의 공간 기획자 필리프 르노와 장식예술박물관 수석 학예연구사 안 포레 카를리에가 직접 한국에 와서 작업했다. 전시 내부 공간은 현재 로댕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페이랑크 드 모라스 저택을 본떴고, 외부에는 당시 귀족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원을 재현했다. 1728년에 지은 이 저택은 가발 장인에서 귀족이 된 아브라함 페이랑크 드 모라스가 살던 곳으로, 부를 과시하던 18세기 신흥 부르주아의 전형적 가옥 형태를 보여준다.

방마다 용도와 취향을 담은 집
“건축은 프랑스에서 가져올 수 없으니 전시장 안에 집 한 채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택에서 하루 동안 이뤄지는 일을 방, 서재, 드레스룸, 살롱 등등 공간별로 나누어 하나의 이야기로 풀었습니다. 18세기 가장 이상적인 귀족 저택이라 할 수 있어요.” 공간을 기획한 필리프 르노는 ‘18세기 파리에서의 하루’ 라는 주제 아래 가구, 소품, 의상 등을 한데 묶어 공간 안에서 풀어냈다. 좌우 대칭인 전시 공간을 대기실과 현관, 침실, 식당, 탈의실 겸 화장실 ‘가르드로브 garde-robe’, 서재, 음악을 감상하는 살롱, 카드 게임을 하는 공간 ‘프티 살롱petit salon’ 등으로 나누고 각 공간에 알맞은 가구와 소품을 배치했다.

1 뒤셰스 브리제Duchesse Brisee. 일명 ‘부러진 공작 부인’이라고 불리던 안락의자로 풍성한 드레스를 입던 귀족 부인이 사용했다. 
2 일종의 복권 뽑기 게임인 카바뇰cavagnole 게임 도구. 
3 그레고리안식의 반사 망원경.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는 천체를 관찰하는 취미가 유행했다. 
4 등받이 부분을 바라보고 걸터앉아 쓰는 비데는 여성의 은밀한 위생 도구였다. 

전시장에서 눈여겨볼 점은 벽이다. 필리프 르노는 18세기 저택의 특징으로 벽 지를 꼽았다. “이전까지는 태피스트리라는 직물을 벽에 걸어 장식했어요. 18세기에 평민들이 그걸 종이에 그려 바르기 시작하면서 채색 종이가 탄생했습니다. 직조한 것보다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어서 방마다 다르게 취향을 드러 낼 수 있었어요. 이게 바로 오늘날 벽지의 기원이죠.” 박물관 측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다양한 벽지를 공수해왔다. 또 당시 바닥은 검은색과 흰색의 대리석 타일이나 나무를 깔았는데, 이번 전시에는 사진을 프린트해 사용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현관이 나온다. 현관이 집의 첫인상이기 때문에 필리프 르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든 공간. 현관 다음에 손님이 집주인을 기다리는 장소가 있는데, 이곳에선 카드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 재미있는 유희가 벌어진다. ‘빛의 세기’라 불리는 18세기는 계몽주의와 이성주의가 대두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시기이므로 이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서재를 빼놓을 수 없다. 과학 도구를 수집하거나 집필 활동을 하던 서재에는 지도책, 기압-온도계, 반사 망원경, 컴퍼스, 펜 꽂이 등이 놓여 있다. 옷을 갈아입거나 배변을 보는 방에는 용변용 의자, 침실용 요강, 속치마 등 혼자만 사용하는 은밀한 물건을 훔쳐볼 수 있다. 그다음 중요한 공간은 식당. 당시엔 식도락이 활기를 띠어 음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18세기의 산책은 남녀가 담소를 나누며 일상에서의 행복을 향유하는 행위였다. 필리프 르노는 저택 밖에 정원을 조성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그 시절 귀족처럼 여유를 만끽하게 했다. 정원을 산책하며 곳곳에 놓인 오브제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 일상에 스며 있던 18세기, 그때 그 시절 파리의 향기에 흠뻑 취해보자.

1 공간 기획자 필리프 르노가 가장 신경 쓴 저택의 현관, 
2 음식을 담은 식기를 올려두던 식당 안 콘솔. 
3 전시 총괄 감독 안 포레 카를리에. 


INTERVIEW_전시 총괄 감독 안 포레 카를리에
“생활에 취향을 담으면 우리 일상도 예술”
장식예술박물관의 소장품을 프랑스 밖에서 전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 전시가 최초인 만큼 박물관 측은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약 열흘간 한국에 머문 학예연구사이자 전시 총괄 감독인 안포레 카를리에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전시의 시점이 왜 18세기인가? 프랑스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일상 예술, 즉 먹고 자고 마시는 모든 삶 속의 예술이 가장 우아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꽃피운 시기였다. 프랑스에서도 그동안 관련 전시가 많이 열렸는데, 그중 가장 손꼽히는 전시가 <완벽한 순간>이다. 가장 완벽하고 가장 우아하고 가장 문화적으로 균형 잡힌 시기가 바로 18세기다.
18세기 주거 환경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첫째는 벽과 오브제의 완벽한 조화다. 당시 벽은 그림만 거는 게 아니라 데커레이션 장소였다. 벽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오브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지 굉장히 자유롭게 벽을 활용했다. 둘째는 가구의 쓰임새를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식사 테이블, 보조 테이블 등 각 가구의 쓰임새가 기능화되어 다르게 발전했다. 그래서 가구 종류가 다양해지고 아름답게 변화해 가구가 하나의 장식품이 되었다.

4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던 살롱. 
5 귀부인이 긴 머리카락을 빗을 때 사용한 머리 손질용 안락의자. 
6 화장용 분 단지와 포마드 기름용 단지 그리고 안구를 닦을 때 사용한 세척용 잔 외예르oeilliere. 

당시를 재현한 전시장은 어떤 모습인가?
프랑스 저택의 전형이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신흥 귀족이 생기면서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이런 귀족 저택을 많이 지었다. 심지어 루이 15세나 루이 16세도 귀족을 따라 저택을 지었다.
어떤 의도로 전시작을 골랐는가? 관람 포인트를 조언한다면? 이전에는 음식을 방 안에 가져와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18세기에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즉 삶다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물건 하나하나에 집주인의 취향이 담겼다. 생활용품이 예술이던 18세기를 통해 지금 우리 일상도 예술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지금 당신의 취향이 어떻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또 일상의 쓰임이 어떻게 예술과 결합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에서 안구 세척용 잔, 쇠골을 파먹는 숟가락 같은 특화한 소품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없어도 살 수 있는 이런 물건을 디자인하고 쓰임새를 만들며 삶을 향유하는 당시 모습을 말하고자 했다.
장식예술박물관은 어떻게 작품을 소장하는가? 기증을 받거나 품평회를 열어 컬렉터에게 소장품을 구입한다. 흔하지 않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위주로 미학적으로 아름다운지를 평가한다. 전시작 중 하나인 하트 모양 의자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다. 이 머리 손질용 안락의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물론 디자인 때문이겠지만, 머리카락을 빗을 때 하트 가운데로 머리카락이 모여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기능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실용 속의 아름다움, 미와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장식 예술박물관이 추구하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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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서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 | 취재 협조 크레이터스랩(02-584-7091)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