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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오우가五友家 10년의 꿈을 담은 집
가로세로 3m짜리 박스 아홉 개가 모여 작은 집이 완성되었다. 겉은 그저 평범한 집이지만 안으로는 마당과 중정, 다락 등 다양한 공간이 펼쳐진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이 집은 오랜 아파트 생활에 지친 부부가 10년 동안 꿈꿔온 집이다.

1 지붕 아래 있는 앞마당. 밖이자 안인 이 공간은 오우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 박종혁 교수의 설계안에서 부부가 가장 마음 에 들어 한 부분이다. 
2 밖에서 보면 외관은 단순하지만 아홉 개의 박스가 공간을 다채롭게 만든다.

서울에서 얼마나 달렸을까, 차창 밖으로 한 폭의 수묵화가 스며든다. 뿌연 구름 바다 사이로 설악산 산등성이가 보일 듯 말 듯 모습을 드러냈다. 쾌청하지 않은 날씨가 오히려 이곳의 진가를 알아채게 한다. 푸른 동해 바다가 펼쳐지는 강원도 고성군. 구리에 살고 있는 양민・이정화 부부는 얼마 전 이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었다.

10년 동안 써온 집 짓기 노트
고성에 도착해 좁은 흙길을 한참 들어가자 오래된 시골집이 듬성듬성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주변에 조그마한 구멍가게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에 부부는 어떻게 집을 짓기 로 결심했을까. 그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아 풀렸다. 앞마당에서 보이는 울산 바위의 늠름한 능선, 집을 감싸는 시원한 바람, 물이 차오르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다는 도원저수지와 계곡이 마을 가까이에 있다.

바다, 산, 바람, 호수, 계곡. 주말 주택으로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 싶다. 부부는 이 집에 다섯 친구가 있는 집, ‘오우가五友家’라는 이름을 붙였다. 약 10년 전부터 아파트 층간 소음에 시달려온 부부는 집을 짓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아내 이정화씨는 매년 노트에 자신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 하나 둘 적어왔다. 단열, 채광, 환기는 기본이고, 안팎을 오가는 동선이 다채로운 집, 중정을 둘러 방이 있는 집, 노출 콘크리트와 자연 소재로 지은 집, 앞마당이 있는 집, 수납공간이 넉넉한 집, 전면에 창이 있는 집 등등 마지막 2014년 집 짓기 노트에는 꽤 구체적인 조건이 적혀 있다.

1 중정 위에 있는 자동 천창은 겨울에는 온실 효과로 실내 온도를 높여주고, 여름에는 창이 열려 공기를 순환한다. 
2 중정 왼쪽에 있는 침실. 침대를 두지 않고 사용한다. 
3 실내는 박스 여섯 개로 이루어졌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과 중정, 그리고 오른쪽은 침실로 가는 복도. 

“이사를 가는 아파트마다 층간 소음이 심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거기에 건강도 좋지 않아 편히 쉴 곳이 필요했죠. 주말에라도 가족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싶었어요.”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해야겠다고 결심한 부부는 지인을 따라온 고성에 땅을 구입하고 집을 설계해줄 건축가를 찾아다녔다. 건축가 네다섯 명을 만났지만 매번 그냥 되돌아와야 했다. 주말 주택에 투자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이었다. 그러다 작년 초, 집 짓기 전문가들의 네트워크 하우스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오우가는 하우스스타일이 주최한 리빙큐브 공모전의 당선작을 바탕으로 지었다. 2013년 말 공모전에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박종혁 교수가 출품해 당선된 이 설계안은 지난 경향하우징페어에 전시되었고, 작년 봄에 지금 집주인을 만나 실제 건축으로 실현되었다.

리빙큐브는 일종의 소형 주택 표준 설계안. 건축주가 하우스스타일이 제시하는 리빙큐브 모델 중 하나를 고르면 예산에 맞도록 설계안을 수정해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을 지을 수 있다. 하우스스타일은 자체 개발과 공모전을 통해 리빙큐브 모델을 업데이트 하는데, 박종혁 교수의 설계 안은 공모전을 통해 합류했다. 이미 나와 있는 설계안 덕에 부부는 설계 비용도 10분의 1로 줄이고 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었다.

작지만 공간이 다채로운 소형 주택
오우가의 외관은 단순하다. 이 집의 매력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알아챌 수 있다. “가로세로 3m인 박스 아홉 개가 모여 완성된 집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냥 아무런 장식 없는 단순한 집 모양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다양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어요.” 박종혁 교수는 아홉 개 박스 중 세 곳을 실외, 여섯 곳을 실내로 설계해 지붕 아래에서 안과 밖을 넘나들 수 있게 했다. 바깥마당, 안마당, 생활마당, 중정 등 마당 네 곳과 크고 작은 다락 두 개가 작은 집을 재미있게 만든다. 바로 이정화 씨가 바라던 ‘안팎을 오가는 동선이 다채로운 집’이다.

4 중정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큰 다락은 곧 남편 양민 씨의 서재가 될 공간이다. 
5 거실 겸 식당 위층에는 작은 다락이 있다. 
6 큰 다락에서 바라본 중정. 난로에서 불을 때면 중정 주변에 있는 거실, 주방, 침실이 따뜻해진다.
 
‘밖’에 해당하는 공간은 가운데 중정과 박스 두 개 크기의 앞마당이다. 건물 입구에 들어가면 만나는 앞마당은 천장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 건물 안에 있지만, 밖에 있는 기분이 든다. 반면 아홉 개 박스 중 가운데에 있는 중정은 사실상 실내는 아니지만 집 안에 있는 듯 편안하다. 박종혁 교수는 집주인이 이곳 중정을 실내・외로 유동성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신발을 어디에 벗느냐에 따라 현관이 달라질 수 있어요. 중정 밖일 수도 있고 안일 수도 있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중정은 실내가 되거나 실외가 되는 거예요.”

오우가는 에너지 절약 친 환경 부문에서 특허를 받았다. 중정을 천창으로 덮어 겨울에는 온실처럼 실내가 따뜻하다. 또 축열이 되는 바닥재는 낮 동안 열을 품고 있다가 해가 지면 그 열을 뿜어낸다. 집 중앙에 난로가 있어 중정을 둘러싼 방과 거실에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 천창을 전동으로 열 수 있어 여름에는 뜨거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간다. 창문과 천창을 열면 바람길이 만들어져 공기가 실내 ・외로 순환한다. 고성은 바람이 잘 부는 지역이라 효율이 더 높다. 내부 공간은 중정을 가운데에 두고 ‘ㄷ’자 형태로 이어진다. 왼쪽은 침실, 오른쪽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부족한 공간을 보완해줄 다락이 있다. ‘중정을 둘러 방이 있는 집’, 이것 역시 이정화 씨가 원하던 집이다.

애초에 부부는 오우가를 주말 주택으로 염두에 두고 지었다. 내년쯤 동홍천과 양양 간의 고속도로가 개통하면 좀 더 쉽게 오갈 수 있어서 주말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쉬러 올 계획이었다. 사업상 외국 손님이 많은 양민 씨는 이곳을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부부는 내년에 둘째 아이가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면 아예 귀촌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세컨드 하우스지만, 지금 구리에서는 전셋집에 사니 이 집이 저희 퍼스트 하우스나 마찬가지예요. 내년엔 집 옆에 밭을 만들어 몸에 좋은 약초를 심어 키울까 해요.” 오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바다, 산, 바람, 호수, 계곡을 벗 삼아 살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김주원, 조한준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하우스스타일(02-564-7012)은 전문 지식이 부족한 건축주가 더 나은 집을 짓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건축주와 건축가를 연결해주고 설계, 시공, 감리 등 집을 짓는 전 과정에 걸쳐 디자인, 품질, 예산, 일정 등을 모두 관리한다. 

이 집을 설계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박종혁 교수는 한양대학교에서 건축공학사를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박종혁&김소라 공간전략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 설계 경기에서 수상했다. 오우가는 하우스스타일이 주최한 제1회 리빙큐브 공모전 당선작인 ‘또 하나의 집’의 첫 번째 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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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서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