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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비산동 105.7㎡ 아파트 삶의 중심을 아이에 두고 고친 집
스타일을 중시하던 최성구ㆍ이선미 부부는 아파트 리모델링의 중심을 아이에게 두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천장과 블랙&화이트로 시크한 느낌을 낸 이전 집을 포기하고, 화사하고 부드러운 감성이 물씬 풍기는 디자인을 선택한 것. 이뿐 아니다. 다이닝룸과 거실을 합한 가족실을 확보하고자 널찍한 주방도 과감히 포기했다. 이 집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우선순위에 맞게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과감히 결정한 결과다.

주방 안쪽에서 바라본 다이닝룸. 6인용 원목 식탁을 놓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식탁과 오른쪽 멀티 수납장, 선반은 모두 집의 분위기에 맞게 제작한 것.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시인 정현종의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 특히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큰 책임이 필요한 일이다. 부모 삶의 중심이 자신에서 아이에게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여느 부부가 그렇듯 결혼 5년 차 최성구ㆍ이선미 부부 역시 아들 준우를 낳으면서 라이프스타일의 대부분을 바꾸었다. 패션 디자이너 아내와 인테리어 관련 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스타일’을 중시하는 부부였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장만한 아파트는 천장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바닥과 벽, 가구와 소품 등을 모두 블랙&화이트로 통일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집이었는데, 공간 스타일링을 하나부터 열까지 셀프 인테리어로 완성했다고 하니 부부의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알 만하다.

그러던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자 기존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 집을 계획했다. “예전에 살던 집은 스타일리시했지만 아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많았어요. 알록달록한 유아용품과 괴리감도 컸고요. 리모델링을 결심하면서 아이가 밝고 따뜻하게 자랄 수 있도록 환하고 안락한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아내는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이사를 감행하면서 패션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삶을 택했다.

1 다이닝룸과 이어지는 거실에는 10개월인 아이가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모서리가 둥근 가구를 배치했다. 물푸레나무로 제작한 AV장과 밝은 오크 컬러 마루는 집을 한결 화사하게 만든다. 
2 817디자인스페이스 김혜진 팀장은 감성 매거진 <킨포크>에서 영감을 받아 다이닝룸을 디자인했다. 여기에 노출 천장과 금속 알전구 조명등을 더해 인테리어 감도를 높였다. 

선택과 집중으로 완성한 다이닝룸
105.7㎡(32평) 아파트를 고치기 전 부부가 우선순위에 둔 것은 아이가 자라면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더라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탁 트인 거실이었다. 디자인과 시공을 맡은 817디자인스페이스의 김혜진 팀장은 데드 스페이스(사용하지 않는 죽은 공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그러다 ‘주방을 작게 하면 거실과 다이닝 공간이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취지로 분리형 주방을 제안했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주부가 ㄷ자 주방을 선호했어요. 주방 동선을 최소화해 공간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작은 집에서도 안성맞춤이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주방 기능을 특화한 구조가 인기예요. 그래서 주방을 오픈하지 않고 다이닝룸 사이에 벽체를 세웠어요. 말 그대로 주방 분리형 구조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꼭 커다란 주방이 필요한 건 아니다. 김혜진 팀장의 경험에 따르면 주방이 넓을수록 재료와 도구를 늘어놓아 오히려 어지르게 되지만, 주방이 콤팩트하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때그때 정리를 한다는 설명. 처음에 아내 이선미 씨는 분리형 주방을 반대했다. 넓고 수납이 잘되는 부엌이 여자의 로망이건만, 주방 공간이 과도하게 압축될 뿐 아니라, 수납은커녕 조리대와 개수대를 제대로 갖출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디자이너의 설득 끝에 분리형 주방을 선택한 아내는 작지만 알찬 주방을 실제로 사용해보니 장점이 많다고 했다. 지저분한 조리 도구나 가전제품 등이 노출되지 않아 집 안 분위기를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 또 실제로 사용해보니 있을 건 다 있으면서 혼자 주방 일을 보기에 편리하고, 다이닝룸과 거실이 한데 묶여 가족이 공유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뭐니 뭐니 해도 위험 요소가 집중된 주방으로 아이가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

3 지금은 아이 장난감과 육아용품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아이 방. 
4 벽면에 부착한 액자 세트는 에이모노에서 구입한 것. 따로 수직・수평을 맞출 필요 없이 종이 키트를 대고 지정한 자리에 못을 박기만 하면 돼 아주 유용하다. 
5 기존에 사용하던 침대와 철제 수납장으로 단출하게 꾸민 침실은 필요한 가구만 콤팩트하게 배치해 실용적으로 꾸몄다.

“사실 가족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하는 다이닝룸은 817 디자인스페이스가 주거 공간을 설계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공부하거나, 독서와 여가 등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모이는 소통의 장인 셈이지요. 그래서 주방이 아닌, 다이닝룸과 거실에만 초점을 두어 디자인했습니다. 가족이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6인용 식탁을 두어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도 연출했지요.” 식탁 뒤쪽에는 부족한 주방 수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멀티 수납장을 제작했다. 그리고 수납장 위쪽 벽은 타일로 마감하고 원목 선반을 달아 액자나 소품, 예쁜 그릇 등을 진열할 수 있도록 했다.

엄마 마음으로 공감한 디자인
“싱글일 때에는 디자인할 때에도 제가 원하는 스타일이 중심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부부나 가족 구성원에 따라 콘셉트가 달라지는 것이 공감되지 않았죠. 하지만 아이가 생긴 뒤로 3 지금은 아이 장난감과 육아용품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아이 방. 4 벽면에 부착한 액자 세트는 에이모노에서 구입한 것. 따로 수직・수평을 맞출 필요 없이 종이 키트를 대고 지정한 자리에 못을 박기만 하면 돼 아주 유용하다. 5 기존에 사용하던 침대와 철제 수납장으로 단출하게 꾸민 침실은 필요한 가구만 콤팩트하게 배치해 실용적으로 꾸몄다. 저 역시 기준이 달라졌어요.”

이번 프로젝트에 유난히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는 김혜진 팀장은 클라이언트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게다가 두 아이의 이름이 같아 두 명의 ‘준우 엄마’가 서로 마음을 읽으며 집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것 역시 인연이다. 이선미 씨는 “제 마음이라도 읽은 듯 세심한 부분까지 아이를 고려한 디자인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가 부딪쳐 다치지 않도록 테이블 다리는 모서리가 없는 원형 파이프로 제작하고, TV 셋톱 박스도 AV장 안에 매입해 걸리는 부분이 없도록 했지요”라며 제작 가구 디자인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1 벽을 세워 분리한 주방 안쪽. 개수대와 작업대, 조리대를 ㄱ자로 꺾어 동선이 효율적이다. 조리대 아래에는 수납공간을 마련해 소형 가전제품과 식료품을 넣을 수 있도록 했다. 
2 거실 옆으로 난 작은 방은 드레스룸으로 활용한다. 드레스룸은 기존 여닫이문을 그대로 살리고 슬라이딩 도어를 더했는데, 문에 선반을 달아 책과 간단한 소품을 보기 좋게 수납할 수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두 사람은 아이 방 인테리어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다. 김혜진 팀장은 새집을 마련하면서 근사한 아이 방을 꾸며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아이는 성장 속도가 빠르기에 아직은 아이 방에 투자하지 말라는 현실적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리모델링에 욕심내기 시작하면 끝이 없더라고요. 이왕이면 주방도 넓으면 좋겠고, 아이 방도 콘셉트에 맞게 인테리어부터 스타일링까지 통일감 있게 완성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침실이며 욕실까지 어느 한 곳 빠뜨리고 싶은 부분이 없잖아요. 하지만 한정된 예산 아래, 어떤 부분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더라고요.” 아내는 집 인테리어에서 다이닝룸과 거실을 합친 가족실을 얻은 대신, 널찍한 주방과 아이 방 스타일링을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김혜진 팀장은 집에 맞게 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크기는 작지만 기능이 알찬 주방을 원한다면, 콤팩트하게 재료와 조리 도구를 정리하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지요.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가족실을 구상한다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디자인과 시공 817디자인스페이스(02-712-1723) 

글 손지연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