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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PRINT 상상을 현실로 만들다
프린터로 집과 가구와 음식을 출력한다. 어쩌면 미래에 ‘짓다’ ‘만들다’ ‘요리하다’라는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3D 프린터는 산업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생활을 바꿀 것이다.

1, 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뒤스 아르히츠Dus Architects의 3D 프린터 건축 ‘3D 프린트 카날 하우스’의 모형과 조감도. 
흑백에서 컬러, 평면에서 3D까지, 기술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바로 프린터로 사진을 인쇄한 것도 불과 10여 년 전 일인 것 같은데, 이제는 컴퓨터에 파일만 입력하면 물건이 ‘뚝딱’ 만들어지는 시대다. 프린터만 있으면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니, 우리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3 일반 가정용 3D 프린터를 6m 크기로 확대한 대형 3D 프린터 ‘카머 메이커Kamer Maker’.
4 3D 프린트 카날 하우스가 들어설 암스테르담 북부 운하 주변 모습. 
무궁무진한 3D 프린터 세계
사실 3D 프린팅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일이다. 이후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대체 3D 프린팅이 무엇인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파일을 사진 현상소에 전송해 출력하는 것처럼 파일을 3D 프린터로 전송해 오브제를 출력하는 기술이다. 컴퓨터에서 라이노rhino나 오토데스크autodesk 같은 3D 설계 프로그램으로 입체적 오브제를 만들고 그 파일을 3D 프린터로 넘기면 X• Y•Z축 값에 따라 출력된다. 그러니까 라이노나 오토데스크 같은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면 3D 프린터를 말 그대로 ‘멋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싱기버스(www.thingiverse.com)같이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누군가 만들어놓은 파일을 무•유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도 있다.

3D 프린터는 다양한 재료를 열로 녹이거나 빛을 쏘아 만든 얇은 레이어를 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물건’을 만든다. 사용하는 재료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 고체류가 있고, 수지 같은 액체류도 있다. 재료를 뽑는 방식은 프린터 종류에 따라 다른데, 고체류는 얇은 필라멘트를 녹여 쌓아 올리는 방식, 액체류는 빛에 반응하면 딱딱하게 굳는 합성수지를 사용하는 방식 등이다. 여기서 재료를 다양하게 바꾸면 옷이나 음식, 집을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것이다.

5 중국 상하이에서는 재활용 건축자재와 3D 프린터를 이용해 건물을 지었다. 한 채를 짓는 데 든 비용이 고작 5천 달러였다.
6, 7, 8 국내 3D 프린팅업체 3D커넥션이 선보인 스마트폰 음량 증폭기 ‘사운드페블’, 3D 프린터로 출력한 머그잔 손잡이, 한글을 모티프로 한 LED 청자 조명등. 

이미 중국에서는 3D 프린팅 건축이 등장했다. 프린터로 건물의 부분부분을 출력한 뒤 건물을 세울 장소 위에 조립해서 완성하는 방식. 집 열 채를 세우는 데 겨우 하루가 걸렸다. 네덜란드에서도 얼마 전부터 3D 프린터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3D 카날 하우스3D Canal House’라 불리는 이 건물은 완성하는 데 3년을 예상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현재 프린트 과정을 일반인에게 유료로 공개하고 있다. 중국의 3D 프린팅 건축과 다른 점은 건물이 들어설 장소에 직접 프린터로 출력한다는 점. 또 재활용 건축자재를 사용한 중국 건축과 달리 순수 3D 프린트 기술로 완성한다. 세계적 3D 프린터 제조업체 3D 시스템즈는 초콜릿 회사 허쉬Hershey와 ‘셰프젯Chefjet’을 개발해 초콜릿은 물론 각양각색의 캔디나 설탕을 출력해 선보였다. 이런 식이라면 곧 프린터로 음식을 프린트하고 컴퓨터 파일이 레시피가 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1 초콜릿 회사 허쉬와 3D 시스템즈가 개발한 셰프젯으로 출력한 다양한 모양의 설탕. 셰프젯은 식재료를 사용해 3D 모형을 제작하는데, 주로 설탕과 코코아 가루를 재료로 사용해 사탕과 과자 등을 출력한다. 2, 3 예술계에서도 3D 프린터에 관심이 많다. 인사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전시한 김석 작가의 ‘더블 액션’. 다양한 색상의 필라멘트를 활용했다. 
국내 3D 프린터 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현재 국내에는 주로 디자이너나 업체가 제품 모형을 만드는 목적으로 3D 프린터를 사용한다. 다른 작업 방법에 비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비용도 많게는 10분의 1 정도 줄일 수 있기 때문. 거기에 출력물을 녹여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일반적으로는 피겨를 만드는 데 활용하는 정도. 파일만 구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게임이나 만화의 캐릭터를 마음대로 출력할 수 있다. 작년에는 국내 유명 베이커리업체가 실제 사람을 3D 스캔한 3D 피겨 케이크를 내놓기도 했다.

3D 프린터가 각광받으면서 예술계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얼마 전 인사동 사비나 미술관에서는 예술가의 상상력과 만난 3D 프린팅 작품 전시가 열렸다. 노세환, 댄 마이크셀, 류호열 등의 작가가 3D 프린터를 활용해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해외에서는 네덜란드 작가 요리스 라만처럼 이미 몇 해 전부터 3D 프린팅 기술에 관심을 보인 작가가 있지만, 국내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4 류호열 작가의 ‘파이트Fight’는 필라멘트가 아닌 분말 형태의 재료를 사용하는 3D 프린터로 출력했다. 
5 복제 도구로서 3D 프린터 기술에 접근한 노세환 작가의 작품

사실 3D 프린터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뚝딱’ 하고 단숨에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 보급형 프린터는 생각보다 출력 시간이 오래 걸리고 출력물의 표면도 매끄럽지 않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상의 3D 이미지를 프린터가 실물로 출력하는 과정을 보면 그저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단추나 작은 핀, 액세서리 정도는 필요할 때 당장 3D 프린터로 출력해 사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단순해지고 3D 프린터 기술이 더욱 널리 보급된다면 누구든지 가구를 출력하고 집을 출력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고 비관적 시선도 있지만, 또 한 번 세상을 바꿀 새로운 산업혁명이 눈앞에 성큼 도래한 것만은 분명하다.

3D 프린터로 조명등을 출력해보니

글로만 배울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국내에는 3D 프린터 시장이 그리 크지 않지만, 실제로 3D 프린터로 제품을 출력해주는 회사가 몇 군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프린팅할 파일을 단순히 출력만 해주는 데 그치기 때문에 3D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수 없다면 좀 더 부지런히 업체를 찾아다녀야 한다. 홍대 근처에 위치한 3D 프린트업체 ‘글룩랩’은 프로그램을 몰라도 프린팅을 의뢰할 수 있다.

청년 사업가 네 명이 운영하는 이곳은 3D 프린터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사람과 디자이너 등이 모여 완벽한 팀워크를 이룬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3D 프린터로 스탠드 조명등을 출력해보았다(기자는 3D 프로그램을 전혀 다룰 줄 모른다). 컴퓨터와 출력기만 있다면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 어떤 오브제를 출력하고 싶은지 구체적 모양과 크기를 정해야 한다. 출력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만, 그 정도의 시간과 재료만으로 나만의 조명등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었다.

1 프로그램을 사용해 출력하고 싶은 조명등을 설계했다. 복잡하고 정확성을 요구하는 구조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번에 출력할 조명등은 타원형이다.
2 컴퓨터에서 작업한 파일을 USB에 담아 3D 프린터에 연결했다. 일반 잉크젯 프린터와 원리가 같은데, 프린터를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USB에 담아 파일을 전송한다.
3 프린트를 시작하면 노즐 끝에서 얇은 필라멘트가 나온다. 필라멘트 색상은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데, 가장 무난한 흰색을 골랐다. 파일값에 따라 노즐이 움직이며 층층이 레이어를 쌓아 올린다.

4 보급형 프린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브제의 크기나 두께에 따라 출력 시간이 달라진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소요 시간에 따라 제작 단가를 매기도 한다.
5 잉크 프린터처럼 출력이 빠르진 않았다. 가장 큰 원둘레 200mm, 높이 240mm짜리 조명등을 만드는 데 약 10시간이 걸렸다. 컴퓨터 상에 있던 가상의 물건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하다.

3D 프린터가 있는 디자인 랩 카페
일본의 시부야와 독일의 베를린에는 ‘3D 프린터 카페’’가 있어 다양한 용도로 3D 프린트 기술을 활용한다. 국내에는 얼마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 2층에 문을 연 ‘디자인 랩 카페’에서 3D 프린트를 경험할 수 있다. 원하는 디자인을 바로 프린트할 수 있고 시즌별로 디자이너의 다양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취재 협조 글룩랩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김규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