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원’은 많은 이의 꿈이겠지만 진정한 가드너는 ‘정원에서의 시간, 그 혼자만의 작업’ 자체를 좋아한다. 그래서 남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을뿐더러 맡길 수도 없다. 집집마다 꽃양귀비가 지천이지만 타샤 언니네의 그것은 색깔과 모양이 남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을로 예정한 집 짓기를 앞두고 제 마음은 벌써 새로운 집터에 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 관심은 ‘집’이라는 구조물보다 맘대로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리고 텃밭을 일굴 수 있는 ‘내 땅’이 생긴다는 데 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흥분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른 봄소식을 전해줄 매화와 산수유나무를 심고, 쌉싸래한 이파리와 백숙에 꼭 필요한 줄기를 내주는 엄나무, 꽃이 예쁜 자두나 꽃사과나무도 심고, 차•효소•잼 등을 만들기 위한 모과와 왕보리수, 살구나무도 심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풋풋하고 달콤한 생대추를 배가 터지도록 먹기 위해 대추나무도 심겠습니다. 대봉과 단감, 곶감용 감나무도 하나씩은 있어야겠지요. 이런저런 궁리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또 높은 돌담 대신 대나무를 잘라 담장을 두르고 겨울에 빨간 열매를 맺는 화살나무와 호랑가시나무, 사시사철 모습을 달리하는 남천 같은 관목들을 빽빽이 심을 겁니다. 중간중간 하얀 조팝나무와 황매화, 보라색 꽃을 피우는 울타리콩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배치해 철마다 피는 꽃으로 살아 있는 울타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의 멧돼지 루트를 끊고 겨울에 너무 휑하게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대책도 세워야합니다.
그리고 현관에 이르는 길에는 천리향, 로즈메리, 박하, 메리골드를 배치해 드나드는 길에 그 향기를 수시로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장독과 수돗가 근처에는 소담스러운 작약과 수국, 금낭화 같은 동양적인 꽃들을 모으고, 창가에는 키가 크고 꽃송이가 화려한 접시꽃, 디기탈리스 같은 것들을 심어 굳이 꺾어 들이지 않아도 그 꽃들을 가까이서 즐길 예정입니다.
텃밭에서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방아, 부추, 차이브, 파슬리, 고수 같은 양념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아 심고, 그러고도 남는 빈터가 있으면 애기범부채, 붓꽃, 튤립, 무스카리 같은 구근과 겨울에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 샤스타데이지와 딸기 등으로 채울 작정입니다. 그리고 저를 시골로 이끈 경이로운 도라지꽃을 위한 자리도 꼭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집터를 빼면 2백 평이 채 못 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결코 작은 공간도 아니므로 최대한 알뜰살뜰 살려 쓸 작정입니다.
ㄷ자로 지은 타샤 언니 집에 중정처럼 들어앉은 꽃밭. 사시사철 꽃이 피어 드나들 때마다 행복하다.
텃밭의 작물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얀 부추꽃, 하늘색 치커리꽃, 보라색 구슬 같은 자이브꽃. 수확하지 않고 두면 아름다운 ‘텃밭 정원’을 즐길 수 있다.
우리 마을의 타샤 튜더
누가 뭐래도 ‘정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버몬트 숲 속의 타샤 튜더’일 것입니다. 동화 작가이자 화가인 그는 30만 평이나 되는 넓은 단지에 18세기 영국풍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라 취향과 콘셉트가 있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옛날식 정원을 완성했지요. 책에 소개한 사진들을 보면 돌집을 배경으로 한 정원은 무질서한 듯 무리 지어 피어난 꽃들이 서로서로 어우러져 정겹고 소박하면서도 제각각 찬란한 생명력을 뽐내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의 모습도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 속 주인공 같습니다. 옛날에 쓰던 도구와 가구들, 낡은 헛간, 닭장, 고풍스러운 옷과 함께 말이지요. 그는 정원을 가꿀 때 멸종되는 품종들, 가족을 통해 내려오는 재래종 그리고 전통 재배 방식을 지켜내려 했다고 합니다. 아흔이 넘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그는 정원과 식물에 대한 애정과 열정뿐 아니라 화가로서 심미안, 스타일리스트로서 감각까지 갖춘, 참으로 대단하던 할머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마을에도 ‘타샤 언니’가 있습니다. 마을 빵 동아리 선생이기도 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혼자서 하는 정원 일’입니다. 어떨 때는 산이나 강에서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오고, 부엽토 더미나 닭똥 부대를 나르고…. 정원에서 만난 그는 지친 기색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꽃 이야기를 쏟아놓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톤이 두 단은 높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지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그를 보며 확인합니다. 그의 정원은 5월이면 온갖 꽃과 나무로 흐드러집니다. 그곳으로 이웃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탄성과 부러움, 칭찬이 이어집니다. 이야기 끝에 “참 아깝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의 수고를 알기에 이 아름답고 귀한 것을 우리끼리 보기가 너무 아깝다는 뜻입니다.
5백 평이 넘는 정원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다 자랐을 때의 나무 크기를 생각해서 그 아래를 가려줄 식물을 정하고, 또 어떤 색상과 모양의 꽃이 언제 피고 지는지를 염두에 두고 정원의 색상을 배치해야 합니다. 봄부터 서리가 내리는 초겨울까지 정원에 꽃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한 엄청난 계산과 수고가 있습니다. 잔디가 식물을 넘어 퍼지지 않도록 30cm를 파내서 고무 장판을 사이에 파묻고, 질은 논땅을 뒤집어 유공관을 묻고 모래흙을 사다 퍼붓고 멧돼지가 내려오는 언덕에 철조망을 두르는 지대한 노력의 대가입니다. 도대체 무얼 위해 저렇게 힘든 일을 계속, 무한 반복하며 할까? 멋진 정원을 조성하려면 족히 12년이 걸린다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이 무얼까? 부러움을 넘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분을 타샤 언니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의 정원 가꾸기에 어떤 목적이나 계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게 좋아서, 그 순간이 행복해서 정원을 가꿉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와서 봐주면 더 기쁘기도 하겠지만 그것도 생각뿐입니다. 타샤가 정원을 보여주기 위해 6월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연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시골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정원이다. 무심한 듯 가마솥 단지 옆에 핀 분홍 장구채, 담벼락의 노란 미나리아재비, 도랑에서 솟아오른 분꽃 등 소박해도 눈호사는 시골만한 곳이 없다.
정원이 주는 자유와 행복
저에게 정원 가꾸기는 아직까지 실용적 접근입니다. 정원 가꾸기가 이런저런 삶의 즐거움 중 하나이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저의 저질 체력과 부족한 끈기를 잘 알고 있기에 두는 선수先手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원 가꾸기도 하다 지치기 전에 서둘러서 어느정도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약은 속셈도 있습니다. ‘일차적 조성을 3년 안에 끝내자. 정원이 너무 넓어도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지금으로선 2백 평이면 족하다’고 하는!
그러니까 저는 타샤보다는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를 쓴 윌리엄 알렉산더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조그만 텃밭에서 좌충우돌 시트콤을 벌이는 어리바리한 초짜 가드너?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우려보다 ‘의욕’이 앞서고 있긴 합니다. 타샤 언니를 비롯해 이웃의 어르신들도 제가 이사를 하면 이런저런 나무를 주시겠다고 하시니 그 말씀에 더더욱 기운이 납니다.
‘정원 가꾸기’ ‘가드닝’. 어떻게 표현해도 대번에 자랑질이 되기 십상인, 부러움을 살 이야기입니다. 마당도 돈도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지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고 큰돈이 드는 게 전혀 아닙니다. 제 경우, 그저 ‘서울 쥐’에서 ‘시골 쥐’로 변신했을 뿐인데, 갑자기 로또를 맞은 듯 삶의 질이 달라진 것입니다. 빵을 배우러 다니고, 정원을 가꾸고, 새소리에 잠이 깨고, 막힘없이 드넓은 하늘과 맑은 공기, 푸른 산을 온통 내 것인 양 즐기고….
저 역시 베이비부머 세대가 그렇듯 사회생활을 마치면서 손에 쥔 것은 서울의 아파트와 몇 개의 보험, 연금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마무리하면서 MBA에서 배운 대로 제 경제 상황을 점검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제가 서울에 사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10만 원씩을 방값으로 내는 셈이었습니다.
호주 여행에서 깨달은 이후 계속되어온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고, ‘늙은 농부’의 삶에 대한 존경과 ‘나도 늙도록 농부로 살다가 죽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하루 10만 원이라는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당장 떠나 얻은 게 오늘의 자유고 행복입니다.
세상의 소란에서 비켜나 조용히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사는 삶. 이것이 저 나름의 ‘잘 먹고 잘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트위터도 닫고, 그저 페이스북만 지인들과 소 식을 주고받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이 이렇게 미안한 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제 할 몫을 하면 다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였지요. 늘 제 자신을 향해 던진 “너나 잘하세요” 란 말이 알고 보면 더없이 비겁하고 이기적인 것임을, 이웃에 대한, 사회에 대한, 국가에 대한 관심과 책무를 저버리는 말이었음을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며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흔을 뜻하는 ‘불혹’이란 단어가 더 이상 미혹되지 않음이 아니라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로 읽히듯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뜻도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평천하치국제가수신!’ 내 삶이 행복하기 위해선 가족과 이웃이 행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나라가 잘 다스려져야 하고,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야 하는 뜻으로 말이지요.
못마땅한 세상이라고 돌아앉아 귀 닫고 눈 닫고 입마저도 닫고 사는 게 아니었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이렇게 엉망인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바뀌겠냐? 우리나라가 바뀔 것 같냐”라고 회의적으로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이것도 농사와 마찬가지로 ‘진인사대천명’ 아닐까요. 이 다짐이 제가 할 수 있는,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어린 꽃들에 대한 인사입니다.
- 지구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노동, 가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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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보고 누리는 것만으로도 축복인데 그런 아름다움을 손수 만들고 가꿀 수 있다니요. ‘나만의 정원 가꾸기’는 그런 의미에서 지구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노동이자 창작 활동일 듯합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