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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희 작가 아로새겨진 나무의 기억
홍동희 작가는 종종 나무를 사람에 비유한다. 나무를 고를 때도 연緣을 생각하고, 작업할 때는 대화를 나눈다. 때때로 아이 다루듯 어르고 달래기까지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감해 그가 얻어낸 건 나무의 속 깊은 이야기다.

인연 닿은 나무로 가득한 홍동희 작가의 작업장. 

그가 작가로서 나무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마치 아이가 부모를 닮듯이 어린 시절 주변을 둘러싼 나무와 돌, 흙 등이 그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홍동희 작가는 ‘면’에서 ‘리’, 다시 ‘골’로 나뉘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랐다. 바위에 앉아 수박을 깨 먹거나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켜야 했고 쌀이 없어 좁쌀로 밥을 지어 먹던 가난한 시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들판에서 뛰어노는 것만 알던 아이가 캔버스 앞에 앉아 붓질하는 시간을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었을까. 그렇게 1년이 흐르자, 그는 몸을 사용하는 설치 작업에 자연스레 눈을 돌렸다. 그리고 학교 교정을 캔버스 삼아 열정적으로 작업했다.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설치한 나뭇가지 조명등도 그때 처음 태어난 셈이다. “학교 이곳저곳에 나뭇가지로 까치집을 만들어 달았어요. 저는 어릴 때 늘 보던 까치집인데, 도시에 사는 사람은 그게 까치집인 걸 알고 한 번쯤 쳐다보더라고요.” 전문 목공 기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만지작거린 재료를 다루는 데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익숙한 놀이 도구이자 오랜 친구 같은 나무. 실제로 그는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도 되는 양 친근하게 부른다.

1 제주에서 가져온 고문. 2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살림1관에 설치한 나뭇가지 조명등. 현재 이곳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그가 만든 조명등이나 테이블을 부르는 말은 항상 ‘얘’다. “얘는 제주도에서 왔어요. 아주 옛날에 서민이 사용한 고문古門인데, 제주에만 사는 먹구술 나무예요.” “얘는 밤나무예요. 산에 갔다가 태풍에 쓰러져 있는 걸 데려왔어요.” 작업실에 놓인 작품에 관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의 입에서는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온다. 그냥 보면 주변에 널린 평범한 벚나무고 소나무인데, 알고 보니 하나하나 특별한 사연이 있다. 마치 사람처럼 말이다. “나무는 생긴 것도, 자라온 환경도 모두 달라서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어요. 좋은 나무인지 아닌지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느냐에 달려 있어요. 내가 원하는 디자인 요소를 가진 나무가 있고, 나무 안에서 이야기를 찾을 수도 있죠. 난 본래 있던 그것을 완성해줄 뿐입니다. 작품의 90%는 나무가 결정하고, 내가 하는 작업은 나머지 10%예요.”

그가 잘 재단한 판재가 아니라 투박한 통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것도 다같은 이유다. 이미 의도대로 다듬어진 판재보다 날것 그대로에서 미감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를 가공할 때도 자동대패를 사용하지 않고 수만 번의 사포질로 면을 다듬는다. 비록 단번에 면을 잡아주는 기계보다 더 많은 수고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본래 나무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데는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 갈라지면 갈라진대로, 옹이는 옹이대로 살려둬야 한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그 자체로 나무의 길고 긴 일생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공들이는 건 좋은 나무를 찾는 일이고, 가장 설레는 때는 통나무를 제재하고 속을 들여다보는 순간이다.

3 나무 외에도 돌과 흙 같은 자연 재료로 작업한다. 4 산 속에 버려진 밤나무로 만든 조명등. 5 느티나무로 작업한 테이블과 백합나무 벤치.

“좋은 나무를 만나는 일은 어려워요. 사람과 사람처럼 나무도 연緣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좋은 나무가 있는데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 채갔다면 그 나무와 나는 연이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나무 욕심이 있다. 연이 닿은 나무를 만나면 일단 사고 보기 때문에 작업실에는 온갖 수종의 나무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오랜 건조 과정을 거쳐 마를 대로 마른 나무들이 작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면 그는 찬찬히 나무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렇게 ‘작품’이 된 나무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비가 올 땐 비를 즐기고 눈이 올 땐 눈을 즐기며 초연하게 버텨온 전생前生처럼 또다시 뒤틀리고 갈라지며 변함없이 나무의 일생을 산다. 그건 수백 년 세월을 온몸으로 내어준 나무에 그가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