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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좋은 건축은 자연 앞에 겸손하고 사람을 품는다
은빛 바다 위로 옹기종기 자리한 작은 섬과 기암절벽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해안선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 그 표현이 부족하다. 마치 아기를 품고 있는 엄마의 모습으로 남해 비경을 품은 그곳, 골프 리조트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을 찾았다.


남해의 해안선처럼 웅장한 곡선이 대자연을 품고 있는 듯한 클럽 하우스 외관. 건물은 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창 역할을 한다. 설계는 매스스터디스 대표 조민석 씨가 했다.

클럽하우스의 레스토랑. 스무 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과 나뭇가지 모양의 조명등, 문범 작가의 설치 작품을 매치해 품격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겨울의 남도 바다는 아름답다. 삼천포대교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달리 면 장포와 모상개 해변을 감싸 안은 기암절벽 아래로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바다 위로 옹기종기 자리한 섬과 크고 작은 곶(cape)이 빚어 내는 겹겹의 해안선. 한가로운 다랑논에서 일렁이는 바다의 무늬로, 다시 하늘로 고개 한 번 돌렸을 뿐인데 세상은 눈부시고 아름답다.

남해 창선면에 오픈한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을 찾아가는 여정. 사실 취재 전부터 2만㎡가 넘는 이른바 우리나라 최상위 골프 클럽이라는 ‘풍문’을 익히 들었기에 한껏 위세를 자랑하는 건축물이 서 있겠거니 짐작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짐작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은빛 바다의 멋진 풍광에 넋을 잃은 순간 입구를 지나치기 십상이요,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입구를 찾았다 할지라도 우뚝 솟은 건물을 만날 수는 없다. 낮게 포복한 십자 형태의 건물 너머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의 안온함, 남쪽 끝 바다 한가운데 튀어나온 곶에 자리한 부드럽고도 광활한 평원.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은 패션 브랜드 한섬의 창업자 한섬피앤디 정재봉 회장이 6년간 준비해 오픈한 골프 리조트다. 세계적 코스 설계자인 카일 필립스Kyle Philips가 만든 골프장은 지난여름 오픈 이후 최고의 풍광과 시설, 그린피로 화제를 모았으며 11월 그랜드 오픈한 호텔과 분양을 앞둔 빌라 단지 역시 ‘마스터피스’로 불릴 법한 설계와 디자인을 자부한다. 그렇다면 평생 패션업계에 종사한 정재봉 회장이 리조트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 “2007년경 남해에 다니러 왔다가 이곳 경관에 반했어요.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을 보고 빠져든 것처럼 무언가에 홀린 듯 머릿속에는 이미 리조트를 그리고 있었죠. 남해는 겨울에 바람이 강하지 않고 기온이 따뜻해 잔디가 얼지 않아요. 골프 클럽이 들어서는 데 최적의 기후 여건을 갖춘 이곳에 골프 클럽 이상의 비전이 있는 리조트를 만들기 위해 오직 ‘힐링’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암각동산에서 바라본 리니어 스위트 호텔. 박스 형태의 건물을 어긋나게 배치하면서 기둥이 없는 캔틸레버 구조를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위층 건물은 인도 쪽으로 튀어나오게 앉혔는데, 건 물 사이를 걸을 때 햇볕이나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 조병수 소장이 설계를 맡았다 .

리니어 스위트 모든 객실에서는 길고 널찍한 발코니를 통해 욕실에서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리니어 스위트의 객실. 리니어, 즉 선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천장을 오동나무 판재로 마감하고 가늘고 긴 형광 조명등을 매입 시공했다. 불에 그을려 사용한 오동나무 판재와 블랙 바닥재 의 묵직한 느낌, 리네로제의 플럼 소파와 B&B 이탈리아의 아웃도어 체어 등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가구들이 공간에 품격을 더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어울리는 숨바꼭질 사실 사우스케이프는 골프를 치지 않아도 충분히 가볼 만한 곳이다. 경남 건축대상제에서 금상을 차지한 클럽하우스를 비롯해 호텔 리니어 스위트, 전원형 빌라단지까지 한국 건축계에서 돋보이는 행보를 이어가는 건축가 조병수, 조 민석 씨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굽이치는 곡선 라인과 노출 콘크리트 방식의 외관이 눈에 띄는 클럽하우스는 조민석 소장의 작품이다. 열십자의 중앙, 즉 천장이 뚫려 있어 그야말로 하늘과 바다를 품은 로비는 사우스케이프의 대표적 뷰 포인트. 바닥 높이와 일치하는 널찍한 수반은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가 하면, 산들바람에 물결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조민석 씨는 건축물이 천혜의 자연 풍광을 거스르지 않고 겸손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처마와 창 등 한국 건축 요소를 접목했는데,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은 처마 끝선을 올리고 볕이 잘 드는 곳은 반대로 내린 뒤 서로 연결해 마치 지붕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형태다. 보이는 곳부터 보이지 않는 곳까지 최고급 자재를 총동원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천연 흙과 돌가루를 구워 만든 외벽 타일은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것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결처럼 굽이치는 디테일이 특징이다. 또한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건물 옥상 외벽에 조개껍데기처럼 반짝거리는 타일을 붙여 남해의 은빛 바다를 형상화 했다. 클럽하우스의 왼쪽, 로비 데스크의 카운터는 10m짜리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 만들었는데 설치미술가 홍동희 씨의 작품이다. 레스토랑 역시 스무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리바 원목 테이블과 나뭇가지 모양의 모오이 조명등을 매치해 공간감을 살렸다. 방송인 황인용 씨가 수집한 LP와 아날로그 오디오 기기인 크랑 필름 스피커를 갖춘 지하(바다에서 보면 1층)의 뮤직 라이브러리도 눈여겨볼 만한 공간.

직선이라는 뜻의 리니어linear 스위트 호텔과 빌라는 양평 ㅁ자 집, 광화문 트윈 타워, 헤이리의 카메라타를 설계한 조병수 소장이 맡았다.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자리한 객실 마흔아홉 개를 모두 다른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안선과 선형으로 배치한 호텔은 직사각 상자 형태의 건물을 어긋나게 쌓은 것이 특징이다. 시선을 방해하는 기둥을 만들지 않기 위해 특수 공법인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를 차용, 건물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이 된다.

“구릉지에 펼쳐진 골프장과 바다, 섬들의 완만한 능선 등 아름다운 풍광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기둥을 생략한 캔틸 레버 구조를 생각했죠. 자연은 수직보다 수평 프레임을 통해 바라볼 때 풍경이 훨씬 아름답기 때문인데, 2층을 받쳐주는 보가 없으니 1층과 2층 사이의 뚫린 공간이 그대로 가로 프레임이 됩니다. 사람들이 건축물을 건 축물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담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즐길 수 있는 거죠.” 건물 자체보다는 땅,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조병수 소장. 카페테리아와 수영장은 남해의 다랑논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만들었다. 또 전원형 빌라 단지 역시 건물이 튀지 않도록 외관을 수수하게 만들기 위해 집의 가장 기본 형태인 삼각 지붕을 구현했고, 외장재 역시 대리석이나 번쩍거리는 소재 대신 콘크리트와 나무를 사용했다.

건축 못지않게 매력적인 것은 가구 쇼룸을 방불케 하는 객실 내부 디자인 이다.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의미와 깊이가 느껴지는 마감이 돋보일 수 있도록 하나만으로도 힘이 느껴지는 가구를 매치하는 것이 관건.
한섬피앤디의 임원진의 진두지휘 아래 가구와 아트 피스 셀렉을 맡은 스튜디오 트루베의 조규진 실장은 리네로제(소파와 스툴류), 나니 마르키나(카펫), B&B 이탈리아(아웃도어), 덕시아나(매트리스) 등을 선정했 다.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가구에 문범ㆍ정현일ㆍ이광호 작가의 설치 작품과 영국 톰 프라이스의 ‘멜트 다운’ 시리즈 등 아트 피스를 매치해 ‘앉고’ ‘쉬고’ ‘바라볼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을 완성했다. 수영장과 연결되는 리니어 스위트 C동 객실은 컬러 소품으로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강조해 좀 더 젊은 감각으로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클럽하우스에서 바라본 남해의 은빛 바다. 곶 지형의 특유한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통창으로 마감했다.

조병수 소장이 설계한 카페테리아와 수영장. 다랑논을 모티프로 계단 식으로 구성한 수영장이 인상적이다.

아날로그 오디오 기기와 커다란 서가가 조화를 이루는 클럽하우스 지하 뮤직 라이브러리. 소규모 모임이나 와인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폴딩 도어 를 모두 열어 천혜의 자연을 즐기며 개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광호 작가의 아트 퍼니처가 설치된 카페테리아 입구. 클럽하우스 입구에 있는 톰 프라이스의 ‘멜트 다운’ 시리즈를 비롯해 문 범, 정현일 작가의 설치 작품 등 공간 곳곳에 아트 피스를 배치해 머무는 동안 예술 작품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다.

리아스식 해안의 기암절벽 위에 조성한 골프 코스. 거의 모든 홀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마치 바다 위에서 골프를 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상의 휴식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의 또 다른 진수는 18홀 골프장을 돌면서 만날 수 있다. 거의 모든 홀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데, 라운딩을 하면서 푸른 바다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는 섬들을 감상하는 것은 보너스다. 마치 바다 위에서 골프를 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 코스 경관뿐 아니라 그늘집도 마치 하나의 조형 작품 같아서 홀을 이동하면서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10분 티업, 원웨이 티오프’ 원칙을 고수한다. 바짝 뒤따라오는 팀이 없이 천천히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 경관도 살피며 골프를 즐기라는 것. 경치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긴장을 늦추게 돼 실제 내기 골프가 잘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이 골프장에는 그늘집이 두 곳 있어요. 서쪽 끝과 동쪽에 하나씩 자리해 ‘선셋 하우스’와 ‘선라이즈 하우스’란 이름을 붙였죠. 선라이즈 하우스는 기암절벽 위 바다를 향해 뾰족이 뻗어나온 모양새가 인상적이에요. 안에 들어가 있으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죠.” 객실 담당 박문숙 팀장은 그늘집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것 역시 더없이 좋은 힐링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힐링은 정적인 힐링과 동적인 힐링의 결합이에요. 사우스케이프가 요가ㆍ스파 등 정적인 요소에 그치지 않고 트레킹ㆍ골프ㆍ글램핑ㆍ요트 등 동적인 요소, 로컬 먹거리까지 결합한 얼티메이트ultimate 콘셉트를 강조하는 이유지요. 클럽하우스 아날로그 음악당에서 여는 음악회, 문화재 전시, 섬 투어 등 문화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에요.”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테크놀로지 덕분에 전화 한 통, 이메일 한 통이면 전 세계가 내 사무실인 세상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은 그저 기어를 저단으로 내리고 슬로 미학을 만끽하는 것이리라. 꼭 골프를 치지 않아도 좋다. 베란다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거나 바닷길을 산책하고, 리조트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등 짧은 휴식은 지친 일상의 해독 제가 되기에 충분하니.

주소 경남 남해군 창선면 진동리 249 문의 1644-0280

조병수 소장이 말하는 ‘선’의 건축 미학
설계는 물론 마감과 가구 제작 등 내부 공간 인테리어까지 진행했다고 들었다. 객실에서 가장 특징적 공간을 꼽는다면?
발코니의 폭이 깊은 것이 특징이다. 남해는 바닷바람과 빛이 강하며, 태풍이 불 때 비바람도 들이칠 우려가 있다. 지형적 특성으로 발코니에 깊이를 줬더니,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때 경치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차를 타고 깊은 터널을 빠져나갈 때 풍광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강렬한 햇볕과 바람을 막아주니 더욱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장점이다.

내부 공간의 블랙과 화이트의 컬러 대비가 인상적이다.
햇볕이 강렬하기 때문에 블랙 컬러 바닥재로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과를 줬다. 여기에 벽면은 흰색으로 도장하고 천장 조명 라인과 목재 패널 마감으로 선적인 면을 강조했다. 형광등을 매입해 좁은 면으로 길게 뻗어 있는 조명 박스는 커튼을 통해 바깥에서도 들여다보이는데, 공간을 한결 역동적으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천장의 나무 패널은 오동나무를 사용했다. 120℃에서 3~4시간 구웠더니 색이 약간 어두워지고 반질반질 윤기가 돌아 멋스러운 것은 물론 바다 습기로 인한 해충까지 예방해준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김용관(건축 사진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