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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강석영 씨 내 삶의 특권, 여백의 시간
기하학 형태의 새하얀 백자 기둥과 달항아리 부조를 통해 대칭과 비례, 선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도예가 강석영 씨.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에서 30년간 후학 양성에 힘써온 그가 퇴임을 앞두고 가평에 작업실과 집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집을 짓고, 도자를 굽고, 마을을 돌보며 선물처럼 받은 여백을 즐길 준비를 마친 생활인 강석영을 만났다.


조선 백자의 신비한 멋을 현대적 설치 작품으로 구현하는 도예가 강석영 씨. 이화여대 도예과 교수로 30년간 재직하다 올해 8월 퇴임을 앞두고 가평에 집과 작업실을 마련했다.

트로피와 연구 서적,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 놓인 낮은 장식장 너머로 도자 작업 공간이 펼쳐진다.

두 딸이 어린 시절에 빚어 만든 작은 동물 장식들.

다시금 한 해의 끝자락. 도예가 강석영 씨를 만나기 위해 가평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겨울 풍경이 진하게 느껴졌다. 활엽수들은 어느새 빈 가지를 흔들고 멀리 산 중턱은 이미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오후의 잔광은 앙상한 가지 사이를 지나 차창으로, 다시 산과 하늘의 경계에서 부서진다.
집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이유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지인의 귀띔 때문이었다. 으레 모던한 콘크리트 건물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방금 전 인상 깊게 본 그 건물이란다. 외벽을 감싸는 알록달록한 도자,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 대문에 걸려 있는 빨간 오너먼트의 온기에 마음이 솔솔 데워질 즈음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넉넉한 웃음을 머금고 문을 연다.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 교수로 3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올해 8월 퇴임을 앞둔 강석영 씨. “저기가 유명산, 그 앞이 중미산, 뒤가 용문산이에요. 여긴 10월부터 눈이 오는데 4~5개월간 꼭대기에는 항상 눈이 쌓여 있어요. 아, 우리 집은 해발 230m니까 남산하고 똑같아요. 저 통에 든 건 모두 잣 껍데기예요. 가평 잣이 유명하잖아요. 잣 난로 본 적 있어요?”
반경 2km는 다 이웃이라며, 가가호호 설명이 이어진다. 아, 학교를 떠나 지역 사회로 편입하면서 새로 맡은 보직이 하나 있다. 바로 동네 명예 이장이다.

백자를 닮은 공간 장작 너머 숨어 있는 거대한 가마를 지나 작업장으로 들어서니 공기가 훈훈하다. 각종 도구와 연장들이 정갈하게 정리된 작업장 한편, 노란 벽에 붙어 있는 백자 부조 작품이 눈에 띈다.
강석영 씨는 조선 백자의 신비한 멋을 현대적 설치 작품으로 구현하는 도예 작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세계 20개국 대표 도예가들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아테네 올림픽 도예 공원에 영구 전시하는 영예를 안았고, 청계천 복원 시 작품 ‘빛의 생성’을 제작했으며, 얼마 전에는 세종시 기획재 정부 로비의 벽면 설치 작업을 맡기도 했다. 30년간 학교 일에, 국내외 전시에, 교구 봉사까지 안식년을 마음 놓고 챙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줄곧 ‘직진’만 한 그이기에 이렇게 생활인으로서 한가로이 잣 껍데기를 고르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2년 전에 집을 짓기 시작해 1년은 공사하고 1년은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냈어요. 요 며칠 전 드디어 작업실 정리까지 마쳤고요. 이 집은 결혼 후 쭉 반포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와 우리 가족이 30년 만에 이사한 아주 역사적인 집이죠(결혼 전에는 태어난 원효로의 집에서 쭉 살았다). 그만큼 계획을 철저히 세웠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살면서 하나씩 맞춰가야죠.”

그는 집을 지으면서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의 위치까지 모두 관여했다. 공사를 하며 들어낸 큼지막한 바위가 마당 한쪽 그 자리에 놓여야 하는 이유, 소나무를 저 멀리 논두렁에 심어야 하는 이유, 골조를 세우고 남은 철빔 조각을 버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만이 알았다. 흙에서 시작해 가마에서 꺼내는 순간까지 1초의 과정도 몰입해야 하는 것이 도예가의 숙명이며, 일이 되어가는 과정에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그의 작업 방식을 알기에 1년의 지난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가족 역시 누구 하나 이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집은 딱 제 옷을 입은 모습이다. 이는 이사한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 마치 6년을 산 듯한 익숙함이 느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백자의 미니멀리즘을 닮은 집. 다 버리고 ‘단순함’으로 최상의 가치를 표현한 진정한 고수의 작업과 공간의 역학 관계가 벌써부터 흥미롭다.

뉴스도, 채널도, 선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운 지금 어쩌면 미니멀리즘은 고요한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나에게 대단한 건축적 사조나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돈 안 들이고 간소하게 짓기 위해 ‘미니멀리즘’을 핑계 삼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집 지을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적재적소에 배치할지 고민했다는 강석영 씨. 작업실에 있는 대부분의 가구는 재활용한 것. 작업 테이블은 공사할 때 현장에서 나온 철빔 조각에 상판을 얹어 제작했고, 대문과 현관문 프레임도 남은 철빔을 잘라 용접해 완성했다.
그의 미니멀리즘 이론은 공간 배치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작업실과 내부 계단으로 연결되는 주거 공간은 목적을 확실히 정하고 공간을 배치하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끔 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과연 집 안에서 매 순간 목적을 갖고 행동할까’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 1층 거실과 주방은 열리고 또 닫히는 지극히 가변적 공간이다. “밥을 먹거나 샤워를 하는 등 목적을 갖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 밖의 대부분의 시간은 별 목적 없이 느슨하게 머무르잖아요. 그렇다면 무엇을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무익’한 공간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주방과 거실 사이 다이닝룸이 그런 공간이에요. 주방에도, 거실에도 속하지 않는 깍두기 같은 이 공간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1층에서 따로 또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집을 꾸밀 때는 가족의 온기를 느끼고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끼리 공유하는 추억, 공통의 취미 등이 키워드가 될 수 있는데 그의 집은 사진과 작품이 그 역할을 한다. 감각을 동반하면서 가족이 공유하는 기억, 출산을 앞둔 둘째 딸이 산후 조리를하러 올 2층 방에 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두거나, 두 딸이 조물조물 만든 오브제를 창가에 조르르 장식하는 식이다.


평생 아파트에서 자란 애견 ‘무이’는 작업실에서 지내는 야생(!)생활에 적응 중이다. 널찍한 공간을 금방 훈훈하게 데워주는 잣 난로는 가평의 자랑거리.

지하이자 1층인 작업실 서재에서 바라본 중정.

거실과 레벨이 같은 잔디 마당은 작업실의 지붕인 셈이다.

ㄱ자로 꺾인 벽면을 비스듬히 틀어 벽난로가 있는 코지 코너로 꾸몄다. 벨 조명등을 늘어뜨리고 테이블 위에 화분을 두었더니 공간에 생기가 돈다.

1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입구. 벽 왼편의 작은 문을 열면 손님의 외투를 걸어놓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2 거실과 부엌 사이의 다이닝 공간. 손님이 오면 슬라이딩 도어를 닫아 부엌과 다이닝룸을 분리한다.
3 지하부터 2층까지 수직으로 뻗은 계단 참 공간에 창을 내 커다란 바위와 소나무를 조망할 수 있는 이 집 거실의 뷰 포인트.
4 1층 부부 침실에서 복도를 통해 거실을 바라본 모습. 복도 왼편엔 드레스룸과 욕실이 자리한다.


패밀리 맨의 섬세한 집 짓기 건물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강석영 씨는 부부가 세상을 떠난 이후 건물의 용도까지 고민했다. 갤러리나 기념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조 내력벽 대신 뜯어낼 수 있는 가벽이나문, 가구 등으로 공간을 구분한 것. “원래는 제 작업실과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할 계획이었죠. 나이 들수록 생활이 단순해져야 하는데, 살림을 나눠 번거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결국 아내와 딸을 설득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주하기로 했죠. 가족과 함께할 집이라 생각하니,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도 즐거웠어요.”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집에 요구하는 사항은 다르다. 이 집은 남자가 지었지만, 여자의 바람이 훨씬 더 많이 반영된 듯한 느낌이다. 벽과 벽사이 데드 스페이스를 활용한 수납공간, 손님의 외투를 걸어두는 다용도실, 작지만 알찬 보조 주방 등 하나쯤 필요한 공간을 여자보다 꼼꼼하게 챙긴 점이 놀라울 정도. 함께 사는 큰딸 화경 씨, 주말이면 친정을 찾는 둘째 딸 유선 씨가 머무는 2층 공간 역시 아빠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유리 난간 대신 책장을 짜 넣고 계단 위 천장에 천창을 내 환한 기운을 불어넣은 2층은 두 딸이 각각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어차피 혼자 쓰는 방이라 욕실은 벽 대신 유리로 구분했는데, 마치 부티크 호텔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죠. 이사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여행 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마당에서는 장작 타는 냄새가 나고… 정작 꼭 만들어달라고 한 테라스에 나갈 일이 없어요. 온통 자연이니까요.” 도자를 전공한 화경 씨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개인 작업을 할 예정이다. 워낙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히 생활 자기에 관심이 생겼단다. 역시 도자를 전공한 아내 최영자 씨도 그간 숨겨놓은 솜씨를 슬슬 발휘해보겠다는 계획이다. 아빠와 딸, 아내까지 함께 쓰는 작업실, 어쩐지 기대가 되는 풍경이다.


도예를 전공한 큰딸 화경 씨와 아내 최영자 씨,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둘째 딸 유선 씨까지 강석영 씨 가족은 모두 홍익대학교 동문이다. 집을 짓고 가구를 함께 고르고, 묵은 짐 정리도 함께 하고, 동네 마실도 다니고… . 뭐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1, 3 2층 두 딸의 공간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독립 공간으로 구성했다 . 야외 테라스와 연결되는 큰딸 화경 씨 방은 노출 욕실이 특징이다.
2 집의 파사드는 제자와 지인들의 작품을 콜라주 방식으로 구성했다.


돌탑 위에 자리해 돌집, 굴뚝이 많아 굴뚝 집으로, 형형색색의 건축 도자를 붙여 미술관 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강석영 씨의 집. 땔감 뒤 커다란 가마를 지나면 작업실로 들어서는 입구다.

오늘도 바쁜 명예 이장님 건축물은 미학도 필요하지만 기능성과 합리성, 경제성이나 안정성까지 갖춰야 하는 복잡한 구조물이다. 이런 다양한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열정을 가지고 서로 검토하되 세부 사항을 조율해야 한다. 1권역(수질 보전 특별 대책 지역) 땅에 짓는 터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행정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일도 중요했다는 강석영 씨는 이렇게 집을 완성하고 보니 참 많은 이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설계를 맡은 이손건축 대표 손진 씨는 6개월 이상 서울과 가평을 오가며 수정을 거듭했고, 건축을 하는 친형님 강석원 씨가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구조 계산, 골조 모두 원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장 감리를 하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으리라. 설계는 건축가의 영역을 존중하되 조경과 토목 공사업체는 그 지역에서 찾아라(지형을 잘 알고 꾸준한 관리를 보장한다), 추운 지역이니 집을 땅속 깊이 묻어라, 지열 시스템과 단열같은 기초 투자를 아끼지 말라는 등 전문가의 조언은 적중했다. 개울 옆이라 물가 집으로, 축대를 쌓아 돌집으로, 굴뚝이 많아 굴뚝 집으로, 건물에 도자 장식이 있어 미술관으로 불리는 집. 집을 짓고 생활하는데 가장 큰 조력자는 이웃이다. 조경을 맡은 이웃 조경업체는 어느 날 닭 퇴비를 가져다주며 텃밭 농사법을 일러준다. 잣 껍데기를 연료로 활용하는 벽난로도 이웃이 알려준 이 지역의 명물. 겨울 난방을 책임지는 일등 공신이다. “주말에만 내려오는 집이라면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거나 친해질 수 없었겠죠. 거실 창으로 보이는 저 소나무는 마을 이장이 동네 입성을 축하한다며 심어준 거예요. 또 김장하면 여전히 집집마다 김치를 나눠 먹고요.”

시골의 칠흑 같은 어둠이 쓸쓸하지 않느냐고들 묻는데, 사실 어둠 속에 다 움직이는 것. 그는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하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외등을 11시까지 켜둔단다. 요 며칠은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의 데커레이션을 봐주느라 바빴지만, 곧 겨울잠을 깨고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도자와 함께한 세월이 도자기와 함께하지 않은 나날보다 많지만, 저 역시 한때는 도자기를 떠날 생각도 했어요. 대학을 막 졸업했을 무렵에는 도예에 싫증이 나 잠시 외도를 했고, 프랑스 유학 시절에도 유리공예에 슬며시 발을 담그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결국 자성에 이끌리듯 다시 도자로 돌아왔고, 이제 가까이에서 흙과 불의 힘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현대 도자는 간혹 과도한 장식과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기품 있고 담백한 도자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가 30년을 했는데도 또 새로운 작업을 기대하는 도자의 치명적 매력은 예측 불허의 예술이라는점이다. 간혹 열 때문에 수축하고 깨지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작품의 모티프가 될 수 있다. 또한 어떤 예술 분야보다도 유연하다. 조형 작품을 만들다가도 식기 같은 기능적 용품을 만들 수 있고 그릇 역시 조형적으로 구현할 수도 있다. 이 둘의 경계를 넘나들면 질릴 틈이 없다.
지금껏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이제는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곳에서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펼치겠다는 포부를 말하는 강석영 씨. 오는 여름 은퇴 후의 일상, 새벽 동틀 때부터 아침 먹기 전 3~4시간 동안 잔디의 풀을 뽑고 한낮에는 아래층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다 저녁이 되면 너럭바위에 앉아 장기를 두며 막걸리를 마시는 상상을 해본다.
외국은 ‘행복한 은퇴’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은퇴를 또 다른 삶의 시작이자 해방으로 보고 은퇴 뒤의 인생을 기대하면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현역 시절에 열심히 일한 만큼 인생 후반전에서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그처럼, 여백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따라 ‘인생의 맛’의 숙성도도 달라질 테니.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