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공예 갤러리 보고재 그 집, 보물 창고의 문이 열리다
푹푹 찌는 듯한 날씨에 청량한 무언가가 간절하던 어느 날 만난 ‘보고재寶庫齋’. 한자 그대로 풀면 ‘보물 창고가 있는 집’ 그리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품 창고’라는 의미를 담은 공예 전문 갤러리 보고재에서 보낸 몇 시간은 지루한 여름 한낮의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작가 정신과 손길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을 만나며 새삼 공예의 가치를 되새겨본 즐겁고도 값진 시간.


갤러리 보고재의 관장 홍수원 씨는 공예 작가로서 공예의 지평을 넓히고자 공예 전문 갤러리를 열었다. 전시 공간은 문의 열고 닫음, 패널의 움직임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ㆍ분할할 수 있어 다양한 전시와 문화 행사가 가능하다.

1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 카리나 히자츠-슈호슈흐타뤼Carina Chitsaz-Shoshtary가 실버와 스테인리스 스틸을 소재로 만든 브로치.
2 이동춘 작가의 철제 오브제 ‘Draw’.

권슬기 작가의 장신구 ‘The other side of the spear’. 율동감 있게 배치한 패널 위에 전시한 작품은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보고, 듣고, 만져보도록 전시한 작품들.

매트한 블랙 외벽,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율동감 있는 디자인, 하나의 예술 작품을 연상시키는 조형미. 청담역 근처 골목 안, 범상치 않은 강렬한 오라를 내뿜는 이 빌딩의 이름은 보고재요, 이곳 지하 1층에 자리한 공예 갤러리 또한 보고재다.


공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만들어낸 공간 최근에는 서울 시내에 가볼 만한 갤러리가 꽤 많이 생겨 강남에 갤러리 하나 오픈한 것은 그리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곳이 공예를 전문으로 다루는 갤러리라고 하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예 갤러리는 드물뿐더러 일반적으로 규모가 아담한 편이다. 하지만 보고재는 198㎡(약 60평)의 전시 공간에 아트 숍과 아카데미 공간까지 갖춘 꽤 규모 있고 완성도 높은 공예 전문 갤러리다. 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품 창고’ 보고재를 연 홍수원 관장 역시 20여 년간 장신구를 만들어온 공예 작가다. 공예를 알지 못하고서는, 공예에 관심과 애정이 웬만큼 있지 않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공간이지 싶다.

“공예는 순수 미술 이전에 생겨난 것인데도 지금까지 순수 미술보다 못한 예술로 평가받아왔어요. 아트의 어원은 아르스ars예요. 아르스는 공예를 말하는 크래프트와 동의어랍니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미술의 지위 상승을 위해 순수 미술에 파인fine을 붙이며 오늘날에 이르렀어요. 공예를 하는 사람으로 이런 점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지금부터라도 공예를 널리 알려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무미건조하게 사는 현대인이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공예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곳을 오픈했어요.”
홍수원 관장은 보고재를 통해 현대 장신구를 중심으로 순수 미술, 공예, 디자인이라는 조형 예술의 여러 분야를 아울러 현대 공예가 일상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하고, 공예와 공예가를 세상에 널리 알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산업 혁명 시기에 미술 공예 운동을 펼친 윌리엄 모리스가 떠오를 만큼 공예를 대하는 그의 무한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다.

보고재는 지난 6월 오픈한 후 벌써 두 번째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30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컨템퍼러리 공예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한 개관전 <트랜스폼드Transformed>를 마치고 이어서 열린 <썸머 오브제Summer Objet>는 한여름 숲 속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느낌을 전했다. 장신구와 세라믹 화기, 글라스 오브제 등 여유롭고 편안하면서도 작품의 디테일한 면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한 작품을 감상하며 최근 화두인 ‘힐링’이 바로 이런 건가 싶을 만큼 기분 전환이 됐다. 보고재는 작품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갤러리가 아니다. 현대 공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고 만지고 듣는 행위에, 작가와 작품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보고재가 공예와 대중이 소통하고 활발히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홍수원 관장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1 카린 요한손Karin Johansson의 목걸이 작품.
2 홍수원 관장이 직접 만든 반지 ‘Connected’. 
3 전시장 못지않게 시선을 끄는 아트 숍 ‘보고 스토어’.
4 보고 스토어에서 판매 중 인 신혜림 작가의 브로치 ‘As time goes rain falls’. 

5 10월부터 시작할 공예 아카데미는 이곳 스튜디오에서 진행한다.
6 박성숙 작가가 만든 목걸이 ‘The voice that see with minds’.

건축물도 또 하나의 공예 작품 갤러리 보고재를 이야기하며 이곳을 담는 큰 그릇인 보고재 빌딩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작은 집 하나 짓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에 비유할 만큼 건축은 힘든 일이라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큰 건물을, 그것도 일반 건물의 박스 형태를 탈피해 ‘작품’이라 해도 충분할 만큼 조형미 넘치도록 지은 배경이 궁금했다.

“공예 갤러리다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건축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수십 곳을 둘러보아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단 한 군데도 없더라고요. 고민 끝에 결국 내 마음에 드는 공간을 짓기로 했죠.”
건축을 하기로 결심하고서도 많은 건축가를 만났다. 그러나 그의 이상을 실현해줄 건축가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그러던 중 ‘운생동’의 장윤규ㆍ신창훈 소장을 만났고 그들이 작업한 예화랑, 복합 문화 공간 크링, 서울시립대 캠퍼스 콤플렉스, 생능출판사 등을 보며 건축물이 많은 조형 언어가 담긴 또 하나의 확장된 공예 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한다. 설계부터 지난 5월 준공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을 훌쩍 넘겼다.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건물은 6개월 만에 뚝딱 짓기도 하는데,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기다리며 완성했다는 사실에 건축주나 건축가 모두 대단하게 여겨진다.

“저는 건축은 환경적 면에서나 미적 면에서나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울러 주변 환경과 커뮤니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역할도 해야 하죠. 그런 면에서 처음 보고재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윤규 소장은 신창훈 소장과 함께 건축주의 취향과 공예 작가 특유의 섬세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7~8개 월간 설계해 창조적 기운을 담아낸 ‘블랙 스완Black Swan’ 콘셉트의 보고재 빌딩을 완성했다. 건축의 형태와 스킨은 고정된 객체가 아니라, 마치 무대에 오른 검은 백조가 자신의 꿈을 투영하는 춤사위를 연상케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정지된 듯 숨을 고르기도 한다. 검은 돌의 중후함과 견고함이 느껴지면서도 세련된 선과 면, 형 태로 끝없이 반응하는 율동이 느껴지는 입체적 스킨이 보고재 빌딩의 특징이다. 두 명의 건축가에게 건축 과정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신경 쓴 부분을 물으니 망설임 없이 갤러리가 자리한 지하 공간을 이야기했다. “지하 3층으로 이루어졌지만 갤러리가 있는 지하 1층의 천고는 5m로 다른 건물보다 더 깊이 팠어요. 지하면서도 지하 같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노력이었죠. 외부에서 빛이 적절히 들어오도록 하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신창훈 소장은 힘들게 신경 써서 만든 공간인만큼 만족도도 높다고 덧붙였다.

건축주인 홍수원 관장의 건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설계 단계부터 갤러리 외의 다른 임대 공간도 디자인, 아트, 문화 사업을 하는 이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거기에 맞는 입주자를 선별하는 중이다. 무엇이든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인 만큼, 정성과 공을 들인 만큼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더 깊고 분명한 빛을 만들어낸다. 보고재 역시 이 골목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더욱 진가를 드러낼 것이다.


갤러리 보고재는 지하에 자리하는데도 높은 천고와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열린 공간으로 설계해 지하 공간 같지 않은 분위기가 특징이다.

‘블랙 스완’을 테마로 조형미가 돋보이는 보고재 빌딩의 외관. 운생동 건축사 사무소의 장윤규・신창훈 소장이 설계했다.

더욱 분주해질 보고재의 가을 지난 8월 7일 <썸머 오브제>의 특별 전시를 마친 보고재의 다음 전시는 9월 24일 시작하는 최정선 작가의 개인전이다. 물론 그사이에도 아트 숍 ‘보고 스토어Vogo Store’와 상설 전시관은 운영하니 얼마든지 보고재 나들이를 할 수 있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문을 연 만큼 보고재가 앞으로 할일을 하나씩 해나가기 위해서는 조금도 쉴 틈이 없다. 10월부터 시작할 공예 아카데미를 위해 탄탄한 커리큘럼을 준비해야 하고, 공예 작가와 대중을 좀 더 친밀하게 연결하기 위해 신선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를 준비해야 한다. 공예를 중심으로 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편안하면서도 세련되게 공예를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제안할 계획이다. 해외 작가나 갤러리와도 긴밀하게 교류하고, 보고재만의 전시를 기획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 갤러리로 자리 잡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공예는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크기의 작품만 만들어요. 그러니 누군가에 게는 이 공간이 불필요할 만큼 넓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작은 그릇에는 큰 것을 담을 수 없지만 큰 그릇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은 반지 하나를 보여 주더라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그 작품의 잠재된 크기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수원 관장의 말을 빌려 갤러리 보고재를 이야기해본다면 갤러리를 담아낸 그릇이 크고 멋스러운 만큼 이 갤러리의 가능성도 무한대로 뻗어나 갈 것 같다. 검은 백조처럼 우아하고 멋스럽게 그리고 힘 있게.

주소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65-9
문의 02-545-0651, www.vogoze.com



자료 제공 운생동

글 신혜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