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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양영완 씨의 ‘A New Design’ 어쩌다 마주친 ‘아무거나’도 특별한 일상이 됩니다
디자이너를 만나면 늘상 하는 질문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프로젝트 성공 비결은 무엇인지 등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양영완 씨의 작품을 보면 머릿속에 맴돌던 틀에 박힌 질문들이 스르르 사라진다.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조합의 생활용품. 사물의 본래 용도에서 변화된 제품의 실체를 발견하는 재미, 의외의 조합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은 첫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체 이 제품의 이름은 뭔가요?


현관 입구에 연출한 플로어 램프 ‘빗자루Vitzaroo’는 도로용 빗자루와 깃발 거치대로 만든 작품. 옷걸이 ‘스푸닉Spoonik’은 기존 옷걸이에 숟가락을 끼워 만들었고, 만년 캘린더 ‘블랙닷Blackdots’은 1~31의 숫자를 홈을 파 형상화한 뒤 뒷면에 형광 테이프 판을 끼워 움직이며 사용한다.


2005년 서울. 빗자루가 있다.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것이 그의 임무다. 때로는 천장 구석의 먼지도 떨어낸다. 흙먼지 속에서 온몸을 바쳐 고되게 일하지만, 임무가 끝나면 바로 구석 자리에 던져지는 찬밥 신세. 때론 거실 한쪽에 우아한 모습으로 서 있는 플로어 스탠드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빗자루의 진면목을 알아봐줄 사람이 나타났다. 요리조리 살펴보는 진지한 눈빛, 섬세한 손길을 거쳐 빗자루는 거실 조명등처럼 당당히 머리에 불을 밝혔다. 플로어 램프가 된 빗자루 ‘Vitzaroo’ 의 탄생 스토리다.


1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한때 하이테크이던 것이 이제는 구닥다리가 된 것을 보면 재밌으면서도 씁쓸하다. 안방 침실에서 사용하는 테이블 조명등 ‘피에로Piero’는 일회용 포장 용기와 클립통, CD 케이스를 활용했다.
2 축구장에서 사용하는 고깔이 이처럼 모던했던가! 테이블 조명등 ‘파로스 Pharos’는 흔히 운동용품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세프티 콘에 LED 전구를 끼운 뒤 샤워기 헤드 커버를 올려 완성했다.
3 늘씬한 국자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손잡이가 긴 국자를 마이크 거치대에 끼워 만든 테이블 조명등 ‘크레인Crane’은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다.


1988년 이탈리아 밀라노. 생활용품 디자인 전시 마체프MACEF에 불고기 팬을 모티프로 한 무쇠 팬이 전시됐다. 주방 가구 업체 리졸리에서 제작한 이 팬은 한국에서 온 젊은 유학생의 작품이다. 듀폰사의 테플론을 코팅한 판에 음식 재료가 들러붙지 않게 하기 위해 돌기 디테일을 더한 무쇠 팬은 ‘코스모’라는 이름으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산 판매된다.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의 주방용품 매장, 쇼윈도에 전시된 팬 뒷면에는 ‘design by yang’이 아롯이 새겨져 있다.


1 현관 입구를 장식하는 벽걸이 조명등 ‘라이트 백Light Bag’은 이름 그대로, 모양 그대로 플라스틱 장바구니로 만든 조명등이다.
2 이쑤시개에 조화를 장식한 뒤 쇠구슬 사이에 슥슥 꽂으면 테이블 센터피스로 손색없다.
3 조명등은 디자인이 자유로우면서 쓰임까지 담을 수 있어 리디자인으로 좋은 소재다. 대걸레와 뚫어뻥, LED 바로 만든 플로어 조명등 ‘해리&포터Harry&Porter’.
4 아까워서 아들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는(!) 테이블 램프 ‘비엔나Vienna’. 슬라이드 트레이, 환약 포장 용기에 반구 아크릴을 끼워 빛을 조절할 수 있다. 이처럼 조명등을 만들 때 전구는 에너지 효율이 높고 불을 켜도 뜨거워지지 않는 LED 전구를 쓰는 것이 좋다. 백열전구를 쓸 경우 자칫 과열될 수 있으니 유의할 것.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프로덕트 디자인 전공 교수, 조형대학장을 맡고 있는 디자이너 양영완 씨. 오는 9월 6일부터 시작하는 제5회 광주디자인 비엔날레에서 전시로 일상의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는 그는 돈만 주면 손쉽게 살 수 있는 대량 생산된 기성 제품 대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생활용품을 만들어낸다. 그가 주창하는 어뉴aNew 디자인은 버려진 산업 제품을 해체하고, 맥락을 재구성해 새로운 쓰임을 찾아내자는 개념이다.

요리사가 재료를 씻고, 다듬고 조리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듯 ‘찾아낸’ 재료를 재사용(reuse), 재해석(rethink), 재구성(rebuild)해 새로운 기능의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일련의 작업은 “과연 이 디자인이 정말 필요한가? 생산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자 그 흔적이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 대학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가르치는 그가 생산의 지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순 아닌가.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이 디자인이라는 미명하에 무분별하게 제작되고 또 폐기되었지요. 그렇다고 지구 온난화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환경보호주의자는 아닙니다.


5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에우로페어 디자인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디자이너 양영완 씨. 여기 소개한 작품은 오는 9월 6일부터 시작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6 페트병과 전구 소켓, 냄비 받침(다리)으로 완성한 저금통 ‘옥토퍼스Octopus’.


단지 사람들에게 생산(produce)만을 염두에 두지 말고 감소(reduce) 또한 관심을 갖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지요.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해야 하는숙명이기에 일종의 반성에서 시작한 의식이라고 할까요.” 마트에서 연구하는 남자 그가 하는 작업은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의미를 들여다보면 아주 다른 개념이다. 일단 재료를 녹이거나 분쇄하는 등 어떤 필요 때문에도 재가공하지않는다. 나중에 필요 없어져 폐기할 때는 재료 하나하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한 것. 제 기능으로 다시 쓰일 수 있으니 정확하게는 한 박자 쉬었다 가자는 개념, ‘징검다리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학교 집무실에 페트병, 케이크 상자, 청소용품, 스테인리스 제품이 쌓여 있으니까 일부러 모으는 줄 알고 주워다 주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 또 손으로 조물조물 이것저것 붙여보고 그래요. 그러다 필요한 제품이 있으면 퇴근길에 마트에 들르죠. 아마 대한민국 남자 중 저만큼 마트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아내와 장 보러 가도 음료 코너나 생활용품코너를 기웃거리는데 신기하게도 새로운 건 금방 눈에 띄죠.”

바둑 두는 사람이 한 수보다 두 수, 열 수를 미리 보는 것처럼 뭐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어디다 쓸지 생각하며 요리조리 뜯어본다는 양영완 씨. 연구 과제로 목업을 만들다 리디자인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돼간다는 그는 어뉴 디자인이 DIY와 구분되려면 시쳇말로 내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 전문적 감각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 사실 재료 자체가 공산품의 부속물이나 재활용이라

저급하게 보일 수 있는데, ‘해리&포터’(대걸레와 뚫어뻥으로 만든 플로어 조명등), ‘피에로’(일회용 용기와 CD 케이스로 만든 테이블 조명등) 등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면 전혀 조악한 느낌이 없다. 이렇게 만든 제품이 혼자만의 만족으로 끝난다면 감동은 훨씬 덜했을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실생활의 쓰임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양영완 씨는 실제 작품들을 집 안 곳곳에 오브제처럼 설치하고, 직접 사용한다. 그런 물건들은 가족 모임이든 간소한 차회 등 집을 방문하는 이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지고, 그 집만의 특별함이 배가된다. “기성품이라면 어디에서 샀는지, 얼마인지 정도의 질문이 오가겠지만, 제가 만든 물건을 두고는 재료가 뭐냐부터 제작자의 의도, 만드는 방법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대화’가 샘솟지요. 어뉴 디자인은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독창적 생활용품이자 ‘그냥 집’을 ‘내 집’으로 만들어주는 훌륭한 오브제라 할 수 있어요. 가구 회사 부회장까지 지낸 큰형(양영일씨)이 얼마 전에 집에 왔는데, 낚싯대로 만든 플로어 램프를 만지작거리며 만들 때 하나 더 만들지 그랬냐며 농담할 정도니까요.”

거실 한가운데 중심을 잡아주는 낚싯대 램프는 아내의 세례명을 따 ‘모니카’라고 이름 지었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동기인 아내는 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일등 공신. 취향의 공감대가 넓은 부부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같은데, 요즘 즐겨 보는 것은 <개그 콘서트>와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다. 디자인의 가장 큰 덕목은 ‘유머’와 ‘위트’요,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능력은 ‘애드리브’ 아닌가! 어뉴 디자인을 통해 지극히 평범한 사물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그것이 변화되는 드라마틱한 과정 속에서 대중과 신나게 소통하고 싶다는 양영완 씨. 소유라는 개념보다 ‘동참’하며 이슈를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는 그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찾는 관람객 역시 작품 앞으로 한발짝 가까이 다가와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펫파티(페트병으로 만든 잔) 같은 경우 상단과 하단을 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가 완성되죠. 형태, 비례, 색채 배합 등 모든 것이 복합적이라 기초 디자인 교육을 하는 데 좋은 매체가 될 수 있어요. 생각지 않은 우연의 효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바로 창의력 교육의 핵심이자 창작을 부르는 ‘어뉴 디자인’이 소통하는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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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세례명을 따 ‘모니카Monica’라고 이름 지은 플로어 조명등은 집에 방문한 사람이 모두 탐내는 제품. 일회용 포장 용기, 낚싯대, 붐 마이크 스탠드로 완성했다. 우아한 라인의 조명등을 보며 아내의 날씬했던 시절을 추억한다나.

2 가능한 한 녹이거나 붙이는 등 가공을 하지 않고 자석을 이용한다는 양영완 씨. 유리병 입구에 자석을 끼우고 그위에 스틸 접시를 올려 만든 촛대 ‘발할라Valhallla’가 대표 아이템이다.



한 박자 쉬고 갑시다! 어뉴aNew 생활용품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물건을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따로 재료를 사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이용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어뉴 프로젝트의 생활용품들.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트에 가면 절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철물점에 가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을 듯하다.

1 몽키Monkey
세 가지 안주를 놓을 수 있는 안주 접시에 시침, 분침, 초침을 따로 달아 디자인한 벽시계. 시간에 따라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난 얼굴 등 표정이 달라진다.
2 캄포 타임Campo Time
선풍기 커버의 철제 살 개수를 세어보니 시계 문자반 눈금과 똑같은 60개! ‘우연 효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벽시계는 노란 컬러가 집 안에 포인트를 주기 제격이다.
3 펫파티PETparty 1
우리가 마시는 음료병, 페트병의 모양이 이처럼 근사하다니! 페트병을 잘라 뚜껑 안쪽에 자석을 부착하면 스틸 테이블 상판에 붙어 잔이 넘어지지 않는다. 스탠딩 파티나 캠핑 같은 아웃도어에서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 벽에 붙이면 하나의 부조 작품과 같다.
4 펫파티PETparty 2
플라스틱 잔 밑동을 잘라 자석을 부착한 컵 스탠드. 페트병 잔과 다양하게 조합해 사용할 수 있다.
5 스노 화이트Snow White
하얀 드레스를 입어 백설공주라 부르는 와인 병마개 스탠드. 와인병 마개와 페트병 입구의 크기가 딱 맞아떨어져 자르고 끼워 간단하게 완성했다.
6 포크업Forkup 2
포크의 긴 다리, 초가 쏙 들어가는 소주잔, 호스 밴드가 조화를 이룬 날렵한 촛대.
7 컬러 크로스Color Cross
레고로 만든 십자가 액자는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 이 작품을 보고 아이 레고를 괜히 버렸다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8 카르네발레Carnevale(카니발)
여기저기 이 집 저 집 흩어져 돌아다니는 레고 블록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끼워 만든 조명등.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