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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베이션 스토리 분당 이정원 씨의 1층 빌라 개조기, 온실 품은 집
번잡한 도시 소음은 찾아볼 수 없는 분당의 한 빌라촌. 집주인 이정원 씨에겐 뒷마당 한편에 자리한 온실이 최고의 놀이터다. 이 온실에서 매일 아침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계절의 공기를 듬뿍 마신다. 이른 새벽 촉촉한 공기가 싱그러운 6월의 어느 날, 이정원 씨의 빌라를 찾았다.


블랙&화이트 타일, 톰 딕슨의 펜던트 조명등 등 블랙 컬러로 포인트를 준 주방 공간


온실에 머무는 즐거움
같은 구조, 획일적 스타일이 싫어서 레노베이션을 한다지만 막상 야심 차게 고친 집에 가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유행이라는 이유로 마감재는 물론 가구, 조명등, 시계와 액자까지 몰개성해진 요즘 집들. 무엇보다 ‘모던 미니멀 스타일’이라는 이름 아래 사는 냄새 풍기지 않고 새침하게 꾸민 인테리어를 보면 왠지 마음 한편이 건조해지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트위니 심희진 실장이 작업한 분당의 1층 빌라는 시공 과정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부터 흥미를 유발하기 충분했다. 오래된 빌라촌의 빨간 벽돌이 뿜어내는 우직하고 안온한 느낌, 세월의 더께가 쌓인 것과 비례해 푸근하고 자연스러운 뜰, 무엇보다 두집 건너 하나쯤 있는 스칸디나비안풍이나 갤러리 스타일의 미니멀하우스가 아닌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테리어가 반가웠다.이정원 씨가 레노베이션을 계획한 이유 역시 현실적이다.


볕이 강해졌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 생각날 때다. 이정원 씨는 매일 아침 유리온실에서 나뭇잎 사이로 펼쳐지는 햇살을 맞으며 초록빛 일상을 즐긴다. 테이블은 세덱, 콘솔 장은 트위니 제작.


1 과감하게 폴딩 도어를 설치하고 밖을 바라보도록 소파를 배치한 거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쑥쑥 자라나는 식물의 에너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2 이동식 욕조와 갤러리 창이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욕실. 창을 열면 노천탕이 따로 없다.


첫째, 땅을 밟고 나무를 벗하고 싶어 선택한 빌라 1층은 10여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구석구석 남기기 시작했고 유지 보수가 필요했다. 둘째, 생활 패턴이 달라지니 예전엔 편하던 동선조차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는 것. 그사이 아이들은 자라 유학을 떠났고, 부부만 남은 집이 왠지 휑하게 느껴졌다. 마당 가꾸길 좋아하는 이정원 씨는 여유시간이 늘어난 만큼 뒷마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테라스의 온실화’라는 레노베이션의 굵직한 테마를 끌어냈다.

현관에서 복도, 거실, 주방을 지나 자리 잡은 온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햇살을 반사하는 에폭시 바닥재와 널찍한 테이블, 원예 도구, 촛대 등이 어우러진 빈티지풍 장식장, 덱너머의 싱그러운 정원까지…. 기존 테라스를 1m 확장하고, 천장과 사방을 모두 유리 새시로 마감하니 키 큰 나무의 잎이 무성해도 온실은 어두워지지 않고 종일 환하다. 여름에는 무척 덥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빗나갔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뒷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한낮에도 선선하다.

“여기 있으면 자꾸만 일거리를 찾게 되죠. 장독대도 닦고, 빨래도 널고 화초도 돌봐줘야 하니까요.” 이정원 씨의 생활은 온통 이 온실에 스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부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신문을 본다. 탁자 두 개를 붙여 연출한 커다란 테이블은 양쪽에서 신문을 펼쳐도 모자람이 없다. 볕 좋은 날이면 온실은 책을 읽는 서재가, 비 오는 날은 분위기 좋은 카페가 된다. 한 달에 한두번 이웃과 지인을 초청해 이 온실에서 삼겹살 파티를 연다. 집을 짓는 것은 삶의 시스템, 즉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라 했던가. 이처럼 ‘온실’은 집주인 이정원 씨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3 보통 벽면에 설치하는 관절 조명등을 현관 천장에 달았다.
4 앤티크 가구로 안온함을 더한 침실. 침대 맞은편에 책상을 두어간이 서재로 활용한다. 


주부 9단의 내공이 느껴지는 디테일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주인의 취향과 디자이너의 스타일이 공존해야 하는 법. 첨단이나 트렌드를 맹신하지 않는 이정원씨는 오래 사용해 손에 익고 정든 가구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감각적인 집을 완성하길 원했고, 대학 후배이기도 한 심희진 씨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전체적으로 질리지 않는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심희진 씨는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살림 9단 주부로서 인테리어를 하면서 소홀히 지나치기 쉬운 곳, 티 나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이 특기다.

예를 들어 집 뒤쪽의 보이지 않는 다용도실에 정성을 기울인다. 사실 뒤쪽 베란다야말로 주부에겐 세탁기 돌리고, 쓰레기 치우며 하루에 열 번도 더 드나드는 공간 아닌가. 골칫거리인 수납은 동선까지 계획하니 더욱 편리하다. 기존 주방은 아일랜드가 거실을 향해 있는 구조였는데, 아일랜드 자리에 가벽을 설치하고 슬라이딩 도어 안쪽으로 냉장고와 그릇장을 배치한 것.

주방 싱크대와 아일랜드를 병렬로 시공하니 다이닝룸을 바라보면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조리대-냉장고-그릇장으로 이어지는 동선 또한 효율적이다. 기존 집은 두 세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서재를 통해 침실, 욕실이 배치된 구조였는데 현재의 생활 패턴에 맞춰 침실- 드레스룸- 욕실 순으로 재배치했다. 침실과 욕실 사이 자투리 공간에 속옷이나 일상복을 수납하는 간이 드레스룸을 만든 센스가 돋보인다.


1 디자이너 심희진 씨는 보이지 않는 세세한 곳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주방 싱크대 안쪽 벽면 상단을 뚫어 목창을 제작해 창문 너머 다용도실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일하니 살림이 즐겁다고.
2 여자에게 그릇은 한껏 자랑하고 싶은 보물 1호. 넓은 그릇장이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3 아들 방 창가에는 남편과 아들이 취미로 연주하는 드럼을 배치했다. 창문 너머 울창한 숲이 개방감을 더해 연주할 맛 난다고.
4 디자이너 길드의 포인트 벽지와 세덱의 익스텐션 테이블, 리넨 커튼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 다이닝룸.
5 값싼 필라멘트 전구를 몰딩 장식 사이사이에 달아 특별한 조명 박스를 완성했다.
6 침실과 욕실 사이 자투리 공간에 트롤리 수납장을 두어 속옷이나 일상복을 수납하기 편하다.
7 앞쪽 베란다 한쪽 벽에 문양 타일을 붙이고 빈티지 화기를 장식했다.
8 온실에는 콘솔 겸 장식장을 두었더니 바구니, 촛대, 정원용품을 수납하기 좋다. 철제 프레임에 오크 원목을 더해 견고하게 제작한 콘솔 장식장은 책장으로 활용하기 제격.


가장 안쪽에 배치한 욕실은 이동식 욕조에 물을 가득 받고 창문을 열면 그야말로 노천탕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앤티크 스타일 가구가 동떨어져 보이지 않도록 클래식한 문양의 벽지를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몰딩 장식으로 포인트를 줬어요. 거실 천장 조명 박스의 원형 몰딩 장식과 블랙&화이트 격자무늬 타일, 톰 딕슨의 펜던트 조명등 등을 이용해 클래식과 빈티지, 모던 스타일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완성했죠.” 현관 입구는 철판으로 마감해 좋아하는 포스터를 걸거나 딸에게 온 편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등을 자유롭게 붙여 장식한다.

평수가 제법 넓어 자칫 부담스럽거나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공간을 이러한 요소들로 커버해 살기 편한 집으로 완성한 것. 이처럼 취향, 시간을 포용하는 스타일, 실용성이라는 삼박자가 조화를 이룰 때 진정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탄생하는 법이다.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는 턱턱 숨 막히는 도심을 떠나 물 맑고 공기좋은 곳에 호젓한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다는 꿈이 있지요.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왠지 갇혀 있는 느낌이 들고, 답답하다면 이렇게 징검다리 같은 공간을 마련해보세요. 여건이 안 되는 아파트라면 베란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초록빛 일상,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외부 공간 ‘온실’. 맨발로 자연과 대면하고 마음 맞는 사람과 차 한잔 나누는 등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작은 사치를 누리는 공간이다.


디자인과 시공 트위니(031-712-5177, www.twiny.co.kr)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