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컨설팅 업체 비 마이 게스트의 김아린 대표. 얼마 전 사무실을 한남동으로 이전하고, 1층에 아트 프린팅 숍 ‘아티 초크’를 오픈했다. 식 공간의 공기까지 컨설팅하는 ‘비 마이 게스트’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무실은 팀원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만큼 열린 공간으로 구성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홈 파티를 즐기는 가족(물론 집도 예쁘고 취향이 좋은)을 찾던 중 공통적으로 의견이 모이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비 마이 게스트 대표 김아린 씨다. 얼마 전 사무실을 한남동으로 이전했고, 집도 꽤 감각적으로 꾸몄을 거라는 제보와 함께 “아, 김아린 대표요? 얼마 전 아트 프린팅 숍도 오픈했고요.” “어머니는 설치 미술가 양주혜 작가예요. 동생은 <행복> 기자로도 일했고요” 등 흥미로운 정보가 속속 날아들었다. 알고 보니 그간 띄엄 띄엄 알고 있는 모든 인물이 한 명으로 겹쳐지던 순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해외 출장 중이던 그에게 ‘홈 파티’ 콘셉트의 집 취재를 요청했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스케줄을 피해 주말로 취재 일정을 잡았다. 며칠 후, 미팅을 위해 찾은 한남동 비 마이 게스트 사무실. 모던한 철빔으로 외관을 감싼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그야말로 세련된 취향과 공력이 느껴지는 공간이 펼쳐졌다.
1 털어낼 수 없는 내력벽을 파티션 삼아 공간을 효과적으로 분리했다.
2 아티 초크에서 판매하는 데미언 허스트 포스터가 공간에 임팩트를 부여한다. 이처럼 사무실에는 호사스럽거나 과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곳곳에 예술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3 여섯 개짜리 빈티지 스위치는 전기 공사할 때 우기고 우겨서 설치한 것.
4 사무실 입구 정면에 자리한 미니 키친. 톰 딕슨 조명등과 스메그 냉장고로 포인트를 주었다.
미술 학도, 셰프를 꿈꾸다
김아린 대표는 잘나가는 레스토랑 컨설턴트이자, 우리나라에 브런치 문화를 소개한 장본인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셰프의 꿈을 안고 ESCF(프랑스 국립 고등 조리학교)로 유학, 셰프가 아닌 외식 경영으로 진로를 바꾸었다.이후 브런치 문화를 선도한 텔미어바웃잇을 비롯해 액추얼리, 무이무이, 테이크 어반, 레 트로아 등 핫하다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콘셉트부터 메뉴 개발, 디스플레이까지 컨설팅을 맡았다. 하우스 오브 더 퍼플, 더 스테이트 타워 등 개성 넘치는 소셜 클럽과 청담동의 핫 플레이스인 SSG 푸드마켓도 모두 그의 솜씨다.
“시선을 끌기 위해 디자인에만 신경 쓰던 시대는 끝났어요. 문제는 콘텐츠예요. 아무리 투자 금액이 넉넉하더라도 확실한 콘텐츠가 없으면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 수 없고, 공간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할 수 없죠. 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바로 비 마이 게스트가 하는 일입니다.”
아직 레스토랑 컨설팅이란 개념이 낯설지만, 비 마이 게스트는 올해로 문을 연 지 8년이 된 회사다. 메인 콘셉트를 세우고 인테리어를 제안하며, 메뉴를 짜고 주변 여건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냅킨의 재질은 무엇으로 할지 같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레스토랑 컨설턴트의 몫. 스몰 비즈니스로 운영하기 때문에 한남동 사무실은 딱딱한 사무실 같지 않은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는데, 가정집을 개조해서인지 공간 활용이 재미있다. 레노베이션은 이건축연구소 이성란 소장이 맡았다. 이성란 소장과 캘리타의 최성희 대표, 그리고 김아린 씨는 함께 프로젝트 작업을 하며 친해진 사회 친구로 서로에게 훌륭한 여행 파트너이자 멘토이다. 오래된 집이라 예기치 못한 문제가 속속 발생할 때마다 오히려 김아린 씨를 편하게 안심시킨 이도, 낡은 집의 구조적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이도 이성란 소장이다. 그는 철거할 수 없는 내력벽을 파티션 삼아 사무실을 효과적으로 분리했고, 대신 부분적으로 천장을 확장해 공간감을 살렸다. 박공 구조 천장에서 드러난 오래된 벽돌을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재치와 컬러 면 분할을 통한 비례미까지… 평범한 주택이 개성 만점 스튜디오로 변신하는 경이로움이란!
비 마이 게스트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진열장, 레스토랑 컨설팅에 관한 시시콜콜하면서도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수납할 수 있는 시스템 월 등 ‘드러내는 수납’과 ‘감추는 수납’을 넘나들며 실용적인 미학까지 챙겼다.
파리의 간판 떼는 아저씨에게 부탁해 모은 알파벳으로 ‘사치, 평온, 쾌락’이 라는 인생의 모토를 거실 벽에 장식했다. 주방에는 네온사인처럼 색이 변하는 바코드 작품이, 침실과 거실에는 알록달록한 색점 페인팅이 자리한다.
남편 임승수 씨와 아들 태오 군. 방은 내추럴한 오크 바닥재를 벽재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미술 놀이에 심취한 태오에게 한쪽 벽은 캔버스로 완전히 내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표어처럼 만든 문구를 장식했다.
예술적 DNA는 타고나는 법
“수납장이 많아 작품을 걸어둘 벽이 없더라고요. 보통이라면 책을 꽂았을 전면 진열장에 무쇠솥, 도자, 계량컵, 촛대 등 식문화와 관련한 아이콘을 장식하고, 아니시 카푸어의 설치 작업을 사진으로 표현한 작품을 벽걸이 TV처럼 가운데에 걸었어요. 가장 아래칸은 우리 태오가 직접 디스플레 이 했답니다.”
역시 예술적 DNA는 타고나나 보다. 그 역시 불문학자인 아버지 김화영 교수의 인문학적 소양과 설치 미술가인 어머니 양주혜 작가의 미술적 재능을 고루 물려받지 않았는가.
“우리 부부는 아이 진로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도, 반대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아이 스스로 결정한 일에 관해 정도正道를 갈 수 있도록 조언해줄 뿐이죠. 아린이가 디자인 대신 순수 미술인 조각을 선택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어떤 일을 하든 순수 학문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늘 강조했거든요. 인문적인 바탕이 없으면 그 사람의 인품이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죠. 그리고 셰프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박수를 쳤습니다. 새로운 도전이니까요.”
어머니 양주혜 작가의 말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전통 요리사 자격증(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nelle)까지 취득한 그가 별안간 진로를 바꾼 이유는 무얼까.
“요리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이 요리를 좋아하는지 묻더라고요. 좋아한다고 했더니 좋아하는 거랑 실제 하는 건 다른 거라며, 저보고 회계를 전공했냐 재차 물으셨죠. 내게 그런 꼼꼼하고 논리적 재능이 있었다니. 자연스레 외식, 연회 경영에 관심이 생겨 그쪽으로 진로를 결정했어요. 저의 DNA에 잠재된 예술에 대한 갈망은 얼마 전 오픈한 아트 프린팅 숍 ‘아티 초크’로 해소하는 중이고요.”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아니시 카푸어전>과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데미언 허스트 회고전>을 보고 강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는 김아린 씨. 하지만 기천만 원 혹은 그 이상 하는 작품을 구입하기는 어려울뿐더러 고심 끝에 구입했다 하더라도 그저 작품으로 모시며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바꿔줄 수 없는 게 현실 아닌가. 값비싼 예술 작품을 프린트한 포스터와 사진 등을 기획, 판매하는 ‘아티 초크’는 많은 사람이 예술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 그의 바람이 적중했는지, 오픈에 맞춰 준비한 데미언 허스트의 프린트는 모두 판매되었고 추가 주문도 들어온 상태다.
1 김원숙 작가에게서 결혼 선물로 받은 작품.
2 레드 벽지로 포인트를 주고 크리스토의 설치 미술 포스터를 장식했다.
3 침실 벽의 배관 장식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수소문해 구한 것. 빨간 벽지에 포인트를 준 초록색 페인팅은 친정 어머니 양주혜 작가 작품.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덮고 자던 이불이 수시로 사라졌다는데, 바로 이런 페인팅 작품이 된 것이다. 이리저리 재봉바늘이 누비고 간 길을 따라 색점들을 한 땀 한 땀 새겼다.
4 의자와 가죽 기린 인형은 캘리타 최성희 대표가 태오에게 선물한 것.
오늘은 가족 파티가 열리는 날, 가족 모두 로제 와인을 들고 거실로 향하자 시끌벅적 웃음꽃이 핀다. 왼쪽부터 남편 임승수 씨와 아들 태오, 동생 남윤 씨 부부, 어머니 양주혜 작가, 아버지 김화영 교수 그리고 김아린 씨다.
사치와 평온, 쾌락이 공존하는 집
그의 말처럼 이제 예술 작품은 ‘모셔놓기’보다는 생활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연출법이 필요한 때다. 경기도 분당의 주상 복합 아파트는 태오가 태어날 즈음 이사한 집. 아이가 있는 집이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단정하면서도, 동심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3~4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한 달이 멀다 하고 출장을 다녀야 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주말은 절대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밀착 육아를 한다. 그런 전방위, 전천후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행복해요.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처럼 뭐든 엄마가 최고잖아요. 자다가 눈을 떠 저랑 눈 마주치면 볼에 뽀뽀해주고, 누군가에게 그런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 경이로운 느낌이죠.”
물론 그만의 특별한 육아법도 있다. 바로 ‘강 약 중강 약’의 완급 조절. “프로젝트가 몰려 있을 때는 아예 못 봐요. ‘약’이죠. 하지만 작년만 해도 네 번 정도 단둘이 여행을 갔어요. 비행기 타면서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온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되니 ‘강’이고 함께 놀아주는 주말은 중간 쯤이예요.”
바닥재와 벽지 교체만으로 내추럴하게 완성한 인테리어도 디자인보다는 ‘친환경’과 ‘실용’에 중점을 두겠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진행한 것. 이 집의 백미는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아트워크인데, 인테리어에 컬러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색점 페인팅과 아이들도 좋아하는 바코드 등 어머니 양혜주 작가의 작품도 곳곳에 자리한다. 또 지인들을 초대하면 거실에서는 애피타이저나 디저트를, 식탁에서는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는 그는 주말 가족 모임 메뉴로 간단한 카나페와 파스타를 준비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뚝딱 만드는 것은 자신 있다고. “살림 역시 서툴더라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단계를 밟아나가야 해요.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게 의식주를 디자인하는 것이 라이프스타일의 시작이죠.”
양주혜 작가는 지난해 겨울 김화영 교수와 함께 파리에 머물렀는데, 그때 아린 씨가 태오랑 단둘이 놀러 와 일주일 정도 같이 시간을 보냈단다. 가족과의 여행은 긴장을 풀고 되도록 편하게 즐기려 노력 하지만, 김아린 씨에게 여행은 카페・전시・건축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일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양주혜 작가는 매일매일 다녀온 곳을 정리하고, 늘 트렌드의 정점을 찍어야 하는 아린 씨의 모습을 보며 조언했다. “사람이 배가 고파서 뭔가를 갈구하면 본질을 놓치게 마련이야. 하지만 그득하면 즐길 수 있어. 멋을 알고, 유행을 알고, 또 그 유행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장점으로 취해야 할 것과 배제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차이야. 우리를 더 향기롭고 우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과시적 소비가 아니라 내면의 결, 예민한 감성이니까.”
보통 사람들은 레스토랑을 행복한 순간에 찾는다. 예전에는 그냥 밥만 먹고 가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레스토랑의 ‘공기’까지 소비한다. 그는 이렇게 문화를 소비하고 공유할 수 있는 ‘행복한 장소’를 계속 만들어내는 지금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