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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허명욱과 일본 옻칠 작가 구마노 기요타카 집으로 들어온 예술
과거에 기인하지만 현대적인 것,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 전통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 아닐는지. 한국의 사진작가 허명욱 씨와 일본의 옻칠 작가 구마노 기요타카 씨가 협업해 선보인 옷칠 작품에는 일상을 헤아리는 혜안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허명욱 작가의 작업실은 건물 두 채로 나뉘어 있다. 모던 빈티지풍으로 꾸민 위쪽 건물은 갤러리와 다이닝 키친을 겸하고, 아래쪽 건물은 작업 공간이다. 두 곳 모두 땅을 물색하는 일부터 설계를 거쳐 페인트칠과 가구 들이기까지 모든 과정을 그가 직접 했다.

구마노 작가(왼쪽)와 허명욱 작가.


품격 있는 아름다운 살림살이 한국의 사진작가와 일본의 옻칠 작가라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다. 게다가 그들이 지난 여름 내내 경기도 용인의 한 아틀리에에서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작업한 옷칠 작품은 색도 형태도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의 수장이 생활이 묻어난 물건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작가 허명욱 씨라니, 의아함이 금세 기대감으로 바뀐다. “생활을 담는 공예는 삶의 질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법이지요. 주로 사진 작업을 하지만, 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상 예술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구마노 선생과 전통 기법으로 만들되 현대적 기능에 어울리는 형태를 선택하고, 색으로 생동감을 더해 갤러리보다 집에 어울리도록 했지요.” 시작은 일본의 옻칠 작가 구마노 기요타카 선생의 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술가로서 호감이 소통의 과정을 거쳐 현대적 기능을 결합한 전통 공예품으로 탄생한 것.

“디자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 전통 공예를 하면 더 잘할 수 있어요. 게다가 열정까지 받쳐준다면 금상첨화지요. 30년 넘게 옷칠 작업을 해온 제게도 옻은 다루기가 아주 까다로운 재료입니다. 한 면에 여러 번 세심하게 덧칠해야 하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에요. 건조 조건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마르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게다가 검정과 빨강, 두 가지 색을 제외하고는 옻 색깔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현역에 있는 옻칠 작가도 색을 다채롭게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허 작가가 무려 다섯 가지 컬러를 사용하겠다고 했을 때 적잖이 놀랐습니다. 내심 결과물이 궁금 했는데, 그의 생각대로 표현되어서 감탄했지요.”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쓰임새와 디자인이 있을 터. 전통 공예가 현대의 실용성과 감각을 담아낸다면 그야말로 전통 공예와 현대인이 행복하게 만나는 방법이 아닐는지. 구마노 씨는 이번 작업이 색과 형태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한다. 같은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옻칠 작품은 다른 듯 닮아 있다. 구마노 씨의 작품은 트레이에 붓 터치를 하듯 다양한 질감과 색감을 표현한 반면, 허명욱 씨의 것은 패브릭을 덧대어 그보다 모던하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이답게 디자인에 금속 테이블과 손잡이 등 요소를 더한 것도 독특하다. 모두 일상의 물건으로, 전통 공예에 현대적 기능을 결합한 그들의 옻칠 작품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1 작업에 사용한 빨강ㆍ파랑ㆍ초록ㆍ노랑ㆍ주황 다섯 가지 옻 도료.
2 중국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옻칠 전용 붓인 하케.
3, 4 나무에 초칠하고 나무가 뒤틀어지지 않도록 쌀풀과 생칠을 섞어 패브릭을 붙인 다음, 사포질하고 다시 옷칠하기를 반복한다. 도트 패브릭을 디자인 요소로 만든 허명욱 작가의 샐러드 볼 작품.

이번 옷칠 작업을 위해 허명욱 작가가 직접 디자인한 가로세로 3m 길이의 테이블에서 작업 중인 모습으로, 한창 작업 중이던 지난 8월에 촬영했다. 이번 작업은 무려 43회의 옻칠 과정을 거치는 전통 기법에서 반질거리는 특유의 질감을 내는 과정을 덜어내 총 19회의 옷칠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1 빨강 옻칠 미니 트레이는 구마노 작가 작품으로, 디저트 접시로 제격이다. 트레이 위의 옻칠 찻잔과 포크는 박미경 작가 작품. 벽에 걸린 그림은 허명욱 작가의 ‘트렁크’ 시리즈.
2 옻칠은 내구성이 강하고 방충, 방수 효과도 뛰어나 일상용품으로 더없이 좋다. 옛날 양동이를 연상시키는 빨래통과 금속으로 디자인해 제작한 행어와 옷걸이는 허명욱 작가 작품.

3
42cm 트레이에 도트, 다이아몬드 등 일정한 패턴으로 모던한 느낌을 주는 패브릭을 덧댄 후 금속 손잡이를 달았다. 허명욱 작가 작품으로 여러 개를 함께 벽 장식으로 사용했다.


Kumano Kiyotaka
전통 기법은 고수하되 옻칠 과정의 단계를 파격적으로 줄여 현대화와 대중화에 이바지하는 구마노 작가(오사카 예술 대학 교수). 검정과 빨강에서 벗어나 이번 작업에서는 트레이에 다양한 색감의 조화와 질감을 표현했다.

지름 42cm 트레이는 안팎의 컬러가 다르고, 48cm 트레이는 백자 접시를 넣어 세팅했다. 금속 주전자는 정유리 작가, 조각보 매트와 안경집은 백인실 작가 작품.

1 트레이에 10cm 정도 높이감을 주어 뒤집어 사용해도 멋스럽다.
2 다양한 사이즈의 트레이. 별도로 디자인한 금속 소재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 사이드 테이블로도 쓸 수 있게 했다. 노영희 씨가 차린 브런치를 올리니 테라스 테이블로도 제격이다.
3 천연의 무공해 도료인 옻은 살균력이 강하므로 위생적이다. 일단 건조되면 먹어도 탈이 없어서 음식을 담아도 안전하다. 그린 샐러드 볼은 허명욱 작가 작품.
4 지름 48cm의 트레이는 미니 테이블 용도로 써도 손색이 없다. 질감을 살린 트레이는 구마노 작가 작품. 와인 테이블 세팅은 노영희 씨가 했다.


Heo Myung Uk
허명욱 작가의 타원형 트레이를 뒤집어 개인 받침으로 사용한 요리 연구가 노영희 씨가 콩밥과 버섯우거짓국 등으로 차린 상차림. 옷칠 특유의 톤다운된 색감이 가을 상차림과 잘 어울린다.

벽에 걸린 그림은 허명욱 작가의 ‘문’ 시리즈.

진행 신민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