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전체를 한 작가의 거대한 설치 작업으로 변모시키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블랙박스 라운지 프로젝트’. 그 첫 번째 작품으로 토비아스 레베르거가 참여,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팔라초 델레 에스포시치오니Palazzo delle Esposizioni 카페 설치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대즐 페인팅을 적용해 라운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작품명은 ‘When I see the other side of heaven, it is just as blue’로 이 설치 작업은 향후 2년간 유지된다.
파리 곳곳, 도시 풍경 속에 스트라이프 패턴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관람객의 시선을 미술관 밖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한 현대 미술가 다니엘 뷔렝Daniel Buren. 개념 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에게도 예상치 못한 수난이 있었으니, 1971년 구겐하임 국제전에서 대형 현수막에 적용한 스트라이프 작업이 다른 작품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철거된 해프닝이 그것. 이처럼 스트라이프는 현대사에서 가장 보편적인 패턴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시각적 도구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준비한 블랙박스 라운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업 역시 스트라이프 패턴을 적용했으니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게다가 2009년 5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의 현대미술가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작품 아닌가!
(왼쪽) 독일 출신의 세계적 현대 미술가 토비아스 레베르거 씨.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카페 설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그는 실내 공간을 독특한 스트라이프 패턴을 이용해 경쾌하고 유희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설치 작업으로 유명하다.
혼동과 반전 그리고 휴식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작업은 순수 미술의 전형이라기보다는 패션이나 디자인 분야에 가깝다. 지난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무언가를 보지 않는 것’에 관한 시각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시관에 카페테리아 공간을 꾸몄는데, 그는 이러한 역설을 대즐 페인팅dazzle painting(제 1,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함을 보호하기 위해 배의 표면에 기하학 패턴을 그려 넣은 위장법) 기법을 활용해 표현했다. “미술관은 무엇을 보기 위해 찾는 공간입니다. 반면 대즐 페인팅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무늬죠. 거기서 모순이 시작됩니다. 대즐 페인팅을 적용한 이 장소 또한 작품을 관람하는 전시관이 아닌 다른 일, 즉 휴식이나 세미나를 하는 공간이니까요. 위장 패턴과 미술관 역할이라는 모순의 결합으로 출발한 공간이기에 막상 이곳에 들어서면 관객은 뭘 보아야 할지 당황스럽지요. 하지만 곧 익숙해집니다.”
그는 블랙박스 라운지에 시각적 움직임을 유도하는 패턴을 고안했다. 라운지의 바닥과 벽, 기둥, 가구에까지 적용한 선명한 컬러와 조밀한 간격의 스트라이프 패턴은 마치 공간이 움직이는 듯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발휘하고 관객은 그 안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수평적 공간에 수직적 요소를 넣기 위해 유리 장식장 파티션을 활용했는데, 곳곳에 세운 유리장의 줄무늬 틈새로 너머의 광경이 들어오면서 마치 만화경처럼 현란한 시각 효과를 만들어낸다. 유리장 안에는 나이키 운동화 깔창부터 동물 두상 목조각까지, 그가 한국과 독일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신변잡기를 장식해 재미를 더했다. “‘아, 이런 것도 있네?’라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디테일이 재미난 것을 골랐어요. 이때 유리장은 파티션이 아닌 전시를 하는 공간 자체가 되는데, 이는 유리장이 전시를 하는 미술관 행위를 모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1960~1970년대 복고 스타일을 차용해 현란한 색채로 디자인한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공간 설치 작업은 시각적 즐거움은 물론, 장난스러운 요소로 관객들이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 것이 장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 라운지라는 휴식 공간과 혼동을 주는 복잡한 패턴의 만남이 아이러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쾌하게 말한다. “휴식은 시각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하는 법. 혹여 눈이 피로하다면 테라스를 바라보라. 리움에서는 통창 너머 멋진 풍광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소 역설적으로 ‘숨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답한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지 고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나는 단순한 스트라이프에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다소 시적이고 엉뚱한 작품명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전한다. 내가 우스꽝스러워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라고.
어찌 보면 그는 아주 바람직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작품을 부자의 고급스러운 취미에 머물게 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쪽으로 활용하니 말이다. ‘하늘을 돌아보니 온통 푸르른’ 이곳을 경험하니, 굳은 뇌가 웃고 맨송맨송한 마음이 들썩여진다. 그는 미술품의 진짜 가치를 알고 있는 진짜 예술가다.
1, 2, 4 파티션처럼 움직이는 전시관인 유리장 안에는 서울과 베를린 벼룩시장에서 직접 구입한 오브제들을 넣어 재미를 더했다.
3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스트라이프 패턴은 커머셜 브랜드에서도 많이 찾는 문양이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2011 투르쿠 전시에서는 핀란드 가구 브랜드 아르텍과 협업해 일리사의 에스프레소 잔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Mini interview 삼성미술관 리움 학예연구실장 우혜수 씨 블랙박스 라운지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한 것인가? 블랙박스 위의 라운지 공간이 꽤 넓은 데 반해 특별한 쓰임이 없었다. 사실 ‘블랙박스 라운지’는 통창 너머로 야외 공간이 펼쳐지고, 천장이 낮아 무언가를 전시하기에는 효과적이지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전망이 좋은 만큼 편안한 라운지 공간으로 꾸미면 괜찮겠다 싶었고, 공간 전체를 한 작가의 거대한 설치 작업으로 특별하게 완성하고 싶었다. 토비아스 레베르거를 시작으로 2년마다 새로운 작가를 초청해 진행할 예정이다. 첫 번째 작가로 토비아스 레베르거를 선정한 이유는?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도전하기 좋아하는 작가다. 딱히 미술가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간 설치부터 디자인, 건축에 이르기까지 활동 분야가 광범위하다. 또한 카페테리아 설치 작업으로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핀란드에서 열린 2011 투르쿠Turku 전시에서도 카페테리아 설치 작업을 진행한 만큼 ‘라운지’ 작업에 노하우가 있다. 공간 자체가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공항 라운지나 카페처럼 편안히 즐길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의 경쾌한 줄무늬와 작업 방식이 잘 맞아떨어졌다. 의자를 창가 쪽으로 조르르 배치한 작가의 의도를 잘 살려, 이곳을 찾는 누구나 편안하게 휴식도 즐기며 작품을 감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른쪽) 의자와 테이블 등 가구는 독일 디자이너 슈테판 디츠Stefan Dietz가 제작하고 그 위에 대즐 패턴을 입힌 것. 종이를 접은 듯한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은 뾰족하고 날카로워 보이지만, 실제 앉으면 무척 편안하다. |
취재 협조 삼성미술관 리움(02-2014-6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