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벽지를 통해
예술의 대중화를 이루다
요즘 인테리어 잡지를 보면 친환경 디자인은 필수, 작품 한 점은 옵션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를 많은 사람, 다양한 계층이 즐기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그렇다면 이에 대 한 좋은 대안 또는 선택의 여지는 있는 것일까?
8월 18일까지 서울 서초동 아트클럽1563에서 열리는 <아트 온 유어 월Art on your wall>은 현대 작가의 작품을 벽지로 제작해 예술의 대중화를 모색하는 전시다. 그리고 이 전시를 보면서 든 생각은 현재 주거 문화의 화두인 친환경과 예술 사이의 딜레마를 이렇듯 진지하게 고민하고 속 시원히 풀어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는 것!
“이 전시는 19세기 후반, 예술가의 장인 정신을 되찾기 위해 영국의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와 사회 비평가 존 러스킨이 주도한 아트&크래프트 운동을 떠올리고 기획한 것이에요.” 아트클럽1563의 큐레이터 박계연 씨의 설명을 따르면 이 전시에는 인테리어 분야에서 지향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수공예적인 가치가 더해진다.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한 제품이 심미성을 잃은 것에 대한 위기감에서 출발한 것이 아트&크래프트 운동이죠. 작가가 하나하나 직접 그리고 만든 수공예품 같은 가구, 패브릭, 제본, 인쇄 등을 통해 생활 속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주고자 한 아트&크래프트는 지금 우리 사회가 되돌아봐야 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전시에 선보인 벽지는 최고급 목화지에 판화를 찍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프린트한 것. 살아 있는 색감과 질감이 실제 작품 같다. 게다가 하루 최대 7롤만 생산하는 공예품에 다름 아니기에 벽지 자체는 한정판일 수밖에 없다.
1 나무 패널의 조합이 사각형 패턴을 이루는 벽지 ‘스몰우드’ 시리즈. 리처드 우즈 디자인으로, 막대형 조명등 역시 그의 작품. 테이블과 의자, 플로어 스탠드는 에이후스, 러그는 덴스크 판매.
2 기하학 패턴이 강약을 반복하며 공간에 리듬감을 선사하는 벽지 ‘Talk to the Driver, so that he does not Fall Asleep’는 예카테리나 샤피로 오베르마이 작품. 화이트, 블랙 의자는 웰즈 판매.
3 임혜림 작가의 ‘캔디랜드’ 작품을 모티프로 만든 벽지. 레드 의자는 웰즈 판매.
이지윤 씨는 유럽과 아시아권의 현대 미술을 통한 문화 교류를 위해 국제 대형 전시를 기획하는 ‘숨 아카데미&프로젝트’의 대표이자 큐레이터, 아트클럽1563 설립자다. 2011, 2102년 ‘아트 광주’ 총감독, 2012년 IOC ‘미디어 아트 컬렉션’ 커미셔너다. |
환경을 보호하는 ‘작품’
한국을 비롯해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 미국에서 활동하는 6인의 현대 미술 작가가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작품 크기는 제약이 없지만, 벽지는 생활 공간에 맞는 비례를 지켜야 했죠.” 아트클럽1563의 설립자이자 전시를 기획한 숨 프로젝트(www.suumproject.com)의 대표 이지윤 씨는 이를 위해 지난 2년을 도전과 실험, 인내와 끈기로 버텼다. 특히 벽지 프로젝트 참여 작가 중 나무 패턴 디자인으로 유명한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는 ‘실내 마감재’로서 이상적인 패턴 크기와 비례, 컬러를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가구는 물론이고 건물 외벽까지 디자인하며 예술과 인테리어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작가도 아파트를 기준으로 한 실내에 어울리는 벽지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거죠.” 큐레이터로서 유명 작가는 물론 참신한 시선과 가능성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도 적극 선보이는 이지윤 씨는 벽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래가 기대되는 화가의 아이디를 반영했는가 하면, 화폭에 담기 힘든 미디어 아트를 벽지에 풀어내며 뻔한 아트 상품 아닌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현실에 녹아들도록 친환경 종이를 선택했다. 정읍에서 유기농 목화지 제조사를 찾고, 목화지에 판화를 찍듯 인쇄하는 기법을 적용해 친환경 벽지를 완성했다.<아트 온 유어 월> 전시를 진행하는 동안 벽지는 한정 수량으로 제작 판매한다. 이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 평범한 벽지에 질렸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신 상품’, 아트 컬렉터에게는 작품을 즐기는 새로운 매개체 그리고 ‘어떻게 연출해야 하나?’ 고민인 사람에게는 즐거운 시간.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포인트 월로 연출하는 거죠. 보기 좋은 곳, 시선이 머무는 곳에 그림 한 점 걸 듯 말이죠. 보다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요?”
4 이기일 작가의 ‘라벨’ 벽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레코드 라벨이다. 패턴 크기를 두 가지로 제작, 공간 규모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전구 조명등과 노란색 의자는 에이치픽스, 테이블과 노란색 티포트 세트는 이노메싸 판매.
<아트 온 유어 월> 전시는 롯데백화점 대전점(7월 20일~8월 13일)을 시작으로 안양, 부산, 영등포점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 이는 <아트 인 유어 룸Art in your room>이라는 제목으로 찾아간다. 지금은 벽지를 벽면에 붙여 그림처럼 보여줬다면 롯데백화점 순회 전시는 가구와 오브제를 매치해 실감 나는 공간을 보여주기 때문. 친환경적인 데다 예술적 공간, 작품이 있는 친환경 공간. 이를 보니 도배를 새로 하고 싶은 마음이 욕망 아닌 희망이 된다. 아, 전시가 끝난 후 벽지는 개포동 강남 보육원에 기부, 설치한다니 이 또한 희망적이지 않은가!
*숨 프로젝트에서 기획하고 마카다미아에서 제작한 ‘아트 월페이퍼’는 스토리샵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본지 303쪽을 참조하세요.
우리 집에는 어떤 아트 벽지가 어울릴까?
1 강임윤Eemyun Kang 작가의 ‘스크롤 페인팅’. 본래 이 작품은 각 행의 가운데 글자를 아래로 연결하면 특정 어구가되는 메조스틱mesostic 형식으로 지은 한 편의 시詩다. 이를 통해 관람자들은 시구가 배열된 형태를 따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FUNGAL LAND, HORSE, PUFFBALL 같은 단어를 만나게 된다.
2 이혜림Hye Rim Lee 작가의 ‘스트로베리 가든’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판타지 세계를 구현한 3D 애니메이션 작품. 작가는 현대인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하는 미적 기준을 반영한 눈, 코, 입, 엉덩이, 다리, 가슴 등을 조합해 이상적인 여성상인 캐릭터 ‘토키Toki’를 벽지 패턴으로 재탄생시켰다.
3 이기일Kiil Lee 작가의 ‘라벨’은 멀리서 보면 물방울 패턴 같지만 자세히 보면 레코드 라벨을 모은 것. 벽지에는 산울림, 양키스부터 1970년대 <별들의 고향> 영화 음악까지 수 많은 LP판의 라벨이 나열되어 있다. 음반 라벨이 각각 다른 내용과 유행을 담고 있지만, 하나의 패턴을 이룰 때는 동일한 기호와 구조로만 작용하는 작품성에 주목할 것.
4 카로 니더러Caro Niederer 작가는 여행 중 구한 엽서, 자신이 주변 환경을 직접 촬영한 사진 등 주로 일상을 기록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강한 색채의 유화를 그린다. 벽지로 표현한 ‘숲 속의 소녀(Girl in the Woods)’는 길을 잃은 듯 홀 로 숲 속을 걷고 있는 소녀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처럼 우리의 기억을 자극해 머릿속 어디엔가 자리 잡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5 에카테리나 샤피로-오베르마이Ekaterina Shapiro-Obermair는 러시아 출신으로, 기하학 패턴들을 모듈로 구성하고, 다양한 배치를 통해 수많은 무늬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구사한다. 벽지 ‘Flower_2’는 특정한 크기와 차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장식적 무늬가 특징. 옵아트를 보는 듯 한 재미와 부담 없는 컬러 매치 덕분에 어느 곳이든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디자인이다.
6 리처드 우즈Richard Woods는 다양한 컬러와 나뭇결 패턴을 특징으로 해 공간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공공 미술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전통 목판 기법으로 찍어낸 패널을 건물 외벽, 가구 표면 등에 적용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그는 실내 규모에 맞는 우드 패턴을 다채롭게 조합한 벽지 ‘스몰우드Smallwood’ 시리즈를 제작해 타일과 우드 패널을 붙인 듯한 마감재로서 벽지를 선보였다.
스타일링 최새롬 취재 협조 아트클럽1563(02-584-5044, www.suumproj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