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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서 배운다 가구가 먼저일까 그림이 먼저일까?
디자인 가구의 의미를 알고 그림 컬렉션이 가치 있는 문화 소비라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그림과 가구의 랑데뷰는 ‘일상예술日常藝術’이라는 시대의 키워드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가구 컬렉터 이종명 씨와 유진갤러리 대표 이유진 씨가 가구와 그림의 만남을 집과 같은 갤러리에 연출한 The Art of Display1 mid century modern furniture & paintings 전시는 그래서 더욱 보고 싶고, 봐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지난해 11월,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유진갤러리. 가정집을 갤러리로 꾸민 이곳은 갤러리로 단장하기 위해 ‘개조’하기보다는 오히려 집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색을 고스란히 살렸단다. 유진갤러리 대표인 이유진 씨가 유년 시절을 보낸 집이기에 그 흔적을 지운다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집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살려 특화된 전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그리고 이 선견지명(?)은 오래지 않아 빛을 발했다.

장소가 있어야 제대로 된 만남이 이뤄진다 가구+그림, 집이라서 좋다!
유진갤러리가 ‘집’이라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마련한 전시 The Art of Display1 mid century modern furniture & paintings는 단순히 가구와 그림의 만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시 제목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은 ‘디스플레이’와 ‘아트’로, 가구와 그림이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는지 그 ‘조화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 “기존 갤러리에서도 많이 시도한 것이 그림과 가구의 매치였습니다. 하지만 하얀 박스형 갤러리 안에서 가구는 평면 회화를 돋보이게 하는 ‘입체 장치’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죠. 이런 의미에서 유진갤러리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죠. 거실과 주방・서재 등 공간 용도에 맞는 가구를 놓고, 그 안에 그림을 매치했기에 그림과 가구의 만남이 제대로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의 배경이 ‘집’이기 때문에 전시를 결심했다는 가구 컬렉터 이종명 씨. 그의 표현대로 이곳은 가구와 그림을 잘 짠 각본을 통해 연출한 듯, 아니 누군가의 집에 온 듯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 평안함은 가구와 그림에 몰두하게끔 놀라운 집중력을 유도하는데, 원리는 이렇다. 세련된 옷차림을 한 사람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그 자체만 보다가 어떤 옷과 구두를 매치하고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 신경 써서 보듯, 인테리어 그 자체로 감탄한 공간 속에서 그림과 가구를 분리해 각각의 가치를 곱씹어보게 되니 말이다.

(왼쪽) 플로어스탠드 ‘포커스Focus’는 파비오 렌치Fabio Lenci 디자인, 1972년 작. 의자는 론 아라드의 1981년 작 ‘로버Rover’. 자동차 시트를 재활용한 디자인. 강렬한 색감의 유화는 화가 정직성 씨의 작품.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을까? 그림이 먼저냐 가구가 먼저냐
가구와 그림, 이 둘의 조화를 보여주는 전시. 그렇다면 여기서 품게 되는 의문점 하나, ‘그림이 먼저냐 가구가 먼저냐?’ 그 만남의 순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시는 가구가 먼저입니다.”

유진갤러리 대표 이유진 씨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생활인으로 늘 염두에 둔 것이 가구, 그중에서도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였단다. 시카고 유학 시절 벼룩시장과 중고 가구 숍에서 ‘한눈에 반한 가구’는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았다고. 사지도 않을거면서 혹시 그 가게에 또 어떤 가구가 나왔을까 오전ㆍ오후로 구경 가는 게 낙이었을 정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눈에 밟히던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를 만난 건 효자동에 있는 카페 mk2에서였다. 게다가 운 좋게도 그곳의 주인이자 가구 컬렉터인 이종명 씨를 알게 되면서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에 대한 확신도 들었다. “유학할 당시만 해도 개인적 미감에 따라 좋아하던 건데 이종명 씨를 통해 공부해보니 이는 예술적 측면에서 되짚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흔히 요즘 우리가 빈티지, 레트로, 아예 카페 가구라 부르는 가구는 디자인 용어로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가 맞다. 1930~196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그 당시 클래식에 반하는 현대 가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과학적 공법을 접목했고, 재료 역시 전통성을 벗어나 스틸과 플라스틱을 사용하면서 모던 디자인의 전형이자 원조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2012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 공감을 얻으면서 향수 어린 감성이 덧붙여져 날로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는 ‘전시’할 만한 대상이고, 또 집 안에 놓고 쓸 수 있는 생활 가구지요. 그러니 실제 공간에 그림과 함께 연출하면 미적 감흥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왼쪽) 모던 가구 컬렉터 이종명 씨(완쪽)와 유진갤러리 대표 이유진 씨(오른쪽).


1, 2 전시 콘셉트 실마리가 된 공간. 스웨덴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로 연출했다. 책장 선반 시스템은 폴 카도비우스 Poul Cadovius 디자인. 다이닝 테이블은 매그너스 올레센 Magnus Olesen 디자인. 하늘색 원형 의자는 접이식으로 고안한 실용성이 특징. 자매 초상화는 갤러리 대표 이유진 씨 작품. 노란색 회화는 경현수 작가 작품.


3 덤덤한 사이드보드와 작가 마이클 위틀Michael Whittle의 세밀화가 잔잔한 조화를 이룬다.
4 핀란드의 대표적 디자이너 일마리 타피오바라Iillmari Tapiovaara의 테이블과 가는 등받이 라인이 돋보이는 북유럽 의자의 조합. 1950년대 복고적 감성이 깃든 가운데 향수를 자극하는 전병철 작가의 사진 ‘another moment 2009’이 더해져 평화로운 분위기다.


스위스 건축가 디터 베커린의 하이보드와 김수영 화가의 건물 외벽 그림이 건축적 대비의 미학을 연출하고, 그 앞에 자리한 독일 건축가 에곤 아이언만의 테이블과 의자는 세기의 만남을 선사한다. 초록 화분 그림은 김기수 작품.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디스플레이의 기술, ‘인연’은 만들거나 발견하는 것
그림을 컬렉션하고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를 좋아하는 갤러리스트 이유진 씨,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를 수집하는 가구 컬렉터이자 자신의 컬렉션을 예술 작품과 매치할 줄 아는 사진작가 이종명 씨. 전시를 기획하면서 혹시 ‘그림이 먼저냐, 가구가 먼저냐’ 첨예한 갈등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이는 아예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이종명 씨는 그 이유를 이유진 씨의 세련된 안목 덕분이라 말한다. “미드센트리 모던 디자인이 꽃피운 시카고에서 유학한 이유진 씨에게는 그 감성이 자연스럽게 물들어 있었지요.” 이종명 씨와 이유진 씨가 추구한 가구와 그림의 매치는 마치 원래 그 공간에 있었던 듯한 자연미, 즉 세련된 스타일을 전달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운명적 인연’을 맺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디스플레이의 실마리는 이유진 씨가 제안한 ‘빨간색’이었습니다. 미드센트리 모던 디자인의 태동인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에서 사용한 빨간색. 그 감성을 반영한 벽면을 만들고, 여기서 ‘아이를 위한 공간’이라는 테마를 구성했죠.” ‘동기’를 찾으면 이후 콘셉트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내용이 풍부하고 충실해지는 법이라 말하는 이종명 씨. 그는 1층과 2층에 걸쳐 크게 다섯 개 공간을 연출했는데, 그 안에 가족사를 담아냈다. 색감 있는 스웨덴 가구와 자작나무 숲에 서 있는 자매를 그린 유화를 걸어놓은 패밀리룸, 캔버스에 철제 파이프로 3차원의 공간감을 더한 그림과 스틸 소재의 다리가 인상적인 테이블로 꾸민 다이닝룸, 흑백사진과 1950년대 제작한 밝은 나무 빛깔 가구의 조화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할머니가 차 한잔 마시며 뜨개질할 것처럼 안락한 방, 기품 있으면서도 컨템퍼러리한 경쾌함이 느껴지는 거실 그리고 지식인 아버지가 앉아 있으면 제격인 서재. 왠지 정말 오래전부터 살고 있는 주인이 나타날 것만 같은 공간은 ‘전시’임에도 실제 가구에 앉아서 만지고 머무르는 자유와 여유가 허락되니 더욱 실감날 수밖에 없다.

1 공간감을 강조하는 김병주 작가의 입체 회화와 아르네 야콥센 외 두 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테이블의 조화.


2 이윤진 작가의 사진 작품. 사진 속 노란 책과 같은 색의 의자 매치에 주목.
3, 4 작품을 가구 위에 놓아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도하는 디스플레이.

“저 자신은 가구 컬렉터라기보다는 디자인 애호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림과 가구의 조화가 자연스러운 공간을 연출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반복과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가구와 그림을 ‘장만’하기보다는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그림과 가구를 컬렉터와 애호가 사이에서 어느 정도 사용하다 취향이 바뀌고 공간이 달라지면 서로 교환하고 위탁 판매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 전시도 거시적으로 보면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입니다.”

애초 이 전시를 두고 그림이 먼저냐, 가구가 먼저냐 따진 것은 어쩌면 ‘촌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공간이 아름다워지고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모두가 집 안에 공기처럼 존재하고, 그런 문화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생태계가 존재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반갑게도 이 생태계가 유진갤러리에서 움트고 있으니, 그 뜻깊은 시작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말길!


*유진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행복>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가구 컬렉터 이종명 씨와 유진갤러리 대표 이유진 씨가 가구와 그림 그리고 공간 예술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일시 2012년 4월 12일 오후 2시. 유진갤러리(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16-7)
참가 신청 이메일을 통해 신청해주신 분 중 선착순 15명을 초대합니다.
문의 및 신청 02-2262-7196, jhw@design.co.kr


취재 협조 유진갤러리(02-542-4964, www.eugeangallery.com)

글 이정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