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앞뜰에 트레일러를 세운다니, 사막에서 스키 탄다는 소리처럼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에는 실제 두바이에서도 스키를 탄다니, 못할 것도 없겠다. 안동 병산서원은 건축가들이 손꼽는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 중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곳이다. 건축가 마영범 씨도 지난봄 이곳을 처음 방문하고는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들어가는 입구는 아직도 울퉁불퉁하고 비좁은 비포장 도로, 주위를 둘러볼 새 없이 복례문을 지나 만대루에 오르면 그제야 눈앞에 펼쳐진 진경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일곱 칸이나 되는 긴 누각인 만대루에서는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과 그 앞을 유유히 흐르는 강, 그리고 넓은 모래사장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만대루에서 눈길을 왼쪽으로 살짝 돌리면, 바로 그곳에 건축가 마영범 씨가 점찍어둔 땅이 있다. 그는 그 자리에 빈티지 디자인의 트레일러 에어스트림Airstream을 한 대 세워놓고, 틈틈이 머물며 그 땅에 어울리는 집을 설계하고 싶단다. 처마의 불규칙한 라인이 산세와 하나 되어 흘러가는 만대루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는 집을. 그리고 서너 채의 작은 집을 옹기종기 지어 하나는 침실, 하나는 거실, 이렇게 사용하고 싶단다. 다도를 취미로 하는 그이기에 무엇보다 꼭 있어야 하는 공간은 다실. 다실은 아무것도 없이 비운 공간이면 족하다. 자연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병산서원처럼 공간을 채우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사유思惟일 테니.
마영범 씨가 미래의 드림 하우스를 구상하는 작업실로 삼고 싶다는 에어스트림. 광고나 잡지 화보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일리시한 트레일러 에어스트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airstream.com)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