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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여,당신도 집안 꾸밈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혹시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행복>에 소개되는 멋진 집의 주인이 혼자 사는 남자인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이번 호 인테리어 특집에 등장하는 여섯 집 역시 공교롭게 모두 남자들의 집이다. 요즘 남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적극적이라고 하는데, 비단 외양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남자들이 집안 꾸밈에 더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안 했을 뿐이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photo01 어떤 사람의 지위는 그가 공간을 얼마나 점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그 장소에 무엇을 얼마나 늘어놓는가에 따라서도. 물론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간과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건 본성이다. 인테리어에 미니멀리즘이 득세할 때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과시’했으니까.
그 지위는 그가 그 집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서도 결정된다(그건, 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분명 문화적 지위이다). 집에 관한 집주인의 변별력은 그의 미감과 개인사와 경제력, 그 모든 것을 도표처럼 요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달팽이처럼 짐스럽게 큰 집이나 동화 속 예쁜 집에서 산 적이 없다. 창부들의 다닥다닥 ‘하꼬방’ 같은 데나 지붕이 내려앉은 쓸쓸한 곳에서 산 적도 없다. 인테리어 잡지들은, 정원은 또 다른 방이란 이론을 지지하지만 어렸을 때 말고는 정원 있는 집에서 산 적도 없다. 그러니 몇 년 열심히 배워 정원사가 될 일도 없다(물론 개똥 때문에 골머리를 앓거나 표백제를 섞은 뜨거운 물을 도로 위에 들이붓는 수고도 필요 없겠지). 나는 집(주거형식이나, 평수)에 대해 별 강박증이 없다. 하긴, 내가 만약 집에 골몰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알량한 사이즈의 집에서 살지 않았겠지.
사람들은 점점 큰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어떻게 그런 넓은 집을 유지하는지 통 모르겠다. 입심 좋은 동네 어떤 아주머니는 내가 사는 이 조촐한 집이 보석 같은 데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가끔 약간 넓은 교도소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집이 좁지 않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훨씬 더 좋은 점이 많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난, 작은 공간 때문에 폐소공포증이 생기기보다는, 부족한 공간이 주는 어떤 안락함이 더 행복하니까.
그러나 나에게 <베터 홈스&가든스> 같은 잡지에 나오는 집에서 살고 싶은 꿈은 60평짜리 강남 무슨무슨 팰리스 같은 데서 사는 것보다 5천 배는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자에게 그릇이나 레이스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처럼 남자에게도 자동차나 과시하고 싶은 집에 대한 몽상이 있기 때문이다. ‘과시’라고 했지만, (언제나가 아니라) 이따금 나는 데이비드 베컴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가 가진 영국 허트포드 샤이어의 2백50만 파운드(1만 파운드는 한화로 약 1천8백만 원 가량 된다)짜리 저택(사람들은 이곳을 베킹엄 ‘궁전’이라고 부른다)과 그 안의 30만 파운드의 레코딩 스튜디오와 30미터 길이의 수영장, 흑백의 당구장과 기똥찬 헬스장, 7만 파운드의 바비큐 시설과, 소속 팀 레알 마드리드 트레이닝 장소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마드리드 외곽의 4백만 파운드짜리 집으로 이사할 때 즐비할 이사 박스들을 생각하면 1백 미터 달리기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숨이 벌써 다 차다.
얼마 전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나는 집을 꾸민다는 것에 관해 기절초풍할 고초를 겪었다. 전에 내가 어머니와 살던 집에서는 집안 모든 치장을 어머니에게 맡겼었다(기보다는 아예 방치했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그건, 나야 출근하고 나면 밖에서 한밤까지 휴지조각처럼 나뒹굴 게 뻔하지만, 하루 종일을 이 집에서 머무는 어머니야말로 우리 집의 진짜 세대주란 나의 지극한 ‘효심’ 때문이었다. 그러니, 결국 나는 집에 관해 내가 소원했던 그림을 펼쳐보기는커녕, 어머니가 마련한 모든 사물들을 타넘고 다니기 바빴다. 가구 사이의 간격과 컬러, 벽 색깔과 조명과의 상관 관계, 그림과 전자제품 간의 거리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은 어머니 편에서 보자면 처음부터 글러터진 헛소동일 뿐이었다.
 
 
photo01 새 집으로 이사하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번듯하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니 벽지며 식탁이며 죄다 새로 꾸미는 매 순간마다 어머니와 부딪혔다. “검은색 식탁이 뭐가 좋니? 난 어둡고 컴컴해서 싫다. 아니, 넌 속이 그렇게 까맸었니?” 그러다가 나중엔 급기야 이렇게까지 야유하셨다. “그러니까, 결국 너는 니가 원하는대로 다 했구나. 그래, 좋겠다, 좋겠어. 너 혼자 니 친구들 다 데리고 와서 실컷 놀아라.”
전에 나도 혼자 살아본 적은 있었다. 살았다기보다는 놀았다는 게 맞는 말이지만. 그때 소설이랍시고 글을 써봐야겠다고 작정했었는데, 그러자면 조용한 ‘집필실’이 있어야 한다고 물정 모르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청담동의 한 의상실 지하를 월세로 얻어 임대인 주제에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었다. 본 건 있어 가지고, 천장을 뜯어 시멘트를 드러내 층고를 높이고, 벽은 온통 흰 페인트를 칠해 창백하고도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고명처럼 얹었다. 바닥엔 시골분교의 복도 나무폭만큼 합판을 잘라 쭉 이어 붙였으며, 폭이 좁지만 아주 긴 사이즈의 원목 ‘판때기’를 놓고, 그 아래는 스틸로 짠 직육면체 프레임 두 개를 받쳐 책상으로 만들었다. 없는 돈에 사람을 사서 한 공사였고, 그만 하면 웬만큼 봐 줄 정도는 됐었다. 물론, 글 좀 써보자고 만든 공간에서 글 한 줄 못 쓰고 허구한 날 친구들 불러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은 수치심 없이 발설하긴 참 힘들다.
어쨌든 ‘인테리어 흉내’는 한번 맛을 들인 게 잘못이었다. 그 후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인테리어 잡지를 탐독했고, 스크랩했으며, 알량하게 응용하기까지 했다. 때로, 집안의 인테리어 사각지대에 대한 해법조차 내가 집착스럽게 채집하는 인테리어 텍스트들에서 얻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친구들이(대체로 남자들이다) 나를 초대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놀라운 체험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혼자 사는 집은 하나같이 일본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것 같은 형형한 건축적 감각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집안의 모든 꾸밈이란 (쇼핑이 그런 것처럼) 여자들의 뺏길 수 없는 지분이었다. 남자들이 장식한 집안이 멋져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적합한 예는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 자취방의 그 꼬리꼬리한 발냄새며, 꽃무늬 장판이라도 깔렸다면 오감할 방바닥이며, 하나같이 을씨년스러운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에는 잡지에 싣자고 들면 혼자 사는 남자들의 집도 어딜 들이대도 앵글이 나오고, 구석구석 풀컷 사이즈의 존재감이 있으며, 집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숙고를 싱싱하고 생생하게 타전하는 가구들을 보면 어디 금성에라도 왔나 싶어지는 것이다.
룩에 대한 감각이 그런 것처럼, 이젠 자신을 ‘가꾸기’시작한 남자들의 ‘뷰티’도 죄의식 없이 용납되고 있는 마당에, 집안 꾸미는 ‘중성적인’메이크업쯤이야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볼 것, 느낄 것, 만질 것, 느껴볼 것들이 지천인 세대가 또 어디 있었나? 게다가 그 모든 걸 학습하는 게 요즘만큼 자연스러운 때가 단군 이래 또 있었느냐 말이다. 한편, 좌판에 나오는 요즘 물건들은 죄다 지금 지구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당대적 ‘아트’아닌가? 그렇다면 전자제품이자 아트인 그 오브제들만으로도 인테리어는 완성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주상복합이니 오피스텔이니, 이미 하드 웨어 자체가 잘 갖추어진 주거 환경에서라면, 썩 괜찮은 감각을 가진 집주인처럼 보이기가 그렇게 힘든 일만은 아닐 테다.
집을 꾸미는 데 공간의 크기는 분명 감각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가 본 혼자 사는 남자들의 공간이란 운동장처럼 넓은 집이 아니라 봄나물 무친 것처럼 조물조물 조그맣고 귀여운 평면이 태반이었다. 분명 50인치 LCD TV를 들여놓지도 못할뿐더러(가까운 데서 화면을 보면 오히려 멀미가 난다), 진공관 앰프를 설치할 수도 없으며(집이 좁다면 사운드를 만끽할 순 없다), 코트 걸이를 둘 수도 없다(옷걸이까지 두었다간 금방 두엄더미와 한 방에 살게 될 테니). 그러니 공간이 작은 만큼 효율성이나 모든 사물들의 재배치에 관해 집중탐구하고 기발한 집꾸밈에 관해 두뇌를 쥐어짜다 보면 좋은 결과치를 얻게 될 게 뻔하지 않나.
 
남자도 집안 꾸밈을 잘하는 이유
1 힘이 좋다 집안 꾸밈을 100% 감각만으로 할 순 없다. 그야말로 노동이다. 기운 센 남자가 나선다면 웬만한 화분, 소파 하나 옮기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가구 하나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집안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2 남자들이 좋아하는 컬러가 더 세련되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무난한 컬러, 심플한 디자인 등이 오히려 집안 분위기를 쿨하게 연출한다. 핑크빛, 알록달록한 꽃무늬, 아기자기한 소품보다는 모노톤의 솔리드 코튼 침대 커버가 훨씬 더 격이 있어 보이게마련. 꼭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무심하게 꾸미는 담백한 집이 더 멋스럽다.
3 AV룸에서는 특히 남자의 감각이 우월하다 홈 시어터를 꾸밀 때야말로 남자들이 기량을 발휘할 때다. 기계를 좋아하는 남성들, 휴일이면 하루종일 누워서 DVD 감상하는 것이 꿈인 남자들이여,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기억하고 있었던 홈시어터에 관한 상식을 마음껏 펼쳐서 후회 없는 AV룸을 만들어보라.
4 컬렉션부터가 다르다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컬렉션을 십분 활용한다면 개성 넘치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의외로 많은 남자들이 자신만의 컬렉션을 갖고 있다. 프라모델, DVD, 스포츠 용품 등. 이런 것들이 짐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당당히 그것들의 자리를 만들어보라. 우리 집은 옆집과 다른 개성 있는 집이 될 수 있다.
5 정보수집 능력이 뛰어나다 인터넷 서치에 귀재라면 우리 집에 꼭 필요한 가구, 수납 박스, 휴지통까지 어디서 더 멋진 것을 얼마나 더 싸게 살 수 있는가에 도통할 것이다. 해외 사이트에서 게임 소프트웨어도 구입하는데 그까짓 살림살이 하나 인터넷에서 못 찾을까.
6 사실 남자들이 더 깔끔하다 깔끔한 남자는 웬만한 여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깔끔함의 정도, 정리정돈에 대한 개념은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차인 것이 분명하다. 사실 정리정돈과 담 쌓은 여자들도 의외로 많다. 단, 남녀가 함께 있을 때 살림에 대한 책임감으로 여자가 더 부지런해지는 것이지, 여자가 더 꼼꼼해서가 아니다. 하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실제 해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더 마룻바닥을 빛나게 한다.
7 인테리어에 대한 편견이 없다 사실 여자들은 인테리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편이다. 거실은 이래야 하고, 침실 벽지는 저래야 하고. 여자들은 집을 보기 좋은 곳으로 꾸미고 싶은 욕망이 강한 반면, 남자들은 집을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여자들은 예쁘다면 다소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도 하지만 남자들은 좀처럼 그렇지 않다. 정말 잘 꾸민 집이란, 주인을 편하게 해주는 집이 아닐까.
 
 
이충걸(GQ 코리아 편집장)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