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으로 이사하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번듯하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니 벽지며 식탁이며 죄다 새로 꾸미는 매 순간마다 어머니와 부딪혔다. “검은색 식탁이 뭐가 좋니? 난 어둡고 컴컴해서 싫다. 아니, 넌 속이 그렇게 까맸었니?” 그러다가 나중엔 급기야 이렇게까지 야유하셨다. “그러니까, 결국 너는 니가 원하는대로 다 했구나. 그래, 좋겠다, 좋겠어. 너 혼자 니 친구들 다 데리고 와서 실컷 놀아라.”
전에 나도 혼자 살아본 적은 있었다. 살았다기보다는 놀았다는 게 맞는 말이지만. 그때 소설이랍시고 글을 써봐야겠다고 작정했었는데, 그러자면 조용한 ‘집필실’이 있어야 한다고 물정 모르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청담동의 한 의상실 지하를 월세로 얻어 임대인 주제에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었다. 본 건 있어 가지고, 천장을 뜯어 시멘트를 드러내 층고를 높이고, 벽은 온통 흰 페인트를 칠해 창백하고도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고명처럼 얹었다. 바닥엔 시골분교의 복도 나무폭만큼 합판을 잘라 쭉 이어 붙였으며, 폭이 좁지만 아주 긴 사이즈의 원목 ‘판때기’를 놓고, 그 아래는 스틸로 짠 직육면체 프레임 두 개를 받쳐 책상으로 만들었다. 없는 돈에 사람을 사서 한 공사였고, 그만 하면 웬만큼 봐 줄 정도는 됐었다. 물론, 글 좀 써보자고 만든 공간에서 글 한 줄 못 쓰고 허구한 날 친구들 불러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은 수치심 없이 발설하긴 참 힘들다.
어쨌든 ‘인테리어 흉내’는 한번 맛을 들인 게 잘못이었다. 그 후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인테리어 잡지를 탐독했고, 스크랩했으며, 알량하게 응용하기까지 했다. 때로, 집안의 인테리어 사각지대에 대한 해법조차 내가 집착스럽게 채집하는 인테리어 텍스트들에서 얻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친구들이(대체로 남자들이다) 나를 초대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놀라운 체험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혼자 사는 집은 하나같이 일본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것 같은 형형한 건축적 감각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집안의 모든 꾸밈이란 (쇼핑이 그런 것처럼) 여자들의 뺏길 수 없는 지분이었다. 남자들이 장식한 집안이 멋져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적합한 예는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 자취방의 그 꼬리꼬리한 발냄새며, 꽃무늬 장판이라도 깔렸다면 오감할 방바닥이며, 하나같이 을씨년스러운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에는 잡지에 싣자고 들면 혼자 사는 남자들의 집도 어딜 들이대도 앵글이 나오고, 구석구석 풀컷 사이즈의 존재감이 있으며, 집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숙고를 싱싱하고 생생하게 타전하는 가구들을 보면 어디 금성에라도 왔나 싶어지는 것이다.
룩에 대한 감각이 그런 것처럼, 이젠 자신을 ‘가꾸기’시작한 남자들의 ‘뷰티’도 죄의식 없이 용납되고 있는 마당에, 집안 꾸미는 ‘중성적인’메이크업쯤이야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볼 것, 느낄 것, 만질 것, 느껴볼 것들이 지천인 세대가 또 어디 있었나? 게다가 그 모든 걸 학습하는 게 요즘만큼 자연스러운 때가 단군 이래 또 있었느냐 말이다. 한편, 좌판에 나오는 요즘 물건들은 죄다 지금 지구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당대적 ‘아트’아닌가? 그렇다면 전자제품이자 아트인 그 오브제들만으로도 인테리어는 완성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주상복합이니 오피스텔이니, 이미 하드 웨어 자체가 잘 갖추어진 주거 환경에서라면, 썩 괜찮은 감각을 가진 집주인처럼 보이기가 그렇게 힘든 일만은 아닐 테다.
집을 꾸미는 데 공간의 크기는 분명 감각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가 본 혼자 사는 남자들의 공간이란 운동장처럼 넓은 집이 아니라 봄나물 무친 것처럼 조물조물 조그맣고 귀여운 평면이 태반이었다. 분명 50인치 LCD TV를 들여놓지도 못할뿐더러(가까운 데서 화면을 보면 오히려 멀미가 난다), 진공관 앰프를 설치할 수도 없으며(집이 좁다면 사운드를 만끽할 순 없다), 코트 걸이를 둘 수도 없다(옷걸이까지 두었다간 금방 두엄더미와 한 방에 살게 될 테니). 그러니 공간이 작은 만큼 효율성이나 모든 사물들의 재배치에 관해 집중탐구하고 기발한 집꾸밈에 관해 두뇌를 쥐어짜다 보면 좋은 결과치를 얻게 될 게 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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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힘이 좋다 집안 꾸밈을 100% 감각만으로 할 순 없다. 그야말로 노동이다. 기운 센 남자가 나선다면 웬만한 화분, 소파 하나 옮기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가구 하나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집안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2 남자들이 좋아하는 컬러가 더 세련되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무난한 컬러, 심플한 디자인 등이 오히려 집안 분위기를 쿨하게 연출한다. 핑크빛, 알록달록한 꽃무늬, 아기자기한 소품보다는 모노톤의 솔리드 코튼 침대 커버가 훨씬 더 격이 있어 보이게마련. 꼭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무심하게 꾸미는 담백한 집이 더 멋스럽다.
3 AV룸에서는 특히 남자의 감각이 우월하다 홈 시어터를 꾸밀 때야말로 남자들이 기량을 발휘할 때다. 기계를 좋아하는 남성들, 휴일이면 하루종일 누워서 DVD 감상하는 것이 꿈인 남자들이여,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기억하고 있었던 홈시어터에 관한 상식을 마음껏 펼쳐서 후회 없는 AV룸을 만들어보라.
4 컬렉션부터가 다르다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컬렉션을 십분 활용한다면 개성 넘치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의외로 많은 남자들이 자신만의 컬렉션을 갖고 있다. 프라모델, DVD, 스포츠 용품 등. 이런 것들이 짐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당당히 그것들의 자리를 만들어보라. 우리 집은 옆집과 다른 개성 있는 집이 될 수 있다.
5 정보수집 능력이 뛰어나다 인터넷 서치에 귀재라면 우리 집에 꼭 필요한 가구, 수납 박스, 휴지통까지 어디서 더 멋진 것을 얼마나 더 싸게 살 수 있는가에 도통할 것이다. 해외 사이트에서 게임 소프트웨어도 구입하는데 그까짓 살림살이 하나 인터넷에서 못 찾을까.
6 사실 남자들이 더 깔끔하다 깔끔한 남자는 웬만한 여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두철미하다. 깔끔함의 정도, 정리정돈에 대한 개념은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개인차인 것이 분명하다. 사실 정리정돈과 담 쌓은 여자들도 의외로 많다. 단, 남녀가 함께 있을 때 살림에 대한 책임감으로 여자가 더 부지런해지는 것이지, 여자가 더 꼼꼼해서가 아니다. 하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실제 해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더 마룻바닥을 빛나게 한다.
7 인테리어에 대한 편견이 없다 사실 여자들은 인테리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편이다. 거실은 이래야 하고, 침실 벽지는 저래야 하고. 여자들은 집을 보기 좋은 곳으로 꾸미고 싶은 욕망이 강한 반면, 남자들은 집을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여자들은 예쁘다면 다소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도 하지만 남자들은 좀처럼 그렇지 않다. 정말 잘 꾸민 집이란, 주인을 편하게 해주는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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