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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문화 특집]진화하는 공간, 2011 아파트 트렌드 집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바로 당신을 말해준다”는 광고 문구가 오늘도 머릿속을 스칩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두 가구 중 한 가구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요. 연일 매매가 하락과 분양 미달 사태에 관한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한국에서 아파트는 여전히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주택은 ‘로망’이지만 아파트는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한 ‘현실’이니까요. <행복>은 2011년 주거 문화 특집으로 최신 트렌드부터 수납, 레노베이션까지 아파트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그 첫 번째로 첨단 기술과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진화한 인간 중심의 ‘휴먼 스케일 아파트’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의 저서 <아파트에 미치다>에서 발췌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 거주 인구의 50%가 아파트에 살며, 아파트에 살기를 희망하는 인구는 68.9%(2007년)라고 한다. 한국에 본격적인 대단지 아파트가 생긴 것은 1964년. 마포구 도화동에 지은 6층짜리 아파트는 오히려 ‘불편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었다. 아파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반포 복부인’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아파트의 대중화는 부엌 혁명과 가족 관계의 평등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문패의 실종과 익명 사회를 야기하기에 이른다. 아파트를 통해 남성의 공간이던 사랑방이 거실로 흡수되고, 외떨어진 부엌의 위상이 거실과 동급이 되었다. 혹자는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라 쓴소리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고급 아파트 거주는 중산층 이상이 되기 위한 일종의 조건이 된 지 오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롤모델을 제시한 이는 근대 건축 운동을 이끈 르코르뷔지에다. 그가 제안한 ‘성냥갑 아파트’는 주택 공급이 필요한 시기에 무척 효율적인 시공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성냥갑 아파트는 점점 찾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아파트가 ‘디자인’되고 있기 때문. 2000년대 들어 주택 건설업체 간에 기술과 품질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면서 본격적인 마케팅 경쟁이 시작된 것. 그 때문에 많은 건설업체가 IT, 환경, 에너지 등 첨단 기술에 주목했다. 수요자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함에 따라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주택이 등장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주택의 미래 변화와 대응 방안’에 따르면 2020년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한다. 유비쿼터스가 현실화된 지 오래. 주방 싱크대는 사람의 키에 맞춰 자동으로 높낮이가 조절되고, 카메라를 통해 사람을 식별해 실내 환기 시스템, 조명 기기, AV 시스템 등이 작동한다. 아파트가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 게다가 지난 2007년 성냥갑 아파트를 퇴출시키기 위해 디자인 심의를 강화함에 따라 차별화된 디자인 개발을 위한 건설사의 노력이 증대하고 있다. 그렇다. 이제는 디자인 전쟁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 거실을 2층 높이로 만들고, 벽체를 움직일 수 있는 가변형 구조 등 새로운 시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신규 주택 판매 시 멀티미디어 룸이 수영장보다 중요한 구매 요인이라고 하니, 이제는 멀티 기능 공간도 필수다. 결국 개인의 변화하는 취향과 필요에 의해, 또 다양한 기술 개발을 기반으로 이전에 불가능하던 것들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의 ‘휴먼 스케일 아파트’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이 곧 현실이 된다
‘휴먼 스케일 아파트’를 특징짓는 핵심 키워드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친환경 에너지를 넘어 제로 에너지에 도전한다. 풍력과 태양열, 태양광, 지열 등을 이용한 단순히 에너지 소비 제로 아파트에 그치지 않는다. 주거지에서 자연을 이용한 에너지를 자급자족해야 하는 것.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설비로 무료로 찬 바람과 더운 바람을 끌어들이고, 빗물을 받아 만든 수력 에너지로 공동 공간의 전기를 충당한다.
둘째, 집이 보다 똑똑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외부에서 집 안의 가전제품이나 가스 등을 조절하는 원격 제어 시스템은 공상 과학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본 옵션으로 여길 만큼 보편화된 기술이다. 유비쿼터스 도시(U-City)로 조성 예정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 신도시는 광통신으로 연결된 IT 기술을 활용해 주거, 교통, 교육등 도시 전체의 인프라를 통합 관리하는 미래 도시로 건설된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외부에서 집 안의 조명ㆍ온도ㆍ가스ㆍ환기ㆍ에어컨은 물론 커튼과 욕조까지 제어할 수 있다.
셋째, 소형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일본은 이미 1인 가구가 총 가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고, 콤팩트 맨션 등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독신ㆍ실버 가구가 증가하면서 건설사들은 ‘다목적 소형 주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콘셉 추얼한 소형 아파트를 선보이고 있다.
넷째, 직접 맞춤 설계할 수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개개인이 지닌 각양각색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맞춤형 아파트’ 시대가 도래한 것. 클릭 몇 번으로 천장고를 높이고, 부엌과 거실을 합치는 등 소비자가 직접 평면 설계를 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27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A씨. 요리와 손님 초대를 즐겨 하는 그는 몇 번의 클릭으로 거실은 작게, 주방은 크게 디자인했다. 10인용 대형 테이블을 둘 수 있어 이제 부엌에서도 홈 파티를 할 수 있고, 거실에 유리로 마감한 텃밭을 시공해 요리에 필요한 채소는 직접 재배한다. 텃밭에 물을 주는 것은 모두 휴대폰으로 OK!’ 이것이 바로 2020년대 미래 주택의 청사진이다. 과거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파트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다만 ‘집’이 갖는 가치 중 소비자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일 뿐. 결국 미래의 공동주택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의 집합체, 즉 ‘휴먼 스케일 아파트’로 정의할 수 있다.

자료 조사 김다해 참고 도서 <주택의 미래변화와 대응방안><아파트에 미치다>

글 이지현ㆍ기원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