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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아이디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착한 소재 한지, 쓰임새의 미학
견오백지천년 絹五百紙千年, 비단은 5백 년 가고 종이는 1천 년 간다는 뜻이다. 오래될수록 부드럽고 더욱 고매한 멋을 풍기는 종이 한지. 패션 디자이너 박수우의 한지와 한지 작가 이종국의 숨 쉬는 그릇, 신진 디자이너의 아트 퍼니처 등 최근 한지의 기능미, 쓰임으로서의 가치와 다양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가공되지 않는 순수함, 세상의 지성과 예술을 보존해줄 한지로 삶의 여유와 운치를 더해보자.


(왼쪽) 한지, 자연을 품다 감성 아이디어
단순히 종이의 기능에 머물던 한지가 끊임없이 진화하며 생활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한지사 絲’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지사는 한지를 얇게 잘라 꼬아 만든 한지 섬유를 면, 실크, 울 등 다른 섬유와 섞어 직조한 직물이다. “한지는 가볍고 질긴 것은 물론 항균 작용을 하고 냄새를 흡착해 옷감으로 제격”이라며 한지 예찬론을 펼치는 한지공예가협회 심화숙 씨는 속옷, 양말 등 기능성 제품으로만 쓰여온 한지사가 좀 더 대중적인 에코 아이템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의상이나 침구 등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해 실용화에 앞장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지로 만든 실은 한국공예가협회 소장품, 한지 섬유로 만든 네크리스는 수우 컬렉션. 한지는 장지방 제품.

(오른쪽) 한지, 살아 숨 쉬는 종이
순수 자연 소재를 원료로 해 공기 중의 유해한 성분을 흡착하는 숨 쉬는 종이, 한지. 친환경 벽지로 꼽히던 한지가 최근에는 고급 마감재로 주목받고 있다.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 씨가 디렉팅한 인사동의 오설록 티하우스는 마감재로 한지의 미학을 여지없이 드러낸 곳. 직접 염색한 한지와 장지를 바른 벽, 한옥의 문살을 형상화한 천장 등이 모던한 실내 분위기와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그는 너무 한국적이려고 하면 오히려 경직되어 보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지는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무척 고급 소재지만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 그런 만큼 전통과 현대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설록 티하우스 2층의 카페 공간은 천연 염색한 한지 벽지에 나무 프레임을 장식해 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느낌의 공간을 완성했다. 한지도 얼마든지 내추럴하고 모던한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 럭셔리가 대중의 코드와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21세기 한지의 미학이다.
야스퍼 모리슨 Jasper Morrison이 디자인한 바젤 체어는 비트라에서 판매. 의자 옆에 쌓아 오브제처럼 연출한 고서 묶음은 승문각에서 판매.


(왼쪽) 종이,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오브제
닫혀 있을 때는 그냥 책이지만 펼치는 순간 평면에서 입체로 솟아오르는 팝업북, 단순한 접기 방식으로 근사한 오브제가 된 옛 고서. 책을 아트 오브제로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종이의 자유분방한 조형미 아닐까. 핀란드의 디자이너 헬레나 스타켈버그Helena Stackelberg가 제작한 책 오브제는 단순하지만 입체적인 형태로 공간에 임팩트를 주기에 충분하다.
한지사로 만든 트렌치코트는 수우 컬렉션, 책 오브제는 핀란드 작가 헬레나 스타켈버그의 작품.

(오른쪽) 모던 공간의 담담한 멋, 판화
종이로 만든 아트 오브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판화다. 판화를 종이 예술의 극치라 강조하는 공간 디자이너 조은숙 씨. 모던한 공간에 담담한 멋을 더하는 데는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석판화가 제격이라고 추천한다. 내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판화가 이우환씨의 작품 ‘출항 1’은 물과 기름의 반발 작용을 이용한 석판화로, 100% 코튼지를 사용해 잉크의 번짐과 종이의 여백이 담담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판화는 특히 사용하는 종이에 따라 작품의 톤과 무드가 달라지는데 결이 치밀한 양지에 프린팅하면 색감이 또렷해지는 반면 한지를 사용하면 따뜻한 손맛을 더할 수 있다. 한지에 프린팅할 때는 한지의 자연스러운 테두리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임즈 하우스 버드 Eames house bird의 새 조형물, 헤르조그&드 뫼론 Herzog&de Meuron의 후커 hocker 스툴, 프랭크 O. 게리 Frank O. Gehry의 위글 사이드 체어wiggle side chair는 비트라에서 판매. 프리츠 한센사에 선보이는 아르네 야콥센 Arne Jacobsen의 닷 dot 스툴은 인엔에서 판매. 벽면의 대형 석판화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 ‘출항 1’로 조은숙아트앤스페이스에 문의.


종이 가구, 공간에 머무는 쉼표

가구부터 건축물까지, 종이의 가능성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하다. 가볍고 다루기도 쉬울 뿐 아니라 여러 겹을 겹쳐 사용하면 나무나 시멘트 못지않게 단단한 소재가 되기 때문. 해체가 용이하고 임무를 다한 뒤 땅에 묻으면 자연스럽게 폐기되는 친환경 소재라는 것 또한 장점이다. 특히 골판지는 의자와 테이블 등 캐주얼한 가구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O. 게리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판지를 소재로 한 가구를 선보였는데, 우아한 곡선미를 가진 위글 사이드 체어가 대표 아이템이다. 60개의 단단한 골판지를 겹치고 나사로 결합해 무척 튼튼하고 견고한 것은 물론 커팅이 쉬워 재활용도 용이하다. 옛 선조들이 사용한 지장 紙欌처럼 한지를 사용한 가구도 눈에 띈다. 한지를 겹겹이 붙여 만든 신진 디자이너 이원재의 흔들의자는 무척 예술적인 형태의 작품이다.
오래될수록 질겨지는 한지의 성질을 백분 활용,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는 자연스러운 구김이 멋스럽다. 한지 작가 이종국씨가 제작한 병풍은 한지와 패브릭을 결합한 작품으로 현대적인 쓰임새에 맞춰 키를 낮게 제작했다. 이처럼 전통에 기반을 둔 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모던한 공간에 품격을 더하기에 손색없다.

프랭크 O. 게리 디자인의 사각 네스트 테이블과 사이드 체어는 비트라에서 판매. 종이로 만든 조립식 책장은 퍼니페이퍼에서 판매. 골판지로 만든 벽면 오브제는 대보디스플레이에서 판매. 나무에 사포질만 해서 프레임을 만든 4첩 병풍은 이종국 작가의 작품. 오동나무 골조에 창호지로 마감한 한지 앤티크 장은 고엔에서 판매.
한지와 펠트로 그릇을 형상화한 오브제는 한선주 작가의 작품.


(왼쪽) 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품는다
오래전 어머니들은 매년 봄이 되면 문창의 누렇게 바랜 창호지를 벗겨내고 새 종이를 바른 뒤 봉숭아 꽃과 잎을 따서 장식했다. 문창에 붙였다고 해서 창호지라 불린 한지의 가장 큰 장점은 햇볕과 달빛을 그대로 담아내는 자연 채광 효과다. 빛을 머금고 은은하게 품는 한지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 바로 조명등이다. 조도가 낮아도 되는 침실, 현관 등에 사용하면 좋은 한지 조명등은 담백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연출해주는 효과적인 아이템이다.

대나무 마디를 표현한 길이로 늘어뜨리는 한지 주름등은 이종국 작가의 작품.
원형 펜던트 조명은 형제지업사에서 판매. 모시 발은 통영 염장 조대용 씨의 작품.
장소는 오설록 티하우스로 벽면에 회색빛으로 염색한 한지 벽지를 발라 마치 대리석 마감재처럼 연출했다.


(오른쪽) 종이 옷, 상상이 현실이 되다
종이로 만든 옷, 더 이상 어린 시절 인형 놀이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10년 전만 해도 종이로 만든 옷은 다소 ‘전위적인’ 작품이었지만 일본과 미국, 유럽 등의 유명 디자이너가 오거닉 소재로 선택하면서 어느덧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 S/S 컬렉션에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는 종이 드레스를 선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럽에 마르지엘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 박수우 등이 종이 옷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정욱준은 지난해 에스모드 서울과 손잡고 전주에서 열린 패션쇼 ‘한지사 세계를 입다’에 디렉터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디자이너 박수우는 한지사를 활용해 트렌치코트, 스커트, 주얼리, 신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한지사와 면사, 한지사와 울 등을 혼합해서 만든 의상은 우아한 광택이 특징이다. 일반 옷감보다 가격이 5~7배 정도 비싸고, 다소 뻣뻣하고 봉제하기가 어렵지만 조형적인 디테일을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한지, 양지 할 것 없이 100% 종이 섬유는 땅속에서 생분해되므로 종이 옷이야말로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가장 첨단을 달리는 옷이 아닐까.

실크 톱, 한지와 울을 혼방한 롱 재킷, 벌룬스커트는 모두 수우 컬렉션


종이, 가공하지 않은 순수함

한지로 만든 종이접기 오브제는 종이 작가 한유선 씨가 제작, 한지로 포장한 비누는 수수헌에서 판매.

한지는 닥나무를 베고, 찌고, 껍질을 벗기고, 삶고, 담그고, 말리는 등 99번의 과정을 거친 다음 100번째 장인의 손길을 거쳐 나온다고 한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일년생 햇닥나무를 채취한 뒤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큰 찜통 솥바닥에 물을 조금 붓고 장작불에 찐다. 찐 닥나무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리면 흑피가 되는데 이를 불려서 겉껍질을 벗겨내면 백피가 된다.
백피를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말린 후 피를 부드럽게 다듬어 잘 삶은 뒤 하루 이틀 동안 차고 맑은 냇물에 담가 불린다. 다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잿물과 함께 솥에 넣고 닥 섬유가 자연스럽게 끊어질 정도가 될 때까지 충분히 삶는다. 다시 흐르는 맑은 물에 반나절 동안 담가 잡티를 없앤 다음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드리고 물과 고루 섞어 잘 저은 뒤 수작업으로 한 장 한 장 떠서 완성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기에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단단하고 섬세한 한지는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에 비해 재질, 기능, 보존성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같은 한지라도 사용한 닥나무 껍질의 상태에 따라 급이 나뉜다. 품질이 좋은 닥나무로 만든 한지에선 비단 같은 광택이 나는데 윤기를 더하는 물질을 첨가하지 않아도 ‘자체 발광’한다. 최고급 한지는 서책을 만드는 데 사용했고, 중급은 그림을 그리는 종이로, 품질이 가장 떨어지는 것은 대부분 벽지와 창호지로 쓰였다.

한지는 섬유를 갈아넣는 크기에 따라, 뜨는 방법에 따라, 떠내는 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양새를 드러낸다. 주무르고 치대서 만드는 ‘줌치’는 주로 지갑이나 주머니를 만드는 데 사용했는데 종이 위에 기름을 먹이면 가죽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물이끼를 섞어서 갈아 이끼 모양이 미세하게 퍼져 있는 ‘태지’는 주로 편지지로 사용하던 한지다. 거칠게 갈아 섬유 모양이 중간중간 보이는 ‘운용지’는 주로 그림을 그리는 데 썼다. 질이 좋은 닥나무로 만들어 실크처럼 윤기가 도는 ‘음양지’는 책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종이를 뜨는 발에 문양을 넣어 만드는 ‘문양지’는 창호와 조명등 등 인테리어용품에 즐겨 사용한다.

촬영 협조 고엔(02-396-3025), 대보디스플레이(02-2273-7531), 더플레이스(02-512-4393), 로얄 코펜하겐(02-543-2343), 비트라(02-545-0036), 수수헌(010-8750-3566), 수우 컬렉션(02-749-4511), 승문각(02-733-6148), 오설록 티하우스 인사점(02-732-6427), 와사라(02-512-5879), 원다연 작가(wondayeon@gmail.com), 이서(02-512-3686), 이종국 작가(마블갤러리 043-222-5808), 인엔(02-3446-5102), 조은숙 아트앤스페이스(02-541-8484), 팀블룸(02-518-8269), 퍼니페이퍼(070-8864-6182), 한선주 작가(sunju-han@hanmail.net), 한지공예가협회(02-394-6533)


작가와 장인, 한지를 말하다
한지와 생활, 한지와 문자, 한지와 예술 등 다시 우리 시대의 한지가 주목받고 있다. 과거의 것에만 몰입하지 않고 시대성을 반영하며 새로운 가치를 찾은 한지 예술. 3명의 작가와 장인에게 그 쓰임의 철학을 물었다.

한지 작가 이종국 씨
지난여름 청주 한국 공예관에서 열린 <한지, 맑고 향기롭게>전에서 한지로 만든 아트 오브제를 선보인 한지 작가 이종국 씨. 전통 한지를 복원하고, 한지에 내구성을 더한 신소재를 개발한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카이스트에서 주관하는 장영실상 ‘전통 부분’을 수상하게 되었다. 전통 한지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쓰임새를 현대화하는 작업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최근 중국 베이징 T 아트센터에서 열린 한지 작품 초대전에서 그릇, 항아리, 조명등, 병풍 등 다양한 리빙 오브제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보통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 때 껍질만 사용하고 속대는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그는 속대를 갈아 종이 사이사이에 넣어 고정해 심지 역할을 하게 했다. 이렇게 만든 한지는 중간에 섬유층이 들어 있어 마를수록 더 견고해지고 일반 한지보다 습도 조절이 잘되어 식품을 보관하는 그릇이나 항아리 등에 이용하기 좋다. 또한 한지 그릇은 과일과 견과류 등을 담아두면 자체로 담담한 멋을 풍기는 장식품이 된다. “한지 그릇에 옻칠을 하면 코팅이 되어 물도 담을 수 있지요. 요즘에는 감물, 호둣물 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옻칠을 하면 종이의 질감이 사라지는데, 감물 염색은 종이의 질감은 잘 살면서 어느 정도 코팅 효과가 있어 생활 용기로 사용하기에도 좋지요.” 작품으로만 멈추지 않고 생활용품으로써의 다양한 쓰임새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지 작가 이종국 씨. 과거에는 과학이자 기술이었을 전통에서 찾은 자연의 삶을 존중하고 지속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닥나무를 삶고 있다.

(왼쪽) 감물을 들인 한지 그릇.

판화가 구자현 씨
한지에 판화 작업을 하는 구자현 씨. 쓰는 종이에 따라 그림이 주는 느낌이 천차만별 달라진다고 말하는 그는 한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손맛을 꼽는다. “일본은 종이 문화가 많이 발달했지요. 자그마한 동네에도 종이만 파는 가게가 있어요. 개중에 우리나라의 한지를 수입해 최고급 ‘와시 わし(和紙)’로 판매하는 종이 회사도 있고요. 하지만 정작 우리는 좋은 한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재배에 적잖은 인건비가 들어가다 보니 대부분 외국산에 의존하는 형편이고, 국내산 닥나무를 사용할 경우 가격이 만만찮아 수요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경기도 가평의 장지방에 다녀온 그는 수십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전통 한지 공방의 척박한 환경에 탄식을 금치 못한다. 때문에 그는 한지의 쓰임이 순수예술에만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희 집은 한지 벽지로 도배를 했습니다. 습기에 강하고, 오염도 쉬 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방에 들어가면 수묵 담채화처럼 은은한 향을 풍기는 묵은 종이 냄새가 참 좋지요.”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이 나고 또 한지 특유의 편안한 느낌도 더할 수 있어 한지 벽지를 권한다는 그는 누구에게나 한지 예찬론을 펼친다.

(오른쪽) ‘재-하나의 현상에서, 석판화 스크린, 63.5×93cm, 1990년.

한지장 장용훈 씨
닥나무 껍질을 벗겨 천연 잿물에 삶고, 좋은 섬유를 선별하여 방망이로 곤죽을 만들어 지통에 넣고 종이를 만드는 작업으로 평생을 보낸 한지 명인 장용훈 옹. 한지처럼 질긴 100년의 세월 동안 늘 한결같이 전통 방식을 고집한 그는 100가지에 가까운 공정을 모두 수작업으로 한다. 때문에 이왈종, 정창섭 등 국내 유수의 화백들이 장지방의 한지만을 고집하기로도 유명하다. “한지는 유연성이 무척 뛰어납니다. 공기 중의 수분을 품었다 뱉었다 하죠. 그뿐만 아니라 닥나무를 원료로 한 섬유는 아주 질기고 탄력이 뛰어나 활용도가 무궁무진하지요.”
장용훈 옹과 아들이 운영하는 장지방의 간판 상품은 음양지. 수백 종류인 전통 한지의 맥을 제대로 잇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죽지 竹紙, 이끼로 만든 태지 苔紙 등 갖가지 종류의 한지를 선보인다. 최근에는 옻칠을 한 옻종이도 인기 제품이다. 가업을 잇는 아들 장성우 씨는 한지를 노끈처럼 얇게 꼬아 만든 실을 엮어 함, 등갓 등을 만드는 지승 공예품을 선보이는데 이는 인사동 공방에서 만날 수 있다. 요즘은 한지의 우수성을 먼저 알아본 영국, 일본 등지의 수출량이 많아 더더욱 허리를 쉬 펼 겨를이 없다는 장용훈 옹. 혼 담아 마음 담아 한지에 쏟는 그 정성에서 한지의 밝은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

(왼쪽) 한지를 얇게 꼬아 엮어 만든 작은 함.

스타일링 강정선 어시스턴트 신경화, 박현미 캘리그래피 이규복

진행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