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실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 마련한 갤러리 월.
2 다실은 건축가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공간이다. 낮은 창밖으로 보이는 기와 문양 담벼락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른쪽 신교동 언덕 공원 지역에 풍경처럼 자리잡은 집, 풍경재.
건축가에게 효자동 주택을 찾아가는 길을 묻자 “참, 보통은 효자동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주소는 신교동이에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골목 하나를 두고 동 이름이 바뀌는 서촌 마을. 모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서 본 낯익은 풍경의 골목길을 지나 더 이상 차가 지날 수 없을 것 같은 좁고 굽이진 길을 따라 오르니 막다른 곳에 새로 지은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대문과 마당이 나오는 언덕 위의 높은 집. 마당에 올라 한 바퀴 죽 둘러보니 가까이에 청와대가, 멀리 동대문까지 내다보인다. 그 이름처럼 첫눈을 사로잡는 전망이 인상적인 ‘풍경재’. 풍경재를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개발제한구역 내에 위치해 무척 까다로운 제약을 극복한 프로젝트라는 것,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증축하고 레노베이션했다는 점이다. 건축주 이성수 · 석상희 부부는 강남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다 4년 전 회사 옆 청운동의 오래된 주택가에 입성한 후 주택의 담담함 일상에 매료되었단다. 길 건너 30평 남짓한 자그마한 주택에 살던 그들은 평소 산책하던 길을 지나다 언덕 위의 오래된 주택을 발견했다. “공원 지역이라 주변 건물이 모두 낮고 꼭대기 집이니 전망은 보증된 셈이지요. 신축은 어림없고, 고도 제한은 물론 15평까지만 증축할 수 있다는 제약이 붙었지만 한눈에 ‘이 집이다’ 싶어 내부는 보지도 않고 바로 계약했습니다.” 평소 차를 좋아하는 부부는 자주 들르던 보이차 매장의 담백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소개를 부탁했는데, 매장 인테리어를 담당한 이가 바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였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아요. 50평 남짓하는 비교적 적은 규모, 빠듯한 예산, 레노베이션 작업인데도 무턱대고 설계를 부탁드렸으니까요.” 보통의 건축가라면 그다지 달갑잖은 일이라 여겼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호중 교수는 산을 좋아하고 자연과 교감하고 싶어 하는 건축주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통했다고 한다. “인사동, 가회동으로 차를 마시러 많이 다녔어요. 왜 설계는 안 해주고 여기저기 데리고만 다니나 싶었겠지만 사실 그 집에 살 사람을 먼저 관찰하는 중요한 시기였지요.” 이호중 교수 역시 부부와 마찬가지로 언덕 위에 있는 집을 보자마자 확신이 들었단다. 공사하기 어려운 좁은 진입로도, 노후 정도가 심각한 주택 상태도 문제되지 않았다. 인왕산, 북한산, 남산 등 서울 곳곳 산기슭의 풍경이 겹겹이 펼쳐지고 오래된 골목의 정취를 마음껏 품은 곳. 바람과 소리가 머무는 곳, 풍경재라는 이름의 영감을 얻은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으리라.
대지 228m2, 건축 면적 148.5m2 크기로 지어진 풍경재. 인테리어 시공은 스마트 디자인이 맡았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게 어떤 건축이라도 같은 건축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축은 땅의 조건과 상황에 밀착된 것이 더 인상적인 결과를 만드는 법. 풍경재는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한계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극복한 사례다. 첫 번째 특징은 담이 없다는 것.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는 것을 십분 활용했다. 담을 없애고 거실 한쪽 면에 파노라마 프레임의 쪽창을 내 거실 소파에 앉아서든, 주방에서 조리를 하면서든 저 멀리 남산까지 바라다볼 수 있다. 풍경을 차경하기 위한 건축가의 장치는 자투리 공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벽체를 그대로 살리다 보니 곳곳의 벽면이 두꺼워졌는데 그곳에 쪽거울을 붙여 풍경이 반사되는 효과를 낸 것. 15평밖에 증축할 수 없다는 제약 역시 재미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특별한 요소다. 거실과 주방, 다실이 있는 1층과 침실이 있는 2층에 계단을 축으로 ㄱ자로 어긋나게 배치했더니 2층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증축 제한이 없었다면 2층 역시 1층과 같은 넓이의 공간을 욕심냈을 것이고, 그랬다면 같은 그림밖에 보지 못했을 게 아닌가. 이것이 바로 한계점에서 찾은 아이디어의 색다른 묘미다. 사실 집의 어느 부분만 손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디를 해놓으면 다른 부분이 상대적으로 나빠 보이기 때문이다. 건축주 역시 오래된 주택을 살기 편할 정도로만 손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수개월 걸리는 대공사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단다. “집 짓고 원수 된다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친구가 되었어요.” 이는 겉만 번지르르한 비주얼을 완성하는 데 급급하지 않은 건축가의 신념 덕분이다. 디자이너는 공간 연출가로서, 삶의 방향을 조금씩 이로운 쪽으로 변화시키는 데 제 몫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호중 교수는 무엇보다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헌것과 새것의 조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큰 것과 작은 것의 어울림 말이다. 따라서 내부는 기존에 있는 공간 구획을 최대한 활용했다. 기존 벽면을 그대로 살리고 붙박이장, 전면 장식장 등의 수납공간을 마련한 덕에 두꺼운 벽이 많아졌다. 내부 장식재로 사용한 목재는 소금물에 담가둔 것을 사용해 휘거나 틀어지지 않는다. 외부에 사용한 목재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자연스러운 회색 빛깔로 변한다.
(오른쪽) 빛, 바람,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을 선보이는 건축가 이호중 씨.
1층 주방 모습. 거울과 강화유리가 반사되는 풍경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참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목재를 쪼개어 벽면 마감재로 사용하고, 장식 효과가 있는 오픈 수납장을 짜 넣었다.
건축가가 딱 하나 욕심을 부린 것이 있다면 바로 ‘찻방’이다. 현관 옆,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찻방은 응접실이 되기도 하고, 서재가 되기도 하고, 가족실이 되기도 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를 잘 말해줍니다. 찻방, 즉 다실이 있다면 굳이 차를 마시지 않아도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고, 또 급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철학뿐만 아니라 가족 문화가 바뀔 수 있지요.” 유일하게 한실 분위기를 연출한 다실에는 앉았을 때 눈높이에 맞는 낮은 쪽창이 나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기와 문양을 넣은 담벼락이 무척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벽면에 딱 다완 크기의 수납장을 만든 것도 아이디어. 그 덕에 따로 찻장을 둘 필요가 없다. 요즘 부부는 하나둘씩 모은 다완과 찻잎을 진열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단다.
1 작은 창을 통해 인왕산, 창경궁, 동대문까지 조망할 수 있다.
2 맞춤 제작한 침대만 두어 간결하게 꾸민 2층 침실.
“풍경재는 한마디로 매일매일 삶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같은 공간입니다. 20년, 30년 후쯤에는 이곳이 아예 동네 찻방으로 변신해 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풍경재 갤러리, 풍경재 찻집 모두 잘 어울린다.
내 집은 백만 평 2010년 가을, 새로운 삶을 살아갈 풍경재는 오래된 골목길 풍경과 상반되게 이질적이면서도 왠지 닮은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이는 집이 이미 구축된 공간적 에너지와 자연환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실에서 바라다보이는 도심의 야경은 그 어느 곳보다도 아늑합니다. 또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어떤 것보다도 상쾌하지요.” ‘아침에 변기에 앉으면 정확하게 겸재의 인왕제색도가 재현된다’던 건축가 김원 선생의 옥인동 주택처럼 2층 화장실에 앉으면 인왕산 자락 파란 지붕이 발아래 펼쳐진단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한다는 것, 오래된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도심 전체를 파노라마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사실 그런 호강이 어디 있겠는가? 사대문 안쪽 유서 깊은 동네로 회사 터를 옮기지 않았으면 여전히 생경했을 풍경이다. 또 산자락이, 바람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렇게 큰 것인지, 내 몸뿐 아니라 눈이 머무는 곳이 나의 집이고 나의 삶이라는 것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안방 침실과 마주 보는 아이 방. 기둥처럼 연출한 맞춤 수납장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는 침대를, 벽면 쪽으로는 책상을 두었다.
내 집은 백만 평 2010년 가을, 새로운 삶을 살아갈 풍경재는 오래된 골목길 풍경과 상반되게 이질적이면서도 왠지 닮은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이는 집이 이미 구축된 공간적 에너지와 자연환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실에서 바라다보이는 도심의 야경은 그 어느 곳보다도 아늑합니다. 또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어떤 것보다도 상쾌하지요.” ‘아침에 변기에 앉으면 정확하게 겸재의 인왕제색도가 재현된다’던 건축가 김원 선생의 옥인동 주택처럼 2층 화장실에 앉으면 인왕산 자락 파란 지붕이 발아래 펼쳐진단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행위를 한다는 것, 오래된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도심 전체를 파노라마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사실 그런 호강이 어디 있겠는가? 사대문 안쪽 유서 깊은 동네로 회사 터를 옮기지 않았으면 여전히 생경했을 풍경이다. 또 산자락이, 바람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렇게 큰 것인지, 내 몸뿐 아니라 눈이 머무는 곳이 나의 집이고 나의 삶이라는 것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 ||
건축가 이호중 씨는 독일 콘스탄츠 과학기술대에서 조형디자인을 전공했으며, 독일 비스바덴 과학기술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했다. 독일 콘투렌 스튜디오 Konturen Studio를 운영하면서 니켄 유럽 Nikken Europe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 귀국 후 주요 작품으로는 현대중공업 명덕복지회관 기본 계획, 대한적십자사 역사전시관 설계, 삼성동 더 미켈란 147 · 107프로젝트, 도곡동 동부 센트레빌 재건축 프로젝트, 하남주택 ‘선린헌’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과(02-3432-6430)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마트디자인(02-450-3287)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