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간 딸의 방을 다실로 꾸민 강순민 독자.
전체적으로 베이지 톤에 고가구와 나무 장식을 이용해 단아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바닥재는 옛날 마룻바닥 패턴의 장판.
아무런 개조도 하지 않은 아파트 방 한 칸을 멋스러운 다실로 꾸민 강순민 씨는 바로 얼마 전 할머니가 된 쉰일곱 살의 <행복> 애독자입니다. 초보 할머니지만 “마음은 아직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쁜 것을 보면 갖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소녀 같은 중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작년에 아들과 딸을 3개월 간격으로 혼인시킨 후 부부만 쓸쓸히 지내던 어느 날, 뜻밖의 책 한 권이 집으로 배달되었는데 다름 아닌 딸이 깜짝 선물로 보내준 <행복>이었답니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와 긴 수다에 빠진 듯 집안일도 팽개친 채 열독하던 <행복>에서 그가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건 바로 ‘한 칸 다실 갖기 캠페인’. 차를 따로 배우지는 않았어도 즐겨 마셔왔다는 그도 자신의 집에 다실을 마련할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 칸 다실’이라는 말이 쓸쓸히 고여 있던 그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거죠. 그리하여 시집간 딸의 방을 자신만의 다실로 꾸미기로 결심하고 당장 실천에 옮겼습니다. 세간을 치우고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짜내 다실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갖고 있던 고가구와 골동품을 배치하고, 꽃을 꽂고, 자수를 놓은 무명 행주를 활용해 방석도 만들었습니다. 그의 다실은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한눈에 봐도 주부 혼자서 꾸몄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 고왔습니다.
“제 솜씨로 소박하게 완성한 다실을 보니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어요. <행복> 창간호부터 간간이 보며 익혀온 감각의 결과랍니다. 이웃이나 친구들도 모두 제 다실을 부러워해요. 아이들 역시 오랜만에 집에 오면 다실부터 먼저 열어볼 정도로 저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웃과 향기로운 차 한잔 나누며 더 속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요.”
소박한 다실을 갖고 나면 좀 더 근사한 작품으로 채워 넣고 싶어지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그리하여 강순민 씨는 <행복>이 마련한 다실 이벤트에 신청을 했고, <행복> 편집부는 자녀를 시집 장가보낸 후 텅 비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멋스러운 다구의 운치로 대신 채워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며칠 후 청주시한국공예관에서 제공한 선물을 들고 강순민 씨 댁을 다시 찾았습니다. 다실 한가운데에 윤을준 작가의 느티나무 찻상을 놓고, 창 쪽으로 이소라 작가의 조각보 발을 걸고, 이종국 작가의 한지 등에 불을 밝히고 서영기 작가의 물항아리에 물도 넉넉히 채웠습니다. 김장의・이태호・조태영 작가가 빚은 서로 다른 스타일의 다기 세트도 가지런히 정돈했습니다. 이렇게 작가들의 작품이 제자리를 잡고 나니 소박하기만 하던 다실의 격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제가 이 방에서 바느질을 하면 남편도 슬며시 책을 가져와 읽더라고요. 함께 나누는 한잔의 차를 통해 대화가 많아지니 생각이 훨씬 풍요로워지고 마음가짐도 여유로워졌어요. 이런 모습이 제게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비어 있던 방 하나를 다실로 꾸몄을 뿐인데, 그 방에서 차를 함께 나누었을 뿐인데, 이 조그마한 행동이 가져온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강순민 독자에게 행복을 선물하고 돌아오는 길, 더 많은 독자들이 한 칸 다실의 주인이 되어 평화와 행복을 얻으시길 바라봅니다.
조태형 작가의 ‘약토천목다기’ 전통 방식을 재현한 흑유를 사용해 1300℃의 장작 가마에 구운 5인 다기 세트.
이소라 작가의 옥사명주 발 ‘Life #3’ 생쪽, 황백, 댓잎으로 천연 염색한 옥사명주에 쌈솔로 제작한 조각보 발.
청주시한국공예관이 제안한 다구
공예비엔날레의 도시 청주. 청주시한국공예관은 수준 높은 전시는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를 운영함으로써 문화적 안목을 높이고 문화 산업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 같은 곳. 한국 공예를 대표하는 그곳에서 일곱 작가의 작품을 엄선해 강순민 독자의 다실을 채워주었다.
1 이태호 작가의 다기 ‘일상다반사’ 혼합토를 물레로 성형해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다기 세트로 퇴수기와 다관, 찻잔으로 구성돼 있다. 흙의 질감과 색감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2 서영기 작가의 ‘단양백자 항아리’ 조선 단양백자가 갖는 간결하면서도 단아한 형태미에 단양 물토만의 부드러운 자기 질감이 특징이다. 뚜껑이 있어 다실의 물항아리로 제격이다.
3 이종국 작가의 한지 등 ‘아득한 날의 꿈’ 전통 방식으로 뜬 한지에 감물과 갖가지 목수액을 염료로 그림을 그려 자연을 닮았다.
4 김장의 작가의 ‘백자 다기’ 투명 유약으로 처리한 백자 다기 5인 세트. 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두께가 무척 얇다. 입술에 살포시 닿는 찻잔의 감촉이 부드럽다. 윤을준 작가의 느티나무 찻상 ‘검이불누’ 한 장의 느티나무 판재를 목절곡 기법(뒷면에 전면 일부만 남기고 톱으로 파낸 후 천을 두르고, 2~3일 정도 물기를 먹여 부드럽게 한 뒤 휘는 기법)으로 휘어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살린 모던한 라인의 찻상. 길이는 148cm. 작품 이름처럼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 한 칸 다실 갖기_청주시한국공예관과 함께하는 독자 이벤트 강순민 독자의 아파트 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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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호에 ‘독자 집에 다실을 꾸며드립니다’라는 공고가 나간 뒤 <행복> 편집부에는 차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다양한 사연이 도착했습니다. 열띤 경쟁을 뚫고 이벤트에 당첨된 행운의 독자는 서울 옥수동에 사는 강순민 씨. 청주시한국공예관이 제공한 다구로 단아하게 꾸민 그의 한 칸 다실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