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 25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경훈 씨와 아내 이케다 에리카 씨. 몇 년 전 부부는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보러 다니다 우연찮게 이 집을 발견했다.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디자인이 독특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처음으로 내 집을 직접 지으려고 터를 알아보러 다니던 중이었는데, 이 집을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막상 살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아내 입장은 저와 달랐죠. 이 집을 지은 건축가도 만나보고, 앞으로 20~30년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다는 안전 검사도 받아보며 3개월 동안 아내를 설득했어요.” 일본 건축가 무로호시 지로(www.studio-artec.net)가 젊은 시절에 지은 실험적인 집. 현재 무로호시 지로는 일본에 유명 건축가로 그가 지은 건축물을 돌아보는 건축 기행 프로그램까지 운영할 정도다. 이 집은 그가 젊은 시절 모험한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983년에 이 집을 지은 건축주는 약 30년 동안 살았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집을 팔아야 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이 집을 탐내는 사람이 많았단다. 하지만 집은 운명처럼, 인연처럼 건축가의 건축 의도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제짝 한경훈 씨 부부를 만났다.
(위) 가족실에는 철근 콘크리트의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상쇄해주는 유영희 작가의 따뜻한 색감의 그림이 걸려있다. 부부가 입주할 때 작가인 어머니에게 받은 선물이다 .

1 거실 대용으로 꾸며놓은 가족실.
2 미로를 연상케 하는 좁은 복도. 처음 이사 왔을 때 부부는 숨바꼭질하는 것 같은 재미를 느꼈단다.

3 무로호시 지로 씨가 지은 건축물을 소개한 책들.

1 부엌과 다이닝 룸이 한데 결합된 주방.
2 천장에 낸 창은 지하 공간을 환하게 해주는것은 물론 1층 중정 바닥에 물을 채워놓으면 어물거리는 물결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3 주방, 가족실과 달리 침실은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화이트 컬러로 꾸몄다.

4 1983년 건축주가 집 완공을 기념해 구입한 키스히링의 1983년 작품. 건축주가 한경훈 씨에게 선물로 남겼다.
5 훗날 집을 지을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부부는 시칠리아 여행길에 발견한 인상적인 공간을 사진에 담았다.
살면 살수록 새록새록하다 “어느 날 아내가 말하더군요. 문득 청소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창문이 참 특이하다고요. 이쪽에서 보면 저쪽 반대편 창문이 4분할인데, 저쪽에서 보면 반대편 창문이 8분할이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사면이 유리로 된 중정만 봐도 창 분할이 각각 다르다. 철근 콘크리트 집에 모자이크 같은 창은 보고만 있어도 경쾌하다. 창을 통해 가족은 어디에서든 서로를 볼 수 있다. 부엌에서 밥 짓는 엄마는 가족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볼 수 있고, 아이는 중정에서 책 읽는 아빠를 볼 수 있다. 탁 트인 공간 대신 터를 분할해 각각의 기능을 살려 좁은 집에 효율성을 더한 것이다. 지하에는 가족만의 비밀 공간이 있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꽤 널찍한 지하에 방이 있는데, 한경훈 씨 가족은 이 공간을 서재로 만들어놓았다. 여름이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해 한번 내려가면 좀처럼 올라올 줄 모르게 하는 공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겨 훗날 가족사진을 전시해놓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그런데 문득 지하 방 천장에 뚫어놓은 작은 창이 눈에 띈다. 때로 노란 알전구를 켜놓으면, 1층 중정 바닥을 채운 물의 어른거리는 흐름을 감상할 수 있다. 건축가의 위트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창에는 알루미늄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이 집은 모두 아연을 사용했어요. 아연은 알루미늄보다 창을 낼 때 훨씬 얇게 시공할 수 있어 한결 깔끔하죠. 또 시선을 가리지 않아서 참 좋아요. 제가 건축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건축가가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저희는 매일 이곳에 살면서 훌륭한 건축물의 묘미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어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우리네 인생, 이들 부부는 불편한 이 집 덕분에 일상이 한층 다이내믹해졌다고 말한다. 같은 돈을 주고 시내에 아파트를 샀더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기쁨이다. 시내로 나가려면 인근 역까지 10분가량 걸어야 하고, 서로의 어깨를 비껴 가며 복도를 걸어야 하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이렇듯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그런 점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곧 자유다. 틀에 박힌 생각, 공간 그리고 생활과 결별할 때 삶은 한층 유쾌해진다. 행복하고 싶다면 일상의 그것과 안녕을 고하라.

6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선물한 추상화. 이 집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며, 건축주는 부부에게 키스히링의 작품과 함께 선물로 남겼다.
7 테라스쪽 벽면에 커다란 문을 내 울창한 나무가 자연스럽게 벽면을 타고 흘러들어오게 했다.

1 4분할, 12분할, 그리고 36분할 모자이크 같은 창은 공간에 위트를 더해준다.
2 언뜻보면 평범해보이는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하지 못한 공간이 펼쳐진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