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높은 천장고와 한지로 마감한 공간이 고급스러운 한정식 식당 디딤.
2 한옥 분합문의 들쇠를 응용해 테이블을 설치했다.
한식의 세계화를 향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한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은 요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간 디자이너 다섯 명이 세계 5대 도시에 세우는 한식당을 가상으로 제안했다. ‘맛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2009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특별전으로, 글로벌 한식 문화 전시 프로젝트인 ‘코리안 다이닝’을 선보인 것. 프로젝트는 3단계로 진행되었다. 공간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요리 전문가와 도예가가 한 팀을 이뤘다. 첫 번째 단계는 메뉴 선정. 한식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 아이콘으로 비빔밥, 한우, 막걸리, 한정식, 국수를 선정하고 영문 표기를 설정했다. 두 번째 단계는 구체적인 공간 구성. 각 도시의 가장 핫한 거리에 60평 규모의 한식당을 오픈한다는 가정하에 간판, 파사드, 컬러, 주방 시스템 등 구체적인 공간 구성 모듈을 완성했다. 세 번째 단계는 테이블웨어와의 조화. 이제 다섯 팀이 제안하는 ‘한국의 맛’에 주목해보자.
Korean Cuisine in Paris 한정식 식당 ‘디딤 Didim’
파리의 바스티유 거리, 진회색 블록이 깔린 좁은 길을 따라 한정식 식당 ‘디딤’이 문을 연다.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 씨와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 씨, 도예가 이창화 씨가 팀을 이뤄 제안한 공간이다. 한정식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콘셉트는 궁宮. 수백 년 역사를 지닌 궁의 넓은 회랑에서 느껴지는 울림을 표현하기 위해 천장고를 높이고, 조선 시대 한옥에서 보이는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의 아름다운 선을 따왔다. 그리고 천장에서 길게 내려오는 들쇠에 나무 테이블을 걸었다. 쌀되를 쌓아 표현한 낮은 담장은 최시영 씨가 매일 출근길에 맞닥뜨리는, 햇살에 비쳐 노리끼리한 아름다운 경복궁 돌담을 형상화한 것. 여기에 순백의 한지 마감, 숨 고르기를 위한 댓돌, 초롱을 샹들리에처럼 늘어뜨린 조명등이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영희 씨는 6가지 코스 요리를 1인용 플레이트에 담아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세계인의 입맛에 맞도록 정갈하고 담백한 맛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홍시 즙으로 은은한 단맛을 낸 홍시소스 죽순채나 잣소금을 곁들인 송이구이, 깔끔한 육수에 담긴 꼬치 신선로, 수삼 단자와 유자 화채 등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한정식 메뉴가 돋보인다.
3 파리의 한정식 식당을 디자인한 최시영 씨
1 런던을 배경으로 한 국숫집 ‘코리안 누들’. 면기는 이헌정 작가의 작품이다.
2 뉴욕의 비빔밥 전문점 ‘bbgo’의 재료 프레젠테이션. 김정옥 작가의 도자기에 담는다.
Cooksoo in London 국숫집 ‘코리안 누들’ 런던의 테이트모던 뮤지엄 근처에 한식 국숫집이 생긴다.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 씨와 요리사 윤정진 씨, 도예가 이헌정 씨의 합작품이다. 공간을 바 형태로 구성해 자유롭고 캐주얼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국수의 선을 리듬감 있게 이미지화한 조형물은 5년 전 우연히 그린 붓 터치에서 끄집어낸 것. 김백선 씨는 이곳이 “오감의 소통 속에서 흥과 유희를 느끼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런던의 마인드 마크 mind mark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한식당 ‘가온’의 조리 이사였던 윤정진 씨는 멸치 국물을 이용한 잔치국수와 맑은 콩소메를 응용한 쇠고기 면, 쌈채소를 곁들인 불고기 국수 등 외국인의 입맛을 고려한 국수 메뉴를 개발해 이헌정 작가의 정갈한 도자기에 담아냈다.
3 자작나무 합판과 장지로 비빔밥의 웰빙 콘셉트를 잘 보여주는 ‘bbgo’의 인테리어.
4 런던의 국숫집을 디자인한 김백선 씨
5 뉴욕의 비빔밥 전문점을 디자인한 마영범 씨
Bibimbap in New-York 비빔밥 브랜드 ‘bbgo’ 250개의 도축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뉴욕에서 가장 힙한 지역이 된 미트 패킹 디스트릭트 Meat Packing District에 프랜차이즈 비빔밥 브랜드 ‘비비고 bbgo’가 오픈한다.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 씨와 현재 CJ 푸드빌에서 bbgo 프로젝트 컨설팅을 담당하는 노희영 씨, 그리고 도예가 김정옥 씨가 팀을 이뤘다. 비빔밥을 이국적인 아시아 푸드가 아닌 건강과 다이어트, 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트렌디한 식문화로 접근했다. 흑미, 롱그레인, 발아 현미, 보리 등으로 만든 주먹밥 형태의 밥과 육류 토핑, 각종 소스를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공간은 웰빙 콘셉트에 따라 장지와 자작나무 합판, 그리고 돌솥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스톤을 사용했다.
1 밀라노를 배경으로 디자인한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 ‘miss KOREA’. 노출 콘크리트와 자개로 모던하게 마감한 공간에 나무, 돌, 백자 등 자연적인 요소를 더했다.
2 포석정을 응용해 디자인한 몽환적인 분위기의 막걸리 바 ‘연 蓮 Lotus’은 도쿄를 겨냥했다.
Hanu in Milano 코리안 바비큐 ‘miss KOREA’ 갈비와 불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 그릴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곳은 유럽 최고의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도시 밀라노. 공간 디자이너 배대용 씨와 한식 전문가 허식 씨, 도예가 정길영 씨가 뭉쳤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노출 콘크리트와 메탈릭한 특성을 강조한 자개 벽면의 모던한 분위기에, 나무 기둥과 주춧돌, 백자 같은 내추럴한 요소를 배치해 포인트를 주었다. 숯이 담긴 붉은 화로가 뿜어낼 이국적인 이미지를 공간 구성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다. 불고기와 갈비, 산적 등 육류가 기본이며 여기에 청량감을 주는 김치와 동치미, 다양한 채소를 발효시킨 장아찌를 곁들인다. 숯불에 구운 고기는 어두운 톤의 분청자기에 담고, 산적과 장아찌는 백자에 담아 요리의 색감을 살리고 식감이 돋보이도록 한다.
3 밀라노의 그릴 레스토랑을 디자인한 배대용 씨
4 도쿄의 막걸리 바를 디자인한 전시형 씨
Makgeolli in Tokyo 막걸리 바 ‘蓮 Lotus’ 도쿄의 아오야마 거리에 있던 일본 전통 음식점을 레노베이션해 한국의 막걸리와 안주를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다. 공간 디자이너 전시형 씨와 요리 연구가 이종국 씨, 도예가 이세용 씨가 한 팀을 이뤄, 동양에서 술을 마시는 공간인 ‘포석정’을 바 bar로 만든 것. 연잎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연못, 그 위에 평상과 주반을 놓고 물에 떠 있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 막걸리를 마시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검은 숯으로 마감한 외벽과 천장에 매달려 너울거리는 하얀 속치마. 그 안쪽의 조명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빛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신비로움과 간접적인 관음을 표현한다. 이곳은 막걸리를 음식에 곁들이는 조연이 아닌 ‘기분 좋아지는 밥’이라는 주연으로 설정해 김치, 북어, 전 같은 가벼운 안주를 즐기도록 한다. 균질하고 정형화된 맛이 아닌, 만들 때마다 만드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맛이 다른 21세기적 감성의 생막걸리가 경쟁력이다.
- 2009 서울디자인페스티벌 korean d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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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식 도시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그리고 도쿄. 개성 있는 레스토랑이 넘쳐나는 그 거리에 한식당이 들어선다면? 공간 디자이너 5인이 비빔밥, 한우, 막걸리, 한정식, 국수를 아이콘으로 하는 한식당 디자인을 제안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