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지난 3년간 두 아이와 함께 홍콩에서 지낸 윤지현 씨는 귀국을 앞두고 한국에서 생활할 살림집을 계획했다. 당시 홍콩에서 천장고가 높은 주상 복합 아파트에 살던 부부는 무엇보다 작지만 개성적인 홍콩의 아파트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홍콩의 아파트 거실은 한국처럼 네모반듯한 구조가 아니라 오각형 혹은 육각형의 각진 구조예요. 탁 트인 구조는 아니죠. 하지만 벌집 같은 구조는 아늑하면서도 집집마다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할 수 있게 해줍니다.”가벽, 공간의 마술사가 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탁 트인 넓은 거실을 선호하지만, 윤지현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규모와 상관없이 공간은 홍콩의 주거 환경처럼 얼마나 쓰임새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서핑과 인테리어 잡지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맞게 구현해줄 전문가를 찾았다. 그렇게 해서 만난 이가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조희선 씨. 두 달간의 레노베이션을 거쳐 새롭게 변모한 집 곳곳에서 디자인을 맡은 조희선 씨의 아이디어와 집주인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거실의 가벽. 가벽은 공간을 정리해주는 것은 물론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에 변화를 주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치다.
(위) 베란다 쪽으로 소파를 두고 재배치한 거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활용해, 거실이 한층 넓어보인다.
1 리빙 룸과 다이닝 룸을 가벽으로 분할해 공간의 기능성을 높였다. 모노톤의 가구 색에 맞춰 선택한
베이지색 계열의 벽지는 우리벽지, 패턴이 강한 바닥재는 동화자연마루 제품.
이 집은 다이닝 룸과 리빙 룸 사이에 파티션 기능의 가벽을 세우고, 그곳에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더불어 소파는 거실의 벽면이 아닌 텔레비전과 마주하는 베란다 쪽에 두어 쓰임새가 없는 공간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이밖에 침실에도 가벽을 이용한 별도의 옷방을 만들기도 했다. 부부의 옷은 물론 계절이 지난 아이들의 옷도 함께 보관할 수 있을 만큼 수납공간이 넉넉한 옷방이다. 흔히들 드레스 룸은 50~60평의 넓은 집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보통 미닫이문 형태의 옷장 깊이가 최대 70c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방 안에 독립된 옷방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희선 씨는 “40평대 아파트 레노베이션이 가장 어려워요. 작지도, 그렇다고 50~60평처럼 아주 넓지도 않은 공간이기에 집주인의 기대치를 맞추기가 힘들죠. 하지만 이들 부부는 집은 꼭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어서 좋았어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이니 저 역시 이번 작업에 욕심이 생기더군요”라고 말한다.
2 홍콩에서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유일한 가구, 나비장.
1 벽지 대신 자작나무 합판을 붙여 완성한 가족실 벽면. 아이들의 놀이방이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어우러져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아늑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게 디자인했다.
소품으로 집에 표정을 더하다 한때 원색의 나비장으로 공간을 채운 중국풍 인테리어가 홍콩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 홍콩의 인테리어는 다르다. 몇 해 전부터 오리엔탈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뉴욕처럼 모던하면서도 시크한 인테리어가 각광받고 있다. 윤지현 씨 부부의 동부이촌동 아파트에는 현재 홍콩의 인테리어 트렌드가 잘 반영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윤지현 씨는 귀국을 앞두고 홍콩 내 현지인들이 알음알음으로 다니는 인테리어 숍을 두루 다니며 감각을 익혔고, 실제 한국에서 꾸밀 집에 어울릴 만한 제품을 선별했기 때문이다. 특색 있는 가구와 소품 몇 가지만으로 앞집, 옆집과 다른 나만의 아파트를 꾸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홍콩에서는 구조에 맞게 맞춤 가구처럼 작은 가구를 공간에 딱 들어맞게 놓았던 터라, 막상 한국에 가지고 나올 가구를 헤아려보니 많지 않았다. 부부가 홍콩에서 사용하다가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은 나비장과 소품 한두 가지 정도다. “홍콩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인테리어 제품 역시 여러 가지 스타일이 구비돼 있어서 쇼핑하기 좋습니다. 또 재고가 있을 때에는 할인율을 적용해 저렴하게 팔고, 새것을 다시 들여놓는 등 일본만큼이나 상품 회전율이 빠른 편입니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인 독특한 디자인의 조명등, 장식 소품, 패브릭 등은 모두 홍콩에서 공수한 것들이다. 논현동 가구거리 같은 홍콩의 레인 크로퍼드나 프린스 빌딩 내 리빙 숍은 현지인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 최적의 인테리어 쇼핑 장소. 40평형 아파트에서 특색을 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조명등을 꼽고, 예산의 많은 부분을 독특한 디자인의 조명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홍콩에서 스탠드 조명은 한국인이 구입하면 아주 좋은 아이템 중 하나죠. 전압이 220볼트로 한국과 같아서 홍콩에서 산 조명등은 변환할 필요 없이 쉽게 설치 가능합니다.” 머릿속으로 차분하게 가족만의 꿈의 공간을 그리고, 현실에서 세밀하게 풀어나간 주부 윤지현 씨. 스타일은 홍콩식 그대로 모던하고 시크하되, 기능 또한 성실하게 담아낸 그의 집은 네모반듯한 상자 같은 아파트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귀띔해주고 있다. 디자인 및 시공 CCUMIM by Cho Heesun 문의 www.ccumim.com 2 윤지현 씨 가족이 좋아하는 지구본. 멋스럽게 디자인돼 있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스탠드 조명등은 베르너 판톤 2009년 신제품으로 홍콩 레인 크로퍼드에서 구입할 수 있다.
1 크지 않은 침실에 별도의 옷방을 만들어놓았다. 슬라이드 문을 설치해 침실에서 최소한의 면적을 차지하도록 설계했다.
2 간단한 아침 식사, 간식 시간에 이용하기 좋은 개수대와 함께 설치한 간이 아일랜드. 식탁은 홍콩의 인디고에서 판매. 플라스틱 의자는 이탈리아의 카르텔, 조명등은 스페인의 비비아 제품으로 홍콩에 조디악 Zodiac에서 판매.
3 딸아이에게 추억 어린 홍콩의 컵케이크 숍 인테리어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방. 유리 조명등은 엘레먼츠 쇼핑몰에서 구입.
4 홍콩의 모던하면서도 시크한 최근 인테리어 트렌드를 담은 현관. 가족은 현관을 들어서고, 나서면서 홍콩에서 보낸 시간들을 이따금씩 떠올리며 행복감을 얻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