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행복>에 가장 먼저 알려주는 스타일리스트 김정민 씨.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10여 년 전 <행복>을 통해 인연을 맺은 친구 이야기다. 그 친구 부부가 새로운 콘셉트의 갤러리를 오픈했다며 이를 핑계 삼아 일단 부부를 만나보란다.
남편 심찬구 씨는, 말하자면 성공한 청년 사업가다.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벤처 열풍에 빠져 있던 2000년대 초반, 그 또한 ‘모험’에 뛰어든 젊은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들 닷컴 신화를 꿈꾸고 있을 때, 그는 개념조차 생소한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 뛰어들었고 불모지와 다름없던 스포츠 마케팅 시장을 개척하여 이제 그는 우리나라에서손에 꼽히는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아내 우현주 씨는 연극배우라기보다 연극인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극단을 이끌고 있는 그는 희곡도 쓰고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한다. 그야말로 1인 4역의 연극계 여성 파워다. 이제 막 40대 문턱에 들어선 동갑내기 부부. 내일을 향해 내달려온 30대를 지나 이제 그 달콤한 열매를 조금씩 맛보고 있는 연극배우 아내와 스포츠 마케터 남편. 그리고 갤러리가 아닌 살롱이라 이름 붙인 갤러리 ‘살롱 드 에이치.’ 이들을 만나면 옴니버스 드라마를 보듯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를 안고 청담동으로 향했다.
부티크 숍이 즐비한 거리. 육중한 에이치빔이 외벽을 촘촘히 에워싸며 6층까지 솟아오른 파사드가 인상적인 빌딩에 ‘살롱 드 에이치’가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는 신축 건물의 1・2층 전시장과 바로 이웃한 패션 디자이너 한혜자 씨의 쇼룸 지하 1층 별관에 마련되어 있다. 본관이 일반 전시장이라면 별관은 공연과 음악회 등을 동반하며 그야말로 ‘살롱’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한다. 본관 6층에는 남편 심찬구 씨의 사무실이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벽돌, 철근 마감과 높은 천장고가 뿜어내는 냉철함은 천장과 출입문에 사용한 나무 소재의 온기가 더해져 그 날 선 차가움을 상쇄해준다. 이성과 감성이 평형을 이루는 듯한 차분한 분위기의 공간이다.
(위) 정치학도였던 대학 시절 독일에서 가져온 베를린 장벽의 기념품.
1 남편 심찬구 씨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 ‘스포티즌’과 아트 마케팅 회사 ‘아트컴퍼니 에이치’를 이끌고 있다.
2 ‘살롱 드 에이치’ 내부 전경. 전시 작품은 모두 이용백 작.
3 그의 사무실 유리 벽에 쓰여 있는 알프레드 D. 수자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4 건물 설계는 부부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건축가 이재하 씨가 맡았다.
스포츠 마케터와 갤러리스트 사이 “밸런타인 골프 챔피언십이라는 대회를 함께 진행하는 영국 파트너가 있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골프 대회를 진행하면서 일 년의 1/3 이상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사람이죠. 그런데 그는 골프를 전혀 안 해요. 챔피언십이 열리는 동안 갤러리 투어를 하죠. 서울에 와서도 언제나 갤러리를 돌아보는 그가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그리고 어느 날 한국 현대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어요.” 이를 계기로 심찬구 씨는 파트너를 도와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미술 애호가라는 관조적인 입장이 아닌 마케터의 눈으로 미술 시장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미술 시장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죠. 그런데도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미개척지와 다를 바 없어 보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몸담고 있는 스포츠 시장은 마케팅 방법론이 고도로 발달한 분야다.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 40억 인구가 시청했고, 얼마 전 막을 내린 코리안 시리즈를 시청한 사람은 5백만 명, 기아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즈의 경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1천5백만 이상으로 추정해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집중하는 콘텐츠는 지구 상에 스포츠밖에 없어요.”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니 기업들은 스포츠에 돈을 들이붓고 자본이 따르니 마케팅 방법론이 발달할 수밖에. 마케터의 눈으로 미술 시장을 바라보니 ‘아,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란다. 이를 계기로 그는 기업 홍보, 스포츠 마케팅에 아트 마케팅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한 예가 넵스 마스터피스 골프대회장에 미술 전시를 끌어들인 것이다. 대회 기간 동안 18홀에 작가 18명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작품을 만난 갤러리들과 선수들에게서 각양각색의 흥미로운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 2 우현주 씨는 세상에서 가장 자신없는 일이 집 안 꾸미는 것이라지만,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답게 실용적으로 간결하게 꾸몄다. 정면에 보이는 사진은 구본창 씨 작품. 8개의 나무 액자는 결혼 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것이다.
3 심찬구 씨 사무실에서 발견한 각종 사인 볼.
4 무대에 서면 그는 아내나 엄마가 아닌 연극배우 우현주가 된다.
18세기 살롱의 부활 이번 골프대회가 스포츠와 아트를 아우르는 마케팅의 크로스오버 버전이었다면 살롱 드 에이치는 다양한 예술 장르의 융합을 시도하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란다. “프랑스 문화가 꽃을 피우던 18세기, 그 중심에는 살롱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함께 책을 읽고 공연을 즐기며 오가는 대화를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문화의 흐름을 이끌었지요. 살롱 드 에이치는 단순한 미술 전시 차원을 넘어 18세기 프랑스 문화 부흥의 중심이었던 살롱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곳은 작품 전시뿐 아니라 음악회, 공연, 패션쇼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이 될 것이란다. 전반적인 갤러리 운영은 남편의 몫이지만 갤러리가 진정한 살롱의 역할을 해내는 데는 아내 우현주 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금 당장 돈 벌 수 있는 그림을 전시하는 것은 어렵지만 쉽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리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할 일은 지속적인 기획 전시를 통해 세상에 던지는 화두가 훗날 미술계에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 노력이 하나하나 쌓일 때 살롱 드 에이치는 수없이 많은 갤러리 중 하나가 아닌 ‘의미 있는’ 갤러리가 될 것이라고. 미술계에서 바라보면 아웃사이더에 불과할 수도 있는 심찬구 씨에게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다. 영국 사치 갤러리 전시를 준비하면서 연을 맺은 큐레이터 이대형 씨가 바로 그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업적인 행위는 오히려 상업적으로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가장 비상업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종국에는 최상의 상업적 결과를 낳게 됩니다.” 마케팅의 귀재가 던지는 이 한마디가 참으로 복합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1 여섯살 지환이와 네살 지혁이. 우현주 씨는 지난 여름 두 달간 공연을 하면서 공연이 없는 날(더블 캐스팅이었다)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2 그는 두 아들과 남편, 이 세 남자가 자신의 ‘인생 증명서’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지난해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이 ‘힘은 들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던’ 이유를 그는 가족에게서 찾는다.
이야기에 빠진 아이, 배우가 되다 스포츠 마케터와 갤러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의 상관관계를 풀었으니, 이제 오늘의 만남을 주선한 스타일리스트 김정민 씨의 오랜 친구 우현주 씨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하지 않겠나. “일부러 패션 디자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단지 나에게는 엄마 같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 알았던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이야기 듣는 것, 이야기하는 것, 읽고 쓰고 보는 것, 한마디로 이야기에 미쳐 있었죠.” 연극 배우 우현주 씨는 패션 디자이너 한혜자 씨의 딸이다. 내로라하는 패션 디자이너의 2세들이 대를 이어 활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니, 그가 연극을 시작한 이후로 지난 20년간 수도 없이 들었을 뻔한 질문, 그러나 또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에 그는 친절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확실히 엄마와는 다른 것 같아요. 같은 사람을 보면서도 엄마는 저 사람이 어떻게 멋지게 옷을 입었는지에 관심을 보이는데, 저는 그런 것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궁금해지죠.”
1 사진 액자가 늘어가면서 가족의 역사도 쌓여간다.
2 중앙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심찬구 씨의 할아버지가 근속 기념으로 받은 은주전자 세트로 어머니가 물려주셨다.
3 부부의 서재도 되고 아이들과 함께 노는 놀이터도 되는 거실에서 지환이(왼쪽), 지혁이와 밀가루 반죽 놀이를 하고 있다.
김추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조용필을 좋아했던 꼬마 아가씨. 초등학생 시절 조용필을 주인공으로 당대 배우들 중 누가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를 정해가며 이야기를 지어내고, 혼자서 일인 다역으로 연기를 하고 놀았다니, 그의 어린 시절이 남다르기는 했다. 천 조각으로 인형 옷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듯 이야기를 만들고 연기를 하며 놀던 아이가 자라 배우가 된 것이다. “배우의 잔혹한 운명이라는 말을 해요. 연기자는 제아무리 무대에 서고 싶어도 캐스팅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거든요.”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무대에 서는 시간이 적어지니, 무대에 설 기회도 점점 적어졌다. 배우는 무대에 서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존재다.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자는 마음으로 3년 전 그는 극단 맨씨어터를 창단했다.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그가 선보인 <썸걸즈>라는 작품은 그해 동숭동 연극 무대를 뜨겁게 달군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올여름 두 달간 공연했던 <울다가 웃으면>은 극본・연출・연기에 극단 대표까지 그가 1인 4역을 소화해낸 작품이다. “만약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극단을 만들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자신의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남편이 사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남편을 통해 내 안에 잠재된 것들이 개발된 거죠.” 연극배우 아내와 스포츠 마케터 남편. 참으로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 같은 이 둘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을까?
소년, 소녀를 다시 만나다 “서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남편은 사업가, 저는 연극배우가 되어 있었어요.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면 아마도 결혼까지 갈 수 없었을 거예요. 가치관, 자라온 환경, 취향, 그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심찬구 씨와 우현주 씨의 첫 만남은 13세, 중학교 1학년 교실. 강남 최초의 중학교 남녀 합반에서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벌써 27년 전 일이다. 아마도 서로에게 첫사랑이 아니었나 싶다며 이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빵집만 가도 정학을 받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한동네에 살았기에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기도 여러 번이었건만 왠지 못 본 척 지나치기 일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가고 유학을 가고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가끔씩 친구의 친구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20대를 보냈다.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청춘을 흘려보냈건만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는 법인가 보다. “소위 말하는 벤처를 시작하고 친구들과 함께 손바닥만 한 오피스텔에서 먹고 자던 시절이에요. 우연한 술자리에서 만난 어르신이 아내의 아버지였어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서른의 문턱에서 그렇게 다시 만난 이들은 7년 전 부부가 되었다.
(위) 오른쪽 우현주 씨가 가장 존경하는 무용가 피나 바우슈 Pina Bausch 사진집.
부창부수, 부부는 닮는다 좋은 배우자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주는 것이라 했던가. 남편 심찬구 씨 역시 처음에는 보통의 남자들처럼 보통의 아내가 되어주지 못하는 배우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연극인 아내를 적극 지지해요. 그로 인해 때때로 우리 가족의 삶이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 아내가 한 사람의 예술인으로서 도모하는 일과 그로 인한 사회적 반향은 그 불편을 감수해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남편이 아닌 비즈니스맨의 입장에서 내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연극인으로 아내를 바라보니 그 열정과 프로 정신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저는 평생을 좌뇌적으로 훈련받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비즈니스라는 것이 논리로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아내와 살면서 제 자신이 점점 변화하는 것을 느껴요. 논리와 이성이 아닌 직관과 감성으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것, 내 안의 소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는 아내가 부럽다고 한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무대 위로 뛰어올라 소리도 질러보고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고. 아내의 작품과 연기에 아내 못지않은 애정과 관심이 있으니 자신도 ‘연극인’이라 말하는 그는 요즘 그림을 그리고 보컬 레슨도 받는다. 아내가 연극을 하듯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아내로 인해 변화한 삶이 그는 행복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부부는 이야기 중간 중간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바쁜 사업가 남편, 바쁜 연극배우 아내로 살아가는 서로에 대한 배려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표정이 충만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부족함을 탓하지 않는 넉넉한 마음 때문이리라.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모범 답안’을 찾으라면 이 부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문을 나서려는데 사무실 유리 벽에 쓰여 있는 부부를 꼭 닮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사랑하라,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알프레드 D. 수자
- 연극배우 우현주, 스포츠 마케터 심찬구 씨 부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언제나 주연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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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닮아가는 멋진 부부가 있다. 사업가 남편의 리더십을 존경하며 자신의 리더십을 개발한 배우 아내, 배우 아내를 바라보며 감성적인 삶의 충만함을 깨달은 사업가 남편.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따로 또 같이 성공적인 오늘을 살아가는 부부에게서 ‘노인의 지혜’를 가진 ‘청년의 열정’을 보았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