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오픈 하우스] 무림그룹 이동욱 회장의 성북동 집
한집에 살면서도 이웃집에 사는 것처럼 ‘따로 또 같이’ 2대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엄마와 딸이 친구처럼, 시누이와 올케가 자매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어머니와 딸처럼 지내는, 독립과 소통이 공존하는 ‘ㅁ’자형 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지 그룹인 무림그룹 이동욱 회장의 가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엄마와 딸이 3개월간 매일 공사 현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지은 집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림 그리는 안목 높은 엄마와 패션을 전공한 손재주 좋은 모녀가 함께 완성한 집이란다. 성북동에 자리한 이 집은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지 그룹 무림그룹 이동욱 회장 댁이다.
“저희 집은 따로 또 같이 2대가 함께 사는 집이에요.” 엄마와 딸이 함께 지은 집이라 알고 왔는데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안주인 정자경 씨는 2대가 함께 사는 집이라는 말로 인사를 건네 온다.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오셨죠? 이쪽은 저희 내외와 딸아이가 사는 곳이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아들 내외가 사는 곳이에요.” 지하는 ㅁ자형 , 지상은 ㄷ자형으로 지어져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독립된 이웃집에 사는 것 같은 구조란다. 아무리 공간을 나눈다 해도 자식들 입장에서야 어른 모시고 사는 마음의 부담이 없을 수 없는 법. 그는 2대가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들려준다. “남편은 아침 출근길에 며느리가 인사하러 나오는 것을 못하게 해요. 서로 이웃에 살 듯 해야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죠.” 각자 일과가 바쁜 자식들이 부모의 시간과 동선을 신경 쓰다 보면 아무래도 함께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을 배려한 것이리라. “우리는 이렇게 재미있게 살아요.” 그는 딸 자랑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어쩌다 아들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무림그룹 이동욱 회장의 부인 정자경 씨, 딸 이승은 씨, 며느리 노수정 씨가 정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정원 한가운데 작은 동산을 꾸민 분재 소나무들은 정자경 씨가 친정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 꾸민 집이니 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집 이야기를 들을 순 없는 법. “우리 딸이라 저랑 참 많이 달라요. 그래서 찰떡궁합이에요. 저는 순간순간 순발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고 승은이는 아버지를 닮아서 미리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편이라 서로를 보완해주지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언니 같은 딸이 있어 행복하다며 그는 정원의 대나무를 가리킨다. “저 풍성한 대숲도 승은이 아이디어예요. 정원사가 한 줄로 드문드문 대나무를 심은 것을 보더니, 대나무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사사사사’하는 댓잎 부딪히는 소리 듣는 것이 제 맛이라며 대숲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대숲의 참맛을 아는 20대 아가씨라! 뿐만 아니라 승은 씨의 실험적인 생각 덕분에 배우는 것이 많다고 한다. “평소 표범 무늬를 좋아하는 승은이가 제 방을 꾸미면서 표범 무늬 커튼을 맞췄는데 아무래도 너무 과한 것 같다고 하더니 즉흥적으로 겉 커튼과 단색의 속 커튼을 바꾸어 달더라고요. 저라면 안팎을 바꿔 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 재주 많은 딸내미가 없었다면 지난 3개월의 시간이 이리도 즐겁고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1 벽에 걸린 수묵화는 미산 허형 선생(남종화의 대가 남농 허건 선생의 부친) 작품으로 정자경 씨가 친정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콘솔 위에 놓인 로메로 브리토의 팝아트 오브제와 전통 수묵화의 조화가 색다른 멋을 풍긴다.
2 아들 부부가 사용하는 공간에도 별도의 계단실을 마련해 독립성과 편의성을 더했다.


이 집은 애초에 다른 땅에 지을 생각으로 설계한 것을 지금의 집터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 한다.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가더라도 땅이 바뀌니 창의 위치나 크기, 구조도 조금씩 바뀌어야 하고 주변 경관을 고려해 마감재도 달라져야 하고 손볼 것이 많았어요.” 집 짓던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집은 한 번 지을 때마다 5년은 늙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난 3개월간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지 않았다면 이 집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현장에 오는 게 힘은 들었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어요. 구조물이 세워지는 실제 공간에 서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더군요. 또 센스 있고 부지런하면 훨씬 싸게 집을 지을 수 있겠다는 것, 국산 자재도 좋은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3 부엌 조리대에서 바라보는 커다란 조망 창은 정자경 씨의 아이디어. 창을 통해 보이는 담장에 패널을 세우고 담쟁이를 심었다.


4 엄마와 딸, 며느리가 때로는 친구같이 때로는 자매같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 아닐까. 왼쪽부터 며느리 노수정 씨, 안주인 정자경 씨, 딸 이승은 씨. 뒤 벽에 세워놓은 그림은 정자경 씨 작품.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는 집을 둘러보자며 창밖 소나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집은 소나무를 위한 집이에요. 옛날부터 이 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를 최대한 보호하는 방향으로 집을 지었어요.” 그 덕에 지하 주차장이 조금 더 낮아지기도 했지만 이렇듯 멋진 소나무를 품고 살 수 있으니 더없이 기쁜 일이란다. 계단실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다이닝룸이 나오고 안쪽을 한 번 더 돌아드니 창이 멋스러운 부엌이 나온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창을 등지도록 조리대를 설치해놓은 거예요. 제가 더 크게 창을 내고 조리대 방향을 바꾸었어요. 그리고 창밖으로 담쟁이 덩굴을 올려 부엌일을 하면서도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했죠.” 2층까지 천장이 뚫려 있는 계단실은 난간과 2층 복도를 유리벽으로 마감해 시원하고 웅장한 느낌을 더했다. 계단을 올라 복도를 지나니 천장에서 자연광이 쏟아지는 복도식 파우더룸이 이어지고 부부 침실로 연결된다. 2층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온실이다. 전혀 다른 공간인 양 색다르게 꾸민 모양새도 그렇지만, 이곳은 이 집의 비무장지대다.

집 안에서 유일하게 아들 내외 공간과 부모님의 공간이 만나는 접점인 것이다. 비무장지대 온실을 지나 아들 내외의 공간으로 건너가니 마치 이웃집에 건너온 것 같은 변화가 느껴진다. 먼저 마루와 문, 창문 등 기본적인 마감재를 달리해 젊은 신혼부부를 위한 캐주얼한 공간으로 연출했다. 2층 부부 침실에서 계단실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면 둘만을 위한 거실이 마련되어 있다. 아들 부부 공간에는 2층부터 지하까지 연결되는 계단실을 따로 마련해 공간의 독립성을 높였다. 이곳의 안주인인 며느리 노수정 씨는 의외의 자랑을 한다.“다른 것보다 이 장식장을 보아주세요. 어머님께서 외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것을 저에게 물려주신 거예요. 저는 이렇게 물려받는 것이 너무 좋아요.” “우리 집은 거꾸로 되었어요. 저는 모던한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 며느리는 이렇게 오래된 물건, 앤티크를 좋아해요.” 2층 침실에서 1층 거실 공간을 거쳐 지하로 내려가면 부모님과 아들 내외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은 외부에서 보면 지하층이지만 냇물이 흐르는 작은 숲처럼 꾸민 중정과, 중정을 통해 들이치는 자연광 덕에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영화광인 이동욱 회장을 위해 마련한 AV룸, 중정을 바라보는 홈바, 미니 골프 연습장이 있는 운동실, 찜질방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휴식과 여가를 위한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다. 지하층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손재주 많은 이승은 씨의 작업실이다. 패션 스쿨 에스모드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도자기를 즐기며 폴리머클레이 공예와 은공예에 빠져 있는 딸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작업실 한편에 놓여 있는 전기 가마가 눈에 띈다. 조금 전 부엌 입구의 그릇장에서 보았던 도자기가 모두 이승은 씨 작품이란다. “제가 길고 좁은 사각 접시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 승은이가 어느새 뚝딱하고 접시를 하나 만들어줘요.”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고 보니 테이블 위에 다과를 내온 사각 접시도 그의 작품이란다.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손재주 많은 딸은 큰 재산이 아닌가 싶다.

1 계단 공간은 천장을 2층까지 올리고 계단 난간과 2층 복도 벽을 유리로 마감해 개방감을 더했다.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은 데미언 허스트 작품이고 정면에 걸린 두 작품은 트램블러 작품.


2 거실은 모던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안주인 정자경 씨의 취향에 맞게 아르마니 까사의 거실 세트와 비트라의 라비올리 체어로 꾸몄다. 모던한 공간에서 라비올리 체어가 보여주는 실루엣이 멋스럽다. 
3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손재주 많은 승은 씨를 위해 지하에는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는 이곳에서 옷을 리폼하기도 하고 폴리머클레이 공예 작품을 만들고 도자기도 굽는다.


변형된 ㅁ자형 구조의 3층 집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머릿속이 뒤죽박죽, 집의 방향과 구조가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에 이사 와서는 벗어놓은 신발도 못 찾은걸요.” 이해한다는 듯 이승은 씨가 말할다. 어머니 정자경 씨는 이 집은 크게 뻥 뚫린 공간이 없고 아기자기하게 나누어져 아늑한 맛이 있고 구조가 재미있다고 한다. 원래 이 집은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설계했고 곳곳에 그림 액자 같은 조망 창도 계획했었다. 그런데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집은 그냥 집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품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좀 아둔해 보이더라도 아늑하고 편리한 집이요.” 그는 노출 콘크리트 대신 외벽을 표범 무늬 돌로 마감하고 불필요한 조망 창을 없앴다. 또 집 안을 꾸미는 데에도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퓨전을 콘셉트로 모던과 전통, 새것과 옛것을 함께 매치해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연출했다고 한다.


1 정자경 씨가 친정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고가구를 다시 며느리 노수정 씨에게 물려주었다. 노수정 씨는 이 장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란다.
2 다이닝룸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입구에 딸 이승은 씨가 직접 만든 도자기 그릇들을 진열했다.


데미언 허스트, 로메로 브리토 등 내로라하는 현대 작가의 작품을 비롯, 다양한 아트 컬렉션이 눈에 들어와 거실 벽난로 위에 걸린 작품에 대해 물었다. “저 그림이요? 제 그림이에요. 집에다 제 작품을 걸어놓으니 친구들은 창피하지도 않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우리 집이잖아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단다. 미술에 조예가 깊으셨던 친정아버지는 어릴 적 그를 천경자, 운보 선생에게도 데려갈 정도로 열정적이기도 하셨단다. 결혼을 하고 사업하는 남편의 아내로 살다 보니 한동안 그림을 잊고 살았다. “아이들을 웬만큼 키우고 나니 자꾸 자아를 찾아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었고 미술 치료가 어떻게 가능한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는 요즘 딸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딸 승은씨의 폴리머클레이 피스를 함께 조합하는 것이다. 올 연말이나 내년쯤에는 승은 씨와 함께 전시회를 열어볼 생각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전시,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느냐며.

3 2대가 함께 사는 이 집에서 부모님 공간과 아들 내외 공간이 만나는 유일한 지점에 온실을 두었다. 일종의 비무장지대인 셈이다. 이 집은 변형된 ㅁ자형 구조로 각각의 공간이 독립성을 확보하면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무림그룹 이동욱 회장 댁에서 찾은 스타일링 아이디어 4
1 과감한 믹스 매치가 명장면을 만든다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을 과감하게 진열해보자. 다이닝룸에서 발견한 미산 허형 선생의 포도 수묵화와 로메로 브리토의 팝아트 오브제의 조합이 신선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에서 오히려 명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2 가족의 작품이 마스터피스다 정자경 씨처럼 가족의 미술 작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해본다. 그림은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3 아르마니 까사와 동대문표 송치 동대문 소품도 잘 고르고 제자리를 잘 찾아주면 명품이 부럽지 않다. 아르마니 까사 소파 옆에서 한 세트처럼 사이드 테이블을 장식한 송치는 눈썰미 좋은 이승은 씨가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다.
4 1인용 의자가 아름답다 풍경이 좋은 창이 있으면 안락한 1인용 의자를 하나쯤 마련해두자. 이 집에서 눈에 띄는 가구는 창밖을 향해 놓인 1인용 의자. 아늑한 공간에 놓여진 1인용 의자는 언제든 한잔의 커피와 함께 찾아들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준다.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