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군락을 이루는 숲과 달리 다양한 종류의 수목을 제한된 공간에 식재, 구성한다. 7월은 서로 다른 무늬와 질감의 초록 잎들을 감상하기에 적기다.
“정원과 나, 우리 둘 중에서 어느 쪽이 먼저 죽어 없어질까?” 하고 그녀는 자문해보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뭐니 뭐니 해도 정원 쪽이 먼저였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야 세상을 떠나도 더 이상 정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_가브리엘 루아의 <세상 끝의 정원> 중
우리나라의 경우 7월 하면 자연스럽게 비와 바람, 그리고 무더위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긴 장마 끝에 이어지는 땡볕과 무더위, 이따금 쏟아지는 집중호우와 태풍…. 격한 자연의 변화 속에 7월 정원은 쑥쑥 자라는 무성한 잡초, 강한 바람에 쓰러지고 부러지는 나뭇가지와 초화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기입니다.
정원사들은 긴 장마 기간에 잠깐이라도 푸른 하늘이 내비치면 재빨리 정원에 나가 배수로를 정비하고, 나뭇가지와 잡초를 솎아내며, 쓰러진 줄기는 부목을 대어 바로잡는 긴급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정원을 맡아줄 사람이 없다면 정원사에게 여름 휴가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정작 휴가를 떠나더라도 정원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겠지요. 비상대기, 긴급조치가 수반되어야 하는 7월이지만 진정한 정원사라면 이마저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고된 작업이 이어지는 여름 정원을 즐길 수 있으려면 정원에 대한 이해와 관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입니다.
1 정원 한쪽에 억새를 구성해보면 바람의 세기나 빛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억새 잎의 선과 결을 감상할 수 있다.
2 여름 꽃은 땡볕과 잦은 비, 태풍에 견딜 수 있는, 개화 기간이 긴 꽃이 좋다. 수국, 백일홍나무, 무궁화, 능소화, 원추리 등이 대표적. 사진은 서양누리장나무 꽃이다.
흔히 사람들은 정원을 꽃과 나무를 보고 즐기는 공간쯤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원을 구성하는 재료는 화초, 나무, 잔디 정도로 여깁니다. 하지만 정원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정원을 구성하는 재료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지구 상에 존재하는 식물은 몇 가지나 될까요?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히말라야 지방에서 자라는 고산식물에서부터 바닷속 깊은 물에 자라는 수생식물까지 아직 전인미답 前人未踏의 자연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원의 나라 영국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위슬리 가든(여기서 가든은 집에서 가꾸는 정원이 아닌 수목원이나 식물원보다 큰 규모의 관람용 정원을 의미합니다)의 보유 식물은 3만여 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한 정원에만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식물의 종류가 많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종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원을 구성하는 자연 재료의 하나일 뿐이고 일차원적인 수준입니다. 정원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격상시키려면 물, 흙, 암석, 비와 바람, 소리, 빛, 햇살, 주변 경관 등 유・무형의 자연을 정원의 재료로 활용해야 합니다. 또한 정원 가구, 소품, 조각, 오브제 등 인공적인 가공물도 정원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재료는 정원사 자신입니다. 혹자는 정원을 꽃과 나무를 가꾸고 일용할 곡식과 야채를 키우는 조그만 위락 慰樂 공간이자 생활 공간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의미를 확장해보면 정원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큰 규모의 창조적인 예술품입니다. 찰나의 순간을 담고 사계절을 담으며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즉 시간성과 공간성, 가변성이 표현되는 가장 오묘하고 복잡한 예술품입니다. 자연의 수많은 장면과 순간 중 몇 가지를 취사선택하여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은 바로 정원사입니다. 명상의 정원을 만들거나 위안과 치유의 정원을 만드는 것, 자연과 전혀 다른 정원 재료와의 조합으로 새로운 풍광을 연출하는 것, 정원을 탐욕의 수집 창고로, 저잣거리의 꽃 전시장으로 전락시키는 것… 이것은 모두 정원사의 몫입니다. 정원사의 개성과 열정, 품격, 방향성에 따라 정원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1 가끔 정원은 정원사가 의도하지 않은 풍경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각기 다른 형태의 잎이 달린 식물들이 빛을 산란시켜 입체적으로 보이는 여름 정원.
2 여름 정원의 대표적인 꽃 수국. 개화 기간이 한 달 이상으로 길며, 드라이플라워 형태로 이듬해 봄까지 피어 있다.
3 부케를 닮은 꽃을 피우는 7월의 쉬땅나무.
정원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넓다거나 기후가 좋다거나 보유 수종이나 희귀종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정원의 주인이 진정으로 생명을 사랑하며 온전한 품성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정원은 아름다워집니다. 그 주인이 정원을 구성하는 온갖 재료를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문학적・심미적 감각을 갖추고 있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정원이 되겠지요. 비교적 꽃이 드물고 기상 조건이 열악한 여름 정원에서 정원사의 내공은 필수입니다. 꽃의 계절 봄과 단풍의 계절 가을, 눈과 열매와 여백의 계절 겨울과 달리 여름을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의 이미지는 마땅치가 않습니다. 또한 여름 정원의 보존과 유지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여름 정원 사랑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름의 녹음방초 綠陰芳草가 우거진 숲에서 초록의 농담 濃淡과 무늬와 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꽃이나 나무의 수피와 수형 대신 여름에 가장 무성한 이파리들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요소들이지요. 나무의 잎과 풀들이 각자 갖고 있는 외형과, 함께 모여 보여주는 외형에서 초록의 짙음과 옅음, 다채로운 무늬와 결을 발견하여 거기에 문학적・감성적 물성 物性을 부여하면 단순한 초록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배가될 것입니다. 초록 배경에 악센트가 될 수 있고, 비와 바람이 잦은 기상 조건에서도 잘 자라는 여름 꽃들을 함께 구성한다면 여름 정원이 결코 무덥고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정원사 자신이 정원의 가장 중요한 재료임을 절감하는 여름 정원의 절정, 7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 최근 여름 정원에서 얻는 먹을거리로 각광받는 블루베리.
5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개량 수국.
6 특이한 모습의 꽃잎이 시선을 사로잡는 꿀풀과의 모나르다.
7 정원에 여름 향기를 전하는 꽃치자.
호랑가시나무 가지. 목질화되지 않은, 올해 나 새로 자란 가지를 채취해 삽목번식을 한다.
삽목번식을 해서 단기간에 정원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관목류(떨기나무, 줄기가 많고 키가 작은)가 삽목번식의 재료로 적정하다. 1 화살나무. 2 풍나무. 3 협죽도.
1 화살가시나무의 녹지 조제. 잎이 작은 것은 먼저 나온 잎들과 맨 위의 가장 약한 잎도 자른다. 2 녹지 조제 후. 3 호랑가시 나무 녹지 조제. 잎이 큰 것은 2개 정도 남긴 후 남긴 잎을 다시 잘라낸다.
4 호랑가시나무 녹지 조제 후. 5 협죽도의 녹지 조제. 잎이 긴 형은 맨 위 단의 잎을 남긴 후 부분적으로 남긴다. 6 협죽도의 녹지 조제 후.
천리포수목원 최창호 식물팀장에게 배우는7월의 가드닝 코치, 녹지삽목
7월은 장마전선이 올라오는 시기입니다. 정원사들이 분주하게 제초작업에 신경을 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잡초와의 전쟁에서 패하면 장마 기간 동안 잡초가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또한 강우량이 많을 경우에 대비해 정원 여기저기 배수가 불량한 곳은 배수 대책이 필요합니다. 화분에 심은 식물은 부쩍 잎이 무성해지니 화분과 화분 사이에 공간을 두어 식물 아랫부분까지 햇빛과 통풍이 원활하게 해줘야 합니다. 또한 7월은 녹지삽목(softwood cutting, 꺾꽂이)의 적기입니다. 녹지삽목은 올해 자란, 아직 목질화가 되지 않은 상태의 가지를 잘라 번식시키는 방법입니다. 7월을 놓치지 않고 녹지삽목을 해주면 큰돈 들이지 않고 정원의 식물을 풍성하게 늘릴 수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최창호 팀장에게 녹지삽목 방법을 배워봅니다.
녹지삽목을 위한 가지 채취와 조제 녹지삽목을 위해서는 올해 새로 난 가지가 생장이 멈추는 시기인 6월 하순부터 7월 상순 사이에 가지를 채취합니다. 자른 가지의 연한 상단 부분을 자른 후 잎을 두 장 정도 남겨서 조제합니다. 이때 잎이 큰 수종은 잎을 3분의 1 정도 자릅니다. 잎을 자르는 이유는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록수의 경우 녹지삽목이 잘되는데 그 이유는 잎에 큐티클이 있어 수분 증발이 적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대개 난대성 식물로 비교적 온도가 낮은 이른 봄보다는 여름에 발근이 잘됩니다. 가지의 길이는 10cm 정도가 적당하며, 자른 가지 끝은 45도 정도로 자른 후 반대 방향으로 2cm 정도 껍질을 살짝 벗겨냅니다. 이렇게 가지를 조제한 후 물에 담가 물을 충분히 빨아들이게 합니다. 조제된 가지는 준비한 삽목 상자나 화분에 2~3cm 정도 묻히게 꽂습니다.
녹지삽목의 용기와 용토 일반 가정에서 적은 양을 녹지삽목할 때는 화분이나 나무 상자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정원에서 대량으로 번식시킬 때는 대규모의 삽목 상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녹지삽목을 한 후에는 햇빛이나 불빛을 차단시키는 차광막도 필수입니다. 삽목용토는 물 빠짐이 좋고 무균 상태인 마사토나 모래가 적당하며 주로 펄라이트나 피트모스를 사용합니다. 이는 뿌리가 없는 삽수(꺾꽂이 묘: 꺾꽂이를 하기 위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낸 식물의 싹)를 고온 다습한 상태로 삽목하므로 삽수의 자른 면의 부패를 방지하려면 뿌리가 없는 삽수의 흡수를 촉진하고, 발근 부위에 충분한 산소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국의 녹지삽목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자. 다른 잎들도 과정이 동일하다.
1 수국을 녹지 채취한다. 2 잎이 큰 편이므로 맨 위 단의 잎을 자르고 2개만 남긴다. 3 남긴 잎을 3분의 1만 남기고 자른다.
4 줄기의 하단부 중 한 면은 문구용 칼로 짧게 자른다. 5 그 뒷면은 길게 자른다. 잔뿌리의 생성 면적을 넓히기 위해서다. 6 다 조제한 가지는 물에 담가 가지가 마르지 않게 한다.
7 삽목 시 상처 방지를 위해 나무젓가락으로 삽목할 구멍을 미리 만든다. 8 잘린 줄기의 하단 면에 발근 호르몬제를 묻힌다. 9 삽목한다. 줄기의 자라낸 부분이 흙위로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발근 호르몬제 잘린 가지에 뿌리가 좀 더 빨리 만들어지게 하려면발근 호르몬제(발근 촉진제)를 사용합니다. 식물 호르몬 중 줄기세포의 생장에 관여하는 것은 식물생장호르몬이라 하며, 옥신과 지베렐린이 이에 속합니다. 조제한 가지가 뿌리를 내리려면 우선 근원기 (rootprimordia)가 분화되어야 하며, 이것을 촉진하는 물질이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발근 호르몬제를 아랫부분에 묻혀주면 활착률과 생육이 좋아집니다. 삽목에 주로 쓰이는 식물호르몬으로는 분제인 루톤이 있고, 액체는 아도톤과 아토닉이 있습니다. 분제 형태의 루톤은 자른 부위에 바르기 편리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많이 사용합니다.
물 주기와 해 가림 삽목이 끝나면 물을 충분히 줍니다. 삽목 상토로부터 40~50cm 위에 40% 정도의 차광막을 만들어 강한 햇볕을 차단합니다. 또한 대량으로 삽목을 하는 곳에서는 공중 습도 유지를 위해 미스트가 필수입니다. 삽목 후에는 병충해 예방을 위해 일주일 간격으로 살균제를 물에 타서 뿌려줍니다. 삽목 후 1개월 정도는 음지에 놓아둡니다. 활착할 때까지의 물 주기는 상토가 조금 젖을 정도로 유지시키고 공중 습도는 높은 것이 좋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잎에 물을 뿌려줍니다.
뿌리가 생기는 시기 식물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보통 4~7주 만에 뿌리를 내립니다. 뿌리를 내린 삽목묘는 화분에 옮겨 심는데 이때 용토는 피트모스와 마사토 섞은 것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옮겨 심은 후에는 완효성 고형 비료를 주는데, 질소비료 성분이 남아 있으면 겨울에 동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작은 화분에 옮긴 묘는 얼지 않도록 월동시키며, 건조 방지를 위해 왕겨 등을 덮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녹지삽목의 장단점 봄철은 정원 관리에 가장 바쁜 계절인 반면 여름철은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또한 장마철이 있어 물 주기 등의 관리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입니다. 조직이 연한 가지를 이용하므로 뿌리가 더 빨리 내리며, 전정으로 버려지는 가지를 삽수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난대 수종의 경우 조직이 충분히 단단해지기 전에 겨울이 시작되어 삽목묘가 동해를 입기 쉽습니다. 이때는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별도로 관리해야 합니다.
이동협 씨는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했으나 현재 SBS아트텍에서 방송 관련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조그만 정원을 12년째 가꾸면서 각지의 정원 탐방과 공부에 열심이다. 그가 지난달 <천리포수목원의 사계-정원 소요>(디자인하우스)란 책을 펴냈다. 1992년 어느 일간지 기사를 보고 연을 맺어 이후 5년 동안 1백1번이나 드나들었던 천리포수목원의 사계를 에세이식의 문장으로 정리해놓은 책이다. 그의 블로그(blog.chosun.com/ydh208)에서는 더 많은 정원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