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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프랑스 와인 전문가 한상인 씨의 벽제 개성농장 와인의 향기가 머무는 풍류관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한상인 씨가 3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생전 풍류를 즐길 줄 아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새롭게 변모시킨 벽제의 개성농장. 저속으로 촬영한 사진처럼, 혹은 천천히 만든 슬로푸드처럼 시간이 갈수록 멋과 맛을 더해가는 한상인 씨의 와인의 향기가 맴도는 풍류관을 찾았다.


붉은 벽돌에 앤티크 철문으로 꾸민 다이닝 룸의 외관.

붉게 바랜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마당 한가운데 바람의 한숨에도 푹 꺼질 듯 흐드러지게 핀 자목련이 촬영팀을 반겼다. 한참이 지나도록 집주인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덕에 우리는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까지 세세하게 들릴 만큼 적막만이 깔린 정원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봄을 만끽했다.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이국적인 정취에 열에 들뜬 환자처럼 마음이 꿈틀거렸다. 묽게 채색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자연 속에 띄엄띄엄 나지막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프랑스의 프로방스를 빼닮은 이곳, 바로 프랑스 와인 전문가 한상인 씨의 집이다. 실제로 올리브나무 잎으로 드리워진 프로방스 돌집에 사는 음악가 정명훈 씨는 이곳에 와보고 ‘한국의 작은 프로방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멀리서 뒤늦게 한상인 씨가 잰걸음으로 달려 나왔다. “우리 집 꽃나무 너무 예쁘지? 매년 봄이 되면 겨우내 앙상하게 말라버려 죽은 듯한 나무에서 꽃이 다시 핀다는 거, 이거 기적이야. 우리는 모두 이런 기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지만. 요새는 웬만하면 약속도 안 잡고, 그냥 하루 종일 집에 있어. 자목련, 살구나무, 앵두나무… 요것들 보려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란다니까.”

(위) 높은 천장고에 어울리는 로코코풍의 의자들. 테이블 위에 센터피스는 앞마당에서 목련과 개나리를 꺾어다 한상인 씨가 직접 만들었다.


11900년대 도르레식 조명등 위로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2 자콥 드 라퐁의 세면대, 비데가 딸린 변기, 욕조로 꾸민 유럽식 화장실.
3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인도산 실크를 구입해 천갈이만 새로 한 1800년대 후반의 의자.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나는 벽제의 3만 평 터 2000년 프랑스 와인 전문가 한상인 씨는 30여 년간 프랑스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대학에서 언어학 관련 공부를 하고 강의도 해왔지만, 뒤늦게 프랑스 포도주 대학에서 시음 과정을 수료하고 르코르동 블루에서 포도학 수업을 받으면서 프랑스 와인을 알리는 ‘문화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귀국 이후 그는 프랑스문화원에서 고정적으로 와인 강좌를 진행하며 틈틈이 공식적인 국가 행사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09년 6월 1~2일에 열리는 아시아정상회담 한국 만찬 시 와인 선정, 고양시청 시장과 부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리더들을 위한 국제 식탁 예절 교육 등이 그러한 일이다.“밥 먹는 데 무슨 예절이 필요하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이거든. 서버가 와인을 따를 때 받는 사람이 와인 잔을 들지 않고 식탁에 그대로 둔 채로 받는 것, 원샷 하지 않고 와인이 잔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자작하게 남았을 때 와인을 받는 것 등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교양이지.” 북녘과 가까운 땅 벽제에 3만 평이 넘는 드넓은 터를 마련해놓고 그렇게도 통일을 바라셨던 아버지. 하지만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1950년대 초 개성상회가 한창 번창할 때 농장 축사와 약 창고로 사용하던 개성농장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버지는 당시 개성 상인으로서 성공한 분이셨지. 그러면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분이셨고. 군사정권 시절 야당 인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셨는데, 정치권과의 인연으로 한몫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단번에 거절하셨어. 그런 아버지 곁에는 늘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지. 멋쟁이 풍류랑이셨던 우리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는 홀연히 떠나버리셨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체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개성농장을 남겨주었다. 그곳에서 딸은 매일 아버지를 만난다.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마당에 작은 앉은뱅이 의자 하나 놓고 눈을 지그시 감으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아버지의 호탕하고 걸쭉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위)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라탄 소재의 소파가 놓인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한 거실.


1(왼쪽부터) 정교하게 조각된 바카라의 오리지널 아페리티프 잔, 모던하고 심플하게 디자인한 오늘날의 아페리티프 잔, 크리스털 돔의 샴페인 잔, 1910년대에 만든 바카라 와인 잔, 오퍼스 원 창립자의 모습이 새겨진 리델 와인 잔, 다리 부분에 포도주 모양의 조각을 붙인 생루이 크리스털.
2 클리냥쿠르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1900년대 초반의 샹들리에. 높은 천장고 때문에 쇠사슬의 길이를 늘리고 또 늘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3 부르고뉴 여행 중 자신이 태어난 해의 와인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 지금까지 소중하게 보관해온 1949년산 버건디 고르동 그랑 크뤼.
4 기름을 넣어 사용하는 프랑스의 옛날식 램프.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 공예에 컬러까지 입혔다. 


와인처럼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앤티크의 매력 한상인 씨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개성농장의 현대판 버전을 자신만의 주관대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평소 집에서 손님 치르기를 즐기실 만큼 사람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누구든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이후 개성농장은 지인과는 와인 한잔 따라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쉼터로, 가끔은 세미나나 공연 등 문화 이벤트를 열어 지적 욕망을 채워주는 배움터로 만인에게 열린 공간이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와인의, 와인을 위한, 와인에 의한 풍류관’이랄까. “원래 이 터에는 약 창고, 꿀 창고, 농장 축사 이렇게 건물이 세 채 있었지. 그 세 채 건물의 기본 틀은 그대로 둔 채 레노베이션을 했어. 대문을 따라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꿀 창고를 주거 공간으로 하고, 너른 마당을 끼고 있는 약 창고는 20명 정도의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다이닝 공간으로, 그리고 허브, 배추, 무 같은 야채를 오밀조밀하게 심어놓은 텃밭 옆의 건물은 주방 시설을 갖춘 자그마한 부엌으로 만들었어.” 세 채의 건물은 모두 통창을 내어 늘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도록 했다. 커튼도 블라인드도 달지 않아 허옇게 속내를 드러낸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은 한 모금의 와인을 더욱 달게 만들어주었다. 50년도 더 된 축사, 창고를 개조한 이곳은 진정한 앤티크 하우스다. 야외는 물론 집 안 여기저기에서 오래된 옛것이 주는 향내가 솔솔 풍긴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 카페에서 사용하던 테이블, 수동으로 작동하는 도르레식 조명등, 기름을 넣어 불 붙여 사용하던 옛날 램프 등 세월이 켜켜이 쌓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프랑스에 거주할 당시 한상인 씨는 마르셰 오 퓌세, 클리냥쿠르 등 프랑스의 유명 앤티크 벼룩시장에서 주말 오후를 보냈다. 이따금 상점 주인이 들려주는 중고품의 탄생과 계보에 관련된 사연은 더욱 그를 앤티크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사연을 알고 나니 어느 것 하나 흘려보낼 수 없었다.

(위) 1900년대 프랑스 카페에서 사용하던 테이블과 파리 메종&오브제에서 구입한 아프리카 지푸라기로 만든 소파가 놓인 2층의 베드룸. 무엇보다 대리석 상판에 주물 프레임, 정교한 조각의 다리가 달린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1 올가을, 와인과 문화에 관련된 책을 발간할 계획으로 틈날 때마다 집필 작업에 몰두하는 한상인 씨.
2 닫아놓으면 장식장, 열어놓으면 책상이 되는 ‘도서관’을 의미하는 1890년대식 비블리오테크.


해가 질 무렵이면 양손은 물론 머리와 어깨에 이고 지면서 앤티크 소품들을 집으로 날랐다. 이렇게 해서 모은 앤티크 가구와 소품들, 귀국 당시 그는 이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오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지금 그의 집 욕조에 설치된 욕조니 세면대도 이렇게 해서 가져온 것들이다. “세관에서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욕조랑 세면대까지 끌고 왔냐고 아주 이상하게 보더라고.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있어야지. 처음 이국땅에 정착해서 제일 먼저 정 붙인 것들이라 피붙이 같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거든.” 질투 많은 시간의 발톱에 할퀴어져 여기저기 생채기를 드러낸 앤티크들. 한상인 씨는 앤티크와 와인이 둘 다 시간을 두고 숙성을 요한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고 말한다. 틀어져버린 가구의 아귀를 맞추고, 문지르고 쓰다듬다 보면 와인에서 풍기는 깊은 향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개성농장, 한국의 멋과 맛을 알리는 베이스캠프가 되다 “우리나라는 테루아가 맞지 않아 가격이 비싸도 와인을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에게는 와인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한식이 있잖아. 앞으로 세계에 그걸 알리고 싶어. 김치, 고추장이 와인처럼 발효 음식이어서 당신네들의 와인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니 한식을 수입하라고.” 그 일환으로 한상인 씨는 오는 5월 개성농장에서 각국 대사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교류의 장’을, 6월 말에는 프랑스 부르고뉴 샤토에서 그네들의 와인과 우리의 한식을 매치한 갈라 디너를 준비하고 있다. 얌전하게 빚어 놋그릇에 담아낸 편수에 붉은 와인 한잔을 곁들일 줄 아는 맛과 멋이란! 한상인 씨는 앞으로 진정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해줄 일을 한식의 세계화에서 찾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상인 씨의 벽제 개성농장은 앞으로 그가 한식의 세계화를 이뤄나가는 데 주축이 될 베이스캠프와 같다.

3 1974년 결혼하던 해에 프랑스 리모주 마을에서 구입한 커피 잔 세트.


프로방스에서 공수해 온 분홍빛이 도는 돌판에 다리를 달아 직접 만든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저택의 밀실을 연상케 하는 와인 셀러. 바닥에는 자갈을 깔아 습도를 유지하게 했다.

황여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