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형 씨는 ‘N치과’로 2008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공간 디자인 부문 상, 한국실내건축가협회 황금 스케일 상 매일경제 신문 회장상을 수상했다. 최근작으로는 시니어 레지던스 ‘스타 시티 500’, LG패션 사옥 서관 등이 있고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공원화 사업에 디자인 마스터 플래너로 참여했다. 공간 디자인뿐 아니라 미술가로도 활동하며 지난 1999년 <월간 미술>에서 선정한 21세기 차세대 미술가로 선정된 바 있다.
청담동이 고급 레스토랑의 메카로 급부상하던 1990년 대 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레스토랑 궁, 해외 건축가들에게 더 큰 찬사를 받았던 남산의 와인 바 나오스노바, 드빌 화수목, 느리게 걷기, 툴펍, 패션 브랜드 마인의 로드 숍, N치과…. 모두 전시형 씨가 디자인한 공간이다. 세간의 이슈가 되었던 공간들을 디자인한 이의 사무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그를 찾으니, 평범하디평범한 방이 기다리고 있다. 문을 밀고 들어선 곳이 회의실인지 창고인지 의아해하다, 무표정한 유리 탁자 앞으로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 모습에서 이곳이 다름 아닌 그의 방임을 깨닳았다. “사무실 어디에도 디자인을 들이지 않았어요.” 눈과 마음을,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란다. ‘아무리 그래도 디자이너 사무실인데…’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지만 디자이너를 짐작할 만한 소품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는 소탐이 없어요. 물건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지요.” 물건에 탐닉하지 않는 디자이너, 흔치 않은 경우다.
(위) 디자이너 전시형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설치 미술가와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건축이 아닌 순수 미술을 했던 공간 디자이너다. 그의 디자인은 대부분 재료가 간결하다. 물성이 아닌 구조의 힘으로 공간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가 서있는 곳은 나오스노바의 계단.
남산에 있는 와인 바 나오스노바를 3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제가 생각하는 그린 스타일은 자연 현상과 맞닿는 면적을 최대화하는,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이지요. 햇살 좋은 곳에 창을 내고 바람 길을 고려해 구조를 세우는 것 같은. 외부의 자연 현상과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그린 스타일 아닐까요?” 그는 그 예로 남산의 나오스노바를 들었다. “도심 속 산기슭 경사지의 매력이 무엇이겠어요.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전경, 위로 보이는 푸른 숲과 하늘이지요.” 그는 지형이 품고 있는 ‘풍광’이라는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건물 앞뒤 면을 모두 유리로 마감하는 동시에 조명을 최대한 절제했다. 설계 도면에서 아예 천장과 벽면의 조명용 전기 배선을 제외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전기 배선도 모르는 건축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조명을 버린 그의 디자인은 뛰어난 ‘조명 건축’이라는 찬사를 받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내 주변이 밝으면 그 너머를 볼 수가 없어요. 즉 실내가 밝으면 어두운 바깥을 바라볼 수가 없지요.” 그는 드라마틱한 서울의 밤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명을 거두어낸 것이다. 바닥에 퍼지는 희미한 빛과 테이블 위의 작은 촛불이 유일한 빛이다. 밤이 되면 손전등을 들고 주문을 받아야 할 만큼 어둠에 휩싸이지만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내부의 어둠이 외부의 풍경에 자리를 내주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1 패션 브랜드 마인 숍의 외부 전경.
“나오스노바는 한국적인 공간입니다. 이곳은 옛 마을의 정자와 같은 곳이지요. 정자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합니다. 한 발치 떨어진 자연 속에서 마을을 한눈에 품지요.” 한국성이 곧 그린 스타일이라는 그. 시각적인 것으로만 해석하면 그의 작업에서 한국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로는 사이버틱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업들은 전통적이라기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방식, 사람과 공간이 소통하는 방식을 읽게 된다면 제가 말하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공간을 설명할 때면 언제나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낯설고 새로운 기분, 심리적 긴장감 등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장판지로 만든 명함을 내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명함을 처음 만든 13년 전은 전 세계적으로 오리엔탈리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지요. 당시 단청, 전통 문양 등으로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적이라고 여기는 소재나 문양은 다른 문화에도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장판지는 유일무이하게 한국에만 있는 전통 마감재. 그러나 그가 장판지를 선택한 것은 표피적으로 보이는 물성 너머에 존재하는 한국성 때문이다.
2 바닥에 조명 시설을 깔고 에폭시 수지로 마감한 나오스노바. 한 발치 떨어져서 보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바닥이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조명 박스처럼 보인다.
3 전시형 씨는 공간의 심리적 경험을 중요시한다. 곳곳에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를 숨겨놓았다. 툴펍의 내부 전경.
“장판지는 마루나 돌 같은 건축 마감재인 동시에 서양의 리넨 역할까지도 하는 소재입니다. 얼굴 같은 피부에 직접 닿아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부드럽고 온화한 재료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온돌 문화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전시형 씨는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에서 선보일 그린 스타일 개념을 온돌방에서 가져왔다. “온돌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는 잠을 자고 차가운 윗목에서는 공부 같은 머리를 쓰는 일을 하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온돌방을 유기적으로 해석한 수직 구조의 공간으로 그린 스타일을 풀었습니다. 8m 높이의 수직 공간에 층층이 서재, 거실, 부엌, 침실 등을 독립적으로 배치할 생각입니다. 공간 배치는 공기의 대류를 따릅니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오르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요. 그렇다면 수직의 공간에서 침실은 가장 따뜻한 맨 위에 놓여야 하고 서재는 차가운 공기가 지배하는 맨 아래층에 배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 현상에 순응하는 디자인,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그린 스타일 디자인입니다.”
4 날카로운 각을 지닌 모듈은 패턴이 되고, 패턴이 모여 조형성이 강조된 벽이 되고, 궁극에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냈다.N치과 복도 풍경.
5 도시의 야경과 오버랩되는 나오스노바의 모습. 그 안에 들어서면 주변의 풍광을 모두 끌어안건만 정작 외부에서 보면 이곳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지형에 묻혀 최대한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청담동이 고급 레스토랑의 메카로 급부상하던 1990년 대 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레스토랑 궁, 해외 건축가들에게 더 큰 찬사를 받았던 남산의 와인 바 나오스노바, 드빌 화수목, 느리게 걷기, 툴펍, 패션 브랜드 마인의 로드 숍, N치과…. 모두 전시형 씨가 디자인한 공간이다. 세간의 이슈가 되었던 공간들을 디자인한 이의 사무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그를 찾으니, 평범하디평범한 방이 기다리고 있다. 문을 밀고 들어선 곳이 회의실인지 창고인지 의아해하다, 무표정한 유리 탁자 앞으로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 모습에서 이곳이 다름 아닌 그의 방임을 깨닳았다. “사무실 어디에도 디자인을 들이지 않았어요.” 눈과 마음을,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란다. ‘아무리 그래도 디자이너 사무실인데…’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지만 디자이너를 짐작할 만한 소품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는 소탐이 없어요. 물건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지요.” 물건에 탐닉하지 않는 디자이너, 흔치 않은 경우다.
(위) 디자이너 전시형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설치 미술가와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건축이 아닌 순수 미술을 했던 공간 디자이너다. 그의 디자인은 대부분 재료가 간결하다. 물성이 아닌 구조의 힘으로 공간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가 서있는 곳은 나오스노바의 계단.
남산에 있는 와인 바 나오스노바를 3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제가 생각하는 그린 스타일은 자연 현상과 맞닿는 면적을 최대화하는,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이지요. 햇살 좋은 곳에 창을 내고 바람 길을 고려해 구조를 세우는 것 같은. 외부의 자연 현상과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그린 스타일 아닐까요?” 그는 그 예로 남산의 나오스노바를 들었다. “도심 속 산기슭 경사지의 매력이 무엇이겠어요.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전경, 위로 보이는 푸른 숲과 하늘이지요.” 그는 지형이 품고 있는 ‘풍광’이라는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건물 앞뒤 면을 모두 유리로 마감하는 동시에 조명을 최대한 절제했다. 설계 도면에서 아예 천장과 벽면의 조명용 전기 배선을 제외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전기 배선도 모르는 건축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조명을 버린 그의 디자인은 뛰어난 ‘조명 건축’이라는 찬사를 받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내 주변이 밝으면 그 너머를 볼 수가 없어요. 즉 실내가 밝으면 어두운 바깥을 바라볼 수가 없지요.” 그는 드라마틱한 서울의 밤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명을 거두어낸 것이다. 바닥에 퍼지는 희미한 빛과 테이블 위의 작은 촛불이 유일한 빛이다. 밤이 되면 손전등을 들고 주문을 받아야 할 만큼 어둠에 휩싸이지만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내부의 어둠이 외부의 풍경에 자리를 내주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1 패션 브랜드 마인 숍의 외부 전경.
“나오스노바는 한국적인 공간입니다. 이곳은 옛 마을의 정자와 같은 곳이지요. 정자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합니다. 한 발치 떨어진 자연 속에서 마을을 한눈에 품지요.” 한국성이 곧 그린 스타일이라는 그. 시각적인 것으로만 해석하면 그의 작업에서 한국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로는 사이버틱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업들은 전통적이라기 보다 미래 지향적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방식, 사람과 공간이 소통하는 방식을 읽게 된다면 제가 말하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공간을 설명할 때면 언제나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낯설고 새로운 기분, 심리적 긴장감 등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장판지로 만든 명함을 내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명함을 처음 만든 13년 전은 전 세계적으로 오리엔탈리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지요. 당시 단청, 전통 문양 등으로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적이라고 여기는 소재나 문양은 다른 문화에도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장판지는 유일무이하게 한국에만 있는 전통 마감재. 그러나 그가 장판지를 선택한 것은 표피적으로 보이는 물성 너머에 존재하는 한국성 때문이다.
2 바닥에 조명 시설을 깔고 에폭시 수지로 마감한 나오스노바. 한 발치 떨어져서 보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바닥이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조명 박스처럼 보인다.
3 전시형 씨는 공간의 심리적 경험을 중요시한다. 곳곳에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를 숨겨놓았다. 툴펍의 내부 전경.
“장판지는 마루나 돌 같은 건축 마감재인 동시에 서양의 리넨 역할까지도 하는 소재입니다. 얼굴 같은 피부에 직접 닿아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부드럽고 온화한 재료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온돌 문화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전시형 씨는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에서 선보일 그린 스타일 개념을 온돌방에서 가져왔다. “온돌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는 잠을 자고 차가운 윗목에서는 공부 같은 머리를 쓰는 일을 하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온돌방을 유기적으로 해석한 수직 구조의 공간으로 그린 스타일을 풀었습니다. 8m 높이의 수직 공간에 층층이 서재, 거실, 부엌, 침실 등을 독립적으로 배치할 생각입니다. 공간 배치는 공기의 대류를 따릅니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오르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요. 그렇다면 수직의 공간에서 침실은 가장 따뜻한 맨 위에 놓여야 하고 서재는 차가운 공기가 지배하는 맨 아래층에 배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 현상에 순응하는 디자인,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그린 스타일 디자인입니다.”
4 날카로운 각을 지닌 모듈은 패턴이 되고, 패턴이 모여 조형성이 강조된 벽이 되고, 궁극에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냈다.N치과 복도 풍경.
5 도시의 야경과 오버랩되는 나오스노바의 모습. 그 안에 들어서면 주변의 풍광을 모두 끌어안건만 정작 외부에서 보면 이곳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지형에 묻혀 최대한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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