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업을 마친 ‘매스리스 하우스’앞에서. 집 앞에 심은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이 거울 반사면에 그대로 비쳐 드라마틱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집이다. 그가 바라는 ‘그린’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배대용 씨는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동대학 건축도시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부터 B&A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건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대표작으로 ‘퍼즐하우스’ ‘비스트로디’ ‘알도꼬뽈라’ ‘흙집돌집’ ‘삼성출판사 사옥’ ‘KT&G 문화허브 상상마당’ 등이 있으며 한국실내건축가협회상, 명가명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지워나가기 그리고 투명해지기>가 있다.
산마루에 부숭한 햇살이 내려오고 흰 구름은 산을 넘어가는데, 이 집은 그걸 죄다 제 몸뚱이로 받아내고 있었다. 직사각형 집의 앞 얼굴이 온통 거울로 뒤덮여 한나절, 한 계절, 한 세월의 천변만화가 이 집 얼굴에 고스란히 비치는 풍경 風景, 아니 정경 情景. 집이라기보다 산마루에 세운 거대한 설치 작품 같은 이 집을 그는 ‘매스리스 massless 하우스’라고 불렀다. 굳이 해석하자면 덩어리 없는 집, 또는 질량 없는 집. 앞 얼굴만 봐서는 집인지 자연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집. 뒤꼍으로 돌아가면 통창으로 뚫린 평범한 집의 제 모습이 보이고 야트막한 산언덕이 마당처럼 펼쳐진 집. 나는 이 집을 ‘자연의 캔버스’라고 부르고 싶다.
1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앞에 설치했던 작품 ‘섬 시리즈-바위 의자’.
2 돌과 철판 박스로 만든 이 물건은 앞으로의 건축 작업을 위해 샘플링한 것이다.
그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더 이상의 수식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 집처럼. “땅이 이런 집을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땅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이 모든 걸 대신한다. 이야길 듣고 있자니 루이스 칸이라는 위대한 건축가의 일화가 떠오른다. 칸이 벽돌에게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물으니 “저는 아치가 되고 싶어요” 답했다는.
배대용 씨는 ‘자연이 만든 집’을 짓는다. 흙과 돌이 구조가 되는 ‘흙집돌집’, 세 채로 된 집의 채 사이를 거닐면서 자연을 호흡하는 ‘트리플 하우스’, 그리고 이 ‘매스리스 하우스’까지. 나무가 무성히 자라면 어느새 작아지는 집, 자연이 투영되도록 다른 장식은 걷어낸 집, 그래서 ‘자연이 만든 집’. 이를 위해 그는 건축의 9할은 자연을 차용하고, 나머지 1할 정도만 자신의 균형 감각을 슬쩍 끼워 넣는단다. 그의 이런 실험은 상업 공간에서도 벌어진다. 외관에 편마암을 사용한 ‘알도꼬뽈라’, ‘구름을 닮은 돌, 구름을 담은 공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식집 ‘스시꼬’(창원 더 시티 세븐) 그리고 ‘비스트로디’ ‘테이블 2025’…. 모두 ‘보는 공간’이 아니라 ‘느끼는 공간’, 표피적인 ‘감각’에서 떠나 ‘감성’, 곧 감미로운 풍취의 시정이 살아나게 하는 공간이다.
3 사무실의 물건들에서 그의 취향을 추측할 수 있다. 장르 구분하지 않고 즐기는 음악(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유국일 작가가 만든 스피커가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있다), 미술 전공하는 큰아들이 만든 인체 조각, 무용 하는 둘째 아들의 공연 사진….
4 그의 사무실 입구에 놓여 있는 이성근 작가의 작품.
그가 언젠가 자신의 가슴을 친 글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본래 자연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 우연히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자연에 뿌리를 두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아름다움이 자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고,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드러나게 할 수는 있다.’(<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시집 <바람이 나를 또 데려가리> 중에서) 나는 이 글이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소통하고 관계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자연, 그가 바라는 건축, 그가 꿈꾸는 ‘그린’ 정신이 아닐까?
5 역시 샘플링 작업한 유리 장미.
6 그는 평소 부츠를 즐겨 신는다.
그는 이번 리빙디자인페어에서 검은 물과 실 커튼, 빛만으로 표현한 ‘Cloud’를 선보일 것이다. 1cm 두께로 바닥을 덮은 먹물 위를 맨발로 걸으며 그 촉감의 기억을 몸에 새기는 것, 천변만화하는 자연을 촉감으로 체득하는 것이 이 작품의 요지다. “그린은 그리움이기도 해요. 자연이 사람을 보듬는 힘, 그 배려감을 우린 그리워하죠. 그렇게 힘 센 천연 진통제가 어디 있을까요? 어쩌면 자연은 이 ‘구름(cloud)’처럼 형체가 없는 것, 형체가 있더라도 쉽게 변하는 것, 만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치유의 힘은 대단하다,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어요.”
1, 3 창원의 신복합단지 ‘더 시티 세븐’에 위치한 일식집 스시꼬 Sushiko. 벽면을 따라 자연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무거운 바위가 마치 곧 흘러갈 듯한 가벼운 구름 형상을 보여준다. 그는 이 공간을 ‘돌구름’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검은 물과 실 커튼, 빛 사이로 그와 설치미술 작가 홍동희 씨가 함께 작업한 가구가 놓일 예정이다(홍동희 씨는 1998년부터 디자이너 배대용 씨의 작업에 건축 스킨과 아트워크 작업을 함께 했고, 현재는 가구 디자인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앞에 전시했던 ‘섬 시리즈-바위 의자’와 궤를 같이한다고 그가 귀띔해준다. 바위 한 면을 파서 만든 물건으로 바위인지 가구인지 정체를 알아채기 힘든 그 작품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여기에서도 그가 이야기하는 자연, 그린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위가 바람에 깎이고 빗물에 침식되는, 건강한 자연의 일생을 만날 수 있으리라. 날 선 이성보다 시정을 담은 감성으로 이야기하는 그이기에 그와의 대화는 안개비 속의 산책 같다. 그 뜻에 닿으려면 헤르만 헤세처럼, 그처럼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여야 할까? “여행의 동반자에게 귀 기울이듯이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나의 우울함은,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고상해지고 정화되었다. 내 귀와 눈은 예리해졌고, 섬세한 음들의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모든 생명의 박동 소리를 점차 더 가까이 더 명료하게 듣기를 갈망했다.”(헤르만 헤세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중에서)
2 흙과 돌이 구조가 되는 ‘흙집돌집’.
4 독일 명품 가전 ‘밀레 Miele’의 쇼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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