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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공간에서 찾은 병풍의 멋 모던한공간에서 찾은 병풍의 멋
이제는 연회나 제사 같은 특별한 의례에서나 볼 수 있는 병풍. 알고 보면 병풍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꾸준하게 사랑받아온, 실용과 미를 겸비한 생활용품이다. 바람을 막고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으로, 공간을 장식하는 오브제로…. 모던한 공간에서 찾은 병풍의 다양한 쓰임새에서 집 안 한구석에 잠자고 있는 우리 집 병풍의 활용 아이디어를 찾아본다.

바람을 막고 멋을 펼치다
병풍은 원래 외풍이 심한 겨울철에 바람막이로 사용하던 실용적인 장식품이다. 고려 신문왕 때인 686년
일본에 금은, 비단과 함께 수출했다는 기록과 병풍에 대해 쓴 문집이 발견되어 그 역사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해 내려오는 병풍은 대부분 조선 중기 이후부터 후기에 걸쳐 민화
또는 자수 작품을 주제로 만든 것으로,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병풍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왼쪽) 사방이 창문으로 된 최신 아파트에서 병풍처럼 쓰임새 좋은 장식품도 없을 듯. 소파가 놓인 2면에 걸쳐 창문이 이어지는 거실에 키가 큰 8폭짜리 대형 병풍을 세워놓아 바람막이 겸 햇빛 가리개로 활용했다.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가구와 병풍의 담백한 수묵화가 은은한 조화를 이루며 기품 있는 거실을 연출한다.
사군자가 그려진 병풍은 동아화랑, 소파와 테이블, 스탠드는 모두 아르마니 까사 제품. 레드 포인트 쿠션과 블랭킷, 과일 트레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장소는 반포 자이 아파트 내 디자인 에디혼(www.edihon.com)의 샘플 하우스.

(오른쪽) 부귀영화를 뜻하는 모란이 만발한 모란도로 만든 병풍을 침대 머리맡에 둘러놓아 화사하고 우아한 침실을 연출했다. 원래 예전에도 ‘침병’이라 하여 머리맡에 치는 작은 병풍이 있어 잠자리를 아늑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침대 헤드보드 대신 병풍을 둘러놓으니 한층 안정감 있다. 병풍은 김영석 전통한복, 침대와 코튼 침구 세트는 덕시아나, 사이드 테이블과 우드 체스트는 모벨랩 제품. 시계, 스탠드, 도자기, 화이트 블랭킷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글과 그림으로 소망과 기원을 담다
예로부터 병풍은 제례나 연회 등 의식 행사를 격에 맞게 연출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의식에는 행사 내용에 맞게 제작한 것을 사용했는데, 제례 의식에 사용하는 것은 보통 ‘주자가훈’ 또는 ‘수신제가’를 권장하는 내용의 글을 담았다. 회갑용으로는 화려한 꽃무늬와 십장생 등을 수놓은 자수 병풍인 수병을, 혼례용으로는 화려한 꽃무늬 자수 병풍이나 모란도 병풍을 사용했다.

예나 지금이나 화려한 잔치에 반드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병풍이다. 신년맞이 파티를 위한 테이블 세팅을 화려함이 돋보이는 수병으로 장식했다.
소나무와 불로초, 구름, 바위 등을 표현해 꾸민 십장생 수병은 예로부터 정초가 되면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한 달간 방에 둘러놓기도 했다.
현대적 세련미가 돋보이는 자수 병풍은 김영석 전통한복 제품. 식기와 테이블클로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선비의 멋과 여유를 펼치다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과 선비들의 서재는 늘 병풍으로 장식된 공간이었다. 특히 선비의 서재에는 학문을 위한 염원이 담긴 내용의 병풍이 자리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화로 꾸민 ‘책가도’다.
여기에는 선비의 애장물인 책과 문방사우를 중심으로 도자기, 화병, 부채 등과 여가 생활과 관련한 술병,담뱃대, 악기, 바둑판 등이 책과 책 사이에 적절히 배치되어 그려져 있다.

(왼쪽) 많은 책과 자료가 쌓여 있는 서재는 자칫 산만해 보이기 쉬운 공간. 이곳에 책상 뒤로 책가도 병풍을 쳐서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이 든다.
폭마다 독립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병풍 전체를 한 폭으로 삼아 그린 구도에 책가도 자체의 원근감이 더해져 한층 넓고 깊이 있는 공간감을 연출한다. 병풍은 대성표구사, 책상과 캐비닛은 모벨랩 제품. 액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른쪽) 두 폭짜리 소형 병풍을 병풍의 한 종류인 ‘연병 硯屛’처럼 연출했다. 먼지나 먹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벼루 머리에 치는 옥이나 쇠, 도자기로 만든 병풍인 연병의 쓰임새에서 착안, 이 소형 병풍을 연필꽂이 옆에 매치했다. 전통의 멋이 깃든 책상은 그 자체로 차분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의 서재를 꾸미는 데 도움이 된다. 병풍과 펜, 잉크, 문진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노트와 필통은 북바인더스 디자인, 2단으로 구성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책상은 모벨랩 제품.


지혜롭게 나누고 아름답게 숨기다
<한국의 병풍>을 집필한 이블린 맥퀸은 한국의 병풍처럼 다채롭게 사용하는 물건도 흔치 않다고 한다.
규방에서 여인이 옷을 갈아입을 때 가리개가 되어주고 자잘한 살림살이도 가려주는 등 일상을 ‘아름답게 숨겨주는’ 재치 있는 생활용품으로도 사랑받았다. 그리고 이는 모서리 공간에 멋으로 치는 두 쪽짜리 병풍, ‘가리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우리의 전통 주거 문화를 감안하면 쓰임새가 많은 병풍이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왼쪽) 경계가 모호한 부엌과 다이닝 룸 사이에 병풍을 쳐서 각각 별개의 공간이 되게 하는 효과를 냈다. 길게 뻗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모던한 부엌 가구가 돋보이던 공간은 고색창연한 빛깔이 멋스러운 민화 병풍이 자리하면서 한층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이 감돈다.
배접 자체가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의 병풍이 미니멀한 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모란과 신선 등을 그려 넣은 민화 병풍은 김영석 전통한복, 검은색 가죽 암체어와 사이드 테이블은 모벨랩, 부엌에 놓인 보라색 냄비는 르크루제 제품.

(오른쪽) 응접실 뒤쪽으로 에어컨과 청소기 등 각종 가전제품이 나열된 스튜디오 공간을 가리기 위해 금색 글씨가 쓰인 병풍을 세워놓았다.
공간 분리용으로 병풍을 선택할 때는 공간 형태와 비례에 따라 병풍의 높이와 폭을 정한다. 노출 콘크리트와 모던한 가구 등으로 도회적 분위기가 나는 공간에 금색 글씨의 서예 작품을 매치하니 한층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서예 작품 병풍과 가구, 스탠드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정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