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엌 쪽에서 바라본 거실 공간. 고급스러우면서도 모던한 멋이 느껴지는 가죽 소파와 패브릭으로 마감한 1인용 암체어는 모두 로쉐보부아(02-542-8141)에서 구입했다.
결혼 5년 차 부부 김재현·전성만 씨의 압구정동 아파트는 마치 갤러리를 보는 듯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집 안에 들어서면 벽면 하나에 가득 찬 커다란 그림 한 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떤 장치도 가미하지 않은 무색의 공간은 화폭 위의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필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경제의 흐름을 늘 주시해야 하는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남편 전성만 씨는 혼자서도 갤러리에 들러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풍요로운 감성의 소유자다. 그에게는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아내 김재현 씨는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현재 시립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 예술은 특별히 향유하는 것이 아닌 생활이고 일상이다. 그 예술적 취향과 감수성을 그대로 담은 요란하지 않은 평화로운 집, 이것이 바로 이들이 꿈꾸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늘 다른 법. 김재현·전성만 씨 부부가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건축한 지 30년 된 구식 아파트로 평화로운 것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낮은 천장, 조각조각 나눠진 방, 공간만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세 개의 베란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버려진 공간들이 가장 문제였다. 김재현 씨의 강력한 주장으로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지어진 전형적인 옛날 아파트는 묵은 때를 완전히 벗고 한결 세련되고 감각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레노베이션에 대한 계획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불필요한 공간을 과감하게 없애는 대공사를 감행했죠. 이 과정에서 방 두 개를 하나로 합친 AV룸을 겸한 서재가, 드레스 룸으로 쓰였던 방 하나를 확장해서 넓고 쾌적한 욕실이 만들어졌어요. 남편과 저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거죠.”
서재와 화장실 확장과 함께 거실과 부엌, 방마다 자리하고 있던 베란다 역시 모두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배선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천장도 뜯어 냈다. 공사는 한성아이디(02-430-4200)에서 맡았다. 덕분에 답답했던 구조가 한층 넓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2 침실로 통하는 문은 미닫이 형 으로 제작해 거실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벽에 걸린 유화 작품은 올해 아트페어 전시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독일 출신 작가 Klaus Zylla의 작품.
1 오직 수면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민 부부 침실. 천장 가장자리로 가벽을 대어 간접조명을 설치했다.
2 군더더기 없는 모던한 디자인과 나무와 돌 등의 자연 질감으로 휴식의 이미지를 담은 욕실 공간.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거실은 깨끗한 화이트 벽과 모던 스타일 가구, 이국적인 색감의 그림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하나씩 채워갈 그림을 염두에 둬 어떤 장식도 가미되지 않은 깨끗한 화이트 벽지를 사용했다고. 베란다 확장으로 생긴 시원스러운 통창에는 화려한 패턴의 패브릭 커튼 대신 하늘거리는 화이트 시폰 커튼을 달았다. 가구들 역시 단출하다. 일자형 가죽 소파와 심플한 테이블, 장식장 등의 가구는 가장 단순한 형태를 선택했고, 그린 계열의 패브릭으로 제작한 암체어와 오랜지색 쿠션으로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따뜻한 느낌을 부여했다.
거실에서 이어지는 부엌 역시 화이트 톤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베란다 확장과 함께 창문을 가로막고 있던 상부 장을 모두 없애니 부엌은 따사로운 햇살이 그대로 통과하는 한층 밝고 기분 좋은 공간이 되었다. 식탁 공간을 더욱 여유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부엌의 조리공간은 간소화했다. 중후함이 느껴지는 진한 원목 식탁 뒤로 보스턴 여행 중 사온 풍경화를 걸어놓으니 마치 갤러리 카페에 온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부부 침실은 온전히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방 한가운데에 혼자 덩그러니 놓인 넓고 편안한 모습의 침대가 인상적이다. 어둠을 밝혀줄 스탠드 조명등 두 개 외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았으며, 은은한 하늘색 패브릭 벽지를 포인트로 사용해 온화한 느낌을 더했다.
3 베란다 확장을 통해 한결 밝아진 부엌 공간.
“자세히 살펴보세요. 이 집에서 외부로 노출된 조명등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식탁 위에 달아둔 빨간 펜던트 조명등이 유일하죠. 거실, 침실, 화장실, 서재 등 집 안의 모든 조명은 간접조명으로 처리했어요. 이로 인해 낮은 천장고로 인한 답답한 느낌이 줄어들고, 한결 부드럽고 은은한 빛이 집 안에 감돌게 되었죠. 책이나 서류를 읽는 데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습니다. 꼭 필요한 곳에는 자그마한 탁상용 스탠드를 두고 사용하고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답니다.”
김재현·전성만 씨 부부의 아파트는 과감한 비움을 통해 스타일을 더한 집이다. 사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멋을 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 담백함이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는 모던한 공간 안에 리듬을 타는 듯 아름다운 색채들이 어우러진다. 그저 장식이 아닌 공간 안의 주인이 되는 그림 한 점, 여유 한 줌이 있는 집이다.
4 미니멀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태어난 욕실. 바쁜 아침 시간, 나란히 이를 닦을 수 있도록 제작한 부부 세면대가 시선을 끈다. 투박한 멋이 느껴지는 고재 테이블은 친정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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