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집은 이태원의 골목길, 둥글게 깎인 집 터 위에 서 있다. 차량이 오가는 쪽의 건물 북쪽 외관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보호하듯 감쌌다.
2 창문은 같은 소재의 타공 패널로 마감했다. 살짝 드러내기, 살짝 감추기.
집은 살아 있다. 집은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고 사랑을 한다. 집은 힘이 세다. 누추하고 불편하고 아무리 멀어도 돌아오게 하는 힘을 지녔다. 집은 가족이다. 부모형제들처럼 사랑하고 다투며 기다린다. 집은 때론 지옥이다. 악다구니와 원망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집은… 늘 그립다. 우리가 만나게 될 이 집은 아직 의자 하나, 개밥그릇 하나, 휴지 하나 제 자리에 들어오지 못한 빈집이다. 그럼에도 이 집은 살아 있다.
화학 부식시킨 스테인리스 스틸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처음엔 갤러리이겠거니 짐작하고 넘길 만한 집이다. 어느 순간 철문이 브라운관 TV 문짝처럼 열리는데 그 안쪽에 주방이 슬쩍 보인다. 아, 살림집이다. 집주인이 살림을 들이기 전, 우리는 이 집을 빈 집으로라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개인사가 공개되는 걸 꺼려한 집주인의 바람이었지만, 우리는 빈집을 찍으며 오히려 특별한 시간을 즐겼다. 빈집이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는, 아주 특별한 시간.
남산에서부터 천천히 경사를 따라 내려오다 마주친 이태원 골목길에 이 빈집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이태원에 무슨 골목길이 있을까 싶지만, 이태원의 진짜 매력은 그 이면에 가지를 뻗은 골목길이 있는 동네다. 남산이 서남 방향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지형의 경사가 가팔라지는데, 그 경사진 땅에 집이 들어서면서 골목길이 생겨났다. 긴 담들과 작은 대문들이 이웃해 있는, 리듬이 느껴지는 골목길로, 눈의 방향 감각보다는 경험과 기억에 의한 방향 감각이 더 쓸모 있는 길이다). 그 골목길, 경사를 따라 내려오던 자동차들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느라 어리둥절해지는 한 귀퉁이에 집이 서 있다. 자동차들이 몸으로 낸 길 때문에 땅의 귀퉁이도 이미 둥글게 깎인 집터다. 그 땅의 형태를 따라 집도 둥글게 깎여 있다. “집터가 좀 작아서(202㎡, 약 61평) 집 모양도 땅의 모양을 따라 깎을 수밖에 없었어요. 작은 땅에 가장 큰 집을 지어주려고 담도 만들지 않았어요. 대신 도로에서 등을 돌려 집을 앉히고 도로와 면한 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감싸고 보호해준 거죠. 도로 쪽으로는 창문도 내지 않았어요.”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최성희 씨와 로렌트 페레이라의 설명이다.
1 1층 거실 바닥은 살림집에 잘 쓰지 않는 인조석 물갈기 마감으로 처리했다.
2 건물 남쪽은 따뜻한 느낌의 나무 소재로 감쌌다.
3 다락방 계단처럼 생긴 3층 계단을 오르면 바로 옥상이 나타난다.
검고 무뚝뚝한 첫인상의 이 집 1, 2층엔 눈썹만 한 창문 두 개가 나 있다. 하늘 위로 슬쩍 트인 천창도 1, 2층에 있긴 하지만, 눈썰미 없는 사람들은 쉽게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러다 1층의 타공판이 옆으로 스르륵 움직이면서 집이 열리게 된다. 한 발짝 들여놓으면 고갱의 그림 ‘열 송이의 해바라기’에서 본 듯한 원시적인 주황색이 드러난다. 주차장이다. 주차장을 통과하면 바로 주방이 보인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죠. 주차장에서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엄마가 장을 봐도 주차장을 거쳐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고, 퇴근한 아빠가 주차장에 내려 주방으로 들어가 엄마에게 퇴근 보고하잖아요. 부엌은 가장 왕성한 생산과 활동의 공간이니까요.” 도시계획자 김진애 씨도 그의 저서 <이 집은 누구인가>에서 20세기에 마당에서 거실로 바뀐 집의 중심이 21세기에는 부엌으로 이동할 거라고 말했다. 온 가족이 만나는 사교의 장이자, 누구나 드나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미래의 마당이라 했다. 김진애 씨의 설명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의 집에선 늘 부엌이 집의 사령탑이었다. 둥글게 둥글게 제비 새끼처럼 앉아 밥 숟가락 높이 들고 어머니가 나눠주시는 고기 반찬 착하게 나눠 먹는, 어머니 옆 자리.
부엌을 거쳐 거실 겸 다이닝룸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집 안이 밝고 환하다. 막혀 있던 도로 쪽 외관과 달리 정원이 앞으로 탁 트여 있어서다. 이 집은 도로 쪽으로 닫힌 북쪽에는 주차장·계단·주방·욕실이 자리하고, 남쪽의 정원을 향한 곳에는 침실과 거실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남쪽의 겉 껍데기는 온기가 느껴지는 나무로 마감되어 있다. 그런데 집 안은 온통 흰색이다. 벽도 천장도 ‘도끼다시(인조석을 물갈기해서 시공하는 방법)’한 바닥도 클로로포름 냄새를 살짝 풍기는 흰색이다. “흰색인데 방향에 따라 좀 다른 흰색이에요. 북쪽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는 계단·주방·욕실의 흰색은 푸른빛이 감도는 흰색, 남쪽의 따뜻한 빛을 머금은 침실·거실의 흰색은 우윳빛 감도는 흰색. 직사광과 반사광이 변하면서 집 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내는 걸 보고 싶었어요.” 그들의 바람대로 빈집엔 바람이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면서 수런거리고 먼지도 일으키고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1, 2 2층을 관통하는 나선형 계단. 벽면에 부착한 빔과 천장과 바닥을 이어주는 쇠 봉이 하중을 지탱해준다.
3 지하층에서 1층, 다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실. 건축가의 바람대로 직사광과 반사광이 오가면서 집 안에 조금씩 다른 색을 더해준다.
4 3층의 드레스룸. 비비드한 오렌지 컬러로 포인트를 준 붙박이장 옆에는 옥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설치돼 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던 추억의 계단처럼.
30대 부부와 두 자녀가 살게 될 거라는 이 집에서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2층의 계단이다. 수직 상승의 욕구를 마구 마구 부추기는 나선형 계단. “피에르 샤로Pierre Chareau(20세기 초의 프랑스 대표 건축가)의 ‘메종 드 베르maison de verre(글래스 하우스)’에 가면 이런 계단이 있잖아요. 계단을 오를 때마다 통통통 움직이는. 이 집의 계단은 그렇게 통통거리진 않지만 지지대 없이 하늘로 상승하는 그런 계단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힘을 지탱하는 빔을 벽에 하나씩 박고, 계단 하나마다 철로 된 봉을 세 개씩 천장과 바닥에 고정시켜주었다. 이 철로 된 봉은 핸드레일 대신이기도 하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을 상하로 이동시키는 기계 같은 계단이 아니라, 계단이 지닌 성격·로망·색깔을 풀어내주고 싶었단다. 그 계단은 재크의 콩나무처럼 위로 타고 올라 천창과 맞닿는다. 그 계단을 타고 역시 바람과 햇살이 오르내린다.
모름지기 집은, 사람이 살아가며 스치는 순간?장면?기억이 담겨 있어야 한다. 사람살이가 생생하게 포착되는 집일수록 집의 뜻이 커지고 집의 맛이 더해지는 법이다. 이 집엔 아직 어떤 기억도 담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마주한 집 안은 건조하고 지쳐 보였다. 하지만 해의 느린 걸음을 나무늘보처럼 따라다니며 살피니 빈집엔 조금씩 평화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우린 깨달았다. 가장 낮은 우울부터 가장 따뜻한 도취까지 담아내는 집이라는 묘한 상자에 대해. 역시 집은 그것만으로도 힘이 세다. 빈 빌딩, 빈 예배당, 빈 정류장, 빈 공항이 지니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힘을 빈집은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빈집은 충분히 아름답다.
1 1층의 거실. 단단히 감싸인 건물 북쪽에 비해 남쪽은 마당으로 환하게 뚫려 있다.
2 기능을 극대화한 나치 시절의 샤워기를 닮은 샤워부스.
3 히노키 욕조를 설치한 욕실.
“밖에서 검은색 자동차들이 부산하게 움직일 때면, 집 안에선 조용한 사람들이 침실에서 거실로 주방으로 가볍게 옮겨 다니다가, 옥상에 올라가 푸른 남산과 남쪽 시내를 바라보죠. 그러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 웃게 될 테죠. 이게 이 빈집이 꾸는 꿈입니다.”
4 북쪽의 스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차장을 거쳐 이 부엌이 나타난다. 건축가는 미래의 마당은 부엌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부엌 안의 사람은 촬영 스태프다.
5 들고 나는 사람이 맨 처음과 맨 마지막 통과하는 이 집의 관문, 주차장.
- 빈집의 평화 이태원 골목길의 스테인리스 스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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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엔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다. 흰 벽, 천장, 바닥과 거대한 계단만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감싸인 건물 안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수런거림도 들리고 무언가 움직인 것처럼 그림자도 너울댄다. 분명히 빈집인데도 말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