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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노베이션 스토리 컬러와 곡선으로 맞춘 집
집 안 곳곳에 원색이 등장하는 연희동 빌라 1층 집은 노란 터틀넥 위에 보라색 오버롤즈를 매치하고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반기던 집주인과 꼭 닮아 있다. 네 식구의 취향과 건축가의 스타일이 알맞게 녹아든 집에서 가족은 다시 한번 여정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연희동 컬러풀 하우스는 김동주 씨 부부와 아들, 강아지 카라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사는 보금자리다. 샛노란 주방 가구와 어울리는 착장으로 취재팀을 반겨주었던 김동주 씨와 강아지 카라.
다용도실이 있던 곳까지 주방을 확장하고, 하부장은 거실까지 뻗어가도록 디자인해 협소한 공간을 개선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돌아온 김동주 씨 가족에게 연희동 빌라는 한국에서 마련한 첫 보금자리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부부에게 일터까지 5분 거리인 것, 무엇보다도 미국의 백야드backyard를 닮은 정원이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빽빽한 아파트는 닭장 같은 느낌이던 부부에게 햇볕 따사로운 날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렇게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23년. 집도 나이가 들었고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둘 나타났다.

“6~7년 전부터 누수 때문에 바닥이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우수관이 넘치면서 부엌으로 물이 새어 들어온 거죠. 디자이너에게 몇 번 의뢰해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되었고, 곰팡이 문제는 갈수록 악화됐어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디자이너를 찾아 나섰어요.”


중문 대신 하늘색 하부장을 설치한 현관. 신발장은 위아래로 환기구를 설치한 형태로 위트를 줬다.
하늘색으로 포인트를 준 거실. 에어컨을 교체한 덕분에 정원 뷰가 한층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대목에서 <행복>과의 인연이 드러난다. 김동주 씨가 자동차 정비소에서 우연히 펼친 잡지에서 마음에 꼭 드는 집을 발견한 것. 그는 삼공이오 김학중 소장이 설계하고 또 직접 살고 있는 평창동 집의 깔끔한 바닥과 컬러로 포인트를 주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날 밤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집을 방문한 건축가는 셜록 홈스처럼 집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그가 바라던 전문가의 면모를 십분 발휘했다. “정원을 비롯해 저조차 알지 못하던 집의 모습을 간파해주었어요. ‘20년 넘게 살다 보니 너무 익숙해져서 내 집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깨달으면서 더욱 신뢰하게 됐죠.”

김학중 소장 또한 미팅을 거듭하며 김동주 씨와 겹치는 취향을 확인했다. “컬러풀한 컨버스를 즐겨 신는데, 늘 알아봐주시더라고요. 평소 스타일에서도 색을 좋아하는 취향이 느껴졌고요. 집의 가장 큰 문제였던 누수를 해결한 다음 컬러로 활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관에서 바라본 복도에는 거실까지 진출한 노란색 주방 가구가 보인다. 가족이 살아가면서 채울 수 있도록 일부는 오픈장으로 디자인했다.
욕실 벽면은 하늘색 타일로 마감해 청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로의 취향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며, 구옥 빌라는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속도로 바뀌었다. 완성된 집에 들어서면 하늘색 현관과 욕실이 반기고, 자작나무 사이딩을 하얗게 칠하는 사치를 부린 복도는 매끈하고 단단한 파사드를 뽐낸다. 한 가지 색상으로 포인트를 주기보다는 가족의 서로 다른 취향을 반영해 여러 색을 곳곳에 매치한 것. 누수 문제를 해결한 후 그레이색 리놀륨을 시공해 꺼짐과 요철까지 말끔해진 바닥은 잔잔한 배경이 되어 집의 중심을 잡아준다.

복도를 지나 주방 겸 다이닝 공간에서는 샛노란 가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건축가의 첫 번째 솔루션이 등장하는데, 바로 주방을 거실까지 연장한 것. 더 정확하게는 주방 가구와 테이블이 거실을 향해 뻗어 나와 있다.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 정말 협소했어요. 주방과 거실 각각의 역할이 있기에 가구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존의 평면을 유지한 채 디자인으로만 풀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경계 넘기를 감행했죠. 복도에서 바라봤을 때 주방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도록 둥글게 디자인했고요.”


아들 방은 초록 정원 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붙박이장을 없애고 창을 넓게 냈으며, 창을 따라 책상을 길게 설치했다.
안쪽 욕실에서는 빨간색으로 도장한 금속 선반이 포인트다.
건축가의 바람대로 거실로 뻗어나간 가구는 공간만이 아니라 가족의 생활까지 넓혀줬다. 김동주 씨는 이곳 테이블을 가족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소로 꼽는다. “주방과 다이닝 공간은 집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었어요. 접이식 테이블을 쓰기도 하고 거실에 테이블을 놓아보기도 했지만,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죠. 이제는 가족이 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아요. 미국에서 딸네 가족이 왔을 때도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공간 구성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중문 때문에 좁게 느껴지던 현관은 문 대신 하부장만 두어 개방감을 줬고, 반대로 면적이 지나치게 넓던 아들 방은 벽을 세우고 일부를 더스트룸으로 분리했다. “더스트룸은 가족이 집에 돌아와 외투를 걸어두고 실외용품을 보관하는 곳이에요. 생활이 편리하고 각 방의 수납공간도 줄여주죠. 아드님 방은 한 켜 더 분리되면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는 장점도 생겼고요.”



집 안 곳곳에 크고 작게 자리한 동그란 디테일들.
김학중 소장이 마지막으로 더한 것은 정원의 재발견. 집의 세 면을 모두 감싸는 정원은 서울 도심의 빌라에서 또 이런 집이 있을까 싶을 만큼 이곳만의 매력적인 장점이다. 가족이 이사 대신 집 수선을 선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정도로. 문제는 여러 이유로 그 풍경을 오롯이 누리지 못했다는 것. “붙박이장이 넓게 자리 잡고 있어서, 침대가 창 옆으로 놓여서, 에어컨이 시야를 가려서 등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어요. 아드님 방은 붙박이장을 더스트룸으로 옮기고, 아버님 방은 상부 창을 아래까지 내어 채광을 확보하는 식으로 막혀 있던 부분을 열어주었어요.”

김동주 씨의 집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집수선이 성공할 수 있던 것은 여러 어려움에도 이 집을 떠나지 않고 장점을 지키려 한 가족의 의지와 전문가의 시선으로 그들이 놓치고 있던 모습까지 발견해준 건축가의 노력이 합쳐진 덕분이다.

“예전 집의 기억을 떠올리면 변해버린 한국에 적응하던 제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내 집을 꾸민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 지어놓은 집에 맞춰 살았지요. 옷에 비유한다면 기성복을 낡을 때까지 입은 거예요. 지금은 20년 살아온 집인데도 새롭게 발견하고 있어요. 나한테 딱 맞는 옷이 주는 기쁨을 오롯이 누리는 중입니다.”



건축가 김학중은 디자인 설계와 시공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안팍건축을 운영하며 주택 리모델링부터 오피스 빌딩 신축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지금은 주거 공간 인테리어 브랜드 삼공이오(@3025.kr)의 수장으로 활동 중이다. 삼공이오는 제곱미터 단위의 면적을 평으로 환산할 때 사용하는 숫자 0.3025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생활의 밀접한 동선과 유머스러움을 담아 클라이언트에게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을 연결해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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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