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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야코포 포지니Jacopo Foggini 과거와 현재, 두 세계의 평행 이론
정오의 태양이 내리비치면 따뜻한 온기가 가득 차고 황금빛 물결이 일렁인다. 반짝이는 금빛은 14세기 유물이 보여주는 과거의 파편과 20세기 산업 신소재로 만든 작품을 모두 흡수한다. 과거와 미래, 시간과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 생소한 느낌. 전위적 디자이너 야코포 포지니의 토리노 언덕에 있는 저택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다.

야코포 포지니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선조들이 수집한 고대 항해도와 대항해 시대의 함선 미니어처 모형이 놓인 벽난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저는 이 집을 ‘커다란 모험선’이라 표현하고 싶어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담고 있는 곳이죠.”
디자이너 야코포 포지니Jacopo Foggini의 아티스틱한 여정의 시작은 다섯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토리노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그림책에서나 볼 법한 무서운 기계 괴물에서 메틸 메타크릴레이트methyl methacrylate가 물방울처럼 “똑”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를 목격한다. 자동차의 미등이나 사이드미러의 부품으로 사용하는 물질의 미적인 특성에 일찍이 매료된 그는 성인이 된 후, 메타크릴레이트를 200℃까지 가열하는 기계를 직접 개발하며 이를 자유롭게 성형할 수 있는 필라멘트 형태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빛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는 브릴리Brilli 샹들리에는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주인공이다. 피아노 앞에 놓인 지나Gina 체어와 곧 살아 움직일 듯한 다리가 특징인 플로어 램프는 에드라와 합작해 만든 것. 벽에는 1500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벨기에산 아라초arazzo 작품을 걸었다.
‘반항아’의 귀환
그는 토리노 남쪽으로 펼쳐진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즈넉한 언덕가에 산다. 과거에 고립되어 현재와 완전히 분리된 것 같은 유구한 역사의 저택은 유연함을 지닌 동시에 단단한 저항력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을 담아내는 갤러리이자 실험실이다.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의 작품은 유려한 색이 마구 얽히고설켜 오묘한 빛의 미로를 만들어낸다.

30년 전, 그는 스케치북과 연필만 가지고 아무 연고도 없는 밀라노로 떠났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의 샹들리에를 제작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고, 에드라Edra에 합류해 ‘엘라Ella’ ‘마르게리아Margheria’ 체어 등 화제작을 만들었다. 반항아처럼 떠났지만, 그는 결국 가족 대대로 이어온 유산이자 유년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토리노로 대성해 돌아왔다. “저는 이 고향 집을 ‘커다란 모험선’이라 표현하고 싶어요. 반항적이고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바탕이 되어주었으며, 자칫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을 수 있었지만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거든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은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붉은 벽돌로 덮인 천장 아래에는 코퍼 냄비와 프라이팬, 행운과 부를 상징하는 수탉 오브제가 놓여 있고, 슈퍼노바Supernova 샹들리에가 아름답게 빛난다.
이야기가 금처럼 반짝이는 집
바로크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저택에는 그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선조들이 모은 앤티크와 예술 작품이 가득하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영혼이 깃든 오브제 및 가구들이 들어선 곳에 자신의 작품을 가져오고자 했을 땐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원래 일부이던 것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걸 체감했어요.”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자, 이곳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 바로 ‘금빛’이었기 때문. 빛이 쏟아지는 오후가 되면 곳곳에서 펼쳐지는 금빛 향연이 예술에 대한 그의 안목과 식견, 독창성과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온갖 향과 색에 둘러싸여 자랐어요. 아버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실 때마다 아버지를 돕곤 했어요. 부엌에는 그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죠. 반면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역사 서적 읽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서재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걸러진 빛이 브릴리 샹들리에에 닿으면 그 사이로 빠르게 굴절되며 다이닝룸을 금세 황금빛으로 밝힌다. 과거의 미술품과 그의 현대 작품으로 가득한 집은 예술 작품이 어떻게 일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윤곽선이 삐죽삐죽한 에제오Egeo 테이블과 엘라 암체어는 야코포가 에드라를 위해 디자인한 것. 

“제가 만약 디자이너나 예술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화감독이 되었을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죠. 모든 일은 망설이기보다는 실패를 생각하는 것이 나아요. 오직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믿어요.”

심해를 유영하는 해파리를 닮은 샹들리에 조명, 은은한 바다색을 띠는 에드라와 협업한 체어 등 그는 바다나 물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새해 첫날에 꼭 하는 저만의 전통이 있어요. 마당에 있는 저쿠지에서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죠. 반신욕도 하고, 잠수도 하면서 생각을 합니다.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살 수 있어서 전 정말 행운아라고 말이죠.”


“일에 대한 열정,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하며 제가 원하던 삶에 다가가고 있어요.” 야코포 포지니가 명상하는 자세로 자신만의 지론을 이야기한다.
야코포 포지니의 작업을 만날 수 있는
에드라Edra
1987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설립했다. 전위적 디자인과 기상천외한 소재로 항상 화제에 오르지만, 진면목은 뛰어난 품질에 있다. 예술성과 기능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 하이테크 기술을 적극 적용하기 때문이다. 아트 디렉터 마시모 모로치Massimo Morozzi는 고정된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 남다른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를 발굴, 매번 새로운 표정을 담고자 노력한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 캄파나 형제The Campana Brothers 등과 협력했다.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지닌 에드라 제품은 무미건조한 공간을 환기하고, 마치 갤러리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브랜드명은 로마 시대 건축물 중 좌석이 있는 공간, 대화를 위한 장소를 뜻하던 에세드라exedra를 축약한 것이다. 참고 http://www.edra.com


사진 Valentina Sommariva 취재 협조 www.jacopofoggi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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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주연 | 기획 계안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