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산 성곽길 한옥 지금zikm 디자이너, 지금의 한옥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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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목적은 쓰임새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디자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스타일을 만드는 데 집착하기보다 “어떻게 쓰일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집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낙산 성곽길에 자리한 한옥 ‘지금zikm’은 전통의 재구성을 넘어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담백한 성찰의 결과다.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으며 이 시대에도 살기 편한 기능을 더한 낙산 성곽길 ‘지금’ 한옥. 단순하고 심플하게, 비우고 낮춘 공간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대지 면적 125.61㎡, 설계는 최근 ‘명인명장 한수’ 공간 작업을 한 착착 스튜디오 김대균 소장이, 시공은 건화고건축 이충훈 소장이 맡았다.
한쪽 창을 통창으로 완전히 개방하고 반대편 벽면은 창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여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좌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는 창을 낮게 배치한 것이 특징.
담장은 전통 꽃담 대신 함석판을 댄 뒤 시멘트에 흙을 섞어 마감했다. 담장과 대문 모두 녹이 슬면 녹이 슨 그대로 세월의 흔적을 즐길 수 있다.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집주인 김성곤 씨는 사실 한옥을 좋아하지 않았다. 춥고 불편하다는 인식을 넘어 공간 자체가 지닌 강한 조형요소가 부담스러웠기 때문. 한편으로는 디자인 종사자로서 한옥의 우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아쉬움과 책임감도 컸다. 자연 친화적 건축물이자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빈 공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집. ‘한옥’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살기 편한 집을 구성하는 것이 이번 레노베이션의 목표였다. “요즘처럼 한옥 붐이 일기 전 작업실 용도로 이 한옥을 구입했어요. 세를 주는 동안 개ㆍ보수를 몇 번 했지만 집이 워낙 낡아 지붕과 정화조에서 계속 문제가 발생했고,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했죠. 아내와 의논한 끝에 은퇴 후 계획을 10년 앞당겨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했죠. 미루지 말고 ‘지금’에 충실하자는 의미를 담아 집 이름도 ‘zikm’이라고 지었어요.”
낮추고 비운 집
김성곤ㆍ이성민 씨 부부는 대수선을 결정한 뒤 집 짓기 관련한 책을 수없이 읽었다. 하지만 책은 책일 뿐, 실전에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혹자는 디자인을 전공했다면 응당 자신이 살 집 정도는 디자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신중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제품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인체 치수’에 대한 감각이 없다. 공간 디자이너는 이미 머릿속에 입력된 수치를 바탕으로 창의 위치나 가구와 가구 사이, 통로의 폭 등을 슥슥 결정하는데, 아마추어는 일일이 앉아보고, 걸어보고, 줄자로 재봐야 안다는 얘기다. 부부는 먼저 마음에 맞는 건축가를 찾기 위해 페이스북을 검색했다. 유명세보다는 건축가 고유의 감성, 조형성과 비례감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옥을 고치거나 짓는다고 하면 대목이나 한옥 전문 건축가를 찾지만, 굳이 범위를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때론 서로 다른 영역이 부딪치며 훨씬 큰 시너지를 발휘하기도 하니까. “전통과 현대, 기능과 미감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려면 건축가, 대목, 집주인 이렇게 세 팀의 합이 중요하죠. 지난해 3월 말부터 겨울 완공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에 저랑 아내까지 네 사람이 모여 회의를 했어요. 설계를 맡은 김대균 소장은 한옥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현대 건축가예요. 저희가 불편해하고 고치고 싶어 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늘 그 이상의 해법을 제시했죠. 반면 시공을 맡은 이충훈 소장은 전통 한옥을 고수하는 분입니다. 디자인에 우선해서 한옥의 정신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균형을 잡아주셨죠.”
안채 침실. 침대와 침대 헤드보드 역할을 하는 낮은 장 등 간결한 공간은 엄격한 미니멀리스트 디자인으로 유명한 존 포슨John Pawson의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 방은 한지 도배로 마감했다.
거실 겸 주방, 화장실을 오픈식으로 구성했다. 큐브 타입 화장실은 세면대와 샤워실을 분리한 것이 특징. 한국의 모던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도록 현관 입구에 유화성 작가의 모자 조명등, 이광호 작가의 스툴을 두었다.
천장고를 확보하기 위해 주춧돌이 드러날 정도로 바닥을 낮췄다.
이성민ㆍ김성곤 씨의 이름 중 초성과 받침을 기호화해 담벼락에 표식했다.
한옥은 ㄱ자로 꺾인 안채와 사랑채, 작은 마당으로 이뤄졌다. 안채는 침실과 거실겸 주방으로 구성, 전체적으로 현대식 통창 새시를 시공하고 입식으로 꾸몄다. 사랑채는 전통 방식을 유지하되 편의를 위해 화장실과 수납장을 추가했다. “한옥의 단점 중 하나가 지금의 입식 생활에 맞지 않은 낮은 천장이에요. 작은 공간도 천장고가 확보되면 답답해 보이지 않고 개방감이 느껴지죠. 거실과 주방은 주춧돌이 드러날 때까지 바닥 높이를 최대한 낮췄어요.” 서까래, 대들보 등 한옥 자체의 조형성이 강해 공간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는 최대한 존재감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바닥 타일과 새시는 물론(소파, 커피포트까지!) 기와와 같은 진한 회색을 선택하고, 새시는 바닥 레벨보다 깊게, 천장 레벨보다 높게 끼워 넣어 틀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공간에 가구를 최소화한 것도 특징이다. 주방 가구, 거실 붙박이장, 박스 형태의 화장실은 윗부분을 띄워 여백을 두고 시공했는데, 여백 너머로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질 것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한옥은 특유의 조형성이 강해 가구를 매치하기가 어려워요. 스틸 소재와 섞이기도 힘들고요. 비움의 미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건축가의 조언처럼 수납장을 더 짜야 하나 마지막까지 고민도 많았지만, 이참에 생활 방식을 바꿔보는 걸로 결론을 냈어요. 너무 많은 걸 갖지 않고, 최소한으로 누리는 삶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때니까요.”
화장실에서 바라본 주방 겸 거실. 윗자리와 아랫자리 구분 없이 누구나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을 두었다. 벽면은 그래뉼로 도장, 오염되기 쉬운 하단은 나무 패널로 마감했다. 오픈편의 수납장은 바닥과 천장 사이를 띄워 시공해 좁은 공간이 한결 확장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낙산 성곽이 보이는 파노라마 창이 인상적인 사랑채. 편의성을 위해 화장실을 함께 구성하되, 방과 화장실 사이의 거리감을 확보하기 위해 가운데 수납장을 배치했다. 수납장 앞에 의자를 두면 화장대로 변신!
마당을 중심으로 왼쪽이 별채, 오른쪽이 안채 침실이다. 공사하며 나온 주춧돌과 구들돌을 스툴처럼 툭툭 배치했다.
둥글게 모이는 집
안채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은 주방이다. 주방은 두 식구가 밥해 먹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조리대와 최소한의 도구를 수납할 수 있는 상부장 등 아주 콤팩트한 구성이 눈에 띈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아르텍의 원형 테이블은 부부가 한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무인양품이 제품을 개발할 때 벽으로 향하는 것은 사각으로, 사람에게 향하는 것은 둥글게 디자인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원형 테이블은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뿐 아니라, 실제 사람을 모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상석, 하석 구분 없이 누
구나 편하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좋지요.” 영국 유학 시절부터 부부의 집은 늘 학생들이 북적이는 아지트가 되곤 했단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는 부부는 이 공간을 재미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장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또 해외에서 오는 디자이너나 친구들이 한국의 디자인을 경험하면서 쉴 수 있도록 게스트 하우스로도 활용할 예정. “모 교수님이 은퇴식에서 ‘은퇴 준비는 서두를수록 좋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뇌리에 남아요. 아이들이 자라 독립하면 트렁크 몇 개 정도로 정리할 수 있도록 짐을 최소 한으로 줄여 미니멀하게 살아보려고요. 은퇴하기 몇 년 전부터는 이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살아보고 싶은 도시를 정해서 한두 달씩 살아볼까 싶기도 해요. 반대로 한옥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이 이 집을 그렇게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안채 지붕을 덮었던 옛 기와를 얹어 집의 흔적을 남긴 사랑채는 낙산 성곽이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 창이 인상적이다. 문을 모두 열어놓으면 안채 침실에서도 사랑채 창을 너머 성곽길이 훤히 보인다. 한옥 특유의 빗물받이를 생략하니 하늘 평수도 넓어졌다. 비가 오면 마당의 마사토 위로 낙숫물이 똑똑 떨어져 자국이 생기는데 그 모습이 제법 운치 있다. 침대에 누우면 깜깜한 하늘 너머 별을 셀 수 있는 집, 비가 오면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의 운율을 서라운드로 듣는 집, 옛집이지만 자연과 대응하는 데는 최첨단에 있는 집. 단순하고 심플하게 비우고 낮춰 공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한옥을 통해 이야기하고픈 ‘집’의 진정한 의미일 터.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 ‘지금’이 반가운 이유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전통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편리함이 느껴지는 낙산 지금 한옥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5월 31일(수) 오후 1시 인원 5명
장소 동대문 낙산 성곽길 지금 한옥 참가비 1만 원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고친집 #한옥 #기타 #거실 #방/침실 #주방 #기타 #건축가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